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지금 그거 무슨 눈빛이에요?”그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심재경은 얼른 진원우를 소개했다.“여긴 또 다른 절친 진원우야.”방유정은 진원우를 보더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안녕하세요.”진원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반가워요.”“다들 앉아.”심재경이 말했다.진원우는 눈치가 빨라 심재경의 옆에 앉았다. 남은 자리가 없어 임지훈은 마지못해 방유정과 가까운 곳에 앉았다.방유정은 짜증 섞인 얼굴로 말했다.“내 옆에 앉지 마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나 꼭 여기 앉아야겠는데요.”그는 오기가 생겼다.“싫다고 하면 기어코 옆에 앉을 거예요. 뭐 어쩔 건데요?”원래 아까 술 세례를 당해서 기분이 언짢은데 지금 또 이렇게 사나운 여자를 마주하니 임지훈도 더는 참고 싶지 않았다.그는 속으로 투덜거렸다.‘지금 여자들은 대체 왜들 이런 거야?’술 한잔 따르며 마음을 추스르던 찰나 방유정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심재경과 진원우도 그를 바라봤다.임지훈은 그러려니 하고 계속 술을 마셨다.이에 진원우가 툭툭 치며 말했다.“왜 혼자 마셔? 다 함께 마셔야지. 우리도 따라줘.”임지훈이 말했다.“마시려면 혼자 따르든가.”진원우는 두 눈이 뒤집힐 뻔했다.수습해보려고 한 건데 이렇게 무안을 주다니.아무리 도와주려 해도 지금은 전혀 부질없는 노릇이다.오늘 임지훈은 분노 덩어리가 된 듯싶다.심재경이 눈빛으로 진원우에게 물었다.“왜 저래? 너무 예민하게 굴잖아.”진원우는 머리를 내저었다. 분명 서운한 일을 당해서 닥치는 대로 화풀이하는 듯싶다.심재경은 임지훈과 방유정을 번갈아 보며 맞선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그는 진원우에게 술 한 잔 따랐다.“우리도 마시자.”임지훈이 한마디 끼어들었다.“나는?”“혼자 마신다며? 술친구 찾고 싶으면 옆에서 찾아. 우릴 보지 말고.”진원우가 명확하게 말했다. 그와 함께 안 마신다고...임지훈은 말문이 막혔다.“그러든가 말든가. 혼자 마시지
방유정이 고개 돌려 그를 바라보더니 코웃음을 쳤다.“왜요? 나 꼬시게요?”“...”임지훈은 입이 쩍 벌어졌다.“뻔뻔스러운 사람을 많이 봐왔지만 또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그는 비아냥대며 말했다.“이 세상에 여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쪽을 꼬실 일은 절대 없어요.”“그러게요. 여자가 있다면 뭣 하러 선보러 나왔겠어요. 딱 보니까 솔로로 찌든 사람 같네요.”방유정이 노는 걸 좋아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멍청이는 아니다. 심재경은 언제든 단기문을 만날 수 있는데 굳이 그녀를 통해 물건을 전달할 필요가 있을까?이걸 빌미 삼아 선 자리를 주선하는 거겠지!그녀는 빤히 알면서 까밝히지 않았을 뿐이다.심재경은 눈썹을 들썩거렸다.‘그냥 잘 노는 애인 줄 알았는데 꽤 섬세하네.’임지훈은 화나서 자리에 벌떡 일어섰다.평상시에 심재경과 진원우가 그를 솔로라고 놀려대도 다들 친한 사이라 농담인 걸 알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금방 알게 된 사람이 이토록 놀려대니 기분이 잡치고 울화가 치밀었다.“지금 누굴 능멸해요? 내가 왜 선을 봐? 선을 본다면 내 맞선 상대는 어디 있어요?”그는 말하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재빨리 되새겨보았다. 홀로 호텔에 남아있는데 진원우가 한사코 술 마시러 가자고 했고 또 우연히 심재경을 만났는데 그의 옆에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다.그렇다면 이 여자가 바로 그의 맞선 상대일까?...임지훈은 저 자신이 우스웠다.“설마 그쪽이 내 맞선 상대인 건 아니죠?”방유정은 그의 표정을 보며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도 더는 놀려대지 않고 심재경을 쳐다보며 두 눈을 깜빡거렸다.“내 말 맞죠?”임지훈은 심재경에게 시선을 돌렸다.심재경은 질의에 찬 임지훈의 눈빛을 보더니 난감하면서도 공손하게 미소 지었다.“저기, 그게 그러니까...”“맞아.”진원우가 대신 대답했다.“여자 소개해주고 싶으면 바로 말하면 되잖아!”“바로 말하면 네가 나올까?”진원우가 되물었고 심재경도 덩달아 머리를 끄덕였다.“그러게요
오늘은 그의 결혼식 날이었으니 당연히 집에 돌아가야 한다.이 타이밍에 그를 남기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다.진원우가 임지훈의 어깨를 툭툭 쳤다.“살면서 처음 주선을 해보는데 제대로 망쳤어.”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애린 씨 홀로 호텔에 남아있어서 나도 이만 돌아가야겠어. 걱정돼서 안 되겠다. 여기 호텔이랑 가까우니 너 혼자 돌아와.”임지훈은 머리를 끄덕였다.“술을 다 시켜놓고 안 마시면 낭비잖아. 난 다 마시고 갈게.”“너무 많이 마시진 말고.”진원우가 분부했다.임지훈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에게 대답했다.“알았어, 얼른 돌아가. 와이프 임신 중이잖아.”진원우는 자리에서 나와 방유정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제 친구 덕담을 해줬다.“우리 지훈이 괜찮은 애예요. 놓치지 마세요.”임지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한마디만 더 하면 밤에 못 자게 네 방문 두드릴 줄 알아!”임지훈은 너무 창피했다. 딴사람들도 있는 장소였으니.“그래, 알았어. 그만할게.”진원우가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방유정은 임지훈을 보다가 불쑥 자리에 앉았다.임지훈은 의아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왜 안 가요? 나랑 선볼 생각이에요?”방유정이 답했다.“나쁘진 않죠.”임지훈이 독하게 말을 내뱉었다.“유정 씨는 내 스타일 아닌데.”“마찬가지거든요. 지훈 씨 혼자 술 먹는 거 지켜보려고요.”방유정이 말하면서 제 잔에도 술을 따랐다.임지훈은 그녀가 찬 팔찌를 보더니 입을 삐죽거렸다.“애들도 참 막무가내지. 어떻게 유정 씨 같은 재벌 집 따님을 내게 소개해줄 생각을 해요? 조건도 안 보나 봐.”방유정이 물었다.“왜 그렇게 말해요?”“지금 그 팔찌, 모 명품 브랜드의 이번 시즌 최신 모델인데 한정판으로 판매되니 가격이 어마어마하죠? 난 유정 씨 같은 분을 감당할 능력이 못 돼요.”방유정은 손목에 찬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다이아몬드가 가득 박혀 있어 눈부시게 빛나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나 같은 여자는 어떤 여자인데요?”방유정이 시선을 올렸다.
임지훈은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 솔로 원칙을 따랐다.“혼자야.”미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살랑살랑 흔들었다. 임지훈도 가까이 들이대는 여자를 밀치지 않고 씩 웃었다.“여자친구 있어요?”미녀가 물었다.“있으면 이런 곳에 와서 시간 때우겠어?”미녀는 더 활짝 웃었다.“난 오빠처럼 솔직한 사람이 좋다니까.”방유정은 소파에 앉아 한 손에 잔을 들고 다른 손을 넌지시 내려놓은 채 술 한 모금 마시며 임지훈을 바라봤다.그는 훤칠한 체격에 역삼각형 몸매라 인파들 속에서 한눈에 띄었다.무대 위에서 미녀가 그에게 끊임없이 들이대며 귓속말로 속삭였다.“맞은 편에 호텔 있는데 함께 갈래요?”이 여자는 돈을 바라는 게 아니라 오롯이 임지훈에게 반했다.그냥 하룻밤을 보내자는 뜻이었다.임지훈은 눈썹을 치키고 썩 놀란 눈치가 아니었다.“거절해도 돼?”미녀는 표정이 살짝 변했지만 금세 회복했다.“겁먹었어요?”임지훈이 대답하려 할 때 방유정이 어느샌가 옆으로 다가와 그 여자의 뒷덜미를 잡아당기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이 남자 임자 있어.”그 여자는 방유정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에 기 눌리긴 했지만 무작정 뒷덜미를 잡히자 체면이 구겨지는 기분이었다.“거짓말하면 안 돼요.”그녀는 또다시 임지훈에게 물었다.“오빠, 이 여자 오빠 여자친구 맞아요?”임지훈은 방유정을 힐긋 바라보며 답했다.“응.”미녀도 더는 집착하기 무안하여 하이힐 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허리를 씰룩거리면서 무대로 돌아갔다. 다음 타깃을 찾는 듯싶었다.그녀가 떠나간 후 임지훈이 곧바로 해명했다.“나도 방금 어떻게 거절할지 몰랐거든요.”“신나게 놀았잖아요? 뭣 하러 거절해요?”방유정이 거만한 자세로 쏘아붙였다.임지훈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대답했다.“그냥 한번 노는 거지 진짜 호텔에 가겠어요? 나 눈 높아요!”“그래요, 전혀 안 그래 보이네요.”방유정이 비꼬았다.“오는 사람 안 막는 거 아니에요? 난 그렇게 생각했는데.”임지
구애린은 편하게 욕조에 누워 진원우의 마사지를 받았다.“이따가 잠드는 거 아니에요?”구애린이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안 자도 원우 씨는 내 옆에 꼭 있어야 해.”진원우는 속절없이 웃으며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나만 괴롭혀.”“그럼 원우 씨가 임신할래? 나 날로 먹게.”구애린이 고개 돌려 그를 쳐다봤다.진원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피식 웃으며 젖은 손으로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내가 임신하면 애린 씨는 엄마가 못 돼. 아빠 할래요 그럼?”구애린이 웃었다.이때 밖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나가서 전화 받을게요.”진원우가 말했다.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급한 전화가 분명했다.진원우가 밖에 나가 발신자 번호를 보더니 눈썹을 치켜세웠다.“안 돼. 두 사람 상극이야.”“네가 어떻게 알아?”“첫 만남부터 티격태격 싸웠고 하마터면 크게 번질 뻔했다니까.”단기문은 그제야 알아챘다. 재벌가의 공주님께서 난폭한 성격을 고쳤을 리가? 임지훈의 번호를 물어보는 건 그에게 호감을 느낀 게 아니라 계속 싸우기 위해서겠지!남자 보는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렸으니 임지훈과 절대 잘 지낼 리 없다.“그래, 잘 안 되면 말고. 나도 큰 기대는 없어. 알겠으니 이만 끊어.”“알았어.”진원우는 통화를 마치고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임지훈에게 여자를 소개해주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일 듯싶다....오늘은 심재경과 안이슬의 신혼 첫날밤이다.안이슬의 몸 상태로 인해 둘은 서로 안고 잘 뿐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심재경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오늘 많이 힘들었지?”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왜 아직도 안 자?”심재경이 다정하게 되물었다.안이슬은 눈을 멀뚱거렸다.“몰라, 너무 흥분했나 봐.”“결혼해서?”안이슬은 고개 돌려 그와 코를 맞대고 그윽한 눈길로 서로를 마주 봤다.심재경이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안이슬은 수줍은 듯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심재경은 다정하게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안이슬은 아직 완
안이슬은 손가락을 움직이며 가볍게 그의 볼을 비볐다.심재경은 눈웃음을 지었다.“왜 웃어?”심재경도 자신이 뭘 웃는지 몰랐다. 그저 들뜬 마음이 저절로 얼굴에 나타났나 보다.둘은 서로를 지그시 바라봤다.아무 말 없이 묵묵히 서로를 바라봤지만 수천 마디 달콤한 말을 한 것보다 더 진한 여운을 남겼다.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어도 심재경은 너무 행복했다.으앙...이때 샛별이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안이슬이 재빨리 일어나려 하자 심재경이 그녀를 붙잡았다.“자고 있어.”그는 안이슬의 이불을 여미어주며 말했다.“내가 가볼게.”“나도 이만 일어나야 해.”“일어나도 할 거 없어. 더 자.”심재경이 그녀에게 다시 이불을 덮어줬다.“착하지.”안이슬은 행복이 잔뜩 담긴 미소가 얼굴에 퍼졌다.심재경과 함께 이런 안일한 삶을 또 살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이건 마치 꿈 같은 일이다.그녀는 돌아누워 문밖을 나가는 심재경을 바라봤다.문이 닫히고 그녀는 제 얼굴을 어루만졌다.안 좋은 일이 생각나 기분이 확 가라앉았지만 곧바로 감정을 조절했다.이젠 꼭 잘 살아야지. 새 출발을 해야지!전에 있었던 모든 불쾌한 일들을 깨끗이 잊어야지!...방유정은 단기문의 침실에 뛰쳐 들어가 이불을 걷어냈다.단기문은 놀라서 잠이 확 깼다.“뭐야...”험한 말이 입 밖에 나오기도 전에 방유정을 보자 순순히 자리에 앉으며 시계를 쳐다봤다.“몇 신데 아침 댓바람부터 이 난리야?”“전화번호 좀 물어본 것뿐인데, 안 주면 말 것이지 내 전화는 왜 안 받아요? 대체 무슨 뜻이냐고요 오빠!”방유정은 오늘 검은색 샤넬 원피스를 입고 발렌티노 하이힐을 신었다. 정교한 목걸이와 부드러운 머릿결까지 완벽한 풀 세팅이었다.그녀는 거만한 자세로 두 팔을 껴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전혀 반감을 일으키진 않았다.어릴 때부터 예쁨받고 자라다 보니 제멋대로인 성격에 성질머리가 조금 난폭할 뿐이다.단기문은 가볍게 눈썹을 치켰다.“일단 이불은 좀 주지.”그는 팔
“그런 거 아니거든요.”방유정은 자신이 임지훈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단기문에게 인정하기 싫었다.고고한 그녀가 어떻게 남자에게 호감이 생겼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나 갈게요.”그녀는 이 한마디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이게 바로 그녀의 성격이다.단기문은 진작 적응했다.그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대체 어떤 남자여야 이런 여자를 데리고 살 수 있을까? 얼른 한 사람이라도 찾아서 살아야지. 저렇게 놔두다가 전부 다 해치게 생겼다고.’...호텔.찬이와 윤이 모두 송연아와 함께 잤다. 강세헌은 그녀와 멀리 떨어져 침대 끝자락에서 잤다. 둘 사이에 두 아이가 누웠다.찬이는 얌전하게 못 잔다. 아빠에게 다리를 올려놓지 않으면 베개를 아빠 머리에 내려놓아 밤새 몇 번이나 잠을 뒤척였는지 모른다.강세헌은 결국 아침 일찍 깨났다.송연아가 깨났을 때 그는 이미 잠옷을 입고 창가 쪽에 서 있었다.그녀는 살며시 일어나 그의 뒤에 가서 허리를 감싸 안았다.“무슨 생각 해요?”강세헌이 머리를 돌리자 그녀는 고개를 들고 활짝 웃었다.“제대로 못 잤죠?”그녀는 찬이의 잠버릇을 잘 안다.아이는 잘 때 항상 이리저리 뒤척거린다.강세헌은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배 안 고파?”송연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금방 깨서 아직 배고프진 않았다.그녀는 발뒤꿈치를 들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나 먼저 가서 씻을게요.”강세헌은 그녀를 잡아당기더니 허리를 감싸고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두 몸이 바짝 달라붙었다.그는 허리 숙여 그녀에게 키스하려 했지만 송연아가 옆으로 피하며 두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가로막았다.“나 아직 안 씻었다고요. 애들 다 있는데 보면 어떡하려고요.”강세헌은 그녀의 볼을 비볐다.“그래, 가서 씻어.”송연아는 장난치듯 그의 허리를 살짝 꼬집고는 줄행랑을 쳤다.강세헌은 그녀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호텔만 아니라면, 애들만 없었다면 그는 절대 송연아를 놓아줄 리 없다!지금은 그녀가 장난치고 쪼르르 도
방유정이 웃으며 답했다.“자아도취가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임지훈은 입을 삐죽거렸다.“어차피 우린 서로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뭣 하러 매너를 지켜요? 사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종일 척하는 연기 지겹지도 않아요? 안 힘들어요 유정 씨는?”방유정은 팔짱을 끼고 흥미진진하게 물었다.“인생 다 산 것처럼 말하네요.”임지훈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런 것까진 아니고요. 유정 씨가 여자로 안 보이니까 제멋대로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게 가장 커요.”“...”‘이 자식이 진짜 겁 없이 말을 내뱉네. 내가 확 식겁하게 해줘?’다만 그녀는 임지훈에게 은근 호기심이 생겼다. 플레이보이면서 신사인 척 연기하는 남자들보단 훨씬 나았다.지금 마주 앉은 이 남자는 너무 솔직해서 탈이다.방유정은 턱을 괴고 그에게 바짝 다가갔다.그녀가 빤히 쳐다보자 임지훈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뭘 그렇게 봐요?”방유정은 어깨를 살짝 들썩거렸다.“잘생겼는지 구경하고 있어요. 바에서는 조명이 어두워 제대로 못 봤거든요.”“그래서 어떤데요?”임지훈은 실소를 터트렸다.“잘생기면 내가 꽃미남을 놓친 거잖아요.”방유정은 제법 진지하게 평가했다.“너무 잘생긴 축은 아니고 그럭저럭 봐줄 만 한데 내 스타일은 아니에요.”“그쪽도 마찬가지예요.”방유정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저기요, 지훈 씨는 남자로서 여자랑 얘기할 때 신사답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난 신사가 아니잖아요.”임지훈은 냅킨으로 손을 닦고 옆에 버린 후 그녀를 쳐다봤다.“호감 가는 여자 앞에선 저절로 신사다워져요. 유정 씨는... 내 스타일도 아닌데 왜 그런 연기를 해야 하죠?”임지훈은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이만하죠. 난 또 볼일이 있어서 유정 씨랑 잡담 나눌 시간 없어요.”“결혼식 참석하느라 귀국했다고 하던데 식도 다 끝났고 국내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면서 무슨 볼일이 있다는 거예요?”방유정은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임지훈은 고개 돌려 잔혹한 현실의 세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