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두 노인과 갈등을 일으키지 말라는 충고였다. 고개를 끄덕인 성혜인은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는 집사를 발견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설우현이 집사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걸까?손을 들어 미간을 문지르는 설우현의 모습에서 걱정 어린 마음이 엿보였다.“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섭지 않아.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본 적이 없지만 그분들은 아랫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분들이 아니야. 그분들은 그저 불교를 너무 믿어서 그래. 그렇지 않으면 예전에 설씨 가문을 떠나 바로 작은 섬으로 가지 않았을 거야.”설우현은 무언가가 떠오른 듯 문 앞으로 걸어가 한마디를 건넸다.“타협점이 있다면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야.”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타협점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설우현은 두 노인이 있는 서재로 걸어갔다. 설경필은 책상에 앉아 붓으로 먹물을 찍어 종이에 글을 쓰고 있었다. 반면에 그의 부인 안문희는 옆에 서서 먹을 갈며 가끔 몇 초간 머뭇거렸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결국에는 한숨만 내쉬었다. 설경핀은 몇 글자를 쓰고 나서 입을 열었다.“아들이 걱정돼서 그래?”설의종은 그들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후계자였는데,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으니 아무리 강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태연할 수 없었다.“아들이 아니면 누구를 걱정하겠어요. 의종은 가장 믿음직스러운 자식인데.”설경필은 손에 든 붓을 내려놓고 몇 초간 생각에 잠겼다.“그 아이는 반승제라고 했던가. 정보를 보니 괜찮아 보이던데 문제는 지금 수배 중이니, 수배가 풀리기 전까지는 도망자일 뿐이란 말이지. 게다가 당신도 알고...”두 사람 모두 말을 하지 않았다. 안문희는 손에 든 염주를 세면서 중얼중얼 염불을 외웠다.서재 문을 두드린 설우현은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할아버지, 할머니.”설경필은 고개도 들지 않았고 안문희는 여전히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서재에는 먹물 냄새가 진동했다.“성혜인
설씨 일가 한 회사의 지분을 성혜인에게 줬지만 이런 거대한 회사가 한 개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설씨 일가 사람들은 각자 여러 개의 회사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중 어느 한 회사라도 상장 대기업이었다.그 때문에 응접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두 노인을 노하게 했다가 손에 있는 회사를 몰수당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오늘 밤 성혜인을 본 모든 사람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문제를 일으킬 엄두는 내지 못했다. 설우현이 내려오는 것을 보자 몇몇이 다가가 그를 부추기기 시작했다.“우현아, 정말 손에 있는 모든 주식을 내놓았어? 걔는 여자야. 여자는 감성적인 동물이라 언젠가는 그 반씨 성을 가진 자식에게 모든 지분을 빼앗길 거야. 그때가 되면 설씨 가문은 성을 바꿔야 할지도 몰라.”“그래. 네 형도 그 여자 때문에 설씨 가문에서 쫓겨났잖아. 기웅이는 최근 몇 년간 회사를 잘 경영해 왔어. 모두한테도 잘했고. 내가 볼 때 그 여자가 문제야.”“네 조부모님 말씀이 맞아. 그건 그 여자의 운명이야. 설씨 가문 큰아가씨로 살 명이 아니었던 거지. 그냥 내보내고 지분을 돌려받아야 해.”설우현은 웃어른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어르신들, 괜한 걱정하지 마세요. 혜인이는 회사를 경영할 능력이 있어요. 형보다 더 잘할 거예요.”게다가 이 사람들은 아직 지하 격투장이 반승제의 구역이라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한때 모든 가문이 탐내던 곳으로 하루에 수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완곡하게 거절당한 그들은 무안해하며 위층을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설우현은 응접실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이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마침 설태진의 딸 설현아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설의종의 가족과 설태진의 가족 관계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설우현과 설현아가 사적으로 아주 친하게 지낸다는 사실을 몰랐다.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은 남자에 미쳐있고 한 사람은
설인아는 이 두 남자의 행동이 설기웅의 지시를 받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오로지 설기웅을 만나 빨리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제발, 제발 용서해 주세요! 오빠를 만나고 싶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성혜인을 괴롭힌 것도, 성혜인에게 독을 먹인 것도, 죽일 뻔한 것도 다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차라리 죽여줘요.”하지만 두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들은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설인아는 크나큰 절망감에 빠졌다.눈물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였고 이제 더는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녀가 금방 이곳에 던져졌을 때 설기웅이 한 번 보러온 적이 있었는데 그녀에게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녀는 증오에 미쳐 있었다.“후회? 내가 왜 후회해. 설의종은 평생 그렇게 누워있어야 할 거야. 오빠, 나를 잘 살게 해주지 않으면 해독제를 넘겨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오빠 동생 성혜인도 오빠를 만나고 싶지 않겠지. 쌤통이야. 그러게, 누가 날 그렇게 믿으래?”매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설기웅의 심장을 미친 듯이 찔러댔다. 그때만 해도 설인아는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여전히 설기웅이 그녀에게 마음이 약해질 거라고만 믿었다. 설기웅의 표정은 마치 그녀의 말에 아무런 동요도 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너무나 차분했다. 그는 그녀를 놓아주며 이렇게 말했다.“그래, 내가 눈이 멀었지. 다신 보지 말자.”이 말에 설인아는 매우 당황했지만 여전히 설기웅이 자신을 무르게 대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넘쳤다. 설기웅이 그녀를 괴롭힌다니 참으로 우스운 생각이었다. 그때 그녀를 강물에 빠뜨리려고 할 때도 계속 스피커폰으로 경호원과 통화하지 않았던가? 그저 그녀의 반응을 떠보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사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성혜인이 설씨 가문으로 돌아온다고 한들 어차피 설기웅은 영원히 성혜인을 친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을 건데. 오로지 설인아만 신경 쓰고, 언제나 설인아만 예뻐할 거니까.이
성혜인과 반승제는 설씨 가문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도우미가 들어와 문을 두드렸다.“아가씨, 큰 사모님께서 서재로 오라고 하십니다.”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반승제는 옷을 갈아입고 따라가려고 했지만 도우미에게 제지당했다.“큰 사모님께서 아가씨만 부르셨습니다.”반승제는 발걸음을 멈추고 성혜인을 바라보았다. 성혜인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괜찮아요. 금방 다녀올게요.”“서재 밖에서 기다릴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컵을 바닥에 던져. 그럼 내가 데리러 들어갈게.”“네.”그는 도우미를 바라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서재 밖에 서 있는 것을 금지하는 규칙은 없겠죠?”도우미는 잠시 머뭇거렸다. 실제로 그런 규칙은 없었다. 성혜인은 서재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안문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성혜인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안문희만 있었고 설경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정중하게 불렀다.“할머니.”안문희의 시선이 성혜인에게 머물렀다. 특히 그녀의 눈을 보았을 때 표정이 온화해졌다.“넌 하늘이 그 아이 눈과 아주 닮았구나.”설씨 가족의 입에서 나하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성혜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안문희는 말을 이어갔다.“그때 점쟁이는 나하늘 그 아이가 많은 화를 불러올 거라고 말했어. 의종이가 그 아이를 멀리해야만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의종이가 나하늘과 결혼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어.”성혜인은 안문희가 주동적으로 이 얘기를 꺼내는 의도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잠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안문희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곧 결과가 나올 거야. 오늘 아침 설씨 가문 사람들이 다 올 거야. 내가 왜 너만 불렀는지 궁금하지?”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혜인아, 오랫동안 밖에서 고생이 많았어.”성혜인은 그다지 감동하지 않았다. 안문희는 분명 자상한 얼굴이었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자상함에 절망적인
성혜인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설씨 가문 사람들은 의논이 분분했다. 설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 사주팔자를 보고 적합해야만 결혼했다.당시 설의종과 나하늘이 헤어진 것은 사주팔자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안문희는 두 손을 겹쳐 가슴에 얹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그래서 말인데, 혜인이는 남자 친구와 함께 할 수 없으니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좋겠어.”성혜인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단호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할머니, 전 불교를 믿지 않아요.”이 한마디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설우현은 성혜인에게 눈짓을 하고 싶었지만 생각 끝에 포기했다. 그는 성혜인의 성격과 반승제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두 사람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함께한 사이였다. 몇 마디 말로 쉽게 헤어질 수 있는 사이가 절대 아니었다. 생각 끝에 설우현은 침묵을 택했다. 설경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설씨 가문 사람들은 믿기 싫어도 믿어야 해.”반승제는 이내 성혜인의 앞을 가로막으며 미소를 지었다.“혜인이가 설씨 가문 사람이 될 필요는 없잖아요.”“그런가? 하지만 이 아이의 몸에는 설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설씨 가문의 피를 깨끗이 비워낸다면 이 문제를 추궁하지 않겠네.”이 말은 성혜인의 목숨을 내놓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반승제의 얼굴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을 완전히 뒤에 가렸다.“어르신은 혜인이의 목숨을 원한다는 말씀이세요?”설경필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투를 누그러트렸다.“혜인이의 목숨을 원하는 사람은 자네야. 자네와 헤어지면 전체 설씨 가문이 혜인이 것이 될걸세. 물론 내가 가장 아끼는 손녀가 될 테고. 자네는 지금 곤경에 처해있지 않던가? 설씨 가문의 일까지 나서서 더럽히지 말게.”성혜인은 반승제의 손을 잡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옆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그럴 수 없어요. 이미 승제 씨의 아이를 임신했어요. 전 평생 이 사람과 함께할 거예요.”응접실 안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설씨 가문 사람들은
성혜인은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 자신조차 믿을 수 없었다.“농담이 아니에요. 아침에 할머니가 저를 서재로 불러 상의할 것이 있다고 했는데 몇 마디도 못 하고 찻잔이 떨어지려는 걸 제가 도와주며 손을 만졌어요. 그분의 주름진 손등은 사람의 피부와 매우 흡사한 장갑이에요. 하지만 얼굴은 진짜였어요. 아마 할머니와 같은 얼굴을 만들려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거예요. 그러나 신체의 다른 부분은 따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손은 주름진 피부와 매우 유사한 장갑으로 대체 했을 거예요. 승제 씨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이 두 사람은 아마 나이가 50쯤 됐을 거예요. 50살과 70, 80살의 피부 상태는 완전히 달라요.”여기까지 말한 성혜인은 심장이 몹시 빨리 뛰었다. 당시 서재에 있을 때 그녀는 겨우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그들은 아마도 두 노인을 대체하기 위해 아주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이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된 것은 그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에요.”말을 마친 후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설우현에게 물었다.“오빠, 나미선이 우리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죠?”설우현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그는 완전히 포기한 듯 쓴미소를 지었다.“몰라.”성혜인은 반승제가 아직 설우현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나하늘과 나미선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며 자기가 발견한 사실들도 같이 알려주었다.“오빠의 기억 속에 있는 조부모님에 대해 말해 주실래요?”“매우 엄격한 분들이셨어. 설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그분들의 말을 들어야 했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든 절대 용납하지 않고 벌을 내리셨어.”“그렇다면 그렇게 세심하고 엄격한 두 분이 설씨 가문에 시집온 사람이 나하늘이라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요? 아침에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전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어요. 그들은 알고 있었지만 묵인하고 자신의 규칙을 어겼어요. 하지만 저와 마주했을 때 그들은 제 몸의 피를 바꾸라 하며 아이까지 지우라고 했죠. 오
설기웅은 그동안 플로리아 왕실과 아주 가깝게 지냈다. 특히 왕자와는 사적으로도 친분이 두터웠다.한편 설우현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제자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이런 큰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 누구라도 당황할 것이다. 이제 안정을 찾은 성혜인은 조용히 커피잔을 들고 숟가락으로 저었다.“우현 씨, 기웅 씨를 믿어도 될까요?”설우현은 멈춰서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형이 비록 설인아의 일에서 큰 잘못을 했지만 이런 일은 절대 허투루 하는 법이 없어요. 아마 이틀 안에 소식이 있을 거예요.”안색이 어두워진 설우현은 짜증 나서 머리를 쥐어뜯었다.“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있을 수 있죠.”이 두 노인이 가짜라면 도대체 누가 그들을 조종하고 있으며,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반승제는 성혜인의 옆에 앉아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기대고 말을 이어갔다.“만약 연구 기지의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에요. 그들은 야망이 크거든요. 아마 손꼽히는 재벌들을 통제하려고 했을 거예요. 설씨 일가와 같은 엄격한 가풍을 가진 가문이 가장 통제하기 쉬웠을 거예요. 최고의 권위를 가진 두 사람만 교체하면 되니까요.”설우현은 믿을 수 없어 온몸이 격직된 채 눈이 휘둥그레졌다.“당신 말은 이 연구 기지가 설씨 가문뿐만 아니라 모든 재벌 가문을 노린다는 건가요?”“어디까지나 제 추측일 뿐이에요. 그들은 모든 사람을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려고 하죠. 게다가 그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의료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아주 은밀하고 강대한 조직이거든요. 한 사람을 위장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일 거예요. 만약 우리 형이 그 인체 실험에 대해 더 자세히 기억할 수만 있다면 좋았을 텐데.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소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없었겠죠.”지금 그들은 왕실이 설기웅과 협력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반승제는 성혜인의 배를 어루만지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기웅 씨, 쪽에서 소식이 오면 바로 그곳으로 가야 해요
성혜인이 들어왔을 때 매달려 있던 두 사람은 이미 입이 터져라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지만 반승제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빛이 흔들렸다.이상한 건 이런 처참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 순간에도, 신분이 드러난 상황에도 그들의 분위기는 여전히 설경필과 안문희와 매우 흡사했다.마치 두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 이미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성혜인은 단 한 번만 보고 그들이 깊은 최면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깊은 최면만으로는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었다.이때 ‘안문희’가 입을 열었다.“우현아, 기웅아, 다 할머니가 너희를 한 번도 안아주지 않은 탓이야. 우리가 그때 나하늘 그 계집을 내버려뒀기 때문이야. 전부 우리 잘못이야. 이게 바로 설씨 가문의 재앙이야. 역시 대사님의 점괘가 틀리지 않았어.”이 시점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페르소나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반승제를 보았을 때만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 대사님이라는 사람은 잡았어요?”그녀는 설기웅에게 물었지만 그는 등을 뻣뻣이 굳힌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용호가 대답했다.“이미 도망쳤어요.”“그럼 이 두 사람을 검사해 봤어요? 최면당한 게 맞아요?”속을 헤아릴 수 없는 여우 같은 눈매를 가진 최용호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최면으로는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어요.”방 안이 조용해지자 몇 초 후 반승제는 장미에게 전화를 걸었다.“장미 누나, 주소 보내줄 테니까 배현우를 끌고 잠깐 여기로 와줘.”이 두 가짜는 왜 반승제의 얼굴을 보고 잠시 동요했을까?연구 기지에서 반승우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뭔가 떠올린 것일까?배현우는 헬기로 이송되었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두 가짜의 안색이 다시 바뀌었다.의미심장한 점은 배현우가 그들을 보자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는 것이다. 반응한 후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이 두 사람은 누구야?”‘설경필’은 자기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흔들며 눈을 크게 뜨고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