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떠난 뒤 모든 것이 제자리로 평온하게 돌아왔다.“별다른 일 없으면 나도 먼저 갈게.”차설아가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 쇼윈도 부부 모습도 보여줬고 바람의 실물도 봤으니 성대 그룹에 더 머무를 이유는 없었다.“저녁 시간 비워 둬.”성도윤은 사무실 책상 앞에서 업무를 처리하다가 불쑥 말했다. 이런 명령적인 뉘앙스에 차설아는 불쾌했다.“왜?”성도윤은 그에 답하지 않고 서랍을 열어 이쁘게 포장된 박스를 차설아의 앞에 놓았다.“저녁 여덟 시에 플라자 호텔 연회장에서 점잖게 입고 와”“나한테 주는 선물?”차설아는 보기 드문 상황에 순간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싶었고 호기심에 그 자리에서 포장을 뜯어보았다.포장에 담긴 건 실버 그레이 드레스였고, 색감과 질감으로 가격이 만만치 않음이 한눈에 보였다. 다만 드레스가 너무 보수적이고 단정한 스타일이었다.차설아는 몇 마디 비꼬아 물으려 하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얼굴에 교활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알겠어. 시간 맞춰 갈게.”저녁 여덟시 플라자 호텔.호텔 앞 주차장은 고급지고 화려한 값비싼 차들로 가득 찼고 모터쇼를 방불케 하였다. 연회로 열리는 해안시 자선행사에 국내외 유명 인사들로 붐볐다.차설아는 택시를 타고 도착했고 보기에도 심플하고 심지어 싸 보이는 갈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머리도 대충 묶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른 셀럽들의 화려한 모습과는 선명한 대비가 되었다. 입장하려는데 자연스럽게 경비가 막아섰다.“초청장 보여주세요.”경비는 딱딱한 말투로 차설아를 보며 말했고 차설아는 솔직하게 답했다.“그거 없어요.”“없으면 못 들어갑니다. 여기 보이죠, 아무나 못 들어 갑니다. 저쪽에 가면 되고요.”경비는 아마도 뉴스를 잘 안 보는 눈치다. 그러니 차설아가 해안시에서 신분 높은 성도윤의 와이프라는 걸 모를 수밖에. 적어도... 지금이 그랬다.차설아가 설명하려는 때 빨간색 페라리가 “끼익” 하고 주차했다. 성도윤의 사촌 여동생 소이서가 핑크 드레스를 입고 고고한 자태로 차에서 내렸다. 그녀와 함
소이서는 평소에 멋대로 괴롭혀도 다 받아주던 차설아의 반격에 화난 나머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너무 염치없는 거 아냐? 주제 파악은 할 줄 알아야지. 다 망한 가문의 당신이 감히 오빠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해? 언제까지 이혼을 미룰 건데? 이혼이 미루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아? 채원 언니 배도 이젠 점점 불러오고 있다고. 오빠 새 결혼은 바뀔 수가 없어. 이혼은 뭐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 거 같아?”차설아는 담담하게 답했다.“글쎄. 내가 결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사촌 동생인 이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닌 건 확실하지. 배가 점점 불러오는 걸 어쩌라고. 이혼 도장 찍기 전까지는 난 그 사람의 안사람이고 채원 씨는 첩이야. 배 안에 든 아이는 호적에도 올릴 수 없는 첩의 자식이고.”임채원은 차설아의 말에 비수가 꽂혔지만 당장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인지하고 다시 연약한 척 말했다.“설아 씨, 화난 거 있으면 나한테 풀어. 우리 애는 모욕하지 말아 줘!”“누굴 모욕하려는 말이 아니라 그저 사실을 알려 준 것뿐인데. 첩의 자식은 결국엔 태자가 못 되지 않나?”“그건...”임채원은 말문이 막혔고 여전히 연약한 모습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나 도윤 씨와 진심으로 사랑해. 이 관계에선 사랑받지 못하는 쪽이 첩 아닌가?”“채원 언니. 저런 사람하고 시간 끌 필요도 없어요. 주제 파악 못 하는 사람은 바로 끝내줘야 해요.”소이서가 이 갈면서 목소리를 높였고 말이 끝나기 바쁘게 차설아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만 뻗은 손이 누군가의 강한 힘에 눌려 뺨을 치지 못했다.“감히 누가 간섭해!”소이서가 그녀를 막아 나선 사람을 쳐다보더니 욕설을 퍼붓다 말고는 갑자기 수줍은 모습을 보였다.“배, 배경수 씨.”흰색 정장 차림의 배경수는 우아하고 고귀한 모습이 마치 소설 속 백마 왕자와 똑같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이서 씨. 대체 뭘 먹었는데 이렇게 화가 나 있어?”배경수는 소이서를 쳐다보며 물었고 표정은 미소를 지어
차설아는 배경수와 같이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배경수는 방금까지 고귀하고 패기 넘치는 귀족 도련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귀여운 강아지처럼 미소로 꽉 찬 표정으로 시선은 시종일관 차설아만 따라다녔다.“성씨 집안사람들이 감히 누님를 괴롭혀? 다음에 또 괴롭히면 내가 절대 가만 안 둬!”차설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미소를 보이며 그를 놀리듯 말했다.“도련님, 평소랑 달리 진지한 모습에 많이 놀랐어.”“그럼, 나 배씨 집안의 여섯째 도련님인걸!”배경수는 말은 그렇게 해도 여전히 순둥순둥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배경수는 차설아를 훑어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근데 차설아, 아무리 그래도 연회에 참석하는데 너무 단아하고 보수적인 차림 아닌가?”“누나야! 버릇없게!”차설아가 호칭을 정정해 줬고 배경수는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게 따졌다.“아니, 그럼, 배경윤은 왜 그렇게 부르는데? 나 몰라! 앞으로는 보스도 아니고 누님도 아니고 그냥 설아라고 할 거야!”“안 돼!”차설아는 훈계하듯 주의를 줬다.“보통은 연하가 누나라고 안 하는 건 딴마음이 있다는 건데. 너... 너 어쩌려고 그래?”“이혼도 하는 마당에 내가 마음 있으면 뭐 어때서?”배경수는 말 나온 김에 당당하게 인정해 버렸다. 그녀가 솔로로 돌아오기를 몇 년간 기다렸던 게 동생이나 하려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니까.차설아는 그저 웃어넘기면서 대꾸하지 않았다. 연회장 앞에 거의 다가와서 그녀는 여린 손으로 코트 단추를 풀더니 한쪽에 뿌려 던지고는 묶은 머리를 풀었고, 빨간 립스틱을 아랫입술에 바르더니 대범하게 입술을 위아래로 문질렀다. “보스, 아니 너무...”그런 모습을 본 배경수도 놀랄 정도였다.들어서는 순간 연회장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고 다들 그녀의 모습에 넋이 나갔다.차설아는 빨간색 튜브톱 롱 드레스로 늘씬한 각선미를 선보였고 그 모습은 명랑하고 밝은데 고귀함과 단아함까지 잃지 않았다. 특히 파격적인 옆 라인 트인 디자인은 개성 넘치면서도 여신 미가 더해져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
성도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차설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자신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소유욕이 꽉 찬 말투로 답했다.“당신 몸매가 드러낼 만하든 아니든! 그건 나만 알면 될 일이고. 여기서 다 드러내놓는 건 ‘날 좀 보소’ 하며 주목받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여. 품위는 지켜야지. 나! 성도윤의 부인이라는 본인 신분을 잊지 말지 그래. 아무튼 단정하고 단아하게 기본은 지켜.”사실 방금 여기저기 남정네들이 눈이 휘둥그래져서 시선이 차설아만 따라가는 모습을 떠올린 성도윤은 알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 눈들을 파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이거라도 걸쳐!”성도윤은 외투를 벗어 거칠게 차설아에게 걸쳐주며 꽁꽁 싸매듯 옷매무새를 만져줬다. 매혹적인 차설아의 눈빛에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빈정상한 티가 났다.“꼰대 느낌! 성도윤 씨, 여기가 뭐 조선시대입니까? 제 몸은 제가 알아서. 내가 주목을 끌든지 받든지, 당신하고는 이젠 상관없지 않아?”말을 하던 그녀는 외투를 벗어 손가락에 걸고는 또박또박 전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사절할게.”말을 끝으로 성도윤의 블랙슈트가 그녀의 손가락에서 미끄러지듯 땅에 떨어졌고, 차설아는 도도한 자태를 뽐내며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자신의 길을 걸었다.“...”너무 쿨하고 또 가녀린 그녀의 뒷모습에 성도윤의 안색은 어두웠다. 화가 났지만... 그녀가 언급했듯 이젠 서로를 간섭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행사 사회자가 샴페인 잔을 치면서 자선 만회의 시작을 알렸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자선행사는 해안 시 전체 거물급 인사들이 총출동 한 자리였다. 성도윤, 차설아, 배경수는 맨 앞줄에 자리했고 소이서, 육장훈, 임채원은 그들 바로 뒤의 두 번째 줄에 앉았다.“채원 언니, 봐요. 내가 차설아 천하다고 했죠. 남정네들 꼬실 생각밖에 안 해요!”소이서는 차설아의 섹시한 뒷모습을 노려보며 이 갈듯이 불만을 토했고, 임채원이 그런 그녀에게 주의를 줬다. “이서야, 목소리 좀 낮춰. 누가 듣겠어.”
보석상자 안에는 핑크색 피치 펜던트가 조명 아래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을 내뿜었다.“여러분께서 보시는 이 펜던트는 완전한 로즈 쿼츠를 잘라서 만들어 낸 작품으로, 로맨틱한 이름을 갖고 있어요. 이름하여 바로‘차공주', 일반적인 로즈 쿼츠의 펜던트가 아닙니다. 유럽의 한 나라 국왕께서 수양딸을 위해 전문으로 제작한 귀중품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는 왕실에서 나온 보물이자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펜던트입니다. 현재 가치는 40억 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사회자의 설명에 빛이 나는 펜던트는 고귀함이 한층 더해졌고 무대아래 사람들의 감탄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왔다. 이 또한 로즈 쿼츠 펜던트의 진귀한 정도를 반영해 줬다.자선행사장의 여인들은 소이서를 향해 부러운 눈빛을 쏟아냈다.“자기야. 준비한 서프라이즈 맘에 들어?”육장훈은 소이서의 손을 잡으며 그녀의 환심을 사듯 물었다. 소이서는 허영심이 제대로채워졌던지 입꼬리가 귀여 걸렸고 너무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다.앞자리의 배경수는 눈썹을 찡그리고 로즈쿼츠 펜던트를 유심히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로즈 쿼츠 자체는 광택도 그렇고 보통인데, 왕실의 껍데기를 씌웠을 뿐인데 40억이라 불리네요. 진짜 돈 많은 사람들이 바보로 보이나 봐요? ”“로즈쿼츠는 좋은지 몰라도, 왕실 출품 일지는...”차설아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미소 짓고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사회자가 진행을 이어갔다.“자, 이렇게 오늘 경매에 올려질 모든 기증품의 소개를 마쳤습니다. 현재까지 기부된 귀중품 중에 제일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작품은 육장훈 씨께서 소이서 양의 이름으로 기증한 로즈쿼츠 펜던트입니다. 그럼, 지금 소이서 씨를 무대로 모시겠습니다.”소이서는 뜨거운 환호 속에서 도도한 자태로 무대에 올라갔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가식적인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했다.“여러분의 박수갈채에 감사합니다. 오늘 너무 기분 좋네요. 자선행사로 이 자리에 함께하니 너무 기쁘고 설렙니다. 우리의 사랑 널리, 또 멀리 이어져 가
그 말은 단번에 소이서를 폭발시켰다.“이런 미친. 질투에 눈이 멀어서 이성을 잃었어? 내 남자친구가 몇십억을 들여 준비한 걸 어떻게 가품이라고 막 내뱉어?! 어디서 감히 헛소리야. 아갈머리 찢어버릴라!”소이서는 명문가 낭자의 품위를 팽개친 채 차설아를 향해 발길질했고 차설아는 얼굴색 하나 변함없이 가볍게 몸을 옆으로 젖혔다. 그 바람에 소이서는 헛발질이 됐고 자기 힘에 넘어졌다.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사람들은 웃음이 터졌다.성도윤은 여전히 무표정이었고 어두운 그의 기운에 번개가 칠 듯한 분노가 섞여 보였다.‘차설아, 당신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거야?!’체통 없이 몸매를 다 드러낸 모습도 불만스러운데 이젠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사촌 여동생과 물어뜯는 모습까지 보여주다니. 내일 기사 일 면에 헤드라인이 어떻게 잡힐지 걱정부터 앞섰다.사회자가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잠재우려고 애를 써보았다.“설아 님, 농담으로 분위기 띄우시려는 건가요? 아니면 펜던트가 가품이라는 증거라도 있으신 건지?”“물론 증거가 있습니다.”차설아는 레이저 펜 하나를 집어 들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중을 향해 설명했다.“진짜‘차공주’는 엄청 세심하게 다듬어진 아이예요. 펜던트는 총 13번에 걸쳐 커팅됬고 마침 13개 획으로 그어져‘차공주’라는 글자가 찍혀있죠. 국왕께서 그런 방식으로 수양딸에 대한 사랑을 담은 것입니다. 레이저로 비춰보면 ‘차공주’세 글자가 밖으로 투영될 거예요. 하면 이 펜던트가 진품인지 가품인지는 레이저를 쏴 보면 알겠죠?”구경난 사람들은 흥미롭게 얘기를 들었고, 그중 누군가는‘차공주’에 그런 전언이 있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차설아는 망설임 없이 보석 상자의 펜던트에 레이저를 비췄다. 물론 투영되어 나온 글자는 없었다.“에이 뭐야. 결국엔 가짜잖아!”“쯧쯧, 자선 한다면서 가짜를 들이밀어? 늘 허영심이 문제지. 선을 넘네, 넘어!”갑작스러운 반전에 방금까지 의기양양하던 소이서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소이서는 자신이 쪽팔렸단 생각에 이를 갈며 육장훈에게
“이건 저와 남편의 결혼반지입니다. 비록 가격이 엄청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특별한 의미가 담긴 반지입니다. 이자리를 빌려 기부하고 싶네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더 많은 나눔이 될 수 있게, 여러분, 많이 호가 해주세요.”그녀의 말과 행동에 현장은 웅성웅성했다. 결혼반지라니, 그것도 이렇게 흔쾌히 결혼반지를 꺼내 들다니!어떤 이는 그녀가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사랑을 나눌 줄 안다고 칭찬했고, 어떤 이는 차설아와 성도윤의 결혼이 소문대로 진짜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을 했다.관중석 맨 앞자리에 앉은 성도윤은 음산하고도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고 잘생긴 얼굴엔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반면 배경수는 기쁜 나머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즐거워하며 성도윤의 가슴에 비수로 꽂힐 말들을 뱉어냈다.“어이구. 우리 여신 누님께서, 예전엔 참 결혼반지를 귀하게 여기고 뭘 하던 꼭 끼고 빼지 않았었는데, 저리 쉽게 기부하는 걸 보니 바깥양반에 이만저만 실망 한 게 아니네요. 이 결혼생활을 내려놓으려고 마음 먹었나 보네요. 정말 축하할 일이죠!”말을 마친 배경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 설아를 향해 환호 대신 휘파람을 불었다.“여신 누님,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이 배경수가 배가의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누님의 반지를 끝까지 경매낙찰 할 테니, 같이 해요 그 나눔!”배경수의 화끈한 고백은 현장을 다시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고백도 고백이지만, 평소 단정하고 단아한 성씨 집안 둘째 사모님과 바람둥이로 소문난 배씨 집안 여섯째 도련님, 전혀 교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사연 있어 보이는 대화에 모두 진심으로 놀랐다. 무대 위, 차설아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배경수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오늘 배경수가 제대로 자신의 체면을 세워줬으니 차설아는 아주 고마웠다.사회자는 차설아에게 한 번 더 확인하며 물었다.“성가 댁 사모님, 다이아반지는 보통 의미하는 바가 큰 데, 정말 기부하시겠나요?”차설아는 황금알만 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쳐다보며
20여 일 후면 이혼할 사람이고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기에 차설아는 그냥 모르는 척 지나칠 수도 있었다. 오늘 밤에 그가 불행하게 운명을 다한다면 그녀는 유산 상속으로 크게 재산 분할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차설아가 그런 독한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다시 자선 행사장으로 돌아갔다.냉혈한 그 나쁜 남자가 그녀 뱃속 쌍둥이의 아빠라는 점도 한몫했다. 그냥 죽게 내버려뒀다가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평생 그녀 마음의 짊이 될 게 뻔했다.경매장 분위기는 이미 과열되어 있었다.“70억 원!”“80억 원!”“90억 원!”자선 경매장의 각계 유명 인사들은 흥분된 모습으로 활발히 호가에 참여하였다.오늘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그녀가 빼놓은 결혼반지였다.차설아가 자리에 앉았을 땐 이미 누군가 95억 원을 호가했다.!“이건 좀 오버다. 말이 안 되는데.”차설아의 기억이 맞는다면 반지 가격대는 오십억 정도였다. 역시 돈 많은 사람은 씀씀이가 헤픈 바보 같았다. 그녀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려고 옆에 마실 것을 든다는 게 마침 성도윤의 손을 터치했고 그 남자의 손은 차가웠다. 마치 차가운 미남이 거리를 두는 것처럼. 성도윤은 차설아를 쳐다보더니 눈빛 차갑게 말을 했다.“오늘 밤 당신 정말 제대로 주목받았어. 나의 와이프가 이렇게 대범한 사람인지 몰랐었네. 4년을 끼고 있는 반지를 기부한답시고 그렇게 쉽게 빼?”차설아는 여유롭게 한 모금 물을 마시더니 웃으며 말했다.“도윤 씨 그렇게 비꼬아 얘기할 거 없어. 난 다만 저기서 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이야.”성도윤의 눈길은 더 차가워졌고 눈동자에는 억누를 수 없는 화가 타오르는 게 차설아의눈에도 보였다. 밖이었으니 망정이지, 집이였으면 못 참고 터졌을 것이다.“도윤 씨, 여태까지의 정을 생각해서 얘기하는데. 꼭 들어. 이따가 저기 올라가지 마. 누군가의 타깃이 될 수 있어.”차설아는 목소리를 낮추어 성도윤에게 주의를 주었다. 방금 장내를 한 바퀴 돌아 보았지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