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강훈을 남겨야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내 입을 대신할 수 있었다.내가 그 사람들이 모두 남아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 한 발짝 물러서려는 것이고, 신호연을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뜻밖에도 신호연의 아버지인 신건우가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데 사무실까지 찾아오는 거야, 신중하지 못하게. 집에 가서 얘기하면 안 되는 거야?”신건우가 어르신의 자세로 훈계하려 했다.“점점 꼴이 말이 아니구나.”나는 그의 말을 듣고,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래도 예의를 갖춰 말했다.“아버님, 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말이 아닌지 긴지는 곧 보시면 알 것입니다. 하지만 잘 듣고 잘 보세요. 누가 말이 아닌지!”“한지아,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신호연이 버럭댔다. 내가 신 씨 집에 시집온 이후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내가 얌전하게 말하는 것에 그들은 더 익숙했다.나는 벌떡 일어섰다.“신호연, 내가 얌전하게 말하는 것에 적응됐지? 나 지금 예의를 한껏 갖춰서 말하는 거야.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지 마, 정말 내가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꼭두각시라고 생각하는 거야?”사실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신호연은 천우 그룹의 프로젝트를 확신했기 때문에 나를 대하는 태도가 더 강경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국민 남편이라는 예전의 이미지를 벗고 단물만 빼먹고 버리려는 수작이었다.신호연은 내 행동에 깜짝 놀라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며 내 생각을 짐작했다.“한지아, 여기서 말썽 좀 그만 피워, 내가 뭐 했어? 남자한테 안긴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네가 어떤 여자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네가 내 오빠 몰래 다른 남자를 만나고, 뻔뻔하게 여기 와서 헛소리하는 거야?”신연아는 오늘 내가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소리치고는 신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빠, 우리 가요, 뭐 들을 게 있다고 그래요?”“왜!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말에 신호연은 안색이 좋지 않은 채 나를 매섭게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고 있잖아! 난 당신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호연을 바라보았다.“그런 짓을 했으면서 조만간 탄로 날 거라는 걸 몰랐어? 진작에 마음의 준비를 했어야지!”내가 구출 당했을 때 신연아가 현장에 있을 줄은 몰랐다.시어머니도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듣고 나를 쳐다보았다.“지아야, 화내지 마, 쟤가 또 너를 건드렸구나, 아이고... 이 천벌 받을 놈아...”“애한테 무슨 말이야?”신건우는 자식을 두둔하며 할머니에게 소리쳤다.“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아녀자가 집에 가만히 있지 않고, 나와서 뭐 하는 거야?”나는 신건우의 이런 말을 듣고 차갑게 웃으며 헛소리하는 사람은 사실 신건우라고 생각했다.그는 신연아를 늘 아껴왔다. 그의 이런 사랑이 없었다면 신연아가 이렇게까지 전락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하... 아들 잘못은 아버지 가르침이 잘못 된 거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네요.”나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한마디 했다.“다른 사람을 뭐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딸과 아들을 잘 관리해야 발언권이 있는 거예요!”“뭐라고?”신건우가 나를 향해 무정하게 소리쳤다.“신호연, 얘가 바로 너의 그 잘난 아내야? 공공연히 윗사람에게 대들다니, 그래, 잘났다!”아버지한테 혼나서인지,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신호연은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를 향해 호통을 쳤다.“한지아, 너 점점 막 나가는구나! 걸핏하면 큰소리치고, 인상을 구기고, 이젠 감히 대들기까지 하는 거야? 정말 버릇을 잘...”“버릇이 뭐? 당신 정말 뻔뻔하구나?”나는 신호연의 말을 끊었다.“당신이 그녀의 버릇을 키워줬다면 오히려 말이 되겠지. 그래서 저렇게 뻔뻔스럽게도 파렴치한 짓을 하고 있잖아.”“할 말이 있으면 해. 괜히 그녀를 비난할 필요
전화 속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잡음 하나 없이, 다크 바의 모든 것을 되돌렸다. 신연아의 방탕한 웃음소리가 사무실 안에서 메아리쳤는데 너무 또렷해서 사무실이 다크 바인 듯 했다.나의 눈은 줄곧 신호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전화 녹취록의 말은 점점 더 듣기 거북해졌다. 나는 비록 한 번 겪어봤지만, 다시 들으니 여전히 소름이 끼치고 가슴이 아팠다. 눈물이 내 얼굴을 따라 주르륵 흘려내려 하얀 티셔츠 앞자락을 적셨다.“한지아, 젠장, 날 물 먹이려고? 널 죽여버릴 거야!”신연아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놀라서 덤벼들었다.이미연은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발을 들어 그녀를 걷어찼고, 신연아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째려보았다. 그러더니 소파 앞의 재떨이를 집어 들고 나한테 내던졌다.내가 얼른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크리스털 재떨이가 땅에 부딪히더니 큰 소리를 내며 산산이 조각났다.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나만 빼고 모두 아연실색했고, 시어머니는 놀라서 소리쳤다.“벌 받을 거야...”신호연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계속 마른 침을 삼켰다.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눈을 피해 더는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갑자기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손을 뻗어 티테이블에 있던 내 휴대폰에 손을 대려고 했다.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주워 뒤로 물러섰고, 이미연은 이내 내 곁으로 달려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나는 신호연을 바라보았다.“어때? 짜릿해?”“... 계속 들어...”나의 미친듯한 히스테리 비명에 놀란 건지 모두가 흠칫하더니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나의 울부짖음, 몸부림, 그리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녹음은 계속되었다... 더는 들을 수가 없어, 나는 울먹이며 신호연을 바라보았다.“너 아직... 할 말이 남았어? 신호연!”나는 울음을 꾹 참으며 신건우를 돌아보았다.“신건우 씨, 이래도 내가 말이 안 돼요? 아들 잘못은 아빠 탓이라고 했던 말에 반박할 수 있어요? 당신이 잘 가르친 아들과 딸이 같은
나는 태연자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그와 무슨 일이 있는지 네 오빠에게 물어봐야지!”“무슨 말이야? 변명하려는 거야?”신연아가 나를 매우 급하게 쳐다봤다.서강훈은 흠칫 놀라며 얼른 나를 바라보았다.“지아 누님, 그만 해요!”나는 그의 암시를 알아들었다. 그는 내가 감싸지 못하고 그를 드러낼까 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쓰레기를 토벌하려고 하는데, 그를 팔 필요가 있겠는가?나는 서강훈을 힐끗 보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 신연아를 보며 또박또박 물었다.“내가 비 오는 밤 공항에 혼자 갇혔을 때, 그는 너와 함께 내 침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았어?”“아이가 고열로 입원했을 때, 그는 나에게 돈을 한 푼도 남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너와 호텔에서 격렬한 밤을 보냈어! 설마 네가 보내준 열정적인 사진의 장면을 잊었어?”신연아는 당황한 듯 신호연을 쳐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나는 경멸의 미소를 지었다.“아니면 당신들이 한 비열한 짓이 너무 많아서 기억도 안 나는 거야? 그래?”“천우 그룹의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천우 그룹의 배현우 씨에게 신흥건재의 독점 대리인을 강력히 추천했고, 계약을 따냈을 때 새 차를 사주지 않았어?”“배현우 씨와 무슨 관계냐고?”나는 갑자기 예쁘게 돌아서서 신호연을 쳐다봤다.“신호연, 어떻게 생각해? 무슨 사이일 것 같아?”나는 배천우와의 만남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지만, 그가 매번 나를 위기에서 구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신호연은 무감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다 알고 있었어?”나는 서글프게 웃으며 조용히 되물었다.“계속 얘기해야 할까?”이미연은 욕설을 퍼부었다.“정말 뻔뻔스럽군. 세상에 별일이 다 있네, 이런 일은 또 금시초문이야. 신호연 넌 정말 대단해, 원래 난 네가 그냥 남들 하듯 밖에서 여자들이나 놀고 바람이나 피우는 줄 알았는데 네 여동생과도 자는 거야?”이미연의 말은 귀에 거슬렸지만 신씨 가문은 말문이 막혔다.이미연은 과장된 표정
갑자기 신호연이 울부짖는 소리가 처절하게 들려왔다.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갑자기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달려들어 내 갈 길을 막고, 커다란 체구로 내 앞에 털썩 무릎을 꿇는 것을 보았다.“지아야, 여보... 가지 마,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잠시 미쳤어... 가지 마!”그의 손이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는 얼굴을 젖히고, 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여보... 나 정말 잘못했어!”그는 본인 스스로 뺨을 두 대 때렸다.“고칠게... 다시는 미친 짓을 하지 않을 테니 우리 다시 시작하자!”신연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 신호연을 잡아당겼다.“오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천우 그룹과 계약하면 헤어지겠다고 약속했잖아, 사랑한 적 없다고, 우리 집만의 미래를 위해 그런다고 했잖아. 어차피 이제 다 아는데 뭐가 무서워?”나는 신연아를 차갑게 쳐다보며 신호연에게 물었다.“당신 그렇게 얘기했어?”“그녀의 헛소리를 듣지 마! 난 널 떠나지 않을 거야, 우리에겐 아직 콩이가 있어!”신호연은 고개를 들고 초조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우리야말로 가족이야, 다시 시작하자!”“오빠... 뭘 더 무서워해?”신연아는 신호연을 애타게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날 버리겠다고?”신호연은 신연아가 자신의 거짓말을 폭로하자 화가 치밀어 올라 신연아의 손을 뿌리치고 무릎을 꿇은 채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여보...”“어떻게 다시 시작하고 싶어?”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할 수 있는 한 다시는 널 저버리지 않을 거야!”그는 맹세코 말했다.“좋아! 집, 차, 그리고 당신의 재산은 모두 내 이름으로 돌려!”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그렇지 않으면, 나는 아까 뱉은 말대로 할 거야!”신호연의 눈빛이 움찔하더니 이내 굳어지며 싸늘해졌다.신연아는 갑자기 나를 힘껏 밀쳤다.“... 죽어 버려!”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이미연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어 나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줄곧 대답이 없던 도혜선이 반격에 나섰다. 먼저 신호연이 한 허위 증명서가 드러났고, 이어 신연아를 상대로 그녀의 소유 자산을 모두 폭로하며 신연아를 세상에 까발렸다. 그녀의 행동과 어지러운 생활도 낱낱이 드러났다.그러자 신호연은 초조해하며 그녀의 일을 수습하며 사실을 덮어주기에 바빴다.이때는 천우 그룹과 계약하기 이틀 전인데, 그전에는 내 요구에 따라 이름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월요일, 신호연은 천우 그룹으로부터 계약 연기 통보를 받았다. 그는 순간 멍해졌고, 입가의 살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조금 불안해졌다.병원에 나를 보러 와도 마음이 딴 데 있다. 나는 그에게 퇴원 절차를 밟게 했다. 나는 집에 갈 것이다. 나는 딸이 매일 신 씨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신건우가 딸을 좋아하지 않는다던 신연아의 말을 기억했고, 딸은 내의 시선에 있어야만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서강훈도 급히 달려왔는데, 두 사람이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고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이 나간 후,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복도 벽에 붙어서 그들이 복도에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사장님, 머뭇거리지 마세요.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잘 판단해야 해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정말 수포가 됩니다.”“하지만 보다시피, 만약 내가 정말 이름을 바꾼다면, 그녀의 좋은 머리로 내가 거지가 되는 건 시간문제야.”신호연은 다소 어색한 어조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그래도 큰 걸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낫죠! 게다가, 겉보기에는 승산이 없어 보이지만, 이미 걸린 물고기예요. 여자잖아요, 달래면 끝이에요, 아내 재산이면 다 사장님 것이죠!”서강훈은 직설적으로 말했다.신호연이 여전히 나를 방어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내가 자산이라고 불리는 것을 손에 넣는 걸 가장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건 내 돈으로 세운 것인데 그가 무슨 자격으로 다 삼킬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람은 출세할 기회를 얻어서는 안 된다.서강훈이 계속
점심쯤 시어머니는 콩이를 집으로 데려오며 여러 가지 식자재도 같이 사 오셨다. 고기며 술이며 신경 써서 준비해 오셨지만 감사함 따윈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시어머니가 쓰고 있는 그 돈도 내 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신흥건재의 80% 이상의 고객은 모두 건립 초기 내가 데려온 것이니까.집에 들어선 콩이는 얼른 내 방으로 달려와 품에 안기며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졸라댔다. 이 귀여운 것이 날 즐겁게 해주려고 일부러 외할머니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시어머니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에서 혼자 이것저것 하시느라 바빴다. 상황을 보아하니 아마 오늘은 우리 집에서 성대하게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 모양이다. 역시 점심시간이 지나니 신건우도 왔다. 나는 그날 이후 시아버지인 신건우한테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신호연도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왔는데 어쩐 일인지 신연아는 오지 않았다.신호연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한테 웃으며 결혼기념일은 금요일 저녁 브라운호텔 연회장에서 열릴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자기들끼리 웃으며 떠들어 댔다. 나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식사만 했다. 그러자 신호연이 그런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여보, 나 서강훈한테 당신이 요구한 것들은 다 당신 이름으로 바꾸라고 지시했어. 내가 그동안은 참 어리석었지. 다시 생각해 보니까 난 여전히 당신도 우리 집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었더라고. 반성 많이 하고 있어. 당신 말대로 콩이한테는 우리가 좋은 미래만 남겨줘야지. 그리고 이제는 당신이 걱정할 일 없게 할게. 신흥건재도 앞으로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더 크게 키워보자!"나는 그를 쓱 쳐다봤다. 오전까지만 해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날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던 인간이 이제는 나랑 손잡고 같이 미래를 도모하자고 한다. 종잇장 뒤집듯 뒤집힌 그의 태도에 헛웃음이 난다.목요일, 신호연은 약속대로 나한테 이름을 바꾼 후의 자산들을 모두 보여줬다. 집, 차 그리고 상당한 액수가 들어있는 은행카드까지.
연회장에서의 모든 순서가 끝나자 저기 사람들 틈 사이로 익숙한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또 도망가고 싶었다. 이런 모습으로 그를 만나고 싶진 않았으니까. 신호연도 한눈에 배현우를 알아보고는 얼른 내 허리를 껴안고 인사하러 갔다. 결혼기념일도 결국에는 천우 그룹 보라고 세팅한 연극이니까. 비록 조 대표님은 안 오셨고 배현우만 참석했지만 나는 확신했다. 신호연이 오늘 오길 바랐던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배현우라고.두 사람은 악수했고 신호연은 열정 가득한 목소리로 배현우한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배현우는 그 특유의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며 담담히 말을 이을 뿐이었다. 배현우의 수행원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 선물을 건넸지만, 배현우는 축하한다는 한마디 건네질 않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겼다. 배현우는 이 촌극을 다 꿰뚫어 보고 있었을 것이고, 그런 사람 앞에서 연극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쪽팔리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서로 인사치레를 주고받는 옆에서 나는 그저 간간이 웃음을 띠며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팔을 천천히 감싸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새언니, 이분은 누구세요...?"놀라서 옆을 보니 신연아가 나를 보며 세상 청순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앞에서는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내가 어이없음에 황당해하고 있자 신호연이 얼른 소개했다."배현우 씨, 이쪽은 제 동생인 신연아라고 합니다."배현우는 옅은 미소를 띠며 신연아를 쭉 훑어보고는 이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려 물었다."한지아 씨, 요즘 많이 바쁘신 건가요? 천우 그룹 회의에 두 번이나 결석하셨던데."그는 나를 부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한지아씨라고 불렀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요즘 몸이 좀 안 좋아서요. 회사를 많이 못 나갔어요."내 허리를 껴안은 신호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보고 배현우와 좀 더 깊이 대화해 보라는 일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