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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유영은 피아노실에서 빗소리에 맞춰 무아지경으로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긴 생머리를 그대로 드리우고 피아노에 심취한 그녀의 모습은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강이한은 조용히 문 앞에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리가 멎고 유영이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어?”

“10분 정도 됐나?”

남자는 며칠 전 집을 나가기 전 입은 옷 그대로 입고 있었다.

집에 안 돌아온 그 시간 동안 병원에서 한지음의 옆을 지킨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은 조금 피곤해 보였다.

유영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거실에 쌓인 물건들 봤어?”

“왜 버리지 않고 그대로 뒀어?”

“누가 보냈는지 궁금하지 않아?”

유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남자의 눈빛이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가 집을 비운 사이 그녀를 비난하던 네티즌들이 이런 미친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가 아는 유영은 겁이 많은 여자였다.

여론이 들끓고 있을 때, 그는 유영의 연락을 기다렸다. 최근 며칠 사이 그녀가 보여준 행보는 그가 아는 유영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부러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는 이 세상에서 유영이 기댈 곳은 강이한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유영에게서는 끝까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보냈는지 알아?”

“몰라.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어.”

“신고했어?”

강이한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는데 가장 먼저 남편을 찾지 않고 경찰에 신고 하다니!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쓰리고 아팠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유영의 팔목을 잡아 일으켰다.

유영은 팔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경찰에서는 뭐래?”

“조사 결과 기다리는 중이야.”

“왜 나한테 연락도 하지 않았어?”

예전에는 사소한 일 하나로도 가장 먼저 그에게 연락하던 여자였다.

유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전에는 매끄럽던 피부가 많이 거칠어진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바쁜 것 같아서. 면도할 시간도 없이 바빴잖아. 아니야?”

강이한의 얼굴이 흠칫하며 굳었다.

최근 며칠 사이, 병원 관계자들과 미팅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지음의 망막은 완전히 손상되었고 다리까지 골절되어 여러 차례 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평생 시력을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유영은 남자의 표정을 읽고 손을 내렸다.

“이거 봐. 이제 지켜줘야 할 사람이 또 한 명 생겼잖아.”

“유영아.”

유영은 말없이 소파로 다가가서 앉았다.

강이한은 철벽을 치는 그녀의 태도에 하고 싶었던 말을 다시 삼켜야 했다.

매번 싸울 때면 유영은 이런 식으로 행동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이해할 때까지 시간을 주는 것뿐이었다.

“며칠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화가 안 풀렸구나.”

그의 목소리에서 냉기가 느껴졌다.

피곤해서 그런지 유영을 달래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짜증부터 치밀었다.

외간 여자에게 정력을 다 쏟고 돌아와서 마누라한테 짜증을 내는 남편이라.

“은지가 법원에 소송 신청을 냈을 거야. 곧 재판이 진행될 거니까 당신도 우리 사이에 대해 다시 고민해 봐.”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인생에 이혼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빈번히 출현할 줄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진심이었어?”

처음에는 그냥 욱하는 마음에 성질을 부리는 거로 생각했다. 그는 그제야 유영이 진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맞아.”

남자는 분노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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