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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초란은 강성연 때문에 잔뜩 화가 났지만 그 화를 풀 곳이 없었다. 화를 참고 있기에는 너무 힘들었는지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강진에게 그 일을 고자질했다.

강진은 신문을 내려놓으면서 살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성연이가 귀국했다고?”

“그렇다니까요.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얼리 디자이너 Zora가 바로 걔예요. 미현이 얘기 들어보니까 미현이랑 저는 말할 것도 없고, 반지훈 체면도 안 봐줄 정도로 거만하다고 하던데요.”

강진은 강미현이 반지훈과 특별한 사이라는 걸 안 뒤로 강미현을 굉장히 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성연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반지훈에게 대든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당연히 좌시할 수 없었다.

강진은 체면을 챙겨야 할 뿐만 아니라 반씨 집안의 미움을 사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사위가 강성연 때문에 화가 나서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강진은 신문을 잘 접어서 내려놓은 뒤 말했다.

“이 자식, 6년을 안 보이다가 왜 갑자기 반씨 도련님을 건드리게 된 거야?”

초란은 그의 옆에 앉아 그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요. 오늘 좋은 마음으로 회사에 찾아가서 얘기해줬더니… 저를 욕하는 게 아니겠어요? 여보, 성연이는 예전부터 당신 말은 잘 들었잖아요. 계속 이렇게 제멋대로 굴게 놔두면 반지훈이 우리 미현이까지 미워하면 어떡해요? 그러면 정말 큰 일이잖아요.”

안색이 조금 흐려진 강진은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내일 걔한테 집에 한 번 들르라고 해야겠어.”

초란은 그의 말에 괜히 거만해졌다.

비록 말발로는 강성연을 이길 수 없었지만 강진은 강성연을 혼쭐내 줄 수 있을 것이다.

*****

저녁 식사 시간, 강성연은 강유이의 뺨이 조금 부은 것을 보고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유이야, 너 얼굴이 왜 그래?”

“엄마, 오늘 저희 양엄마랑 밥 먹으러 갔다가 강미현 엄마를 만났어요. 그런데 강미현 엄마가 글쎄 저희한테 엄마 아이냐고 묻더니 다짜고짜 유이를 때렸어요.”

강성연은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하마터면 젓가락까지 부술 뻔했다. 아이들이 겁에 질릴까 봐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칼을 들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망할 놈의 초란, 어쩐지 오늘 직접 찾아왔다 싶었는데.

아니, 초란은 어떻게 그녀에게 아이가 있다는 걸 안 것일까?

게다가 초란은 그녀의 아이라고 거의 확신하는 듯했다.

강유이는 강성연의 손등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엄마, 화내지 마요. 저 안 아파요. 전 단지 다른 아이들은 다 아빠가 지켜주는데 저만 없어서 섭섭한 것뿐이에요.”

강성연은 아이의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눈빛이 암담해졌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성장 환경을 마련해줄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도저히 메꿔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아이들의 아버지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녀조차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엄마, 우리 아빠는 왜 우리를 버린 거예요?”

강시언은 고개를 들며 진지한 얼굴로 물었고 강해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우리 아빠는 왜 우리를 버렸어요?”

강성연이 무언가 말하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강유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빠는 분명 다른 여자가 생겨서 우리랑 엄마를 버린 걸 거에요. 엉엉엉.”

강해신과 강시언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동생의 연기 실력은 꽤 출중했다.

“울지 마, 유이야. 그런 거 아니야. 너희 아빠는 너희를 버린 게 아니야.”

강성연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닦아주면서 유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강유이는 울음을 뚝 그치더니 빨갛게 된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에요?”

강성연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너희 아빠가 왜 너희를 버리겠어?”

“그럼 엄마는 왜 단 한 번도 저희한테 아빠에 관해서 얘기해주지 않았어요? 아빠는 왜 저희를 버린 거에요?”

강유이는 이번 기회에 전부 다 알아낼 생각이었다.

세 아이의 시선이 전부 자신에게로 쏠리자 강성연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괴로운 얼굴을 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마. 너희들한테 아빠 얘기를 안 한 건 너희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그랬던 거야.”

“…”

엄마, 양심은 있어요?

강성연이 어떻게 얼버무릴까 생각하던 와중에 타이밍 좋게 송아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베란다 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나 밥 먹는 중인데 무슨 일이야?”

그런데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건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송아영씨 가족 되시나요? 여기 경찰서인데…”

강성연은 부리나케 경찰서로 향했고 송아영이 불쌍한 모습으로 의자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송아영에게로 걸어갔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내가 부주의로 다른 사람 차를 박았어. 그런데 상대가 무시무시한 사람이더라고.”

아주 대단한 인물의 차를 박은 듯했다.

만약 그녀의 아빠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를 아주 단단히 혼쭐낼 것이다.

강성연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누구 차를 박았는데?”

송아영은 조심스럽게 옆을 바라봤고 바로 그때 경찰이 아주 정중한 태도로 두 남자와 함께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 남자는 하필 반지훈이었다.

강성연은 순간 표정이 굳더니 이를 악물면서 송아영을 보며 물었다.

“왜 하필 저 인간인 건데? 차를 박을 거면 차라리 사람을 죽이지 그랬어?”

송아영은 미간을 좁히면서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나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한시가 급해서 빨리 운전했는데 글쎄…”

롤스로이스를 박았을 때 송아영은 잠시 멍해졌다가 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는 기겁했다.

반지훈은 강성연을 보자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어젯밤 강미현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건지 강성연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반지훈은 그들에게로 걸어갔고 덤덤한 얼굴로 강성연을 보며 말했다.

“저쪽이 말한 보증인이 당신이었어?”

강성연은 살짝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네. 이 일은 제 친구가 잘못했네요. 절차대로 하시죠, 반지훈씨.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지 금액을 말씀해주세요.”

반지훈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배상은 필요 없어. 어차피 그 차 완전히 망가졌으니까.”

망가졌다고?

강성연은 송아영을 보며 물었다.

“그렇게 심각해?”

송아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살짝 찌그러졌을 뿐이야.”

옆에 있던 희승이 웃으며 설명했다.

“강성연씨, 저희 대표님께서는 차를 수리하지 않습니다. 아예 새 차로 바꾸시거든요. 나사 하나가 빠졌다고 해도 차를 바꾸십니다.”

“그러니까 당신들 말은 제 친구더러 차 한 대 값을 배상하라는 건가요?”

강성연의 안색이 눈에 띄게 흐려졌고 희승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건 그쪽 태도를 봐야죠.”

“그게 무슨…”

강성연이 막 화를 내려던 차에 송아영이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송아영은 차 한 대 값을 배상할 능력이 없었다.

강성연은 반지훈이 돈이 모자란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송아영에게 차 한 대 값을 배상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굳이 이렇게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강성연씨 태도를 보아하니 이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지 않나 보네?”

반지훈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원래는 이 일을 경찰에게 맡겨서 처리할 생각이었고 송아영에게 차 한 대 값을 배상하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송아영이 불러온 보증인이 하필 강성연이었고, 어젯밤 강미현이 했던 말들이 떠올라 괜히 속이 시끄러웠다.

그는 다른 사람 때문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가 여자라면 더더욱 그럴 리 없었다.

그런데 그는 오늘 두 아이 때문에 화를 냈고 게다가 지금은 강성연 때문에 기분에 영향이 갔다.

강성연이 정말 6년 전 강미현에게 그런 짓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오늘 강성연이 자기 친구를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지켜볼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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