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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오후가 되자 강이한이 돌아왔다.

그는 오자마자 서재에 틀어박혀 한참이나 어딘가로 통화하다가 나왔다. 유영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애착 인형을 품에 안은 뒤, 소파에서 TV를 시청했다.

남자가 다가와서 그녀의 품에서 인형을 빼앗아 옆으로 던졌다. 유영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한지음이 납치당했다고 지금 나한테 화풀이하는 건가?

“왜 이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그럼 그냥 말하면 되지 인형은 왜 던지고 그래?”

강이한도 짜증이 치밀었다. 남편이 얘기 좀 하자는데 그까짓 인형 좀 던졌다고 성질을 낼 일인가?

그녀는 사소한 행동 하나로도 그를 빡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소파에 다가가서 앉았다.

유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흘겨보고는 인형을 다시 품에 안았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녀의 이런 행동은 남자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오늘 지음이 만났다고 들었어.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지?”

강이한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유연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그래, 전생에도 이런 말투였었지.

전생에 한지음이 납치당했을 때도 그는 출장 중에 부랴부랴 돌아와서 지금처럼 범인을 심문하는 태도로 그녀에게 따진 적 있었다.

그때 그녀는 어떻게 다른 여자 때문에 나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냐고 억울함을 토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나한테 질문할 게 아니라 당신 여동생한테 가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유영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확인하고 싶은 게 뭐야? 우리 아직 부부 아니야? 지금 바깥 여자 때문에 날 추궁하는 거야?”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아내를 보자 강이한은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외부인이 납치를 당했다고 10년을 함께한 아내에게 추궁하는 꼴이라니!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한결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유영아, 한지음이 납치당했어.”

“그래서?”

“당신은 오늘 한지음을 만났었고.”

“그래서?”

계속해 봐, 강이한. 이번에도 내가 한지음을 납치한 거냐고 따질 거야?

전생에 저 인간이 나한테 뭐라고 했었지?

그때 추궁하듯 따지는 그에게 유영은 내가 아니라고 짧게 답했다. 그때 강이한은 아무리 화가 나도 이건 아니라며 한지음의 행방을 물었다. 우린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면서.

그때 강이한은 유영이 한지음을 납치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때의 그 실망과 분노가 가득 담긴 그의 표정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났다.

한참 침묵하던 강이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갈게. 저녁에 못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당신 혼자 먹어.”

유영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그녀가 10년을 바쳐 사랑한 남편은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의 실종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한때는 그의 눈에 이유영만 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녀가 야채를 썰다가 손을 살짝 다쳐도 후유증이 남진 않을까 호들갑을 떨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제 여기에 없다.

강이한이 떠나고 두 시간이 흐른 뒤, 진영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체 세강의 안주인이 돼가지고 품위는 어디 갖다 팔아먹은 거냐? 네 그릇된 행동으로 회사 주가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아?”

“내가 전에 뭐라고 했어? 이한이처럼 큰일을 하는 남자면 잠깐 밖에서 여자를 만나도 눈 감고 넘어가 줘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니?”

유영은 뉴스를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지금 온 도시가 한지음 실종 사건으로 들끓고 있다는 것을 과거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상대는 여론까지 동원해서 그녀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그때의 그녀는 강이한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에 외부 여론에 대처할 정신이 없었다.

한번 삐끗한 그녀의 인생은 그렇게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지금, 그녀는 두려움 없이 이 모든 걸 헤쳐나가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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