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럴까?”민지아는 고개를 계속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맞아. 오빠, 이 여자 속임수에 넘어가면 안 돼. 얼른 정신 차려! ”“연아를 위해 죽어도 괜찮은데 다른 말 더 필요하나?”민지훈은 고민할 거 없이 바로 말했다. 그의 말에 연아의 마음도 조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데 예전에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쉽게 풀릴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민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이 모습을 보게 된 연아는 예전에 자기가 유산된 날이 생각났다. 이 사람들이 자기 배를 힘차게 차고 쓰러지게 하고......연아는 민지아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민지아, 너 당할 일만 남았어.”이 말 한마디에 민지아는 아무 말 없이 연아의 살기 가득한 눈빛을 보게 되었다.연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뒤돌아 비행기를 탈 생각이었다. 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연아야!”캐리어를 끌고 뛰어오고 있는 하태윤이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고 연아한테 윙크를 날렸다. “늦은 거 아니지? 딱 6시네!”“그래, 시간 잘 맞췄어.” 연아는 그를 향해 웃었다.“조사장님 덕분에 임천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네, 아니면 우리 매니저 매화마을로 당장 올 수도 있어.” 그리고 해태윤은 환한 미소를 띠며 계속 말했다.“내가 너한테 주려고 매화마을 특산물 사 왔어.” 사실 이게 하태윤이 조금 늦은 이유다.하태윤은 매화 모양의 케이스를 연아한테 건넸다. “매화전이야, 오늘 사장님 다시 장사한다고 매화마을에 도움을 준 사람한테 무료로 주는거래, 그냥 받기에는 그래서 내가 샀어.”하태윤이 나타난 순간부터 민지훈은 불만이 가득했고 그 표정이 너무 무서워 스튜어디스도 다가오기 힘들었다. 잘생기긴 했지만, 포스가 장난 아녀서 쉽게 다가가기 힘들었다.민지훈은 하태윤 손에서 매화전을 뺐다. “마침 배고픈데 잘됐다.”“저기요, 연아 주려고 사준건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태윤은 불만이 가득한 말투였다.“
“당연하지.”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손 놔줘, 네가 그랬잖아, 그냥 같이 앉아주면 된다고.”그냥 앉는다면 손은 왜 잡냐고?“역시 똑똑해.” 민지훈은 웃으면서 연아한테 한방 당했다고 생각했다.그도 말한 대로 연아의 손을 놓았다. 하태윤은 연아랑 제일 가까운 자리에 앉고 말했다. “연아야, 뭐 필요하면 나한테 얘기해, 그리고 그 매화전 진짜 맛있어, 꼭 먹어봐.”연아가 고객 끄덕이자, 민지훈은 매화전을 뜯어 자기 입으로 넣었다. “넌 먹으면 안 돼.”“왜? 태윤이가 나 먹으라고 사준 건데?”“안에 망고 있어, 너 망고 알레르기 있잖아.”하태윤이 그의 말을 듣고 잠깐 멍했다가 바로 설명했다. “연아야, 미안해, 내가 몰라서...”“아니야, 나 망고 알레르기 없어.” 그리고 매화전을 입에 넣을려고 했다.하지만 민지훈이 연아의 손을 바로 잡고 말했다. “나한테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자기 몸 해치면 안돼.” 민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 손에 있는 매화전을 빼앗았다.연아는 입술을 깨물며 예전에 망고 알레르기 때문에 입원까지 한 게 생각났다.민지훈 생일날에 민지아는 망고 케이크를 사 왔고 그들이 보는 데서 그 케이를 먹었다. 자기가 망고 알레르기 있다는 걸 알면서도 먹었다. 그때는 이 세상에 모든 축복을 민지훈한테 주고 싶은데 그의 생일 케이크를 어떻게 마다하는가? 그리고 송진희랑 민지아 보는 데서 더 마다할 일이 없다.예전 일에 생각나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졌고 눈 앞을 가렸다. 어떨 때 생각하면 참 웃긴 건데, 많은 걸 심지어 목숨까지 걸고 그 사랑을 얻고 싶었는데 얻지도 못하고 지금 와서 이게 무슨 일인지. 지금은 아무것도 필요 없고 더 이상 그 사랑 받고 싶지도 않았다.어느새 기내 안내 방송이 들렸고 불빛도 점점 약해지며 비행기도 뜨기 시작했다.이때 민지훈은 또다시 연아의 손을 잡았다.“그냥 앉아 있으면 된다며? 왜 또 손을 잡아?”“너 무서워할까 봐.”어렸을 때 두 사람이 납치당한
하태윤은 자기처럼 칼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여자 문제로 이렇게 감당하지 못하다니,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다른 남자랑 만나면 불만이고, 다른 남자랑 얘기하면 화나고, 다른 남자랑 웃으면 속에 화산 폭팔하는 것처럼 미칠 것 같다.하지만 연아라면 그 모든 게 당연한거다.......연아는 기내 wifi를 연결하고 만두가 보낸 메일을 보게 되었다. 메일 하나하나 집중하여 자세히 검토하고 답장했다. 너무 집중한 관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도 모르겠다. 이때 민지훈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데고 곤히 자고 있었다.옆에 앉은 하태윤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연아한테 계속 무언의 동작을 하고 그녀가 쉽게 이해하게끔 자기 머리를 미는 동작까지 했다. 연아는 하태윤의 동작들이 너무 귀여웠다. 남우주연상까지 받은 배우가 자기 눈앞에서 연기를 하다니, 게다가 표정도 너무 진지하여 정말 혼자 보기에는 아까울 정도다.연아는 민지훈의 머리를 조심스레 밀고 싶었지만, 그가 어이없는 이유를 말했다.“나 아픈 사람이야, 편하게 쉬게 해줘.” 너무 정정당당한 이유라 연아도 할 말을 잃었다.“아니... 근데 꼭 나한테 기대면서 쉬어야해?”“메일 다시 한번 자세히 봐봐.” 그는 딴소리였다.“뭐?” 연아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재무팀에서 보낸 데이터 문제 있어.” 민지훈은 계속 말했다.“민사장님이 다른 사람 업무까지 보다니?” 연아는 살짝 놀라며 말했다.“넌 다른 사람 아니니까, 당당하게 본 건데.”“너......”“재무팀 문제가 많다. 회사 내부부터 정리해야 할 거 같은데.” 민지훈의 말은 현재 스타엔터의 핵심을 찔렀다.사실 연아도 민지훈의 능력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곁눈으로도 바로 문제점을 알 수 있다는 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민지훈은 데이터를 보고 문제 있는 부분을 집어냈다.“하지석은 왜 같이 안 왔어?” 민지훈이 물어보았다.“아저씨는 며칠 뒤 회사로 복귀할 예정이다. 매화마을에서 아직 볼 일이 있어서.” 연아는 재무팀에 보낸 데이
하지만 민지훈 일행은 VIP 통로로 공항을 나섰고 그 덕에 기자들도, 팬들도 전부 허탕을 치고 말았다.“대표님, 차 준비되었습니다.”오민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손 교수님도 별장에 도착하셨습니다.”“그래요.”고개를 끄덕인 민지훈은 조용히 차에 탔다.잠시 후, 조연아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주혁 오빠?’망설임 없이 수락 버튼을 누른 조연아가 입을 열었다.“여보세요? 오빠.”익숙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조연아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실렸다.“연아야, 오빠 공항에 도착했어. 지금 어디야?”주위를 둘러보던 조연아가 위치를 공유했다.잠시 후, 고주혁과 동시에 하태윤이 등장했다.“연아 씨, 내가 데려다줄게요.”주차장에 세워둔 벤을 가리키며 하태윤이 싱긋 웃어보였다.“아, 그게...”이때 길가에 차를 세운 고주혁 역시 조연아를 향해 다가왔다.“연아야, 타.”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하태윤이 조연아의 앞을 막아섰다.“연아 씨는 제가 댁까지 모시겠습니다.”한편, 한눈에 하태윤을 알아본 고주혁이 어딘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하태윤 씨? 맞죠? 요즘 활동도 열심히 하시던데 연아랑 같이 있는 모습 기자들한테 찍히기라도 하면 피곤해질 거예요. 팬들 생각도 해야죠?”벤에 앉아있던 매니저 역시 그의 말에 동의하 듯 고개를 끄덕였다.“글쎄요. 제가 무슨 나쁜 짓 한 것도 아니고, 전 기자들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비행기를 통째로 대여해 임천시로 데려다 준 것도 고맙고 아버지가 연아 씨를 집까지 에스코트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셔서요.”두 사람이 묘한 신경전을 벌이자 중간에 낀 조연아는 상당히 난처한 입장이 되어버렸다.‘아니, 왜 이런 걸로 싸우려고 해...’“두 사람 다 그만...”하태윤과 고주혁을 설득하려던 그때,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외제차 한 대가 세 사람 앞에 멈춰섰다.그리고 벌컥 열린 차문 사이로 나타난 민지훈이 조연아의 손목을 덥석 잡아 차로 끌어당겼다.“민지...”미처 반항할 새도
...그리고 혼자 남겨진 고주혁은 그를 둘러싼 기자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빼야했다.언론에도 자주 모습을 보이는 고주혁은 업계의 유명인사였다. 그런 그가 스타엔터 전속 법률 고문을 맡았다는 기사가 돌면서 선남선녀인 고주혁과 조연아의 사이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민지훈과 조연아를 잡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기자들은 이때다 싶어 질문을 쏟아냈다.“변호사님, 혹시 조연아 대표님 픽업 오신 겁니까?”“일정도 바쁘실 텐데 특별히 공항까지 마중오신 건 두 분의 사이가 그만큼 각별하다는 뜻일까요?”“그런데 조연아 대표님은 지금 어디 계시죠? 설마 민지훈 대표님과 함께 가신 겁니까?”쏟아지는 질문에 가뜩이나 심란한 고주혁이 대답했다.“여러분, 지금 제 차를 막고 계시는 건 알고 계십니까? 요즘 로펌에 새로운 인턴 몇 명이 들어왔는데 연습용 사건을 제공해 주실 분 계십니까?”친절한 목소리지만 어딘가 협박이 담긴 말투에 기자들은 어색한 얼굴로 서로 눈치만 보다 공항 경호원들이 다가오자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한편, 도시를 질주하는 민지훈의 차, 그 안은 무거운 정적만 감돌 뿐이었다.창밖을 바라보는 조연아는 차에 탄 뒤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어차피 말해 봤자 곱게 내려줄 사람이 아닌 걸 알고 있으니 괜한 힘을 빼고 싶지 않아서였다.그런데...‘뭐야? 여긴 별장으로 가는 길이잖아?’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그제야 조연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뭐야. 여긴 우리 집으로 가는 방향 아니잖아.”“누가 그래? 내 집이 곧 네 집이지.”능글맞은 표정을 보고 있자니 조연아는 속에 천불이 일었다.‘등이 아니라 머리를 다친 거 아니야? 안 어울리게 왜 이래.’“됐고. 오 비서님, 차 세워주세요.”“연아 씨, 두 남성분 사이에 끼인 연아 씨를 구해 준 게 저희 대표님 아닙니까? 그 성의를 봐서라도...”오민의 설명에 조연아가 민지훈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뭐야? 처음부터 당신 계획이었던 거지? 쿨한 척 돌아서서 날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조연아의 손목을 잡은 민지훈의 눈동자가 슬픔에 잠겼다.‘어떻게... 죽는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해.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백 번, 천 번을 물어도 내 답은 똑같아. 난 당신 사랑하지 않아. 앞으로 사랑할 일도 없고. 예전의 그 조연아는 이미 죽었...”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민지훈의 거친 키스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눈이 휘둥그레진 채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내려치던 조연아는 민지훈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윽...”고통에 민지훈이 살짝 입술을 뗀 사이 조연아는 바로 거칠게 그를 밀어냈다.“하.”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낸 민지훈이 애원어린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내가 네 몫까지 사랑할게. 그러니까 제발...”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차는 임천 별장으로 도착하고 오민은 눈치껏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한편,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니 1년 전, 눈오던 그날 밤의 광경이 떠올랐다.민지훈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은 조연아는 일단 차에서 내리기로 했다.볼에 찬 밤바람이 스치니 답답함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깊은 한숨을 내쉰 그녀가 만두에게 전화를 걸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더니 아예 꺼버리기까지 했다.뭐, 이런 짓을 벌일 사람은 민지훈뿐이었다.“그냥 여기서 지내.”‘뭐지? 1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차갑던 사람이 도대체 왜?’하지만 민지훈의 심경의 변화가 어떠하든 지금은 전부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그녀가 피식 웃었다.“여기서 지내면 뭐? 그럼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아니야. 그래. 인정해. 당신은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다 바쳐 사랑했던 사람이야. 하지만 그 감정들 전부 이젠 과거형일 뿐이야. 우리가 다시 잘될 가능성은 전혀 없어. 그리고 나 이제 결혼할 거야. 그러니까 더 이상 귀찮게 들러붙지 마.”“결혼?”앞으로 성큼 다가선 민지훈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누구 마음대로. 누구랑 결혼을 해
“오 비서님.”애써 슬픔을 참아내던 민지훈이 어딘가 잠긴 목소리로 오민을 불렀다.“네, 대표님.”근처에 서 있던 오민이 부랴부랴 앞으로 다가갔다.“연아 집으로 데려다줘요.”“네?”잠깐 멈칫하던 오민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오민이 조연아를 위해 차문을 열어주자 조연아가 나지막히 말했다.“고마워.”민지훈의 눈빛이 너무나 슬퍼서일까?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마음 약해지지 마.’주먹을 꽉 쥔 조연아가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지척에 세워둔 차로 향하는 길이 왠지 천리길처럼 느껴졌다.‘민지훈, 당신을 사랑했고 증오했어. 그런데... 그렇게 미운데도 당신을 잊는 건 안 되더라.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 너무 지치고 힘들었어. 남은 인생 맘 편히 살려면 당신한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할 것 같아.”말없이 차에 타는 조연아를 바라보는 민지훈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졌다....차창 밖을 스쳐지나는 조용한 밤거리를 바라보며 조연아는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내일부터... 내일부터 진짜 다시 시작하는 거야.’...“연아 씨.”백미러를 통해 조연아를 바라보던 오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네, 오 비서님.”“이런 말씀 무례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왜 대표님께 기회를 한 번 더 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연아 씨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떤 지난 1년 동안 대표님은 말 그대로 시체처럼 살아오셨습니다. 매일 아침 눈만 뜨면 연아 씨의 납골당으로 향하셨죠. 말없는 유골함만 바라보며 연아 씨가 들을 수 없는 말을 전하고 또 전하셨습니다.”하지만 오민의 진심어린 목소리 역시 이미 얼어붙은 조연아의 마음을 녹이기엔 역부족이었다.“그래요?”싱긋 웃은 조연아가 자신의 표정을 숨기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30초 정도 흘렀을까? 조연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쭉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즤 않겠네요.”“아...”생각보다 단호한 그녀의 태도에 오민은 한숨을 푹 내쉬었
쿠르릉!또다시 울리는 번게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린 조연아는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어차피 다 지난 일이야. 더 이상 떠올리지 말자. 지난 일이야. 전부 다 지난 일이야...’...“대표님, 손 교수님을 부르는 게 어떨까요?”조연아가 화재 사고를 당한 뒤로 민지훈은 별장 직원들을 모두 교체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곁에 두기로 한 것이 어렸을 때부터 그를 봐왔던 박 집사, 하지만 그의 말에도 민지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 비서, 대표님 설득 좀 해보게.”뒤늦게 사춘기라도 온 건지 반항을 하는 민지훈의 모습에 박 집사는 속이 타들어갔다.하지만 오민이라고 뭐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집사님, 대표님 성격 잘 아시잖아요. 저도... 딱히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어느새 어스푸름하게 밝는 하늘을 바라보던 오민이 문득 뭔가 떠올린 듯 중얼거렸다.“예전에 비오는 날이면 연아 씨가 항상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시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우셨던 것 같아요...”오민의 말을 들은 민지훈이 고개를 홱 돌렸다.“지금... 뭐라고 했어요?”“네?”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을 어떻게 들은 건지...오민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언젠가 제가 대표님 심부름으로 저택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봤습니다.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시는 뒷모습이 조금 떨리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울고 계셨던 것 같네요.”“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으니 속상할 수밖에요.”박 집사가 민지훈을 힐끗 돌아보았다.“그랬구나...”이 집에서 겪었던 외로움과 슬픔을 남편이었던 그보다 이 저택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니.‘민지훈, 네가 그러고도 남편이야?’“젠장.”제 화를 못 이긴 민지훈의 주먹이 벽장을 내리쳤다.쿠당탕.부랴부랴 달려온 박 집사가 벽장에서 떨어진 물건들을 정리하던 그때.액자를 집어든 그가 사진 뒤에 적힌 글씨를 발견하고 소리쳤다.“대, 대표님. 여기 뭔가 적혀있는데요.”액자에 든 사진은 웨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