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들어줄 수 없었던 오덕화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다 울었어? 난 설득했는데 안 들은 건 너야. 꼭 일을 크게 만드네.” “짝!” 장수지는 오덕화의 뺨을 때렸다. “쓸모없는 놈! 난 오늘 수모를 당하고 속상한 일을 겪었어. 그런데 날 위해 나설 생각은 못 해봤어?” 장수지의 원망에 오덕화는 그저 한숨만 내쉬며 말하지 않았다. 오덕화가 말을 아낄수록 장수지는 더 악에 받쳤다. 마침 그때, 오남준이 돌아왔다. 울고 있는 장수지를 발견한 오남준은 표정이 굳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오남준을 마주한 장수지는 더 심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남준아. 너 왔구나. 나랑 네 아빠가 괴롭힘을 당했어......” 오남준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는 화를 버럭버럭 내며 물었다. “누가? 누가 그랬어? 내가 찾아갈 거야!” 오남준의 반응에 장수지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장수지는 큰 목소리로 울부짖으면서 말했다. “오늘 너희 아빠랑 천문동 별장단지에 갔거든......” “천도준이야? 망할 놈. 엄마, 나 지금 당장 그놈한테 갈 거야!” 잔뜩 화난 오남준은 집을 나서려 했다. “멈춰!” 오덕화가 오남준을 불러세우며 말했다. “천도준이 아니야. 나랑 네 엄마는 별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어. 경호원한테 쫓겨났어.” 오남준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거기로 가는데 왜 날 안 불렀어? 내가 있었다면 쫓기는 일은 없었을 거야.” 천도준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니 오남준은 이미 타오른 분노를 쏟아낼 곳이 없었다. 오남준은 쏘파에 털썩 앉아버렸다. “그 경호원 놈들이 그렇게 사람을 하대할 줄은 나도 몰랐어.” 장수지는 여전히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딸이나 남편이나 다 도움이 안 되지. 인젠 아들이 결혼해야하는데 예물값으로 내놓을 돈도 없네......” 얼굴이 시뻘게진 오덕화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남준은 예물값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
이튿날 아침.천도준은 기초체력훈련을 마치고 회사로 갔다.울프는 일찍이 정태건설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천도준은 마영석더러 울프의 일자리를 안배해 주라고 했다. 울프의 신분은 그가 해결해 줘야 했다.울프도 자기가 어떤 일자리에 안배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의 진짜 목적은 천도준을 따르는 것이니, 자기가 할 일이 부동산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알았다.울프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마영석에게 경비원이 되겠다고 말했다.마영석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러나 어쨌든 천도준이 직접 소개한 자이기에 그는 울프를 경비팀 팀장 자리에 안배했다.용정 화원의 예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덕에 그 뒤에 잇달아 다른 매물들을 예매에 내놓는 일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그것으로 천도준의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다.앞으로 순차적으로 예매를 완성하기만 하면 회수된 그 자금이 정태건설을 일거에 이 도시 부동산업계의 상위권에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천도준이 한창 바쁠 때 메시지 한 통을 받게 되었다.바로 임설아가 보낸 메시지였다.내용은 아주 간단했다.[한번 만나 뵈고 싶어요!]천도준은 고개를 저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러나 십 분 뒤, 임설아가 또다시 메시지를 보냈다.이번의 내용은 협박하는 기색이 명백했다.[천도준 씨! 저는 그쪽이 고청하 씨랑 사귄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용정 화원의 예매식을 뉴스를 통해 다 보았어요. 만약 당신이 저를 만나주지 않는다면, 그날 밤 우리 사이의 일을 고청하 씨에게 알려줄지도 몰라요.]대놓고 하는 협박에 천도준은 그만 어이없었다.‘전 처남의 여자 친구는 아직 덜 혼난 것 같군!’‘다시 손봐줘야겠네!’그가 임설아의 메시지에 답장을 하기도 전에 마영석이 황급히 사무실로 뛰어 들어왔다."대표님, 아래에서 누군가가 소란을 피워요!""누가?"천도준이 눈살을 찌푸렸다.마영석이 조금 이상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며 말했다."그게, 대표님의 처남이요. 아, 아니지. 대표님의 전 처남이요."‘오남준이?’천도준이
"울프 형!"경비원들이 곧바로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부축해 주었다.울프가 비록 낙하산 팀장이라고 하지만, 울프가 천 대표가 직접 파견한 자라는 것을 경비원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불만을 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이 한방에 현장에 있던 경비원과 오남준 사이에 순식간에 긴장감이 돌았다.구경꾼들도 덩달아 수군대기 시작했다."저 사람, 너무 나대는 것 같아. 여기가 정말로 자기 집 안방인 줄 아나?""아이고, 저 사람이 하는 말 못 들었어? 자기가 정태건설 천 대표의 처남이라잖아? 하하하.... 참 어이가 없어서는. 천 대표가 이혼한 사실을 도시 주민 모두가 알고 있는데. 용정 화원 예매 발표회에서 새 여자 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한 일로 오씨 가문 사람들이 완전 망신을 당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또다시 찾아와서 망신을 당하려 하다니.""하긴, 그날 밤 뉴스를 나도 봤어. 오씨 가문 사람들은 정말 너무 뻔뻔하더군. 저 녀석도 스무 살 넘어 보이는데, 정말 너무 멍청한 것 같아!"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 하기 시작했다.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게 된 오남준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온몸에서 열이 났다.그는 더 이상 대문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아, 오만방자하게 울프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너, 자기가 좀 험악하게 생겼다고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어디 눈치 있게 비켜. 그렇지 않으면 내가 오늘 너를 완전 줘 패버릴 테니!"울프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눈동자를 사납게 번쩍였다.바로 이때.마영석이 급급히 달려와 울프의 뒤쪽에 멈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네가 알아서 처리해!""알았어요!"울프의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이 어렸다.그런 뒤, 그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뭐 하려는 거야?"오남준이 곧바로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너를 때리려고!"다른 군말은 필요 없이, 울프가 앞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오남준의 어깨를 잡고는 그를 바닥에 엎어 메쳤다."당장 이 자리를 뜨지 않으면, 아예
울프와 마영석이 천도준의 사무실로 돌아와 조금 전 사건을 처리한 방식을 대충 설명했다.그 말을 다 듣고 난 천도준이 담담하게 “응”하고 대답하고는 울프랑 마영석을 나가게 했다.방금 울프가 설명할 때 메시지 알람음이 잇달아 울렸다.울프랑 마영석이 자리를 뜨자, 천도준이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메시지를 확인한 그는 눈동자를 바르르 떨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가슴속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임설아가 보낸 메시지들이 마치 붉게 달아오른 예리한 칼날처럼 그의 심장을 깊숙이 찔러왔다.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가 결국 분노를 터트렸다.천도준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귀청이 터질듯한 큰 소리에 사무실 밖의 직원들이 놀란 기색을 지었다.‘무슨 일이에요?’회사 직원들이 보기에 천도준은 언제나 침착하면서도 물처럼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사람이었다부대표를 맡은 뒤부터 정태건설을 장악하게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렇게 화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당시 정태건설을 인수하면서 이대광에게 속아 정태건설이 파산을 예견하게 되었을 때도 천도준이 이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사무실 안.천도준은 조용히 의자에 앉은 채 두 주먹을 꽉 움켜쥐며 빠드득 소리를 냈다.이를 꽉 깨문 그는 거센 분노가 들끓어 오르는 눈동자를 번뜩였다.이 순간, 그는 마치 피 맛을 즐기는 사나운 짐승처럼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설아, 너는... 지금 내 역린을 건드린 거야!"용에게는 역린이 있는데,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게 되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 때, 아무 망설임 없이 귀국하여 그의 곁을 지켰었다.비록 이수용이 그를 도와주어 아주 순조롭게 모든 일을 해결했다지만, 고청하가 그의 곁을 지키며 매번 그에게 따스함과 격려를 해 주었기에 그가 편히 쉴 수 있었다.고청하는 그에게 있어 어머니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였다.그런데 지금... 임설아가 그런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하고 있었다.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고청하의 전화였다.발신자를 확인한 천도준
천도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곧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전화를 끊은 천도준이 곧바로 은행 쪽에 전화를 걸었다.‘임설아가 내 역린을 건드리려 하니, 내 무정함을 탓할 수는 없지!’같은 시각.영일자재 부근의 한 커피숍 안임설아는 휴대폰을 소파 위에 내던지고는 테이블 위에 엎드려 통곡했다.그녀의 울음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왜?’‘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내가 뭘 잘못했다고?’임설아는 서러운 마음에 가냘픈 몸을 바르르 떨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나는 단지 내가 원하는 걸 가지려 했을 뿐인데 그게 잘못이야?’‘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흔한데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해?’‘나는 이미 내 몸을 내주었는데, 왜 나를 조금도 소중히 여기지 않지?’임설아는 서럽게 울면서 원망과 분노로 가득 담은 말들을 천천히 내뱉었다.이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가여운 마음에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아이고... 멀쩡한 처자가 어쩌다 저렇게 상처받았대?”"이 세상에 있는 쓰레기 같은 남자들은 다 죽어야 해!""저 여자, 너무 불쌍해..."임설아는 커피숍 안의 동정 어린 목소리를 들으면서 더욱 슬프게 울었다.십 분 뒤.그녀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울음을 겨우 참은 임설아가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발신자를 확인했다.그녀가 일하는 은행의 사업부 관리 매니저가 전화한 것이었다.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눈가의 눈물을 닦아냈다.임설아가 울음을 꾹 참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매니저님.""임설아 씨, 당신 이미 은행에서 해고됐어."은행 매니저의 한마디에 임설아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매니저가 차갑게 말을 이었다."임설아 씨 개인 물품은 내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버리게 했으니, 가격에 따라 배상해 줄게. 조금 뒤 그쪽 계좌로 이체될 거야."뚝!전화가 끊겼다.임설아는
저녁 무렵.천도준은 겐팅 스카이에서 만나자는 고청하의 전화를 받았다.전화 끊은 천도준이 전화 몇 통을 연속 걸고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약속 장소로 향했다.다만 고청하가 선택한 약속 장소는 그의 심장을 철렁하게 했다.겐팅 스카이는 그들이 진정으로 관계를 확정한 곳이었다.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고청하의 마음을 그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천도준이 겐팅 스카이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일곱 시가 다 되었었다.주차장에는 고청하의 포르쉐 911이 조용히 멈춰 서 있었다. 그녀는 이미 도착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도준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은은하고도 느린 음악이 들려왔다.어두운 불빛이 레스토랑 전체를 아름답게 장식했다."혹시 천 대표님이세요?"문 앞에 있던 레스토랑 직원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천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으로 오세요. 고청하 씨가 오늘 저녁 우리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어요."레스토랑 직원을 따라 겐팅 스카이 안으로 들어선 천도준은 창가에 앉아 있는 고청하를 한눈에 알아보았다.불빛 아래,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고청하가 턱을 괸 채 창밖의 도시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뒷모습이 매우 쓸쓸해 보였다."고청하 씨, 천 대표님이 도착했어요."레스토랑 직원이 작은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천도준은 고청하의 가녀린 몸이 흠칫 떨리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청하가 고개를 돌리더니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왔어? 앉아."천도준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고청하는 비록 그에게 웃어주고 있었지만, 그는 저 웃음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그가 자리에 앉자, 고청하가 레스토랑 직원의 손에서 메뉴판을 건네받아 테이블 위에 내려놓더니 천도준 앞으로 밀어주었다."뭐 먹을래? 내가 살게.""청하야...."천도준이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고청하가 예쁜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그럼, 내가 주문할게."말을 마친 그녀가 메뉴판을
"나는 네가 오해하는 걸 원하지 않아."천도준은 씁쓸하게 웃었다.고청하가 고개를 젓더니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오해하지 않았어. 내가 무슨 오해를 하겠어?""임설아가...."천도준은 이 일을 끌고 싶지 않았다.이런 일을 끌면 끌수록 오해만 더욱 쌓일 뿐이었다."괜찮아. 난 정말 괜찮아."고청하는 손을 들어 올려 눈가를 닦고는 웃으면서 음식을 가리켰다."밥이나 먹어. 내가 요리를 많이 시켰으니, 다 먹어봐야 해."그녀의 모습이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천도준의 심장을 매섭게 찔렀다.천도준은 그녀가 너무 안쓰러웠다.시간을 확인한 그는 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천도준이 울프에게 전화를 걸었다."사람을 데리고 들어와."전화를 끊은 그는 고청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청하야, 나는 네게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어. 내가 다 설명할게."순간, 고청하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그냥 설명하지 말아 줄래? 우리, 이 식사를 끝으로 각자 갈 길 가자. 내가 떠나 주면 되잖아?"낮에 임설아가 그녀를 만났을 때, 이미 모든 일을 아주 분명하고도 노골적으로 말해 주었었다.‘그런 일을 해명할 필요가 있을까?’‘또 무슨 설명할 것이 있다고?’고청하가 생각하기에 천도준의 해명은 마치 변명 같아 그녀를 더욱 괴롭게 할 뿐이었다.바로 이때.겐팅 스카이 문 앞에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천도준은 울프와 임설아를 보자마자 한시름을 놓았다.천도준을 보게 된 임설아는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곧바로 천도준에게 달려들었다.임설아는 아무런 방비도 없었던 천도준의 품에 달려들어 천도준을 꽉 껴안았다."이제야 저를 만나 줄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내 당신을 만나게 되었네요!"콰쾅!이 장면을 보게 된 고청하의 머릿속에 굉음이 울렸다.예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에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붉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녀가 씁쓸하게 웃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천도준을 바라보았다."천도준, 이게
천도준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고청하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임설아가 동시에 울프의 곁에 있는 청소 아줌마를 바라보았다.청소 아줌마는 임설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처자, 그날 밤, 이 사장님은 단지 처자를 호텔까지 바래다주고는 내게 5만 원을 주며 나더러 처자를 돌봐주라고 했어.”고청하는 얼떨떨한 마음에 한동안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러나 임설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말도 안 돼!’‘절대 그럴 리 없어!’‘그날 밤 나는 이미 그런 상태였는데, 이 사람이 단지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기만 했다고?’임설아는 가난한 출신이었지만, 다행히 예쁜 외모를 지녔다. 그녀도 이 예쁜 외모를 어떻게 이용해야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 덕에 그녀는 사회에 나온 뒤로 별로 고생하지 않았다."쪽지는요? 그럼, 쪽지는 어떻게 된 일이에요?"임설아는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면서 마치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두 손으로 천도준의 팔을 꼭 붙잡았다."만약 당신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면 왜 그런 쪽지를 남겼어요?”천도준은 임설아를 뿌리치고는 웃으면서 말했다."왜 그랬을 것 같아?”임설아는 제자리에 굳어버린 채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굴렸다.그날 밤 이후로 천도준에게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린 그녀는 갑자기 가녀린 몸을 바르르 떨며 천도준을 노려보았다."당신, 저를 이용한 거예요? 저를 이용해 오씨 가문에 복수한 거예요?"이 말이 튀어나오자, 고청하도 눈썹을 찌푸리고 천도준을 바라보았다.천도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임설아를 바라보았다."그런 셈이지. 네가 스스로 내게 달라붙으려 했으니, 내가 이용해도 되잖아?"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임설아는 완전히 멍해졌다.재벌가로 시집가려던 그녀의 꿈이 순식간에 완전히 깨졌다.한 가닥 이성의 끈을 겨우 붙잡은 임설아가 얼굴을 어둡게 굳힌 채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왜? 왜 저를 이용했어요? 제가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