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끝나자마자 고다정은 친구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장난이야.”그녀는 아직 진동 중인 휴대폰을 다시 집어들고 웃으며 말했다.“어디 보자. 채 교수님이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임은미가 이를 보고 씩씩거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고다정이 전화하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지,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고 쌍둥이에게 불평했다.“너희 엄마가 너무 나빠. 날 괴롭혀!”“엄마가 나쁘긴 한데, 방금 이모 표정이 너무 웃겼어요.”쌍둥이가 눈을 깜박거리며 입가에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임은미는 잠깐 멍해졌다가 일부러 사나운 척하며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좋아, 너희들도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내 손맛 볼래?”“아, 이모 살려줘요!”미처 피하지 못한 하윤이 임은미에게 잡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용서를 빌었다.고다정은 그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이때 전화기에서 채성휘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그녀의 귓가를 때렸다.“다정 씨, 은미 씨는요?”“은미는 애들이랑 놀고 있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저한테 얘기하셔도 돼요. 이따 전해드릴게요.”고다정은 임은미가 지금 전화 받기 싫어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채성휘도 옆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듣고 임은미가 정말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저녁에 부모님이 한시영을 환영하는 의미로 식사 자리를 마련했는데 은미 씨도 같이 오래요. 제가 데리러 갈 테니 볼일이 끝나면 저한테 메시지를 보내라고 은미 씨한테 전해주세요.”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실눈을 뜬 채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부모님이 은미를 데려오라고 하신 거예요? 아니면 채 선생님이 은미를 데리고 가고 싶은 거예요?”그녀가 괜히 이렇게 묻는 게 아니다. 시내 구경을 핑계로 친구 딸을 채성휘한테 떠민 것을 보면, 채성휘 부모님은 두 청년을 이어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두 분은 저녁이 만남의 좋은 기회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채성휘는 고다정이 문제를 알아챈 줄도 모르고
그날 저녁 채성휘가 임은미를 데리러 왔을 때 고다정과 여준재가 같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살짝 놀랐다.고다정도 그의 표정 변화를 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채 교수님, 우리 친정 쪽에서 한 사람이 더 가도 괜찮죠?”“그럼요. 괜찮아요.”고다정이 이렇게 예의를 차려서 말하는데 어찌 감히 안 된다고 말하겠는가.고다정이 그제야 만족한 듯 콧노래를 불렀다.여준재는 그녀가 친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일부러 부른 것이다.쌍둥이는 이미 집으로 보냈다.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불쾌한 일이라도 생기면 두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은미 씨, 차에 타요. 부모님은 이미 레스토랑에 도착하셨어요.”채성휘가 임은미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임은미는 그를 흘겨보고는 거절하지 않고 조수석으로 향했다.채성휘는 극진하게 차 문을 열고 젠틀하고 자상하게 그녀를 부축해 차에 태운 후 문을 닫았다.이 모든 것이 끝난 후에야 그는 고다정과 여준재에게 시선을 돌렸다.그가 입을 열기 전에 고다정이 먼저 말했다.“우리는 차를 가지고 왔어요. 앞에서 가시면 저희가 뒤에서 따라갈게요.”“그래요. 그럼 저 먼저 출발할게요.”채성휘가 말하면서 운전석에 올라탔다.앞차에 시동이 걸리자, 고다정과 여준재도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랐다.가는 길에 여준재가 채성휘의 승용차를 보면서 탄식했다.“일할 때 그렇게 결단력 있는 사람이 집안일은 엉망이네요.”“저도 채성휘 씨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걱정돼서 기어이 이번 가족 식사에 참석하겠다고 했어요.”고다정도 한숨을 지었다.“은미가 지난 몇 년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한때 저한테 많은 도움을 주셨고요. 지금 제가 능력이 되니까 당연히 은미가 다른 사람에게 구박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내 사람을 누구도 괴롭혀서는 안 돼요.”여준재는 친구 역성을 드는 아내를 보며 빙그레 웃었지만 좀 질투도 났다.고다정과 함께 지낸 지 이렇게 오래됐지만 이런 대우는 한 번도 받아본 적
“그 역겨운 눈 치워요. 더 보면 사람 시켜서 눈알 파냅니다.”여준재는 서늘한 눈빛과 위압적인 존재감으로 한시영을 바라봤다.한시영도 온화했던 남자가 갑자기 표정이 바뀌자 순식간에 호감에서 공포로 바뀌었다.이 모습을 본 고다정은 만족스러운 듯 입술을 말아 올리며 한시영에게 차갑게 말했다.“나는 은미 친구이긴 하지만 친구를 넘어 친정 식구이기도 해요. 은미 미래 시댁 식구들이 운산에 왔는데 어떻게 친정 사람인 제가 대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다 남들에게 알려져서 우리 집에서 몰상식하게 대했다고 말이라도 나오면 어쩌려고.”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시영의 표정이 바뀌었다.‘친정 식구? 안돼, 절대 이 여자를 들여보낼 수 없어. 안 그러면 오늘 밤의 계략은 물거품이 될 것이 분명하다.’그녀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고다정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고, 눈에 예리한 빛이 번뜩이며 옆에 있던 채성휘를 재촉했다.“저희 안으로 안내해 주세요. 아주머니, 아저씨 오래 기다리게 하시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채성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식당으로 안내할 준비를 했다.하지만 그들이 움직이자마자 한시영은 그들의 길을 막으며 다급하게 말했다.“들어가면 안 돼요.”한시영이 고다정과 여준재에게 한 말이었다.이를 본 두 사람은 다소 흥미로운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누군가 그들의 앞을 막아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특히 고다정은 여준재를 만나면서 어머니의 반대를 마주한 이후 이런 상황이 오랜만이었다.길을 막고 있는 앞의 여자를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은 옆에 있던 채성휘를 향하며 차갑게 말했다.“채 선생님,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시겠어요?”“그래요. 나도 왜 우리 친정 식구가 안에 못 들어가는지 알고 싶네요. 왜요, 오늘 채씨 가문에서 오래된 친구 따님 대접하느라 여기까지 인사하러 온 제 친정 식구는 환영받지 못하는 건가요?”임은미 역시 채성휘의 손을 뿌리치고 아니꼬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비록 채씨 가문에서 오늘 모임에 친정 식구들을 초대
“애초에 초대받지 않은 자리였는데 어떻게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해요?”한시영은 옆에서 화가 나서 말했다.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알고 보니 임은미가 불같은 성질을 못 참고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뺨을 내려친 것이다.이 여자가 거듭 일을 망치는데 이번에도 반격하지 않으면 임은미는 정말 이 여자가 자신을 만만하게 볼 것 같았다.그 순간 그녀는 화난 표정으로 한시영을 바라보았다.“당신이 채성휘 씨 친분 있는 집안의 딸이라서 몇 번이고 참았는데, 그게 우리 친정 식구까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어! 그래, 채씨 가문에서 오늘 우리 친정 가족을 초대하지 않았지만 선물까지 챙겨서 보러 온 건데 뭐 잘못됐어?”마지막 말은 채성휘가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그 기세를 보아 채성휘가 그렇다고 말하는 순간 이 일은 일파만파 커질 것 같았다.그걸 모를 리 없는 채성휘는 임은미를 거듭 진정시켰다.“그런 뜻이 아니니까 괜한 생각 마세요.”임은미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다시 물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래요, 우리 들어갈까요 아님 그냥 갈까요?”“당연히 들어가야죠. 가요!”채성휘는 그렇게 말한 뒤 고다정과 여준재에게 아부 섞인 미소를 지었다.이런 채성휘의 모습은 고다정과 여준재도 처음 봤지만 그도 임은미를 위해 자신의 체면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다정은 임은미를 생각하며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준재를 데리고 채성휘를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매를 맞았던 한시영이 반응한 것도 이때였다.그녀는 더 이상 마음속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룸 안의 상황을 생각하며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하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시영아, 왜 그래? 성휘 만났니?”“어머님, 임은미 씨 친정 식구들이 왔어요.”한시영은 서둘러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고 물론 일러바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하지유는 안 그래도 임은미 친정 식구들이 초대도 없이 찾아와서 불만인데 임은미가 마음에 드는 며느리 후보를 때렸으니 잔뜩 체면을 구겼
한시영의 어머니 장영주가 뭐라 말하려던 찰나,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옆에 있던 남편이 말렸다.“그만해. 채씨 가문의 좋은 일을 망치면 우리 두 집안의 인연도 끝날 테니 아무 말도 하지 마.”그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채씨 가문과 여씨 가문이 인연을 맺으면 두 집안의 오랜 우애를 봐서라도 채씨 가문이 눈치껏 한씨 가문에게 해명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룸 안에서 바뀌는 공기 흐름을 고다정과 임은미는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채성휘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부모님 앞에서는 그다지 반항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어리석어서 오늘 저녁 식사가 단순한 환영회가 아니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동시에 그는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임은미까지 데려왔으니 다행이지 임은미가 오늘 일을 오해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다행히도 시작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결국 모두 함께 룸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식사하는 동안 채은호와 한일권은 여준재에게 계속 술을 따라주며 친해지려 했지만 여준재는 냉담한 표정으로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전히 즐거워했고 옆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여준재의 정체를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장영주는 채씨 가문과 결혼하지 못한 것이 서운했지만 딸이 당하는 수모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결국 가족의 발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까.반대로 한시영은 고다정과 임은미 사이를 번갈아 보는 눈빛이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왜 저 두 가난뱅이 팔자가 재벌가 아가씨인 자신보다 낫단 말인가.한 명은 국내 굴지의 재벌과 결혼했고, 다른 한 명은 그녀가 눈여겨보던 남자를 빼앗아 갔다.‘대체 쟤들이 뭔데?’한시영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지만 이러한 상황에 자신의 신분으로 눈에 거슬리는 두 여자를 쫓아내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식사가 막 끝나갈 무렵, 화제는 서서히 채성휘와 임은미의 결혼 이야기로 옮겨갔다.“여 대표님, 다정 양, 두 분께서는 예물을
#채은호 부부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든, 이 순간 고다정과 여준재의 태도에 직면한 그들은 그동안 싫어했던 며느리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예물은 은미 부모님과 상의해야 할 일이지만, 언니도 댁 어른이니 부족한 점이 없는지 먼저 말씀드리면 친정 식구들과 상의할 때 더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겠네요.”채은호는 여준재와 고다정을 향해 겸손하게 말했고 하지유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맞아요. 이렇게 절약한 시간을 결혼 준비에 더 투자해서 은미가 우리 집에 멋지게 시집올 수 있도록 해야지.”고다정은 언제 임은미를 미워했냐는 듯 임은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이런 상황에서도 임은미는 차분하고 침착했다.어쨌든 그녀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둘이나 있었으니까.“결혼식에 대해서 설마 채 선생님이 두 분한테 얘기 안 했어요? 저희와 함께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는데.”고다정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채성휘를 바라봤고, 채성휘는 이를 눈치채고 곧바로 설명했다.“아직 예물이 협의되지 않아서 사소한 문제를 다 논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나씩 해결해야 결혼식에 더 중요하게 임할 것 같아서요.”그 말을 듣고 고다정은 불만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만족한 듯 채성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채 선생님 의견 존중해서 이런 사소한 일부터 이야기하고 나서 때가 되면 결혼식에 대해 얘기해요.”그런데 이 말이 나오기 바쁘게 채은호 부부가 다급하게 말했다.“그러면 따로 얘기해요. 두 사람 의견 존중해서 은미가 다정 양과 함께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하면 함께 하면 되죠. 때가 돼서 채씨 가문에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다정 양과 여 대표님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저희도 적극 협조할게요.”“그래요, 결혼식은 사람이 많을수록 좋죠.”부부는 한마음 한뜻으로 거들며 얼른 이 일을 성사시키고 싶었다.여씨 가문과 결혼식을 올리면 이득만 있고 불이익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결혼식에서 여씨 가문은 분명 사방에서 유
조금 불쾌하게 시작했지만 전반적으로 잘 진행된 식사가 끝나자 하지유는 헤어지기 아쉬워 임은미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시간 나면 우리 집에 놀러 와.”“그럴게요 어머님.”임은미는 거짓 미소로 화답하며 손을 뒤로 빼고 인사를 건넸고 채성휘도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전했다.“은미 먼저 보내고 좀 늦게 돌아갈게요.”“안 와도 괜찮아. 차라리 은미보고 들어오라고 해. 넌 매일 연구소 출근도 해야 하고 은미 부모님도 안 계시니까 우리가 돌봐주면 좀 더 마음이 놓이잖아.”채은호는 임은미가 거절할까 봐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임은미를 간절히 바라보았다.어쨌든 임은미를 쫓아낸 장본인이 바로 부모님이었으니까.임은미는 이 당황스러운 말을 듣고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전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던 두 사람이 이제 와서 자신에게 득 볼 게 있으니 아부하는 꼴이란. 정말 아무 말도 안 한다고 사람 우습게 보는 건가?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임은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안 그러는 게 좋겠어요. 부모님도 며칠 후면 돌아오실 거고, 게다가 남녀가 결혼도 안 하고 같이 사는 건 평판에도 좋지 않잖아요.”그 말에 채씨 가문 부모님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고 채성휘도 조금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임은미는 못 본 척 채성휘에게 말했다.“당신도 배웅 안 해도 돼요. 오늘 밤은 다정이네 집에 묵을 예정이고 집에 손님도 계시는데 부모님 도와서 손님 접대해야죠.”무덤덤하고 무심한 말투에 채성휘는 곧바로 임은미가 오늘 밤 일에 대해 탐탁치 않아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남아서 집안일을 처리할 기회를 주는 걸 알았기에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알았어요, 그럼 내일 보러 갈게요.”내일 임은미에게 설명을 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임은미도 그 뜻을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다정과 여 대표가 자신의 편을 들어준 이상 채씨 가문 어른들이 더 이상 자신과 채성휘를 반대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응어리가 남아 있었
토라진 친구의 말을 들으며 고다정의 눈에는 무력감이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설득했다.“그래도 채성휘 씨가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아. 이번에도 단호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에 대한 태도는 변함없잖아. 그리고 자기 부모님이니까 본인도 난처할 거야. 부모님이 조금 억척스러운 분들이라 그렇지 채성휘 씨도 말했잖아. 앞으로 너와 운산에 정착할 거라고. 그 집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도 아니니까 별문제 없을 거야.”이 한마디에 임은미의 마음속에 있던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았다.사실 다정의 말이 맞았다. 어쨌든 채성휘의 부모님이니 채성휘가 어느 정도 배려를 하는 건 당연했고 앞으로 그들은 운산에 정착할 테니 채씨 가문 어른들의 태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임은미의 흔들리는 모습을 본 것인지 고다정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네가 채성휘 씨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해도 아저씨 아줌마가 반대할 거야.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부모 가정이 되는 걸 용납할 수 있겠어?”임은미는 입술을 달싹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한부모 가정이 뭐 어때서, 아이가 자신처럼 고통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고다정은 무표정한 얼굴에 분노에 찬 눈빛을 하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친구의 속마음을 짐작하고는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은미야, 미혼모가 되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난...”임은미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한마디 뱉는 순간 말이 끊겼다.“한부모 가정의 삶은 생각처럼 쉽지 않아. 너도 내가 살아온 거 봤잖아. 결혼도 안 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디를 가도 누군가의 화젯거리가 돼. 아이는 말할 것도 없이 더 힘들어. 그때 준이, 윤이가 왜 친구가 몇 명 없었는지 알아? 성북구에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어도 다 어른들 때문에 준이랑 윤이 배척하고 아빠 없는 아이라고 놀렸어.”그 말을 들으며 임은미도 몇 년 전 고다정을 만나러 갔다가 성북구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준이, 윤이를 봤던 걸 떠올렸다.옆에 앉은 여준재는 더욱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