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리는 도착했다고 일깨웠다."도착했어.”서준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그는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토록 연우진이 보고 싶었어?"그의 말투는 매우 담담하여 거의 아무런 기복도 없었다.신유리는 멈칫하더니,"우서진이 알려준 거야? "우서진 말고는 할 일 없이 이 소식을 서준혁에게 알려줄 사람이 없다."연우진이 많이 신경 쓰이나 봐?"지하 주차장의 불빛은 어두웠다. 차 안은 더더욱 그렇다.신유리는 야맹증을 앓고 있어 서준혁의 앉은 위치는 흐릿하게 보이고 그의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서준혁은 가볍게 '쯧쯧' 하며 무심코 입을 열었다."신유리, 연우진 집안을 봐서는 깨끗하지 못한 여자는 인정 안 할 거야. "신유리는 한참 동안 어리둥절하다가 그가 말한 뜻을 알아챘다.그녀는 눈을 감으면서 가슴에 맺힌 화가 한 차례 통증이 밀려왔다.신유리는 천천히 정신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되찾으며 말했다."내가 그 깨끗하지 못한 여자야?"서준혁의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다."그건 모르지, 그냥 그렇다고. "서준혁은 말하고 나서 차에서 내렸다.그의 뒷모습이 천천히 모퉁이로 사라지자, 쭉 지켜보던 신유리는 핸들을 잡은 손을 천천히 조였다.서준혁이 방금 한 말이 그녀의 마음에 깊숙이 박혔다.'내가 깨끗하지 못한 여자였구나!''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해 온 거야?''그러면 여태껏 날 갖고 논 거야?'신유리는 차에서 한참 진정하다가 차가워진 손발을 녹였다.서준혁은 늘 어떻게 하면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정말 잘 알고 있었다.집에 돌아왔을 때, 신유리의 몸은 여전히 힘이 없어 나른했다.옷도 갈아입지 않고 하이힐을 걷어차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따뜻한 물이 머리 위로 흘러내리자, 그녀는 얼굴을 위로 내밀며 물줄기에 맞으면서 서있는 것이 마치 무언가를 씻어내려는 듯했다.그녀의 피부는 원래 하얗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맞으면 금방 분홍색이 떠오른다.분홍색이 달아오른 팔을 보면서 서준혁이 말한 깨끗하지 못하다
하지만 신유리는 여전히 송지음을 과소평가했다.점심시간, 그녀는 사무실 입구에 나타나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올라 울었던 흔적이 보였다.그녀는 신유리 앞에 나타나더니 심한 콧소리로 말했다."유리 언니, 미안해요, 점심때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어요."신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눈을 들어 송지음을 바라보자, 진심다워 보였다."다시는 안 그럴게요, 저는 그냥 나중에 실수라도 할까 봐 미리 회장님 취향을 알고 싶어했을 뿐이에요."그녀의 태도와 변명은 늘 완벽했다. 게다가 점심시간이라 대부분 직원이 사무실에 있어 신유리도 뭐라 하기 애매했다.신유리는 차라리 송지음을 데리고 바깥 베란다로 나갔다.베란다에서 송지음은 열심히 신유리의 말을 듣고 있었다.신유리의 마음속에는 별다른 파장이 없었다.무슨 얘기긴!오랜 시간을 들여 알아낸 서준혁 부모의 취향을 휴식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송지음은 그걸 쪽쪽 빨아먹고 있을 뿐이다.오히려 신유리는 홀가분했다.신유리는 마지막 한 가지를 말하고는 휴대전화를 보더니 돌아가려 했다."출근 시간이야. ""유리 언니."송지음은 수첩을 끌어안고 부드럽게 그녀를 불렀다."언니…. "그녀는 망설이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신유리는 잘 알고 있다. 송지음은 서준혁 부모의 취향을 어떻게 그토록 자세하게 알아냈는지 묻고 싶은 것이었다.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려는 송지음의 시선에 신유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대표님 알려준 게 아니야."송지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수첩을 들고 떠났다.신유리는 베란다에 잠시 서 있었다.베란다에 외벽 유리를 사이에 두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신유리의 눈동자는 아주 평온했다.서준혁 부모의 취향은 확실히 서준혁이 그녀에게 알려준 것이 아니다.예전의 서준혁은 화인의 일에 전념하느라 집안과의 관계가 매우 안 좋았다.그땐 그녀는 어리석게도 자신이 그의 부모님께 잘 보이면 부모로서 아들을 도와줄 줄 알았다.두 분의 취향도 갖은 비난과 실
송지음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하정숙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정오에 하정숙을 만났을 때부터, 하정숙은 줄곧 그녀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원래는 하정숙의 하대가 냉담하는 걸로 끝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비난할 줄 몰랐다.하지만 신유리가 아직 남아 있어 송지음은 그녀 앞에서 더더욱 체면을 깎이고 싶지 않았다.송지음은 애써 입꼬리를 위로 잡아당기며 웃음을 짜내려고 애썼다."저는 그냥 사모님을 돕고 싶었을 뿐이에요."하정숙은 송지음의 불쌍한 표정을 못 본 것처럼 보잘것없는 물건을 대하듯이 풍자가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보았다.송지음은 하정숙의 주시에 버티기에 힘들었으나 그래도 등을 꼿꼿이 세워 계속 견지했다. 계속 유지하던 미소도 거의 한계를 달아, 송지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작은 소리로 하정숙을 불렀다."어머님…. ""어머님? " 하정숙은 송지음의 부르던 호칭을 반복하면서 그녀의 손에 들고 있었던 문서를 빼앗으며 냉정하게 말했다."역시 가문이 별로인 사람은 분수가 참 없구나! "하정숙의 말투에는 무시가 넘쳐나 평소 표정 관리에 능숙한 송지음마저 충격이라도 맞은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신유리는 자신과 별로 상관이 없어서 별 반응이 없었다.그녀는 검사 결과를 들고 곧바로 의사를 찾아 나섰다.의사 선생님도 결과를 보면서 회복이 잘되고 있다며 그녀에게 주의 사항을 많이 당부했다.병실에 돌아오니, 연우진이 마침 외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신유리는 이미 적응되었다. 최근 며칠 동안 병원에 가면 연우진은 꼭 거기에 있었다.그는 평소 학문을 부지런히 닦은 덕분에 외할아버지와 즐겁게 얘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신유리가 들어오자 연우진이 물었다."외할아버지가 많이 좋아지신것 같아. ""응." 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되물었다."언제 왔어?”"나도 방금 왔어.""오늘 밤 정재준의 생일이라던데, 너한테도 메시지 보냈는데 답장 안 했다며? 그래서 와본 거야."생각해 보니, 정재준이 며칠 전 자신을 생일파
그녀는 성격이 활발하고 우서진과 함께이니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신유리는 한쪽에 서서 할 일이 없자 스스로 가서 이미 꿰어놓은 꼬치 몇 개를 집어 판 위에 올려놓았다.신유리는 바베큐를 별로 먹지 않고 요리도 거의 안 해봐서 불 조절을 잘하지 못한다. 그녀는 탄 냄새가 나서야 음식이 다 타버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마침 물건을 가지러 왔다가 냄새를 맡은 우서진이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냄새지?" 신유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탄 음식을 접시에 담아 버리려고 했지만, 눈치 빠른 우서진이 이를 바로 발견했다.그는 약간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유리 씨, 똥손이에요?” 접시를 든 신유리의 손이 살짝 멈칫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서진 얼굴의 혐오스러운 기색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후에 신유리에게 당한걸 아직 되돌려주지 못했으니 이런 기회를 자연스레 놓치지 않을 것이다.그는 접시 위의 탄 음식을 보고는 혀를 차며 말했다."그 현모양처 이미지는 준혁이한테 보여주는 거예요. 아니면 우진이한테 보여주는 거예요?" 그는 그녀의 모습이 우습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그는 또 마침 신유리의 앞을 막고 서있었다. 신유라는 접시를 들고 무표정인 얼굴로 낮은 소리로 말했다."우서진 씨, 당신 진짜 사람 짜증 나게 한다고 말했던 사람 없어요?" 그녀는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고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그녀의 말에 우서진은 차가운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내가 그동안 당신한테 너무 예의를 갖췄죠?” 갑자기 높아진 언성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향했다. 정재준은 서준혁과 함께 그들이 이전에 참여했던 화인 그룹의 협업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는데, 소리를 듣고 우서진과 신유리를 쳐다보았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서진 씨는 왜 유리 씨한테 유독 저럴까?” 그는 말을 마치고 서준혁과 우서진이 친한 친구라는 것이 생각나 어색하게 웃었다. 그가 서준혁
“빨리 와서 도와줘, 지음 씨가 다쳤어!”바깥의 어수선한 소리에,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갔다. 신유리는 순간적으로 차가워진 서준혁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바로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유리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바깥을 바라보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갔으니 자기 하나쯤은 빠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날씨가 흐리고 시선도 흐릿해져서 그녀가 나가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방 안은 순식간에 비기 시작했고, 몇 사람만 남아있었다. 신유리는 두리번 보았으나 다들 모르는 사람이었다. 때마침 이신에게서 문자가 왔다. 신유리가 이신의 문자에 답장하자마자 밖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왔다. 방안은 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머리카락이 빗물에 젖어 얼굴에 붙은 송지음의 모습이 마치 연약한 작은 백합꽃 같았다. 송지음은 서준혁에게 기대어 여러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신유리는 그녀가 발이 다친 줄 알고, 이 많은 사람들을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조금 비켜주었다.송지음은 부축받으며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지만 애써 웃음을 지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제가 걱정을 끼쳐드렸어요. 저는 괜찮아요.”정재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진짜 괜찮아요? 아니면 병원에 가서 검사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는 걱정이 되었다. 오늘 그가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기 때문에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책임을 질 수 없을 것 같았다.우서진도 말했다.“비 오는 데, 혹시 상처에 세균이라도 감염되면 어떡해. 준혁아 네가 데리고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의 말투는 이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자신의 관심을 확실히 표현했다. 신유리는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병원 갈래?”서준혁의 목소리였다. 그는 송지음의 손바닥 상처를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마치 그녀를 달래듯이 말했다. 송지
우서진은 대놓고 조롱하는 눈으로 신유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장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좋지 않은 태도로 말했다.“준혁이 아직 안에 있는데 좀 자제할 수 없어?” 신유리는 이전에 우서진에게 오해를 받았을 때,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러는 것도 귀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담담하게 우서진을 쳐다보고는 장현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저한테 코트 가져다 달라고 하셨죠?” 장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그는 우서진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는 정재준과 친분이 있어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서진이 신유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두 사람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장현의 집안도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도 자연히 우서진과 껄끄러운 사이가 되기가 싫었다. 그는 신유리를 보며 말했다.“내가 가져다 달라고 하면 갖다줘? 온몸이 흙투성이면서, 내 옷에도 묻힌 거 아니야?”신유리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더럽다고 생각하시면 쓰레기통이 바로 옆에 있어요.” 장현은 그녀가 말대꾸를 할 줄 몰랐다. 그는 잠시 멈칫하다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우서진 앞에서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다.그는 차가운 눈으로 신유리를 보며 말했다.“이렇게 더러운 옷을 입고 무슨 낯으로 돌아다녀,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어디에서 온 동냥꾼인 줄 알겠어.” 신유리의 옷에 묻은 흙들은 다 송지음을 부축하다 묻힌 것이다. 사실 그렇게 많이 묻은 것도 아니었다. 하필 오늘 그녀가 입은 옷이 옅은 색이라서 유난히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다. 신유리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들과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그러나 장현은 오히려 자신이 그녀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여 그녀의 팔을 붙잡고 날카롭게 말했다.“내가 가라고 했어?”신유리도 차가운 표정으로 막 말을 하려는데, 당구실 안에서 송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준혁 오빠, 아파.”신유리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자, 그녀의
송지음은 입술을 오므리며 웃었다. 그녀는 머리를 서준혁의 어깨에 기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사실이면 유리 언니랑 연우진 씨는 천생연분이야.” 서준혁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가 대충 응하자, 송지음의 입꼬리는 다시 올라갔다. 신유리는 구석에 앉아서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이신에게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어차피 할 일이 없으니, 자료라도 천천히 정리하려고 생각했다. 빗줄기도 잦아드는 추세고 연우진의 외투를 입고 있어서 신유리는 그리 춥지 않았다. 발소리가 들리자, 신유리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서준혁이 휴대폰을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그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냉담한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월요일 조회할 때 모든 자료를 볼 겁니다.” 그쪽에서 또 몇 마디 하자 서준혁의 얼굴은 더욱 차가워졌다. 신유리는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미 시선을 거두고 계속해서 이신이 보내준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서준혁이 전화를 끊을 때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서준혁은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바로 그걸 감지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가 걸치고 있는 외투에 시선을 두었다. 깊은 생각이 담긴 눈동자였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신유리는 서준혁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시선을 돌려 계속해서 공기처럼 조용히 있었다. 서준혁도 인차 다시 당구실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신유리 혼자 남았다. 파티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연우진도 당구실에서 나왔다. 연우진이 신유리에게 물었다.“졸려?”“너 피곤하면 내가 운전할게.”신유리가 말했다.그녀가 말하자마자 정재준이 다가와서 난처한 듯 연우진에게 물었다.“우진 씨, 장현이 차가 문제가 생겨서 그러는데 우진 씨가 좀 데려다줄 수 있어요?” 연우진이 이 중에서 그나마 성격이 제일 좋기
신유리는 우서진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차 안은 아주 어두웠다. 창밖을 내다보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우서진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좌석에 기대어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무언가 타이핑하고 있었고, 산만한 웃음도 두 번 정도 들렸다.그러고는 갑자기 눈을 치켜뜨고 건들거리며 서준혁에게 말했다.“준혁아 나 타임 광장에서 내려주면 돼. 일이 좀 있어서.”서준혁은 백미러로 그를 한 번 쳐다보며 물었다.“날 네 운전기사로 생각하는 거야?”“아니, 여자가 약속을 잡잖아.”우서진은 말하며 방금 자신과 약속을 잡은 여자의 음성메시지를 그에게 들려주었다.애교 넘치는 여자 목소리가 그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서진 오빠, 언제 와?”우서진이 놀기 좋아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서준혁은 앞쪽 길목에 차를 세우고 담담한 목소리로 우서진에게 말했다.“방소천처럼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 저지르지 마.”우서진이 말했다.“내가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 그는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찬바람이 빗줄기와 뒤섞여 순식간에 신유리의 얼굴에 흩날렸다. 그녀는 서준혁이 말하는 그 방소천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업계에서 소문난 바람둥이다. 얼마 전 그와 만났던 모델이 임신을 했는데, 죽자 살자 그에게 시집가려고 했다. 하지만 방소천은 그러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여자는 죽겠다며 건물에서 뛰어내리려 했고, 일이 이렇게 커지자, 방씨 집안에선 어쩔 수 없이 방소천을 그녀와 결혼시켰다. 신유리는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얼굴에 띈 차가움은 아주 잘 보였다. 그러나 곧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유리 언니.”송지음의 목소리에 신유리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지음의 표정을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그림자만 흐릿하게 보였다.송지음은 잠깐 멈칫하다 입을 열었다.“유리 언니, 언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고민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약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