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경한이 물속으로 떨어지면서 일으킨 파동에 소원을 집어삼키려 하던 피라냐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소원의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그들에게 거대한 케이크의 존재를 알려 주고 있었기에 피라냐는 이내 이빨을 드러내며 흉악한 바다의 맹수다운 자태를 뽐내며 소원을 향해 덮쳐갔다.육경한이 수면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피라냐의 주의를 끌려 했지만 다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소원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피라냐는 육경한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오로지 소원만을 향해 이빨을 번뜩이며 다가갔다.-탕!그때 보트 위의 경호원이 총을 들어 피라냐를 향해 쏘자 그 큰 반동에 피라냐는 뒤로 물러나며 먹잇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피라냐들을 위협하기에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지만 그러다가 사람이라도 잘못 쏘게 되면 큰 불상사로 이어지기에 경호원은 함부로 총을 꺼내 쏠 수도 없었다.놀란 것도 잠시 이내 다시 사냥할 준비를 마친 피라냐가 다가오자 육경한은 어찌나 긴장했는지 이마의 핏줄까지 도드라지며 허리춤에서 작은 단도 하나를 빼 들었다.이것은 육경한이 해외에 있을 때부터의 습관이었는데 다른 사람은 모르게 늘 작은 단독 하나를 허리춤에 지니고 다녔다. 그게 육경한이 낯선 타지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었다.육경한은 이를 악물며 빛의 속도로 제 팔을 베었다.날카로운 칼날에 살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육경한은 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다시 제 종아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단도를 휘두르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잔인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은 마치 제 자신을 베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원수를 베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깊게 패인 상처로 피가 흘러나와 수면 위로 번져갔다. 빨간 피로 물들어진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한 송이 수면 위에 피어났다.그에 그치지 않고 육경한은 이를 꽉 악문 채 피라냐를 유인하려 계속해서 수면을 두드렸다.역시나 피라냐는 신선한 피에 이끌려 더 이상 소원에게 들러붙지 않고 육경한에게로 다가갔다.그 순간까지도 소원은 계속
비 맞은 강아지마냥 가냘픈 몸을 하고 제 품 안에 안겨 있는 소원을 보던 육경한은 그녀가 안쓰러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원망 뒤에 잇따르는 것은 증오였다. 소원은 코가 멘 목소리로 입을 열어 육경한에 대한 증오를 쏟아냈다."육경한, 난 네가 너무 싫어. 너는 악마야, 쓰레기라고! 네가 죽은 거 하나는 정말 잘된 일이야."육경한이 죽었으니 제 부모도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여생은 평온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고 보니 죽는 게 뭐 그다지 유감스럽지는 않았다. 적어도 육경한이라는 악마와 함께 죽었으니.하지만 소원의 말에 육경한은 꽤 충격받았는지 잠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소원아, 너 방금 뭐라고 했어?"소원은 숨기는 것 없이 제 머릿속의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너 잘 죽었다고, 죽어서 다행이라고!"소원을 살리기 위해 육경한이 무슨 짓까지 했는데 아직도 제 앞에서 저런 말 들을 내뱉는 소원을 보며 육경한은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애초에 그녀에게 무언가를 기대했던 제가 잘못이었던 것 같다.소원은 기분이 좋은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하늘도 내 기도를 듣고 널 끌어내려 준 거지. 어떡해? 재수 없어서."그 순간 소원이 하려던 말들이 차가운 육경한의 입술에 의해 막혀버렸다.입술은 차가웠지만 입속만은 따뜻한 그 이상한 느낌에 소원은 온몸이 굳어져 버렸다.따뜻... 따뜻해...입안이 따뜻한 걸 봐서 육경한은 아직 죽지 않았다.소원과의 입맞춤으로 육경한은 참아왔던 고통이 모두 치유되는 것만 같았다.그래서 그는 소원의 입술을 벌려 자신의 혀로 천천히 소원의 입술을 탐했다.이 상황을 즐기는 듯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려오는 그 모습은 너무나도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육경한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잠시 멈칫하던 소원은 제 입안을 훑고 지나가는 그의 혀를 꽉 깨물어 버렸다. 키스를 즐기던 도중 물린 혀에 육경한이 깜짝 놀란 틈을 타 소원은 그를 밀쳐냈다. 그리고 힘을 주어 그의 뺨을 내리쳤다.육경한의 입가로 새빨간 피
구명보트 위의 사람들은 일단 소원부터 구하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버린 육경한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짧은 찰나에 벌어진 많은 일들에 충격받은 소원은 벙찐 채 가만히 구조 대원들의 손에 이끌려 보트에 올랐다.지금 소원이 기억하는 거라고는 육경한이 자기를 밀쳤다는 사실 밖에 없었다.소원은 넋을 놓은 채 보트를 타고 뭍에 올랐고 경호원은 바로 육경한을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이송했으며 소원 또한 다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보내졌다.물에 너무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었던 탓인지 소원은 온몸에 한기가 감돌았고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한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육경한을 보며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진아연은 상대적으로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이는 소원을 보자마자 그녀를 향해 소리 질렀다."경한 씨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가 너 가만 안 놔둬!"침대에 실려 들어가던 소원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어 진아연의 손목을 잡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진아연, 마지막 한 발 누가 썼어? 네가...""너 나 죽이려고 했지?"진아연의 눈을 보며 말하는 소원에 진아연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그냥 경한 씨 살리려고 그 피라냐 쏘려고 했던 것뿐이야. 경한 씨한테 무슨 일 생기면 다 네 탓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육경한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죽어도 난 만족해."육경한이 죽고 소원도 그 뒤를 따라 죽는다면 목숨으로 저를 살려준 값은 톡톡히 치른 것이니 빚을 진 셈은 아니었다.지나야 하는 소음과 상대가 되지 않자 발을 구르며 소리 질렀다."너 지금 경한 씨 저주했어? 경한 씨 일어나면 다 이럴 거야!"소원은 진아연의 팔을 쳐 내며 차갑게 웃었다."진아연, 너는 죽을 때까지 육경한 그늘 밑에서 살길 바랄게.""너 무슨 뜻이야 그게!"소원은 침대에 누워 피곤한 듯 두 눈을 감으며 진아연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무슨 뜻이냐고?"육경한이 지옥에 가면 그 뒤를 이을 건 너라는 말이지.소원이 마지막 말을 뱉
말을 하며 이준혁은 윤혜인의 손을 잡아 왔다.하지만 부자지간의 다툼에 끼고 싶지 않았던 윤혜인이 그 손을 빼내고 벗어나려 하자 이준혁은 더욱더 손을 꽉 잡아 오며 윤혜인을 가지 못하게 막았다.둘의 손이 맞붙어 있는 것을 본 이천수는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제 말에 사사건건 토를 대는 불효자식이 얼굴 빼고는 볼 것도 없는 여자 하나 때문에 무려 정씨 집안을 건드렸던 것이다."할 말 있으면 빨리해요. 나 쉬고 싶어요."이천수는 애써 터져 나오는 화를 참으며 말했다."고 이사는 왜 잘랐어?""직무유기하고 다른 회사와 결탁한 증거가 발견돼서 잘랐어요.""필요 없는 정보만 팔아넘겼다잖아! 그게 뭐 얼마나 큰일이라고, 회사에 영향도 끼치지 않은 일로 사람을 잘라? 회사에 어디 이러는 게 한둘이야?!"이준혁은 이천수를 똑바로 쳐다보며 차갑게 대꾸했다."아버지가 말씀하신 사람들, 제가 다 찾아낼 겁니다.""네가 누구 앞이라고 감히 그런 말을 지껄여! 그 사람들 다 우리 회사 창립멤버야, 퇴직할 나이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내버려 둬 그냥."이천수는 눈을 부릅뜨며 한마디 더 보탰다."그리고 고 이사도 그래. 사람 해고할 때 네가 언제 내 의견 물어본 적 있어? 아주 이젠 내가 안중에도 없지!"이준혁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제 사람 건드실 때, 아버지는 저와 상의하셨어요?""내가 누굴 건드렸는데!"이준혁은 치가 떨린다는 듯 이천수에게 눈길로 주지 않으며 말했다."나가요, 우리 방해 말고."이준혁은 일부러 우리라는 단어를 좀 더 강조했다.그제야 이천수도 이준혁이 말하는 '내 사람' 이 윤혜인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생각 못 할 만도 한 것이 윤혜인은 한 번도 이천수 마음에 든 적이 없는 보잘것없는 이준혁의 전처였다.이 모든 게 윤혜인 때문이었다는 것을 한 번 더 상기시키는 이준혁에 이천수는 더욱더 화가 났다.여자 하나에 눈이 팔려서 감히 제가 회사에 심어둔 제 눈을 도려내다니, 그리고 몇 년 동안 조용히 감시할 때는
이천수는 이준혁에게 손가락질하며 역정을 냈다."네가 날 아버지로 생각한 적이 있긴 하니? 내가 한 모든 일은 다 널 위해서였어. 근데 넌 여자 하나에 눈이 멀어서 지금 아버지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회사에서 내치겠다고?""여자의 눈이 먼 걸 아셨으면 저 그만 건드리세요."이준혁은 차가운 표정으로 한 자 한 자 끊어 말하며 이천수를 향해 경고했다."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내 사람 건드리지 마세요. 그리고 막말도 하지 말고요. 그런 말 들을 사람 아닙니다. 다시 한번 더 제 경고 무시하시면 아버지 측근들 내보내는 것 정도로 끝나진 않을 거예요."이준혁이 지금 하고 있는 건 제 속내를 완전히 드러낸 협박이었다.제가 그동안 쌓아왔던 명망과 체면이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지자 이천수는 분노에 차 뒤틀린 듯 아파 오는 심장을 잡으며 말했다."이 불효자식! 네가 저딴 년 하나 때문에 회사 창립 멤버를 감옥에 보내면 내일에는 아주 나도 보내버리겠구나!"이준혁은 여전히 감정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이라도 제 말에 협조하시면 여생은 편히 보내실 수 있게 할게요."이준혁이 한 말은 이천수가 계속 이준혁과 그의 사람들을 건드린다면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당장 감옥에 보내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이래서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거야!"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이천수는 난간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그때 이준혁이 밖에 서 있는 비서를 향해 소리쳤다."주훈!""이사장님 배웅해드려, 그리고 문밖에 경호원 두 명 더 둬. 아무나 들어오게 하지 말라고."이천수를 앞에 두고 하는 아무나 들여보내지 말라는 말은 꼭 이천수를 겨냥하는 말 같아 이천수는 가슴이 답답해나며 이준혁을 한 번 흘겨보고는 주훈의 손에 이끌려 병실을 나섰다.이천수가 나가고 둘만 남은 병실에서 윤혜인은 살짝 부어오른 이준혁의 턱을 보며 그를 소파로 끌어당겨 앉히고는 말했다."기다려요."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얼음팩과 거즈를 꺼내 들어 이준혁에게로 다가갔다.소파가 작은 사이
윤혜인의 턱을 매만지며 다가오는 이준혁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평소 확고한 저만의 패션 스타일을 추구하는 이준혁은 몸이 조금 호전된 다음에는 더 이상 환자복을 입지 않고 자신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윤혜인은 이준혁의 셔츠 입은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도드라진 가슴 근육이 셔츠를 뚫고 언뜻언뜻 보이는 그 모습이 섹시해서랄까. 뭔가 퇴폐적인 이준혁만의 느낌이 있었다.그렇게 셔츠를 입고 있는 이준혁이 지금 윤혜인 위에서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키스하려는 걸까...윤혜인은 떨리는 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건 키스가 아닌 이준혁의 웃음소리였다."눈은 왜 감아?""..."윤혜인이 머쓱하게 눈을 뜨니 이준혁은 그녀의 볼을 만지며 진지하게 말했다."너한테 사과하려고 그런 거야.""사... 사과라뇨?""미안해, 너 아프게 해서."이준혁은 특유의 깊은 눈동자로 윤혜인을 쳐다보며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제 아버지인 이천수의 행동에 대해 대신하는 사과였다. 이천수가 이준혁의 명령에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고 통쾌하긴 했지만 이천수에게 모욕을 당할 땐 윤혜인도 당연히 서러웠다. 그런데 이준혁이 저를 대신해서 화를 내주고 또 지금 이렇게 사과까지 해주니 윤혜인은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 같았다.이준혁은 다시 윤혜인의 얼굴을 들어 올리고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하려던 사과 다 했으니까 이제 우리 하던 거 마저 할까?""하던 거라뇨? 뭘 했는데요 우리가?"이준혁은 다리로 윤혜인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네가 눈감고 하려고 했던 거."윤혜인은 이준혁이 저에게 키스하려는 줄 알고 눈을 감았던 건 맞지만 그게 이미 오해로 밝혀진 마당에 이준혁이 또 이렇게 언급하니 어딘가 낯부끄러워 입술을 삐죽이며 둘러댔다."그냥 눈이 아파서 그런 거예요. 의미 부여하지 마요!"말을 하며 윤혜인은 이준혁의 무릎 위에서 내려오려 했다."
자신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는 윤혜인은 주량을 넘기지 않게 천천히 마셨지만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동료들도 계속 자신을 챙겨줘서 그런지 오늘따라 유달리 기분이 좋았다. 마치 하늘이 저를 돕는 것 마냥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다.물론 그 남자도...그렇게 좋은 분위기에 취한 윤혜인은 저도 모르게 주량을 넘길 때까지 마셔버렸고 회식이 끝나고 한 동료가 취한 윤혜인을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하지만 윤혜인이 바로 거절하자 동료들은 윤혜인의 등을 떠밀며 같이 가라고 부추겼다.그 손길에 취한 윤혜인이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넘어질 뻔한 걸 데려다주겠다던 동료가 잡아주었고 윤혜인은 애써 정신을 차리려 하며 한발 물러서서 감사 인사를 했다."고마워요."윤혜인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손을 내밀었던 동료가 얼굴이 빨개져서 우물쭈물하자 옆에 있던 동료 선생님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허 쌤, 이래서 연애하겠어요?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죠!"다들 부추기자 그 동료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윤 쌤, 지금 이거 우리 첫 대환데, 저 윤 쌤이랑 친해지고 싶어요."윤혜인이 회사에 들어온 날부터 허윤재 눈에는 윤혜인만 보였다.윤혜인은 그가 태어나서 본 사람들 중에 가장 예쁜 사람이었다. 허윤재에게 윤혜인은 봄날에 핀 꽃이었고 여름날에 내리는 단비였으며 가을에 흩날리는 낙엽이었고 겨울에 떨어지는 눈꽃이었다. 윤혜인의 어떤 모습이든지 허윤재 눈에는 다 한 폭의 그림 마냥 아름다워 보였다.그리고 일할 때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그녀의 모습이 허윤재에게는 제일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그제야 윤혜인은 고개를 들어 저에게 말을 거는 눈앞의 회사 동료를 올려다봤다. 잘생긴 얼굴에 살짝 튀어나온 이빨까지 한눈에 봐도 청량 미가 넘치는 얼굴이었다.오다가다 스친 적은 있었겠지만 윤혜인에게 큰 인상을 남기진 않았었다.하지만 윤혜인은 예의 바르게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당연하죠, 친해져요 우리."그에 너무나도 감격한 허윤재가 한참 동안 손을 떨며 잡을 엄두조차 내지 못
남자는 재잘재잘 말을 하던 여자의 입술을 깨물고 놓아줬다.“스읍-”윤혜인은 입술을 매만졌다.상처가 나지는 않았지만, 살짝 부어있었다.빨갛게 부풀어 오른 입술은 더 유혹적이었다.“뭐... 뭐 하시는 거예요?”술기운이 많이 오른 윤혜인의 말투는 화를 낸다기보다는 애교를 부리는 것에 가까웠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두 손을 남자의 허리에 두다 보니 더 애교스럽게 들렸다.그녀가 다시 물었다.“어떻게 병원에서 나왔어요? 의사가 나가도 된대요?”눈을 가늘게 뜬 이준혁이 답했다.“날 혼자 병원에 두고, 다른 사람이랑 밥 먹고 술을 마시니 잘 넘어갔어?”“다른 사람이 아니라 동료예요!”윤혜인이 반박했다.이준혁이 그녀의 앙증맞은 코끝을 꼬집으며 새침하게 말했다.“내가 안 왔으면, 아까 그 사람이랑 바로 갔겠어?”“설마요...”윤혜인이 살짝 트림했다. 그녀의 숨 속에서 과일의 달콤함과 있는 듯 없는듯한 우유향도 같이 풍겨왔다. 달큼한 향이었다.윤혜인은 놀라서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뼛속까지 교양이 있는 그녀다 보니 다른 사람 앞에서 트림하는 것은 교양 없고 부끄럽게 느껴졌다.“죄, 죄송합니다.”손가락 사이로 부끄러운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준혁은 매우 즐거운 듯 몸까지 들썩이며 웃었다.‘어떻게 사람이 술을 조금 마셨다고 이렇게까지 귀여워지지? 너무 몽글하고 달큼하잖아.’이준혁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웃음기가 묻은 말투로 답했다.“괜찮아, 너무 좋아. 하지만 앞으로 내가 없는 곳에서는 술 마시지 마.”이준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유머러스하게 그녀에게 경고했다.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싫었다.윤혜인은 입을 삐쭉이며 불만스럽게 답했다.“너무 제멋대로잖아요. 어떻게 제가 아는 사람이랑 이렇게 똑같죠?”이준혁은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말랑한 입술을 쓰다듬으며 허스키하게 물었다.“네가 아는 누구?”“닮았어요. 근데, 그 사람도 나쁜 사람이에요.”윤혜인이 불평을 내뱉었다.술기운 때문에 윤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