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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그래.”

떠나기 전에 강소영은 방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 갑자기 옷걸이에 걸려 있는 남성 수제 양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스타일은 진수현만이 소화할 수 있었다.

강소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진수현의 뒤를 따라 나갔다.

두 사람이 방에서 나가기를 기다린 후, 심윤아는 눈을 떴고, 그녀는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아이를 갖게 된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임신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진수현을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는 일이라면 그녀는 1년, 2년, 심지어 10년이라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임신은 그런 감정을 숨기듯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배가 불러 나온다면 눈에 띄기 마련인데, 숨긴다고 숨겨질 일이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심윤아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졌고 점차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결에 심윤아는 누군가 자신의 옷깃을 풀어 헤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어떤 차가운 물체가 그녀의 몸을 덮었다. 아직 열이 펄펄 끓고 있던 몸에 차가운 물건이 닿게 되었으니, 심윤아는 편안함을 느낄 뿐이었다. 심윤아는 신음을 내며 무의식적으로 손발을 들어 상대의 팔에 매달렸다.

곧이어 그녀는 잠결에도 끙끙거리는 신음과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녀의 뒷목을 다소 거칠게 부여잡았고 촉촉하게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포개는 것 같은 촉감을 느꼈다. 이어서 무언가가 그녀의 입 속으로 파고들었다.

심윤아는 눈을 꼭 감고 미간을 찌푸리며 입속으로 들어온 그 물체를 물어뜯었다. 순간 피비린내가 입안 가득 퍼졌고, 그와 동시에 남자의 고통스러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후 그녀는 남자가 자기 뺨을 힘껏 꼬집으며 푸념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

“골칫덩어리라니까, 강아지도 아니고 왜 물어?”

그녀는 아파서 투덜거리는 그 사람의 손을 밀치고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도우미 한 명이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녀가 깨어나자 기뻐하며 앞으로 걸어왔다.

“작은 사모님, 깨어나셨군요.”

도우미가 앞으로 가서 심윤아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말했다.

“다행히도 작은 사모님께서는 마침내 열이 내리셨습니다.”

심윤아는 앞에 있는 도우미를 바라보며 조각조각 부서진 기억을 떠올려 보다가 물었다.

“여기서 계속 날 돌봐줬어?”

도우미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도 도우미의 대답을 들은 심윤아의 눈에서 기대에 차 있던 밝은 빛이 물러갔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산산이 조각 난 기억을 회억해 보며 그녀는 자기를 돌보고 있던 사람이 진수현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었어...’

심윤아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도우미가 한약 한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사모님, 마침 깨어나셨군요. 금방 데워 온 약입니다. 아직 따뜻하니 꿀꺽 마셔주세요.”

진하고 톡 쏘는 한약 냄새가 물씬 풍겨오자, 심윤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피했다.

“사모님, 빨리 식기 전에 마셔요. 조금 있으면 식을 거예요.”

그녀가 뒤로 물러서자 도우미는 그릇을 그녀의 앞으로 들이댔다. 그러자 심윤아는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거기 놔둬요, 이따가 마실게요.”

“그건...”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먹을 것 좀 가져다줄래요? 걱정하지 마요, 음식을 가져다줄 사이에 다 마실 거니까요.”

그녀는 오래 잤기 때문에 정말 배가 고팠다. 도우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려가서 먹을 것을 준비해 드릴 테니, 사모님께서는 약 드시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래요...”

간신히 도우미를 내려보내고 나서, 심윤아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그 시커먼 한약을 그릇째로 들고 변기에 붓고 물을 내렸다. 그러자 변기에 부었던 약은 감쪽같이 씻겨 내려갔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약을 먹으라고 졸라대지 않겠지?’

심윤아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릇을 들고 일어서며 고개를 돌렸을 때, 진수현이 떡하니 서 있었다. 언제 왔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화장실 문가에 기대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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