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안 됩니다!”이준혁이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하자 곽경천은 비웃으며 말했다.“그건 이 대표님께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혼인신고서가 있어도 5년간 별거했으면 충분하지 않나요?!”그러나 이준혁은 단호했다.“전 혜인이랑 이혼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그쪽이 대신 결정할 수 없어요.”이준혁이 아직도 윤혜인에게 미련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곽경천은 다소 놀랐다. 그는 방안을 둘러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혜인이가 깨어나면 모든 걸 알려줄 거예요. 혜인이도 알 권리가 있으니까요. 이준혁 씨한테 받은 상처를 떠올리고 혜인이가 내리는 선택을 그쪽이 반드시 감당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혜인이한테 강요하지 말고요.”곽경천은 숨김없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윤혜인에게 말할 생각이었다.“혜인이가 기억을 잃은 게 오히려 당신한테는 좋은 일 아닌가요? 기억을 되찾으면 이준혁 씨에게 혜인이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충분히 똑똑하신 분이니 말 안해도 아시겠죠?”이준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곽경천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또 한 가지 말할 게 있습니다.”곽경천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윤혜인에게 아이가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혜인이는 자신의 심리 치료사였던 오재윤과 함께 지내며 감정을 쌓아 사랑의 결실을 맺었어요. 나중에 결혼식 직전에 오재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윤혜인은 그의 아이를 낳았습니다.”곽경천은 그에게 윤혜인이 그를 떠난 후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이준혁이 없는 세상에서도 행복으로 충만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이다.순간,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이준혁은 입술마저 떨렸다.“그걸 왜 저한테 말하시는 건데요?”“제가 말 안 한다 해서, 대표님이 알아내지 못할 것 같으세요?”곽경천은 알고 있었다. 아름이의 신분을 비밀스럽게 처리했지만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었다.때문에 이준혁이 의심해서 조사하는 것보다 자신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그는 윤혜인과 아름이를 잃을 수 없고 싶지 않았으니 말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이 있었다.윤혜인은 진지하게 말했다.“언제 시간 돼요?”그러자 이준혁이 차가운 눈빛을 한 채 조금 쉰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너와 함께라면 언제든지 시간 낼 수 있어.”수천억 원의 사업이라도 그는 지금 당장 내려놓을 수 있었다.윤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를 지었다.“그럼 가요.”순간 어리둥절해졌지만 이준혁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윤혜인의 현재 천진난만한 성격은 아마도 곽씨 가문에서 귀하게 자라며 형성된 것일 것이다.보아하니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큰 고통을 겪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당장이라도 윤혜인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이준혁은 애써 참으며 부드럽게 물었다.“어디 가려고?”그러자 윤혜인은 그가 모른 척한다고 생각했는지 직설적으로 말했다.“어디겠어요, 이혼하러 가는 거지.”“뭐?”예상치 못한 대답에 이준혁의 표정이 얼어붙었다.“이혼이요.”윤혜인은 다시 한번 반복해 말했다.“우리의 과거는 오빠가 이미 말해줬어요. 당연히 그쪽도 제 상황을 알고 있겠네요. 지금 당신은 제게 낯선 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부부로 지낼 수 없어요.”이준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왜 불가능하다는 거야? 넌 원래 내 아내야.”“하지만 지금의 전 당신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요. 그냥 낯설게 느껴질 뿐이고, 더 이상 부부로 지내고 싶지 않습니다.”윤혜인의 단호한 말에 이준혁은 마음이 불안해졌다.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당장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우리 일단 지내보자. 내가 반드시 잘해줄게, 응?”“안 돼요.”윤혜인은 고개를 저으며 협상 여지가 없음을 밝혔다.“부부는 감정이 바탕이 되어야 해요. 근데 지금의 전 당신에 대한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아마 예전에도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완전히 잊어버릴 리 없잖아요.”순간, 윤혜인의 머릿속에는 오재윤이 떠올랐다. 그는 항상 그녀에게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되어있었다.하지만 이준혁이 그녀 앞에 서
이준혁은 윤혜인이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짧은 거리였지만 마치 아주 먼 거리처럼 느껴졌다.그는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때 친밀한 사이였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 낯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윤혜인의 얼굴이 점점 멀어져 사라지는 것을 보며 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마음을 다잡았다.‘반드시 혜인이 너를 되찾고 말겠어.’...다음 날.작업실에서 돌아온 윤혜인은 아름이가 한 중년 여성과 즐겁게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아름이는 달콤한 목소리로 계속 “할머니.”라고 부르며 여성의 기분을 한껏 높여주고 있었다.그녀가 아름이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곧 윤혜인을 본 아름이가 인형을 안고 그녀에게 달려갔다.“엄마, 할머니께서 새 공주 인형 세트를 주셨어요. 12개나 돼요.”이 공주 세트는 아직 6개월 후에나 출시될 예정이었기에 그녀가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분명했다.윤혜인은 아름이를 안고 다가가며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그러자 연규성의 모친 민옥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얇은 봉투를 건네며 부드럽게 말했다.“아이고, 혜인이 많이 예뻐졌구나? 너무 예뻐져서 못 알아볼 뻔했어.”민옥정은 윤혜인이 마음에 들었고 아름이를 보니 그녀의 유전자가 참 좋다는 생각까지 들었다.하지만 당황한 윤혜인은 아름이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봉투를 되돌려주었다.“사모님,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그러자 민옥정은 한사코 거절하며 윤혜인의 손을 밀어냈다.“이건 아름이에게 주는 선물이야. 너한테 대신 거절할 권리는 없단다.”“아름이도 필요 없어요. 사모님, 굳이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아름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귀엽게 말했다.“할머니가 주신 공주는 너무 좋아요. 하지만 돈은 필요 없어요. 아름이한테는 용돈이 있어요.”그때, 뒤에서 느긋하면서도 귀찮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주면 받으라고. 뭐가 그렇게 까다로워.”고개를 돌아본 윤혜인의 앞에는 연규성이 서 있었다.그는 정장 차림이었지만 여전히 한가롭게 소파에 앉아 그녀를 향
이번에는 정말 드물게, 민옥정이 물었을 때 그는 “뭐, 그러든지.”라고 대답했다. 그 뜻은 사실 윤혜인과 만나보고 싶다는 뜻 아닌가?“내가 뭐가 모자라서 그래? 넌...”말을 하다 말고 연규성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윤혜인은 그가 또 자신을 ‘과부'라고 부르려 했다는 것을 알아챘다.‘과부’라고 부르는 것도 모자라 아름이를 ‘짐'이라고 말한 건 정말 지나쳤다.지금 그녀는 혼자서도 아름이를 잘 키울 수 있었다. 만약 아름이가 다른 가정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새아빠를 찾아주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오랜 친분이 있는 곽씨 가문과 연씨 가문 사이의 감정이 상할까 봐, 그날 연규성의 말을 다 꺼내지도 않고 그저 ‘서로 맞지 않다'며 넘겨버렸다.하지만 이제는 연규성을 위해 덮어줄 필요도 없었다.‘아무래도 가정교육이 부족한 모양이군.’곧 윤혜인은 레스토랑에서 녹음한 내용을 민옥정에게 들려주었다.채 다 듣기도 전에 민옥정은 얼굴이 굳어졌고 윤혜인과 아름이에게 사과한 뒤 연규성의 귀를 잡고 별장을 나섰다.연규성은 방탕했지만, 어른들에게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귀를 잡힌 채로 차에 오를 때까지 참았다.오늘, 연규성의 자존심은 완전히 바닥에 떨어졌다.그는 속으로 이를 갈며 말했다.“곽혜인, 두고 봐!”오후.윤혜인은 곽경천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잠시 시간 있어? 공항에 가서 지윤이 좀 데려와 줘.”곽경천은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지윤이가 여긴 왜 왔어?”“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 당연히 홍 아주머니 보러 오는 거지.”구지윤은 홍 아주머니의 딸로, 윤혜인과 나이가 비슷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홍 아주머니는 윤혜인과 구지윤을 데리고 함께 놀았고, 나중에는 10여 년간 연락이 끊겼다가 5년 전 다시 만나 둘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마치 운명 같은 인연이었다.“아참, 그리고 지윤이를 작업실의 디자인 총괄로 두기로 했어. 아마 오랫동안 여기서 지낼 거야. 아름이도 지윤이 좋아하고, 나도 기뻐.”윤혜
구지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조수석에 앉았다. 늘 그렇듯 반항하지 않았다.차에 타고나서도 두 사람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구지윤은 계속해서 엔진 후드를 응시하며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몇 년간의 지옥 같은 삶이 그녀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을 보지 말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옆에 있는 남자는 마치 하늘에 있는 신 같은 존재였고 자신은 땅에 떨어진 먼지 같은 존재였다.이제 이 먼지 같은 존재는 더러워져 더욱 혐오스러울 뿐이었다.구지윤은 속이 점점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곽경천을 볼 때마다 그 열등감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았다.신호등에서 멈췄을 때, 곽경천은 차량용 냉온장고에서 따뜻한 음료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추워서 그래?”그는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구지윤은 고분고분하게 받으며 간단하게 말했다.“감사합니다, 곽 교수님.”그녀의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곽경천의 신경을 건드렸다.“교수님이라고 부르지 마. 지금 나는 그저 강사일 뿐이고,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집중하고 있어.”“네, 대표님.”이 호칭은 더욱 그를 짜증 나게 했다.곽경천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구지윤, 나랑 한번 해보겠다는 거야?”그러자 구지윤은 눈을 내리깔고 순종적인 태도를 보였다.“감히 그럴 리가요, 대표님.”곽경천은 그녀가 자신에게 맞서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마치 과거에 그가 육선재와 만나보라고 했을 때처럼, 그녀는 진짜로 육선재와 만났다.육선재가 청혼할 때, 구지윤은 함정을 파서 곽경천을 현장에 끌어들여 정말 결혼해도 되느냐고 물었었다. 그리고 그는 “나는 상관없어.”라고 대답했다.그 말을 듣자마자 구지윤은 재빨리 반지를 꼈고 며칠 후 육선재와 결혼했다.순종적인 성격으로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게 그녀의 방식이었다.뭐라 더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들을 것 같지 않은 구지윤의 태도에 그는 단념했다.“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이 말을 끝으로 곽경천은 차를 출발시켰다. 이번에는 전보다 속도가 더 빨
“흑흑, 왜 이렇게 다음 주가 멀게 느껴질까. 우리 셋이 같이 있는 게 너무 그리워.”구지윤은 윤혜인을 부축해 씻고 재우려 했다. 아름이도 구지윤을 보자 같이 자겠다고 떼를 썼다.결국 그날 밤, 세 사람은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 윤혜인은 구지윤과 밤새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자신에게 갑자기 남편이 생긴 이야기부터, 이준혁이 방에 가둬놓고 한 일들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특히 몸에 난 자국들은 구지윤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아름이에게는 벌레에 물린 자국이라고 둘러댔지만, 구지윤은 바보가 아니었다.윤혜인은 괴로워하며 말했다.“너 모를 거야, 정말 너무 무서웠어. 그 사람이 손으로... 너무 아팠어...”구지윤은 조용히 말했다.“너무 긴장해서 그랬을 거야, 그래서 아팠던 거지.”“지윤아, 너도 육씨 자식이랑... 그 자식도 침대에서 너에게 못되게 굴었어?”그러자 구지윤은 고개를 저었다.“우리는 그런 적 없어.”외모는 번듯했지만, 알고 보니 육선재는 완전 변태였다.처음에는 술을 마신 후 때리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점심시간에도 시간을 내서 집에 와서 때렸다.육선재와 결혼한 2년 동안, 구지윤은 매일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그는 그녀에게 만약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구지윤의 엄마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오랜 학대로 인해 구지윤은 반항할 용기를 잃었고 맞는 것을 일상처럼 여겼다.나중에 윤혜인이 우연히 알아차리고 곽경천이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 어두운 결혼 생활에서 얼마나 더 허우적거리고 있었을지 모른다.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육선재는 그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구지윤, 나 너 사랑해. 진짜로 사랑해.”하지만 그 말을 듣고 구지윤은 놀란 나머지 기절하고 말았었다.윤혜인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지윤아, 너 혹시 아직 한번도...”구지윤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한 번의 경험이 있었지만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둘 다 처음이어서 서툴렀고 금방 끝났다.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경험이자 신과 같은 위치
이준혁은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특별히 요구하는 건 없어. 단지 한 달 동안은 나를 피하지 말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있어 줘.”그는 단지 둘이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다.윤혜인은 화가 나서 말했다.“절대 안 돼!”그녀는 한 달은커녕 하루도 이 남자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그러자 이준혁은 얇은 입술을 씩 올리며 말했다.“소송을 통해 이혼하려면 우리 법무팀의 실력으로는 2년, 5년이 걸려도 상관없어. 그 길을 가고 싶다면 문은 저기 있으니 마음대로 해.”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서류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다.윤혜인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화가 났다.“대표님, 그렇게 사람이 필요해요? 제가 돈 내줄 테니 친구 할 사람 고용하세요. 1억이든 10억이든 제가 다 낼게요!”이준혁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돼.”그의 눈빛은 그날 침대에서와 같았다.윤혜인은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그를 욕했다.“정말 뻔뻔하고 무례하네요. 변태...”곧이어 이준혁이 그녀를 차갑게 막았다.“잊었나 본데, 이혼해달라고 빌고 있는 사람은 너야.”그 말에 윤혜인은 입을 다물었다.‘이 빌어먹을! 한 달? 그래, 내가 반드시 후회하게 해준다. 한 달이 뭐야, 열흘 안에도 먼저 이혼하자고 나한테 빌게 할 자신이 있다고.’마침내 윤혜인은 조건을 받아들였다.“그럼 이렇게 해요. 내가 바쁠 때는 나를 찾지 말아요.”“좋아.”곧이어 윤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그럼 먼저 가볼게요.”이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오늘은 가지 마. 사무실에서 나랑 있어 줘.”그는 ‘있어 줘'라는 말을 강하게 강조했고 윤혜인은 다시 화가 치밀었다.“오늘은 시간이 없어요.”“오늘 주말이잖아. 뭐가 그렇게 바빠?”윤혜인은 다급히 변명거리를 찾았다.“주말이라고 안 바쁜 줄 알아요? 난...”“이렇게 하면 우리 협상이 의미가 없어지잖아. 그만두는 게 좋겠어.”윤혜인은 당황했다.‘그럴 수는 없지!’그녀는 곧바로 태도
주훈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대표님!”이준혁은 발걸음을 멈췄고 주훈이 그를 급히 막아섰다.“대표님, 잠시만 기다리시죠?”“비켜.”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주훈은 할 수 없이 물러섰다.곧이어 성큼성큼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간 이준혁의 눈동자가 금방 초록색으로 물들었다.그때, 윤혜인이 갑자기 초록색 모자를 쓰고 초록색 소파 뒤에서 튀어나오며 말했다.“서프라이즈!”주훈은 속으로 난감해했다.‘이게 무슨 서프라이즈야, 그냥 놀라 죽이려는 거잖아!’이준혁은 어두운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그가 화를 안 내는 게 믿기지 않아 윤혜인은 더욱 자극했다.“제가 꾸민 거 마음에 들어요?”그러자 이준혁은 이를 악물고 “마음에 드네!”라 말했다.하지만 그런 대답과 달리 주위의 분위기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역시 좋아할 줄 알았어요.”윤혜인은 다시 파란색 털모자를 꺼내며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이 모자도 준비했어요. 써봐요.”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이걸로도 화 안 나나?’이준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모자를 받아들고 망설임 없이 썼다.이 상황은 그녀가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지금쯤이면 화를 내며 이혼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윤혜인은 결국 실망하며 초록색 소파에 앉아 기분이 상한 얼굴로 턱을 괴었다.사무실 밖에서는 가구 회사가 대금 결제를 기다리고 있었다.주훈은 혹시나 가구를 다시 반환해야 할지도 몰라 결제를 미뤘다.하지만 청구서를 올리자 이준혁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서명했다.주훈은 혼란스러웠다.‘대표님이 왜 이렇게 행복해 보이시지? 정말 초록색을 좋아하시는 건가?’그는 작은 노트에 빨리 메모를 했다.오후 내내 이준혁은 사무실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회의를 했다.너무 지루한 나머지 윤혜인은 곽경천에게 전화를 걸어 이준혁이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곽경천은 처음에는 윤혜인이 이준혁과 내기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