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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반지훈씨, 일부러 그런 거라니요? 전 그저 좋은 뜻으로 반지훈씨랑 강미현을 이어주려고 한 것뿐인데요?”

말을 마친 뒤 그녀는 그에게서 손을 빼내려 했다. 그런데 반지훈이 갑자기 힘을 주는 바람에 강성연은 하마터면 그의 가슴팍에 코를 박을 뻔했다.

반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강미현더러 날 집으로 데려오라고 한 게 고작 이걸 위해서였나?”

강성연은 잠시 당황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마주하더니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강미현더러 당신을 강씨 집안에 데려오라고 했다고요? 제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가요?”

반지훈은 차가워진 눈빛으로 말했다.

“강성연, 당신은 나랑 강미현의 일에 참견할 자격 없어.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

“반지훈씨, 말해두는 데 전 강미현더러 당신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한 적 없어요. 강미현이 당신한테 뭐라고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일들은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요.”

강성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정중하게 얘기했다.

“전 두 사람 일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거든요. 돌아가서 강미현에게 말해요. 뭐든 나한테 뒤집어씌울 생각하지 말라고. 나 강성연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에요.“

단단히 화가 난 강성연은 이미지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열불을 냈다.

그녀가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하자 반지훈이 갑자기 그녀를 잡아끌고 차에 태웠다.

“반지훈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당장 내려주세요!”

강성연은 잠긴 차 뒷문을 열려고 하면서 씩씩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반지훈씨, 지금 당장 내려주셔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경찰서에 신고할 거예요.”

“신고해.”

반지훈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집에서 나온 강미현은 차가 떠나는 모습을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보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반지훈은 차를 운전해 황량한 교외에 도착했다. 그가 차를 멈춰 세우는 순간 강성연은 경계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뭐 하는 거예요? 이렇게 인적 드문 곳으로 오다니, 설마 날 죽일 생각인가요?”

“내려.”

반지훈이 짧게 두 음절을 내뱉었다.

강성연은 차창 밖을 통해 깜깜해진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서 내리라고요?”

반지훈은 성가시다는 듯이 대꾸했다.

“못 알아들었어? 차에서 내리라고!”

강성연은 코웃음을 치더니 곧바로 차 문을 열고 내렸고 그녀가 문을 닫는 순간 반지훈은 그대로 떠났다.

멀어져가는 헤드라이트를 바라보며 강성연은 이를 악물었다.

“반지훈, 이 빌어먹을 자식!”

주위는 깜깜했고 기다란 도로는 끝이 보이지 않았으며 수풀 속에서는 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강성연은 핸드폰 라이트로 길을 비추며 도로의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도로 옆에는 돌이 경사면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 아래는 암초와 바다가 있었다.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려 했지만 신호가 뜨지 않았다.

설마 비참하게 여기서 밤을 보내야 하는 걸까?

반지훈은 한참 동안 차를 운전해 도로변에 차를 멈춰 세웠다. 그 역시도 왜 자신이 굳이 강성연과 언쟁을 한 건지 알지 못했다.

그는 확실히 화가 났다. 반지훈은 강성연이 강미현더러 그를 집으로 데려오게 한 건 그가 강미현과 결혼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단 한 번도 공개적으로 강미현이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인정한 적이 없었고 강진과 강미현 또한 그의 앞에서 강미현과의 결혼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강미현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강미현이 6년 전 그날 밤의 그 여자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강성연은 본인이 강미현더러 그를 집으로 데려오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강미현은 왜 그에게 강성연이 시킨 일이라고 얘기한 것일까?

강성연이 거짓말을 한 걸까 아니면 강미현이 그를 속인 걸까?

반지훈은 짜증이 나 미간을 구겼다.

강성연이 차에서 내린 곳을 생각하면 아마 지금쯤 겁에 질려서 덜덜 떨고 있을지도 몰랐다.

반지훈은 혀를 한 번 차더니 차 머리를 돌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고 강성연이 도로변의 돌 위에 바다를 향해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날씬한 몸매의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그곳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풍성하고 컬이 살짝 들어간 긴 머리를 정돈하더니 머리 끈으로 머리를 묶었다.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가느다란 목은 마치 우아한 백조 같았다.

밤하늘의 어두운 빛은 마치 엷은 면사처럼 드리워져 그녀에게 신비함을 더해주었고 반지훈은 어쩐지 그 막을 찢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고개를 돌린 강성연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남자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이내 소리 내 웃으면서 말했다.

“전 반지훈씨가 진짜 절 여기에 버려서 밤을 보내게 할 생각인가 했는데, 그래도 양심은 있나 보네요?”

강성연은 몸을 일으켜 그의 곁을 지나쳤고, 반지훈은 미간을 구기면서 자신이 귀신에게 홀린 건 아닐까 잠시 의심했다.

그는 강성연의 머리 묶는 모습을 보고 망상하는 자기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강성연이 차 뒤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려고 할 때 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수석에 앉아.”

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고 반지훈은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난 기사가 아니야.”

말을 마친 뒤 그는 차에 올랐다.

강성연은 짧게 코웃음을 치더니 조수석에 탔다.

“반지훈씨 참 이상한 사람이네요.”

반지훈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강성연 또한 말하는 게 귀찮았기 때문에 한 손으로 얼굴을 받친 채 창가에 기댔다. 차가 교외를 빠져나갔을 때 강성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해보니 시언에게서 온 전화였다.

벌써 9시 반인데 이렇게 늦게 집에 안 들어갔으니 아이들이 걱정할 만도 했다.

그녀는 전화를 받더니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여보세요, 자기야?”

반지훈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자기라니? 남자친구가 있는 걸까?

“미안, 일 때문에 조금 늦었네. 지금 돌아가고 있어. 가만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쪽. 안녕.”

강성연은 전화를 끊었고 옆에 있던 반지훈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남자친구?”

강성연은 그를 힐끗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제 남자친구예요.”

집에 남자 하나가 아니라 남자 둘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니.

반지훈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더 언짢아졌다.

도심에 도착하자 반지훈은 다짜고짜 그녀에게 차에서 내리라 했고 그의 영문을 알 수 없는 태도에 강성연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열 시였다. 강시언은 강성연에게 실내화를 건네주면서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엄마, 조금 전에 엄마가 싫어하는 남자랑 같이 있었던 거죠?”

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알았어?”

강시언은 작은 손을 가슴 위에 올리면서 애석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엄마는 싫어하는 남자랑 같이 있으면 저희랑 전화할 때 자기라고 부르잖아요.”

엄마는 머리가 좋은 여자였다.

해외에 있을 때 그녀를 좋아하던 남자들이 그녀에게 전화할 때,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녀는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해신과 시언더러 자신의 남자친구나 남편인 척하면서 전화하라고 했다.

강성연은 몸을 숙이더니 시언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정말 똑똑해. 어떻게 매번 엄마 마음을 이렇게 잘 알아주는 건지. 해신이랑 유이는?”

“동생들은 자고 있어요.”

강성연은 강시언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맏이 노릇 하느라 수고했네. 엄마가 집에 없을 때는 엄마 대신 동생들 잘 돌봐줘야 하고 말이야.”

강시언은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얘기했다.

“제가 맏이인 걸 어떡하겠어요.”’

******

위너 주얼리.

강성연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강미현이 급하게 달려와 그녀를 잡아 세웠다.

“강미현,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야?”

강성연은 손을 빼내며 그녀를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강성연, 너한테 이런 수단이 있을 줄은 몰랐네?”

“수단? 무슨 수단?”

강성연은 웃었고 강미현은 이를 악물며 그녀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내가 경고했지. 반지훈씨랑 잘 될 생각 따위는 하지 말라고. 어젯밤 나 몰래 둘이서 뭐 하러 간 거야?”

그녀는 어제 강성연이 반지훈의 차에 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었고 어젯밤 반지훈은 밤새 돌아오지 않았었다.

분명 강성연 이 천한 것이 반지훈에게 꼬리를 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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