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Chapter 801 - Chapter 810
812 Chapters
제801화
“미쳤어?”“그러게 말이야. 한밤중에 뭐 하는 짓이야?”호텔에 묵은 투숙객들이 화를 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이연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손가락을 튕기자 한 무리의 경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경호원들은 현금이 담긴 돈 봉투를 나눠주었다. 조금 전까지 욕설을 퍼붓던 투숙객들은 얌전히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그런데 문을 걷어찬 방 중에 단 두 개의 방만 문이 꽉 닫혀있었다. 한창 휴대 전화를 말리던 정가혜는 헤어드라이기 소리가 하도 커서 듣질 못했다.심형진도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수술 과정을 열심히 지켜보느라 아무 소리도 듣질 못했다.이연석은 앞으로 다가가 방문을 힘껏 걷어찼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자 굳게 닫힌 다른 방 앞으로 다가갔다.이번에는 구두를 신은 채 있는 힘껏 걷어찼다. 어찌나 세게 걷어찼는지 문에 걸린 번호 패마저 뚝 떨어졌다.정가혜는 소리를 듣고 헤어드라이기를 껐다. 누군가 문을 걷어차는 것 같아 휴대 전화를 내려놓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정가혜, 문 열어!”문을 열려던 정가혜는 분노와 짜증이 섞인 이연석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지금 심형진이랑 같이 있는 거 알아. 당장 문 열어!”걷어차여 흔들리는 문을 보며 정가혜는 눈살을 찌푸렸다.“이연석 씨, 당신 미쳤어요?”문밖에서 더 걷어차려고 발을 든 이연석은 정가혜의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만약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더라면 다시 올라가서 단이수를 한 대 치려 했다. 이게 다 단이수가 헛소리를 해서 벌어진 일이니까.그런데 지금 정가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연석은 온몸이 다 떨렸다.이런 기분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마에 식은땀마저 송골송골 맺혔다. 이젠 화가 나다 못해 무감각해졌고 숨을 쉬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러면 심장이 멈췄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런데 이연석은 그 문을 열 용기가 없었다. 혹시라도 더러운 장면을 목격할까 봐 너무도 두려웠다.‘근데 이 문을 열지 않으면 두 연놈이 밤새 즐길 거잖아. 그 꼴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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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2화
정가혜는 이연석의 손을 따라 잠옷을 내려다보았다.이연석과 만날 때 이연석은 그녀의 낡은 옷들을 모두 버렸고 매주 비싼 옷들을 가득 보냈다.그녀의 옷장에는 온통 이연석이 사준 옷과 가방, 그리고 액세서리였다. 명품 브랜드에 신상이 나오면 이연석은 바로 사서 보냈다.그가 사준 게 정말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근검절약하며 살아온 정가혜는 버리기 아까워 계속 입고 있었다.그런데 이연석이 콕 집어 말하자 그제야 잘못됐음을 깨달았다.‘전 남자 친구가 준 물건은 다 돌려줬어야 했는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지?’그 점을 깨달은 정가혜의 안색이 갑자기 바뀌었다.“돌아가면 나한테 선물했던 것들 다 돌려줄게요.”그러고는 이연석을 더 쳐다보기도 싫은 듯 급히 문을 닫으려 했다.이연석은 한 발로 문틀을 막고 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모습에 정가혜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정가혜의 경계심 가득한 행동이 이연석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힘이 센 이연석은 한 손으로 정가혜의 두 손을 잡은 후 뒤로 가져갔다. 그 바람에 정가혜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높은 콧대가 정가혜의 매력적인 빨간 입술에 여러 번이나 스쳤다.정가혜는 손을 움직일 수가 없어 이연석을 발로 걷어차려 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입술이 그의 볼에 닿기도 했다.가볍게 몇 번 스쳤을 뿐인데도 이연석은 온몸에 전기가 흐른 것처럼 찌릿했다. 하지만 아직 화가 난 상태라 그쪽으로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이연석은 싸늘한 얼굴로 계속 반항하는 정가혜를 노려보다가 길고 탄탄한 허벅지로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 그녀를 가두었다.“이연석 씨,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비록 이연석과 아무것도 하진 않았지만 심형진이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대체 뭐라 설명해야 할까?이연석은 다른 한 손으로 정가혜의 볼을 잡고는 예쁘고 매력적인 얼굴을 눈앞으로 가까이 가져다 댔다.“내 질문에 아직 대답 안 했어요.”이연석은 정가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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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3화
“선생님, 환자 갑자기 복강 내 출혈이...”꽉 닫힌 욕실 문을 열기 전에 다른 한쪽 이어폰에서 집도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심형진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이어폰을 끼고 수술을 가르쳤다.이연석은 정가혜와 키스하다가 산소 부족으로 숨이 가빠져서야 키스를 멈췄다. 정가혜도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너무도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따귀를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손과 발이 잡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여 그저 이를 꽉 깨물고 씩씩거리며 욕만 퍼부었다.“이연석 씨, 나 남자 친구 있는 거 몰라요? 지금 나더러 남자 친구 어떻게 보라고 이러는 건데요?”이연석은 남자 친구라는 소리에 겨우 가라앉았던 화가 또다시 끓어올랐다.“내가 헤어지라고 했잖아요. 헤어지기 싫다면 양다리 걸칠 준비나 해요, 그럼.”두 눈에 핏발이 선 이연석이 이 말을 내뱉었을 때 정가혜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에요.”“맞아요!”이연석이 고개를 숙이고 이를 깨물었다.“난 이상하고 문제 많아요. 어릴 적부터 정상이 아니었어요.”거의 포효하듯이 소리쳤다. 목소리가 방 전체에 울려 퍼지자 정가혜는 화들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조용히 해요.”“왜요? 들을까 봐 무서워요?”이연석은 다시 그녀의 볼을 잡고 꾹 눌렀다.“우리가 이러는 거 볼까 봐?”그러고는 또 일부러 정가혜의 귓가에 바람을 불었다.“생중계로 그 사람한테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난.”“미친!”정가혜는 이를 악물고 그를 욕했다.“미친 짓 다 했으면 이거 놓고 나가요!”그런데 이연석이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가혜 씨, 내가 미치는 건 다 당신 때문이고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요.”그는 예전에는 둘째 형이 왜 서유가 다른 남자와 자는 걸 그렇게 싫어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까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픈지 제대로 느꼈다.이연석은 개의치 않아 할까? 아니, 죽어도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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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4화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이연석은 정가혜를 욕실 앞으로 끌고 가더니 욕실 문 쪽으로 밀어붙였다. 화들짝 놀란 정가혜가 고개를 돌렸다. 간유리 사이로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심형진의 모습이 보였다.심형진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있어 소리도 듣지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 정가혜는 혹시라도 그에게 들킬까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그런데 이연석은 그녀가 당황하든 말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다른 한 손을 잠옷 안으로 넣었다.그가 직접 가르친 거라서 어느 부위가 가장 민감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손이 살짝만 닿았을 뿐인데도 정가혜는 꼼짝도 하질 못했다.“연석 씨, 당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퉁퉁 부은 입술로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훅 들어왔다. 그녀 입안의 공기마저도 다 빼앗아버렸다.이연석은 마치 그녀를 벌하듯이 마구 키스했고 손으로 계속 그녀의 민감한 부위를 어루만졌다.정가혜는 이런 모습의 이연석을 처음 봤다. 정말 미친 사람이 따로 없었고 앞뒤라곤 가리지 않았다.겁이 난 그녀는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세 살 어린 이연석은 나이만 어릴 뿐 힘은 놀라울 정도로 셌다.이연석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귀와 목에 키스하기 시작했다. 정가혜는 분노를 참으면서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연석 씨, 난 형진 선배랑 아무 일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러지 말아요. 무고한 사람한테 상처 주지 말라고요.”심형진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소리에 터질 것처럼 아팠던 심장의 고통이 순식간에 덜해졌다. 하지만 뒷말이 또 이연석을 자극하고 말았다.그는 정가혜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잡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야말로 조롱이 가득한 웃음이었다.“그 사람이 상처받는 건 안 되고 난 받아도 된다는 거예요?”정가혜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를 벗어나려고 힘을 주면 줄수록 더 벗어날 수 없어서 차라리 포기하고 그냥 노려보기만 했다.그녀가 이젠 말도 섞지 않자 이연석은 화가 나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손가락마저 부들부들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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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5화
심형진과 헤어질 거란 소리에 이연석의 분노도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는 정가혜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손을 들어 품에 안았다. 마치 잃었던 소중한 보물을 다시 얻은 것처럼 꼭 안았고 내려놓기 아쉬웠다.“가혜 씨, 심형진이랑 헤어지면 예전처럼 나랑 다시 만나요. 앞으로는 절대로 다른 여자 만나지 않고 가혜 씨한테만 잘해줄게요. 가혜 씨만 괜찮다면 우리...”부모님을 만나고 결혼까지 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가혜가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요. 난 연석 씨 다시 만날 생각 없어요.”정가혜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이 갑자기 굳어졌다. 이연석은 품속의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게 무슨 말이에요?”“귀먹었어요?”정가혜는 무서울 게 없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연석 씨랑 다시 만나지 않고 남자 친구도 만나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쭉 혼자 살겠어요.”‘남자 해서 뭐 해.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경로당이나 사서 간병인 찾아 남은 인생을 사는 것도 얼마나 좋아. 나처럼 버려진 고아는 가정을 꾸릴 자격도 없어. 그냥 혼자서 늙다가 죽어야지.’정가혜는 이연석을 힘껏 밀어냈다. 이연석은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이었다.“당신...”이연석은 정가혜의 고집이 이렇게 셀 줄은 몰랐다. 남자 친구를 만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 다시 만날 생각은 없다고 했다.‘나랑 만나는 게 그렇게 싫은가?’“가혜 씨.”이연석은 정가혜의 코앞까지 다가갔다.“날 또 거절했네요. 앞으로 가혜 씨랑 다시 만나자는 얘기 절대 안 할 겁니다.”정가혜는 그의 말을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든 말든 그냥 짜증 섞인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먼저 나가 있어요. 적어도 형진 선배랑 단둘이 얘기할 시간은 줘야죠. 헤어지는데 옆에서 감시라도 할 거예요?”정가혜의 말투가 어찌나 차분한지 모든 걸 다 체념한 듯했다.이연석은 얼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빤히 보다가 결국 돌아섰다. 방을 나가기 전 발걸음을 멈추고 정가혜를 싸늘하게 돌아보았다.“깔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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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6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경호원은 마지못해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그의 입에 가져다 댔다.“도련님, 처음 한 모금 빨 때 폐로 들이마시지 마세요. 사레에 걸릴 수 있습니다.”콜록콜록.경호원이 담배를 피우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전에 한 모금 빨아 마시던 그는 사레에 걸려 연속 기침을 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깜짝 놀란 경호원은 얼른 굳은살이 박인 손을 들어 그의 등을 두드렸다.힘이 너무 세서 그를 아프게 할까 봐 조심스럽게 간지럽히듯 그의 등을 쓰다듬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까스로 숨을 돌린 그가 다시 담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정가혜도 피우는 담배를 난 왜 안 되는데?담배를 물기도 전에 큰 손이 다가와 그의 입에서 담배를 낚아챘다. “네가 뭔 담배를 피운다고 난리야?”고개를 들어보니 흰색 정장 차림으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단이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내놔.”대답하기 귀찮았던 단이수는 담배를 집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휴지통에 던졌다. “너 또 이러면 누나한테 전화할 거야.”이승하가 없으니 제멋대로인 이연석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승연뿐이었다. 차가운 누나의 얼굴이 떠오른 그는 더 이상 담배를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얼굴의 분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씩씩거리는 친구를 보며 단이수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겪어본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말하는데. 좋아한다면 소중히 여겨. 그 여자한테 상처 주지 말고.”“그 여자랑 싸우고 억지 부리면 결국은 내 꼴이 될 거야. 나중에는 울면서 무릎 꿇고 빌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별처럼 반짝이던 그의 눈 밑에 걷잡을 수 없는 우울함이 가득했다.과거의 자신을 원망이라도 한 듯 두 눈에 슬픔이 차올랐다. 뼈에 사무친 기억을 접어두고 그가 다시 이연석의 어깨를 힘껏 두드렸다.“내 말 들어. 잃고 난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붙잡아.”“난 너랑 달라.”한참을 타일렀지만 결국 그한테서 돌아온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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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7화
한편, 욕실 입구에 서 있던 정가혜는 심형진이 병원 측과 통화를 마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용기를 내어 욕실 문을 열었다.고개를 돌리자 굳은 얼굴로 문밖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어폰을 벗고 그녀의 쪽으로 걸어갔다.“왜 그래?”가까이 다가가니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고 입술은 격렬한 키스를 나눈 것 같이 퉁퉁 부은 게 똑똑히 보였다.그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던 그녀는 어색한 표정을 숨기려 고개를 숙였지만 그가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 “누가 너 괴롭혔어? 말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의 따뜻한 말투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녀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그녀가 괴롭힘을 당한 것은 아닌지라는 걱정뿐이었다. 그 모습이 더욱 그녀를 미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좋은 남자는 자신에게 과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이 사람을 붙잡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선배, 우리 헤어져요.”깊은숨을 들이마시던 그녀가 용기를 내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연애 기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그가 더 좋은 상대를 만나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짜고짜 헤어지자는 말을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부어오른 그녀의 입술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는 그가 이를 악물며 물었다.“무슨 일 있는 거야? 나한테 영향이라도 미칠까 봐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거야?”헤어지더라도 그한테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그게 최소한의 예의니까.“방금 연석 씨가 찾아왔어요. 선배도... 봤죠?”그녀는 부어오른 자신의 입술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랑 헤어진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툭하면 날 찾아오고 있어요.”“선배랑 사귀고 있어도 계속 찾아올 거예요.”“선배가 나 때문에 상처받는 거 싫어요. 그러니까 우리 이제 그만해요.”그제야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이 호텔 방을 잡은 걸 이연석이 알고 이리로 달려와 정가혜를 괴롭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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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8화
한편,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던 이연석은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얼굴이 굳어졌다. 가까스로 가라앉은 분노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하늘을 찔렀다. 심형진과 헤어지라고 했는데 헤어지기는커녕 이리 떡하니 손을 잡고 그 앞에 나타나다니. 참 대단한 여자다. 심형진은 사람들 속에서 구석진 소파에 앉아 희미한 불빛에 가려져 있는 이연석을 정확히 찾아냈다.“이연석 씨.”그는 그녀를 끌고 가까이 다가가 이연석의 앞에 우뚝 섰다. 이연석의 신분과 배경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했고 옆에 있는 명문 가문의 도련님들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시는 내 여자 친구 귀찮게 하지 말아요. 그렇지 않으면...”“그렇지 않으면요?”심형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연석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파 위의 남자는 턱을 치켜든 채 하찮은 표정으로 심형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그쪽 집안 세력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날 감옥에 가두어 두기라도 할 건가?”심형진은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었다. 이씨 가문의 사람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집안 배경이 당신보다 못한 거 맞아요. 하지만 모든 일은 이치를 따져야 하는 거예요.”“가혜가 내 여자 친구인 걸 뻔히 알면서도 가혜한테 이러는 건 경우가 아니죠.”“기본 예의도 없는 사람이 집안 배경이 좋으면 뭐 합니까?” “부도덕하고 교양도 없는 사람이...”거침없이 질책을 쏟아내는 심형진을 보며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누구야? 간도 크네. 감히 이연석한테 교양이 없다고 하다니.”“글쎄. 대단한 용기야. 이연석을 저렇게 꾸짖는 걸 보면. 감탄스러워.”“감탄은 무슨. 죽고 싶어 환장한 거겠지. 연석아, 가만히 내버려둘 거야? 혼내줘야지.”한편, 단이수는 아무 말도 없이 옆에 있는 이연석을 흘겨보았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술잔을 잡은 손까지 떨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단이수는 깊은 한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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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9화
주먹을 내리치려고 하는데 달려드는 정가혜를 보고 이연석은 주먹을 거두었다.이미 눈을 감고 얻어맞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살짝 당황했다.이연석이 주먹을 거둔 걸 알면서도 그녀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심형진의 얼굴만 내려다보았다. “선배, 괜찮아요?”그녀가 달려들 때 그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괜찮아.”정가혜가 달려들어 자신을 감싸줄 줄은 몰랐다. 그녀를 위해 나선 일이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많이 다쳤지만 의식은 잃지 않는 그를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이연석을 돌아보았다. “이연석 씨, 날 괴롭힌 것도 모자라 지금 내 남자 친구까지 때린 거예요? 경찰에 신고할 거니까 경찰서에서 봐요.”말을 마친 그녀는 심형진의 몸 위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밀쳐내고 심형진을 부축해서 VIP룸을 빠져나갔다. 해프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두 사람이 떠난 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이연석을 부축했다.“일어나.”그는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새빨개진 두 눈으로 두 사람이 떠난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정가혜, 심형진과 헤어질 거라고 약속했잖아. 왜 그 약속 안 지키는 건데?정말 심형진을 좋아하게 된 거야?정말 그런 거라면 그럼 난? 난 어떡하라고...항상 체면을 중시하던 이연석은 친구들 앞에서 이런 낭패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근데 정가혜라는 여자 때문에 지금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바람이 빠진 공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 누구를 닮은 건지? 생각해 보니 딱 예전 그의 모습이었다. 소중히 여기라고 했건만. 여자랑 다투지 말라고 했건만. 그렇게 내 말을 듣지 않더니. 쌤통이다. 단이수는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을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오늘은 이쯤에서 하고 다들 그만 돌아가. 여기는 나한테 맡겨.”사람들은 이연석을 비웃지 않았고 그저 단이수에게 잘 타이르라고 당부한 뒤 자리를 떴다. 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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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0화
정가혜는 심형진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경찰에 신고했다.그 때문에 부산에 있는 별장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연석은 경찰에 붙잡혀갔다.부산 경찰이 집안에 알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었던 그는 처음으로 순순히 경찰차에 올라탔다.경찰서에 들어서니 정가혜가 얼음주머니를 들고 심형진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가 난 그는 콧방귀를 뀌며 머리를 한쪽으로 돌렸고 경찰은 그를 끌고 취조실로 향했다.왜 사람을 때렸냐고 한참이나 추궁했지만 그는 단이수 변호사만 불러달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한밤중에 경찰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단이수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슬리퍼만 신은 채 경찰서로 달려왔다. 한참 동안 경찰 쪽과 얘기를 나눈 끝에 사적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마지막으로 충고 한마디 했다.“나중에 정가혜 씨가 이연석 씨를 성추행으로 고소한다면 법정에 서야 할 겁니다.”변호사인 단이수는 당연히 그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경찰을 향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태도가 좋고 이연석도 모처럼 생떼를 부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사적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취조실에 들어온 단이수는 이연석한테 밖에 있는 두 사람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다.그들한테 사과라니? 그 순간, 이연석은 벌컥 화를 냈다.“나한테 지금 사과하라고 한 거야? 차라리 그냥 구속하라고 그래.”화가 치밀어오른 단이수는 눈을 희번덕거렸다.“사과 안 해? 그럼 너희 둘째 형이나 큰누나한테 연락할 거야.”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등을 돌렸다.“전화해. 형이랑 누나가 온다고 해도 절대 사과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심형진이 먼저 제 발로 찾아온 것이었고 정가혜가 그의 화를 돋운 것이었다. 근데 그가 왜 먼저 사과를 해야 하는 걸까?부산에서 이씨 가문의 명성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참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벌써 이 일을 처리했을 것이다. 감히 날 괴롭혀?고집이 센 그가 아무리 타일러도 듣지를 않자 단이수도 그만 포기하고 혼자 밖으로 나와 정가혜와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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