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병원. 존은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의사는 천도준과 박유리에게도 상처 부위를 소독해줬다. 두 사람은 응급실 밖에 앉아있었다. 수심 가득한 박유리는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천도준은 눈을 지그시 감고 가만히 있다가 왼손으로 오른손 손가락 마디를 감싼 붕대 끝자락을 만지작거렸다. 30분 뒤, 존은 드디어 응급실에서 실려 나왔다. 붕대를 매만지던 천도준은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떴다. 존이 병실에 옮겨진 뒤, 천도준은 당부의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천도준은 공사장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난 괜찮아. 가서 도련님이랑 얘기해 봐.” 존은 미소 지으며 불안해하는 박유리를 다독였다. 존은 박유리가 오늘의 일 때문에 천도준이 자기를 해고할까 봐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박유리는 직업을 잃으면 안 되는 처지였다. “그런데 도준 씨가 내 얘기를 듣기나 할까? 날 해고할 것 같은데......” 박유리는 울먹이며 초조한 듯 손으로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도련님은 그런 분이 아니야. 단지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일을 궁금해하지 않을 뿐이지.” 존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얼른 가봐.” 박유리는 고민하다가 마침내 용기 내어 천도준을 뒤따라 나섰다. 존은 천장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조금 전 도련님은 제법 회장님의 예전 모습 같았어......” 박유리는 초조한 나머지 병실을 나설 때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녀는 숨마저 가빠졌고 그 덕에 얼굴에 홍조까지 비쳤다. 박유리는 이율병원 입구에서 차에 올라타는 천도준을 발견했다. 다급해진 박유리는 천도준을 불렀다. 천도준은 포르쉐 911에서 내린 뒤, 차문을 닫았다. 그는 병원의 정원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산책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자그마한 정원이었다. 마침 오후 시간의 정원은 한산했고 왠지 고요하기까지했다. 벤치에 앉은 뒤, 천도준은 긴장한 듯한 박유리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무슨 일이에요?
천도준은 코를 만지작거리다가 일에 집중했다. 주준용이 먼저 식사를 청했으니 천도준은 당연히 응했다. 싸우느라 맞춤 정장이 다 망가졌으니 주준용에게 변상을 요구해야할 것이다. 그것 말고는 천도준이 걱정할 것은 없었다. 비록 정태건설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그래도 준용건설과는 아직도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정태건설이 준용건설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만약 천도준이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면 해천 리조트 공사장에서도 주먹을 날리진 않았을 것이다. 의도가 불순한 저녁의 식사 약속에서 주준용이 어떤 수작을 부리든 천도준은 상대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천도준의 사람을 건드린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 천도준은 절대 가만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잠시 뒤, 주건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천도준은 미소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천도준 씨, 도움이 필요한가요?” 에둘러 말할 것도 없이 주건희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부터 말했다. “건희 씨한테도 소식이 전해졌나요?” 천도준은 덤덤히 웃었다. 이곳에서의 모든 일은 주건희의 손바닥 안이었다. 게다가 조금 전의 일은 작지 않은 소란을 일으켰으니 주건희가 알 법도 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주건희는 원망하듯 말했다. “주준용이라면 저도 약간은 조심스러운데 도준 씨는 아예 주준용한테 찾아가서 열 명도 넘는 사람을 때려눕혔더라고요. 주준용 사촌 동생은 다리까지 부러졌다던데, 천도준 씨, 전에 저의 부하로 있었을 땐 왜 그 실력을 숨겼던 거죠?” “저희 쪽한테 먼저 손댄 건 주준용입니다. 반격하지 말라는 법이 따로 있나요?” 천도준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휴대폰 너머의 주건희는 한숨을 내쉬며 잠시 침묵했다. 그제야 주건희는 천천히 말했다. “각오 단단히 해요. 주준용은 속내가 시커먼 사람이니까. 그동안 업계에서 서로 견제하는 동안 그 사람은 별의별 수작을 다 부렸어요. 손에 피까지 묻히면서요. 오늘 저녁 리빙턴 호텔 해진각에서 식사 약속이 있죠? 제가 함께 갈까요?” 천도준은 가슴이 뭉클하며 감동
어둠이 깔리자 도시에는 화려한 불빛이 켜졌다. 천도준이 리빙턴 호텔에 도착했을 때쯤, 주차장은 이미 비싼 외제차로 붐볐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천도준은 해진각으로 갔다. 해진각 문 앞에는 정장 차림의 건장한 젊은이가 선글라스를 낀 채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천도준을 발견하고는 냉큼 해진각의 문을 열었다. 가야금 소리가 천도준의 귓가에 들려왔다. 천도준은 머쓱하게 코를 문지르며 미소 지었다. “이 노래는 ‘사방잠복’?” 널찍한 해진각 내부에는 산 조형물과 그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 인테리어도 있었다. 물안개까지 피어오르는 황홀한 풍경이 펼쳐졌고 공기 중에는 옅은 솔잎향이 풍겼다. 고즈넉하고 분위기 있는 공간이었다. 널찍한 원형 테이블 앞에는 정장 차림의 민머리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그는 덤덤하게 중앙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의 뒤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젊은이 둘이 서 있었다. 천도준은 민머리 중년 남자를 보며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주 대표님, 밤에 웬 선글라스예요? 안 어두워요?” “천 대표님이 걱정할 건 아닐 텐데요.” 주준용이 선글라스를 벗자 독기 가득한 두 눈이 드러났다. 그는 천도준을 노려보다가 손짓하며 말했다. “앉으시죠, 주 대표님.” 주준용이 가리킨 자리는 입구와 가까운 자리였다. 테이블에 앉는 순서로 따지면 그 자리는 가장 볼품없는 자리였다. 천도준은 덤덤히 웃었다. 계략이 있는 식사 자리인 데다가 재생하고 있는 음악의 제목마저도 ‘사방 잠복’이라니, 천도준은 주준용이 이처럼 디테일한 사람인 줄 몰랐다. 자리에 앉은 뒤, 주준용은 이어질 절차를 안내하듯 손짓하며 말했다. “식사하시죠.” “좋습니다.” 천도준은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집으려 했다. 그 순간, 주준용은 테이블을 회전시켰다. 천도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주준용을 바라보았다. “아, 음식을 집어 가는 줄 모르고 테이블을 돌렸네요.” 주준용은 또다시 안내하듯 손짓하며 말했다. “식사하시죠.
주준용이 오늘날까지 온 것은 악랄한 계략 덕분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주건희와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싸우면서, 주준용은 갖은 방법과 수단을 썼다. 최소한 건설 업계에서 유일하게 자기와 힘을 겨룰 수 있다고 주준용이 마음 속으로 인정한 사람은 주건희 뿐이었다. 하지만 뜬금없는 천도준의 출현은 주준용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주준용의 공사장에서 소란까지 피웠으니 말이다. 이런 일은 주건희라면 벌일 수 없을 일이었다. 천도준은 갑자기 오른손을 들더니 주준용을 제지했다. “주 대표님, 대표님의 사촌 동생 다리를 부러트린 것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표님의 사촌 동생분과 부하가 흘린 피 때문에 맞춤 정장을 버려야 할 판인데 정장값은 일단 물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천도준의 덤덤한 말투는 오로지 맞춤 정장 때문에 하는 말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주준용은 잠깐 멈칫했다. ‘이 새끼,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잖아!’ 잠시 주춤하던 주준용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짝짝짝......” 그는 박수를 세 번 쳤다. 그러자 주준용의 뒤에 서 있던 두 젊은이와 문밖을 지키고 서 있던 두 젊은이가 다가와 천도준을 둘러쌌다. 그와 동시에 복도에서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정장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젊은이들이 살기를 내뿜으며 몰려왔다. 열 명도 더 되는 것 같았다. 분위기는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주준용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천도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네 다리부터 부러트린 다음 정장 값을 물어줄게. 두 벌 값으로 쳐줄게!” “좋죠.” 천도준은 냉랭한 웃음을 짓더니 눈빛을 반짝였다. 천도준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의 접시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두 사람에게 접시를 날렸다. 그리고 그는 의자를 집어 들고 마구 휘두르며 사람들을 물러서게 했다. “망할, 주환을 쓰러 눕힌 이유가 있었네. 보통 실력이 아니야!” 주준용도 천도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무, 물어줄테니까...... 그만 해, 이 새끼야! 그만하라고......” 주준용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땀을 비 오듯 흘렸고 고통스러워하며 부르짖었다. 주준용은 겁이 났다. 천도준의 악랄함과 결단력은 주준용마저도 겁에 질리게 했다. 주준용은 확신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천도준에게 맞선다면 그는 더 심한 일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야말로 미친 놈이었다. “진작에 변상해 준다고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잖아요.” 천도준은 냉소를 지으며 웃었다. “푹!” 주준용의 허벅지에서 칼이 뽑혔다. 주준용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럽게 호통쳤다. “너, 칼을 뽑긴 왜 뽑아!” “아, 그럼 다시 꽂을게요.” “푹!” 주준용은 온몸이 경직된 채, 허벅지에 다시 꽂힌 칼을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바라보았다. 주준용의 부하들은 그저 넋이 나간 채 이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사람이 맞나?’ 천도준은 덤덤히 양손의 피를 주준용의 정장에 닦았다. 이어서 그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주 대표님, 오늘 제가 온 것은 정장 변상 말고도 알려드릴 일이 하나 있어서 온 겁니다. 박유리 씨는 저희 쪽 사람이니 대표님 사촌 동생한테 전하세요. 박유리 씨를 건드리지 말라고 말입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였지만 강인한 힘이 있었다. 주준용은 반사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강렬한 통증 때문에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인데 웃음까지 지으니 더 기괴하고 공포스러웠다. 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천도준은 한순간 표정이 굳었다. 검은색 물체가 주준용의 허리춤에서 나타났다. “너 싸움 잘하잖아. 할 수 있으면 계속해 봐.” 주준용은 천천히 일어나더니 총으로 천도준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능력껏 해봐. 할 수 있으면 날 찔러 봐. 나한테 기어올라? 너 세상 물정 좀 모르나 본데, 이 세상에서 나한테 감히 막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퍽!” 주준용은 천도준의
“퍽!” 해진각의 대문이 누군가에 의해 열렸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천도준은 고개를 돌렸다. 찾아온 사람은 울프였다. “천도준 씨!” 진해각의 상황을 두 눈으로 본 울프는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울프는 무작정 나서기에 앞서 주준용을 향해 호통쳤다. “주준용, 주건희 씨가 당신한테 말을 전해달래. 못 오를 나무를 바라보면 언젠간 죽는다고 말이야!” “쿠쿵!” 주준용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경악했다. 천도준이 조금 전에 했던 말 때문에 주준용은 이미 멘탈이 흔들렸다. 그 와중에 울프가 나타나 건넨 말은 주준용의 분노에 불탔던 마음을 차갑게 식게 만들었다. ‘망할, 정말 일이 잘못된 건가?’ “딸깍!” 주준용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쯤, 천도준은 자기를 향해 겨눠진 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냉랭하게 웃었다. “난 인젠 갈 테니 총 쏘고 싶다면 언제든 기꺼이 받아주지!” 말을 마친 천도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주준용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는 땀범벅이 된 채로 손에 쥔 총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고민하는 듯 싶더니 후회 가득한 표정으로 총을 내려놓았다. 천도준의 덤덤한 태도 때문에 주준용은 총을 더는 쏠 수 없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오늘날의 걱정 없는 삶을 누리기까지 걸어온 길을 한순간에 어리석은 선택으로 망칠 수는 없었다. 리빙턴 호텔 밖. 울프는 말없이 천도준의 뒤를 따랐다. 조금 전 해진각에서 마주한 모습은 울프도 놀라고 겁낼 정도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도준의 반응은 신기할 정도로 덤덤했다. 울프는 천도준이 이럴 줄 몰랐다. “차 있어?” 천도준이 물었다. “네, 도준 씨. 이쪽으로 와요.” 울프는 다급히 천도준을 안내했다. 차에 앉은 뒤, 울프는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한참 달렸을 무렵, 고요한 차 안에서는 거칠게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천도준은 좌석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며 힘겹게 정장 외투를 벗었다. 셔츠는 이미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천
하루 사이에 수많은 일들이 생겼다. 유난히 피곤했던 천도준은 울프의 차에서 금세 잠들었다. 차가 천문동 별장단지를 도착하자 울프는 천도준을 깨웠다. 집에 돌아오자 이난희는 잔소리를 쏟아내면서 천도준의 손에서 정장 외투를 건네받았다. “하루 종일 이렇게 힘들어서 어떡하니? 너 자신도 좀 챙겨.” “일이 바빠서 그런 거죠.” 천도준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는 배를 문지르며 말을 이어갔다. “엄마, 박유리 씨가 차린 음식 남은 거 있어요? 아직 밥 못 먹었어요.” “없어. 엄마가 토마토 계란면 해줄게.” 이난희가 웃으며 말했다. 천도준은 이난희를 거절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천도준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이난희가 해준 토마토 계란면이었다. 이난희의 상태가 안 좋아진 뒤로 토마토 계란면을 자주 먹을 수 없었다. 지금 이난희의 상태로는 토마토 계란면 정도는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천도준은 소매를 걷으며 이난희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섰다. “왜 따라와? 나가서 좀 쉬고 있어. 엄마가 할게.” 이난희는 힘들게 일한 천도준이 안쓰러운 듯 말했다. 천도준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니야, 엄마. 같이 해요. 나도 오랫동안 요리 안 했어요.” 이난희는 미소 지으며 옆에 있는 마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마늘 몇 개 좀 까줘.” “좋아요.” 천도준이 웃으며 답했다. “참, 유리한테 무슨 일 있어? 오늘 저녁밥을 준비해 주고 내가 다 먹으니까 황급히 보온 도시락을 챙기고 가버렸어. 그리고 존은? 두 사람이 다 없이 나 홀로 이 큰 집에 있으니 얘기 나눌 사람도 없구나.” 이난희는 음식 준비를 하면서 천도준에게 물었다. 천도준은 이난희가 걱정할까 봐 웃으며 설명했다. “개인적인 일이 있나 봐요.” 이난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천도준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도준아, 존이랑 유리, 혹시 연애하는 거 아니겠지?” 천도준은 흠칫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엮을까? 아니면 아줌마
더는 들어줄 수 없었던 오덕화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다 울었어? 난 설득했는데 안 들은 건 너야. 꼭 일을 크게 만드네.” “짝!” 장수지는 오덕화의 뺨을 때렸다. “쓸모없는 놈! 난 오늘 수모를 당하고 속상한 일을 겪었어. 그런데 날 위해 나설 생각은 못 해봤어?” 장수지의 원망에 오덕화는 그저 한숨만 내쉬며 말하지 않았다. 오덕화가 말을 아낄수록 장수지는 더 악에 받쳤다. 마침 그때, 오남준이 돌아왔다. 울고 있는 장수지를 발견한 오남준은 표정이 굳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오남준을 마주한 장수지는 더 심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남준아. 너 왔구나. 나랑 네 아빠가 괴롭힘을 당했어......” 오남준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는 화를 버럭버럭 내며 물었다. “누가? 누가 그랬어? 내가 찾아갈 거야!” 오남준의 반응에 장수지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장수지는 큰 목소리로 울부짖으면서 말했다. “오늘 너희 아빠랑 천문동 별장단지에 갔거든......” “천도준이야? 망할 놈. 엄마, 나 지금 당장 그놈한테 갈 거야!” 잔뜩 화난 오남준은 집을 나서려 했다. “멈춰!” 오덕화가 오남준을 불러세우며 말했다. “천도준이 아니야. 나랑 네 엄마는 별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어. 경호원한테 쫓겨났어.” 오남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거기로 가는데 왜 날 안 불렀어? 내가 있었다면 쫓기는 일은 없었을 거야.” 천도준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니 오남준은 이미 타오른 분노를 쏟아낼 곳이 없었다. 오남준은 쏘파에 털썩 앉아버렸다. “그 경호원 놈들이 그렇게 사람을 하대할 줄은 나도 몰랐어.” 장수지는 여전히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딸이나 남편이나 다 도움이 안 되지. 인젠 아들이 결혼해야하는데 예물값으로 내놓을 돈도 없네......” 얼굴이 시뻘게진 오덕화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남준은 예물값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