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하자 배인호는 윤 집사에게 술이 깨는 차를 부탁했다. 나도 한마디 더 보탰다.“윤 집사님, 많이 끓여 주세요. 저도 마시려고요.”윤 집사는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사모님.”배인호는 넥타이를 풀어 소파에 던져 놓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잠시 눈을 감았다. 나는 그의 턱선을 바라보다 또 목젖을 바라보다 시선이 그의 목으로 향했다.검은색 셔츠 안으로 그의 하얀 피부에 키스 마크가 보여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서란이 남긴 것일까? 아니다. 불가능했다. 서란이 주도적으로 그에게 키스 마크를 남겼다면 그건 그녀가 그를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배인호는 분명히 황홀함에 빠져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꼭 다른 여자가 남긴 것일 거라고 나는 속으로 분석했다. 아무튼 이런 일이 한두 번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비록 가볍게 웃어넘길 때가 많았고 마지막 단계까지 간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은 불편했다. 지금은 아주 좋아졌다 오히려 이후의 서란이 걱정되었다. 이런 생활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지만 그녀를 위해 배인호는 무심코 하는 행동도 거절할 것이다. 나는 속으로 나 자신을 비웃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 것일까? 10년 동안 배인호가 나를 위해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됐어요. 난 차 마시지 않을래요.”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중얼거리며 일어나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침실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샤워하려던 참에 배인호가 문을 열었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배인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닫고 잠근 후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어리둥절하고 매우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배인호는 술을 마셨을 뿐만 아니라 약간 흥분한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뜨거운 눈빛으로 내 입술에 천천히 키스했다. 나는 그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그의 손은 내 허리 뒤에 있었고, 그가 꽉 잡고 있어서 헤어날 수 없었다.“배인호, 당신 뭐 하는 거야?”그의 입술이 떨어지자 나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터질
민정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모든 말은 차마 내뱉을 수 없었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세 단어를 건넸다.“축하해!”“지영아, 혹시 며칠 후에 산부인과 검사받으러 같이 가줄 수 있어? 나 테스트기로 임신이 된 건 확인했는데 아직 병원에는 가보지 못했거든. 다른 사람들 말로는 뭐 서류도 작성해야 한다던데?”민정이는 신난 상태로 나한테 임신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허겸이 다른 여자와 바람피우고 있는 장면뿐이었다.만약 내가 지금 민정이한테 진실을 얘기해줄 경우, 두 가지 결과만 존재할 뿐이다. 하나는 분노와 상처로 유산을 선택하고 허겸과 헤어지는 것, 두 번째는 그게 감정 때문이든 애기 때문이든 허겸을 용서하는 것이다.어떤 걸 선택하든 간에 민정이한테는 큰 상처일 뿐이다.“그래, 그럼 가기 전에 미리 알려줘.”나는 혼란스러운 생각을 뒤로 하고 입에 나오는 대로 승낙한 후, 몸을 일으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푹 쉬어, 난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봐야 해.”민정이는 기분 나쁘다는 듯 입을 삐쭉이며 말했다.“뭐야, 겨우 앉은 지 10분밖에 안 됐는데!”“민정아, 너 임신한 거 일단 허겸 씨한테는 말하지 말고 이제 날 잡아서 성대하게 하는 건 어때?”나는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민정이는 그가 있다는 사실에 별 의심조차 없이 바로 대답했다.“좋아! 내가 시간 정하면 그때 다시 너희들한테 알려줄게!”나는“OK” 사인을 건네고, 빠르게 민정이의 집을 떠났다.차에 돌아와 앉은 후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이 안정되었다. 정아, 세희, 민정이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이다. 나한테 있어서 그녀들은 내 가족이나 다름없다. 나는 누군가가 그녀들을 다치게 하는 건 정말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내가 떠나려 하던 찰나, 허겸의 쉐보레가 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났다. 그는 차에서 내린 뒤 손에는 흰색 주머니를 들고 다소 급한 기색을 보였다.“허겸 씨!”나는 그를 불러 섰다.나를 발견한 허겸은
배인호는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생각해 볼게.”생각해 본다고 했으니, 바로 거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요.”커피를 다 마신 후, 배인호는 본인 차는 기사님이 운전해 갔으니, 내 차로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반대하지는 않았다.놀랍게도 우리는 가는 길에 서로 이야기도 나눴다. 물론 대부분은 내가 과거에 자존심 없이 그를 따라다녔던 일을 위주로, 나 자신을 비웃으며 말했지만, 배인호도 예전처럼은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빌라 문 앞까지 도착한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둘이 이렇게 편하게 대화하는 날도 있네요.”“인생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도 있기 마련이지.”배인호는 담담하게 답했다.틀린 소리는 아니다, 나도 환생했으니 말이다!나와 배인호가 같이 들어오는 모습을 본 집사들은 의아해하며, 수군거리는 듯했다. 나는 윤 집사한테 점심을 부탁한 뒤 거실에 누워 민정이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민정이한테 말할지 말지 고민하던 나는 배인호한테 시선이 멈췄고,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인호 씨,저 물어볼 거 있어요.”“뭔데.”배인호는 내 맞은편에서 경제 매거진을 펼치며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그러니까 만약에 인호 씨가 나를 많이 사랑하고, 우리 둘 사이도 아주 좋아요. 근데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예요. 그러다 어느 날 당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제가 알아버렸어요. 저는 임신까지 한 상태고요. 만약 제가 인호 씨를 용서한다면, 인호 씨도 죄책감과 아이에 대한 배려 때문에,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어요?”나는 그에게 물었다.민정이는 진짜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내 친구의 일이다”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말하는 순간 너무 쉽게 누군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고, 그나마 나를 예시로 들면, 배인호가 별 의심은 안 할 거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나는 만약이라는 바보스러운 질문으로 배인호한테 무시도 많이 당했었지만, 예전에 나는 그런 것조차도 즐겼었다.배인호
일단 시간을 오래 끌수록 상황은 더 안 좋아지니, 민정이가 허겸의 진짜 본색을 간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우리 그냥 사실대로 말하자, 아마 듣고 멘붕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계속 속이는 것보다는 낫잖아.”박정아는 언제나 모든 일에 대담한 편이었고,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었다.친구 간의 연이 끊어진다고 해도, 그녀는 이렇게 했을 것이다.자세히 생각해 보면 현재로서는 이게 제일 나은 방법 같았고, 나와 세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동의했다.민정이의 일로 우리는 긴 시간 논의를 했고, 밤늦게서야 그녀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오후에 너무 오래 잠을 잔 탓에, 저녁에는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예 영화 한 편을 찾아보기로 했다.그러다 서란이 오늘 배인호한테 걸었던 전화가 생각났다. 나는 귀신에 홀린 듯이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기선우의 인스타에 들어갔다.나는 서란이랑도 친구라 할 수 있지만, 그녀의 연락처는 없고 기선우것만 알고 있다. 그 둘 사이의 일부 상황은 기선우의 인스타 게시물 업로드를 통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기선우는 마치 본인의 여자친구를 온 세상에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듯, 게시물을 자주 업로드 하기 때문이다.기선우의 인스타 프로필사진은 서란과의 커플 사진에서, 농구 스타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상태 메시지도 바뀌었다.「모든 게 내 부족함 때문이야.」다시 보니, 그는 이미 며칠 동안 게시물을 업로드하지 않았다.“하아.”나는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순수한 캠퍼스 사랑이 사악한 사회의 압박으로 인해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나는 기선우한테 문자 한 통 보냈다.「선우야, 자?」한참이 지난 후에야 기선우한테서 답장이 왔다.「아니요.」나는 이어서 물었다.「요즘 서란이랑은 잘 만나고 있어? 인스타 프로필 사진 바뀌었네?」선우는 이번에는 칼답으로 답했다.「누나, 저 서란이랑 헤어졌어요.」이 부분은 전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령 나의 참여가 있다고 해도, 기선우와 서란의
나는 민정이의 이성적인 태도와 정신을 차린 모습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위로의 말도 이제는 너무나 빈말 같았고, 내가 그녀를 도와 해줄 수 있는 건 바로 허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민정이은는 침묵해 있다가 입을 열었다.“좋아, 그 사람이 날 배신했으니 나도 더 이상 간직할 옛 감정 같은 건 없어. 지영아, 나 네가 말하는 대로 하고 싶어.”나와 민정이는 병실에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눴고, 그 대화를 통해 허겸에 대한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허겸의 집안 배경은 평균 이하였고, 그의 고향은 어느 작은 마을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머리도 똑똑한지라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하고 그는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됐고, 최근에는 승진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허겸한테 있어서, 현재 직장은 그가 서울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과도 같은 것이기에 아주 중요했다. 만약 이 직장을 잃는다면, 그는 이것보다 더 좋은 직장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또한 민정이 말하길, 허겸의 부모님은 겨우 50세 초반인데 현재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활비는 모두 허겸이 보내는 돈에 의지한다고 했다. 거기다 민정이도 이런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돈이 부족한 거도 아니고, 미래 시부모님한테 용돈 정도 주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이렇게 이야기를 끝낸 순간, 정아가 아주머니와 세희랑 함께 도착했다.“엄마!”자신의 엄마를 보자마자, 민정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민정이의 어머니도 얼른 달려가서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나는 정아와 세희를 병실 밖으로 불러냈고, 방금 민정이가 결심한 태도와 허겸의 상황에 대해 모두 그녀들에게 말해주었다.내 머릿속에는 대략적인 계획이 세워지긴 했지만, 이 계획은 배인호의 도움이 필요했다.병원에서 나온 나는 배인호한테 전화를 걸었다.“인호 씨, 저 좀 도와줄 수 있어요?”나는 직접적으로 물었
새 직장은 나한테 있어서 아주 신선한 느낌이었고, 특히 매일 배인호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배인호가 대체 어떤 생각으로 나한테 이 자리를 줬는지 궁금했다.어머님이 나한테 문자를 보내기전까진 말이다.「지영아, 인호가 너한테 일자리는 배정해 줬니? 어떤 업무야? 인호랑은 매일 볼 수 있는 거니?」그 연속으로 이어진 세 가지 질문을 본 후에야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시부모님이 중간에서 압력을 가하셨을 거란걸 말이다.나는 배인호가 당연히 본인한테 잘해주고 있다고 답하며 문자를 보냈다.「어머니, 저 지금 인호 씨 사무실에서 인호 씨 개인비서 하고 있어요.」어머님은 엄지척 이모티콘을 나한테 보냈다.퇴근 시간이 되자 나는 퇴근 준비를 하며, 서란한테 지금 거기로 갈 수 있으니, 주소를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배인호는 아직 퇴근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나 야근해야 하니까 먼저 가봐.”“네.”나는 혹시나 나를 불러세워 야근하라고 할까 봐, 재빨리 짐을 싸서 퇴근했다.서란은 곧 답장이 왔고, 우리는 “랑데부”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나는 차로 곧장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고, 이외로 서란은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흰색 스웨터 카디건을 걸쳤고 그 안에는 갈색 니트 민소매를 입었다. 그녀는 하얗고 가녀린 목과 쇄골을 드러냈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까맣고 부드러운 머릿결은 청순하고 매력적이었다.그녀는 콜라겐으로 가득 찬 얼굴에 까만 진주 같은 눈동자로 생각에 잠긴 듯 턱을 괴고는,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진짜 예쁘네!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적어도 그 외모는 나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배인호와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지영언니!”나를 발견한 서란은 웃으며 나한테 손을 흔들었다.나는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검은색 트렌치 코드를 여미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고 그녀한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서란아, 어쩐 일로 부른 거야?”서란은 핸드폰을 꺼내 들면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언니, 카톡 좀 추
이우범은 내가 아직 배인호한테 말할 생각이 없다는 걸 듣고는, 마치 선생님이 열등생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았다.나는 단지 내면의 생각을 얘기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이우범을 부른 거지, 교육받으려고 부른 게 아니기 때문에, 괜히 목이 움츠러들었다.“자, 자, 자, 먹자고요!”때마침 주문한 음식이 올라왔고, 나는 이우범을 재촉하며 아무 말 없이 먹기 시작했다.이우범은 나와 같이 있을 때면 입맛이 없는 건지, 매번 얼마 먹지를 않고 떠났다. 나 혼자서 식탁에 가득 찬 맛있는 음식을 마주하는 건, 낭비 그 자체이다.다 먹지 못한 음식을 포장 후, 운전해서 집으로 간 나는 윤 집사한테 남은 음식들을 정원에서 기르는 닭과 오리에게 먹이라고 했다.윤 집사는 닭과 오리를 기르는데는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시댁에서 가져온 몇 마리 토종닭과 토종 오리는 그녀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아주 통통하게 자랐다.나는 갑자기 40살 불혹까지 살 수 있는 건 하나님이 도운 거라는 이우범의 말이 생각났고, 또 전생에 내가 죽은 이유도 떠올라서 바로 윤 집사를 불렀다.“윤 집사님, 내일 한방 오리백숙 좀 부탁드릴게요!”“네, 사모님.”윤 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윤 집사는 걱정스러운 일이 있는 건지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였다. 본인 딸이 남자친구랑 헤어진 일 때문인가? 아니면 최근 화학 공장 철거 문제 때문에?나는 거기에 관해 묻지 않았고, 얼른 샤워하고 휴식을 취했다.잠들기 전, 나는 민정이한테 연락했다. 민정이 말로는 허겸이 지금 확실히 흔들리는 중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배 씨 그룹의 대우도 좋고 플랫폼도 넓어서, 일단 배 씨 그룹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앞날은 창창하기 때문이다!“우리끼리 전에 논의한 대로 많이 격려해 주고, 퇴사하게끔 만들어.”나는 팩을 한 상태에서 이민정한테 말했다.“알겠어, 근데 배 씨 그룹에서는 어떻게 허겸한테 러브콜을 보내게 된 거야? 인호 씨가 도와준 거야?”민정이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응, 그 인간 이번
나와 배인호가 세화산업 공장 쪽에 도착했을 때, 그곳 입구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둘러싸여 있었고, 모두 40~50대쯤의 아저씨들이었다. 그들은 격분한 상태로 무언가를 토론하고 있었다.배인호의 차가 들어오는 걸 보고, 그들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우리 여기엔 뭐 하러 온 거예요?”나는 좋지 않은 예감에 차를 멈추고 배인호한테 물었다.“협상하러.”배인호는 태연하고 침착했다. 마치 밖에 저 화난 얼굴의 남자들이 곧 겨냥할 사람이 본인이 아닌 거처럼 말이다.배인호가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자, 나는 얼른 내 태도를 밝혔다.“전 안 가요. 가고 싶으면 혼자 가세요!”애들 장난도 아니고, 저 사람들끼리 다투다가, 혹시라도 이 가냘픈 몸이 다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났다.배인호는 매정하게 말했다.“가기 싫어도 가야 해. 넌 지금 내 비서라는 걸 잊지 마! 아니면 우리 엄마한테 너 근무태도 안 좋다고 얘기할까?”나는 어이가 없었다. 감히 시어머니로 날 협박하다니?나는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했다. 시어머니의 압박으로 배 씨 그룹 개인 비서로 들어온 거도 맞고, 만약 어머님이 내 근무태도가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에 대한 인상도 나빠질 테니 말이다.나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가면 가는 거죠. 뭐 !”차에서 내린 후, 나는 배인호의 뒤를 따라 그 분노한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당신이 바로 그 배 씨 그룹에 배 대표?”선두에 선 남자는 50대 정도였고, 약간은 뚱뚱한 몸매에 배가 나와 있었다. 거친 태도 때문에 이미지가 좋아 보이진 않았고, 이 사람이 바로 서란의 아버지 즉 서중석이었다.“네, 오늘 제가 온 이유는 철거비 관련해서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혹시 여기 대표자로서 저랑 얘기 좀 나누실 수 있을까요?”배인호는 온화하게 존댓말로 말했다.세상 오만한 왕자님도 미래 장인어른 앞에서는 공손하게 되는 게 사랑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서중석도 배인호가 이렇게까지 예의 바르게 나올 줄 몰랐는지, 얼떨떨한 눈치였고, 뒤에 사람들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