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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음날 이른 아침, 임서우와 허민서는 나란히 집에서 내려와 그들이 사는 낡고 허름한 대문 앞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임서우가 허민서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더 생각해보지 않을 거야?”

허민서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미 다 결정했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녀가 새로 산 구찌 가방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최신형 아이폰을 꺼내 들었다.

허민서는 발신자 표시를 보더니 옆에 있는 오동나무 아래로 걸어가 부드러운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몇 달 전만 해도 그녀의 이런 부드러운 목소리는 오직 임서우 전용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 어느덧 전화기 너머의 딴 남자에게 돌아갔다.

임서우는 두 사람의 감정이 끝났다는 걸 확인한 후 더는 집착하지 않았다.

곧이어 버스가 도착하고 차 문이 열리자 임서우가 이제 막 통화를 마친 허민서에게 얼른 차 타라고 곁눈질했다.

버스 앞에 도착한 허민서는 그를 힐긋 쳐다봤는데 눈빛 속에 가여움과 야유, 경멸이 살짝 담겨있었다.

“서우야, 몇 달 전에 우리 결혼할 때 버스 타고 혼인 신고하러 갔는데 오늘 이혼하는 것도 버스 타고 가네. 잘 들어, 이게 바로 우리가 이혼한 이유야.”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가면 구청이다.

둘은 앞뒤 좌석으로 앉아 아무런 교류도 없었다.

구청에 곧장 도착했고 직원이 두 사람을 자리에 안내한 후 각종 서류를 요구했다.

직원은 서류를 검토하며 그들에게 물었다.

“두 분 모두 충분히 생각하셨죠? 재산분할은 마치셨나요?”

허민서가 지체 없이 말했다.

“네, 이미 결정했으니 얼른 절차 진행하세요. 우리는 딱히 나눌 재산이 없어요. 집은 셋집이고 차 살 돈도 없어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전 재산이에요. 얘가 산 것도 있고 내가 산 것도 있는데 전부 다 얘한테 남겨줄 거예요. 적금도 몇만 원 정도 있겠는데 그것도 얘한테 다 주겠어요.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허민서는 아주 관대한 척하며 말했지만 정작 경멸에 찬 그 표정은 전남편에게 동전이라도 쥐여주는 느낌이었다.

임서우는 그녀의 말투에서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원은 결국 두 사람의 이혼신고서에 도장을 찍고 각자 한 부씩 나눠주었다. 혼인 신고할 땐 줄을 서서 갖가지 서류를 심의하느라 30분 좌우 걸렸지만 이혼은 10분도 안 돼 마무리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구청에서 나왔다.

임서우는 머리 들어 하늘을 쳐다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허민서에게 말했다.

“민서야, 그래도 한때 부부였으니 이혼하더라도 우리 좋은 친구로 남는 거지?”

허민서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이혼신고서를 가방에 구겨 넣고 쿠션을 꺼내 화장을 고치며 말했다.

“우리 앞으로 서로 남남으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 널 볼 때마다 가난했던 내 과거가 떠오르거든. 너랑 결혼한 이 반년 동안 내 인생의 악몽이라고 생각해. 드디어 악몽에서 깼으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임서우는 반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여자가 그와 함께한 이 시간이 악몽이라고 말할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순간 그는 허민서에게 남아있던 한줄기 미련까지 모조리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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