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장월이 끄덕하지 않고 말한다.“비서라면 당연히 준비가 잘 돼 있어야죠. 뭐 틀린것도 아닌데요.”문연주가 답한다.“넌 그렇게 내가 쟤랑 무슨 일 생겼으면 좋겠어?”“사장님이 뭘 하고 싶으시든 저랑은 상관 없어요.”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문연주가 갑자기 그녀를 향해 걸어온다. 루장월은 직감적으로 그가 기분이 안 좋다는 걸 알고는 뭘할지 몰라 뒷걸음질을 쳤다.마침 이때 심묘묘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연주 오빠, 저 옷 갈아 입었어요.”루장월이 곧장 말한다.“그럼 전 먼저 아가씨 데려다 줄게요.”심묘묘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괜찮아요 장월 언니, 저 이미 괜찮아졌어요. 계속 출근할 수 있어요.”“그렇게까지 꾸역꾸역 안 해도 돼.”“저희가 같이 겪은 일인데 장월 언니는 울지도 않고 저도 더 이상 약하게 굴 순 없어요. 저도 용감해 질거예요!”심묘묘는 진지하기 그지없었다.문연주는 누구도 보지 않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회사 돌아가자.” 회사 돌아온 루장월이 비서실로 가려는데 문연주가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말했다.“따라 와.”그녀는 강제로 사무실로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루장월이 미간을 찌푸린다. 상사와 직원 사이의 이런 신체적 접촉은 누가 봐도 합리하지 않은데 말이다.그녀가 얼른 손을 빼내며 말한다.”사장님 지시 사항 있으시면 바로 말씀하시면 돼요.“문연주가 차갑게 말한다.”매장 일 때문에 그러는거야.“루장월이 그에게 보고한다.”제가 이미 매장 측과 말해봤습니다. 바바리맨은 매장에 있는 화물 옮기는 뒷문으로 들어왔을거라고 하네요, 보안도 그리 심하지 않아서요.“”당연히 매장 측에서도 관리상의 허점을 인정했고요. 이런 일들은 매장에 부정적 영향을 줘 이미지에 타격을 주니 거기서 내놓은 방안은 보안을 강화하고 감시 및 순찰을 강화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거였습니다.“”제가 그 사람들한테 놀란 사람이 서청 심씨 가문 아가씨라고 말씀드렸어요. 아가씨에게 직접 사과드리길 원하더군요. 선물도 보내드릴건데
탕비실 입구로 걸어갔던 루장월이 때마침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그녀가 우뚝 걸음을 멈춘다.심묘묘가 재빨리 대답했다.“저희 사이 이간질하지 마세요!“”연주 오빠랑 장월 언니가 설령 진짜 뭐가 있다고 해도 전 장월 언니랑 공평하게 경쟁할거예요! 비서님도 연주 오빠 좋아하면 같이 공평하게 경쟁해도 돼요. 전 제가 그 누구보다 우월하다고 자신해요. 연주 오빠는 결국 저와 함께하게 될거예요!“루장월이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심묘묘는 확실히 착한 여자애다. 근데 이 방천이란 사람은 그녀를 이용해 심묘묘를 처리하지 못하니 바로 심묘묘를 꼬드겨 그녀를 처리하려 든다. 뭐든 하지 않는게 좋을거다, 그랬다간 그때는 그녀 또한 이판사판이니까.……저녁 퇴근 뒤 루장월은 1층 로비에서 심소흠을 봤다.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심 교수님.”“루 아가씨.”심소흠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다.루장월이 추측하며 말한다.“아가씨 데리러 오셨군요? 제가 내려올때 동료와 얘기하고 있던데 아마 곧 내려올거예요.”심소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매장에서의 일은 저도 다 들었어요. 비서님한테 고맙다는 인사도 미처 못 드렸네요.”“그게 무슨 목숨 바쳐 구한거라고요, 그저 손 드는 일만큼 간단한 일이었는걸요. 그리고 제가 없었더라도 아가씨는 그때 별일 없으셨을거예요.”따뜻한 심소흠의 눈빛이 안경 너머로 비춰진다.“하지만 현실은 확실히 비서님이 제 동생을 구해주신 거죠.”루장월이 멋쩍게 웃어보이며 말한다.”알겠어요. 교수님 감사 인사는 제가 먼저 받을게요.“심소흠이 말한다.”고맙다는 말로는 안되죠. 제가 식사 대접할게요.“루장월이 다급하게 말했다.“진짜 괜찮아요.”심소흠이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늘어놓는다.“제가 식사라도 안 대접하면 양심에서 내려가질 않아서 그래요.”그저 밥 한끼다. 연신 거절하는 것도 아닌듯 하니 루장월도 결국 승낙하며 말했다.“그럼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얼마나 지났을까, 심묘묘가 내려왔다. 그녀 역시 열정적
다음 날, 루장월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해 보온병을 들고는 더운 물을 받으러 탕비실로 향했다. 업무 시작 전이였던지라 이내 그녀는 수납장에 기대어 휴대폰을 꺼내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그 날 문연주가 본인 어머니 얘길 꺼낸 뒤로 마음 한구석이 줄곧싱숭생숭했던 루장월은 이틀 만에 예전 이웃집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연락해서 한번 여쭤나봐야겠다.전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여보세요, 누구시죠?”루장월이 답했다.“진 아주머니, 저 장월이예요.”“어머 장월아, 너 아줌마 번호 어떻게 알았어?”루장월이 나지막이 말했다.“전에 저장했었어요.”아주머니가 물으신다.“그럼 나한텐 무슨 일로 연락했어?”“아주머니, 저희 엄마 아빠랑 아직도 이웃이세요? 두 분 요즘엔 어떻게 지내시나요?”아주머니가 답했다.“아줌마는 이사 간지 한참이야, 거기 안 살거든, 지금은 아들 내외랑 같이 살고 있어. 너희 엄마 아빠랑도 연락은 자주 안 해, 지난번 봤을 땐 괜찮아 보이셨는데 최근엔 어떤지 잘 모르겠구나.”루장월이 실망스러움을 안고 대답한다.“그러시군요.”“장월아, 부모님 어떠신지 알고 싶으면 왜 직접 연락해 보지 않는거야? 내가 두 분한테 듣기론 너 다른 지역으로 일하러 갔다던데 여태 계속 안 돌아간거니?”루장월이 곧장 답했다.“저 연락해 봤어요, 근데 부모님이 전화번호를 바꾸신 것 같더라고요, 전화 연결이 안 돼요.”아주머니가 중얼거리셨다. “전화번호 바꾼걸 어떻게 딸한테 안 알려줘...... 안 그러면 아줌마가 너한테 그분들 번호 줄테니까 직접 연락해 볼래?”루장월이 감격에 차서는 말했다.“네, 감사드려요 아주머니.”번호를 저장하자 마자 루장월은 곧바로 연락을 취했다.연결음이 두번 들리더니 이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루장월이 자기도 모르게 전화를 끊어버리고 만다. “......” 그건 바로 어머니 목소리였다.루장월은 입술을 꽉 깨물고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수납장에서 티백을 꺼내 보
이 말 한마디로 인해 루장월은 완전히 부모님께 실망해 버렸고 그 뒤 3년간 다시는 그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었다. 몇개월 전 갑자기 불 지펴진 생각으로 연락했지만 그 마저도 통하지 않게 되기 전까진 말이다.그땐 헛웃음 밖에 안 나왔다. 독한 정도로 따지면 그녀의 부모님처럼 자식과의 완전히 절연해버리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나.지금 어머니 목소리를 들어보니 괜찮아 보이시는데 그럼 신경끄고 각자 갈 길 가면 되겠다.차가 담긴 보온병을 들고 루장월은 다시 비서실로 돌아갔다.금방 자리에 앉자 마자 방천이 어제 그 서류를 또 다시 그녀의 책상 위에 던져 놓더니 제법 우쭐대며 승리감에 도취해 말했다.“내가 이미 사장님이랑 말해봤는데 콕 찝어서 너 보고 맡으시라네!”그래 뭐.엉망진창인 사무실에서 한시도 더 있고 싶지 않았는데 차라리 잘 됐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서류와 가방을 들고 자리를 떴다.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방천의 두 눈은 여전히 이글이글 블타오른다.회사에서 나온 루장월은 일단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부터 시키고 의자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 봤다.30분 정도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전반적인 프로젝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현재의 핵심은 진 사장더러 그 날 사인 못했던 보충 협약에 사인하도록 하는 것이다.사실 이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필경 그 날 그들에게 약점 잡혀 역겨움을 참으면서 겨우 계약서에 사인한 진 사장이거늘 오늘 다시 찾아간다고 해도 8,9할은 거절당할게 뻔하니 말이다.루장월이 골머리를 앓으며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고민하던 그때 누군가 테이블을 가볍게 똑똑 두드렸다.섬섬옥수같은 손가락을 따라 위로 쭉 시선을 올리다보니 옅은 미소를 띤 심소흠과 눈이 마주쳤다.그는 오늘 은색 테두리에 여전히 우아해보이는 안경줄이 달린 안경으로 바꿔끼고 왔다. 조금은 의외였던 루장월은 한 쪽으론 서류를 덮고 한 쪽으론 허리를 곧게 세우며 말했다.“심 교수님이 어쩌다 이쪽에 오셨어요? 또 동생한테 군만두 사주
문연주는 늘 그랬듯이 무표정에 무감각으로 엽혁연과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는 굶은 사람마냥 와구와구 전병을 먹고 있었다.그가 엽혁연을 아래 위로 훑어보고는 자리에 앉는다.엽혁연은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두루뭉술하게 말한다.“네가 밀한 자료니까 알아서 봐. 난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배고파 죽겠다야.”“집에 밥해 줄 사람 없어? 너네 어머니 너한테 와이프 찾아준다고 하시지 않으셨나?”문연주는 서류철을 들어 넘겨보며 무심하게 내뱉는다.엽혁연은 그 미혼모 신분으로 강제로 집에 들어와 사는 늙은 여자 생각만 하면 입맛이 뚝 떨어지는지 이내 전병을 주머니에 도로 던져놓고는 종이 몇 장을 뽑아 입가릉 닦으며 불평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나이에 따라 서열을 매기다니. 나보다 다섯살이나 많은데 작은 고모라고 불러야 되는게 말이 되냐. 나이 들어서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아내로 들이라니 우리 엄마가 생각해낸 거라지만 엄마 손에 있는 유산이 목적인거잖아. 그 여자랑 결혼하면 그냥 집에 보모 한 명 더 들인거라고 생각할거야……더는 말하지 말자.“그가 눈꺼풀을 치켜뜨며 말한다.”갑자기 왜 이런 작은회사들 자료 달라고 하는데. 이건 너네 비운 앞에서 상대가 안 되지 않나?“문제는 필요하면 아래 사람한테 시켜면 될걸 굳이 본인이 직접 왔는가였다. 무슨 생각인거지?몇 백, 몇 천만짜리 프로젝트에서도 이러지 않던 문연주가 진지하게 자료들을 들여다 본다.“내 손을 거치면 들통나기가 쉬워.““작은 규모 회사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라 인수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누구한테 맡겨서 운영하려고?”이리도 비밀스럽다니, 엽혁연은 더더욱 호기심이 생긴다.“누구한테 줄 건데?”곧 퇴직하는 루장월이 생각난 그는 재밌다는 듯 말했다.”너 설마 루비서한테 회사 넘겨서 사장 자리에 앉히려는건 아니지?“문연주가 갑자기 피식 웃는다.부인도, 그렇다고 승인도 하지 않은 채.엽혁연이 물병을 열어 물을 마신다.”다시 출근하는 거 아니었어?
루장월이 표정 하나 변하지도 않고 말했다.“귀여운 막내 아드님이 태어났다고 들었는데, 한번 볼 수 있는 영광이 있을지 모르겠네요.”“……”진 사장은 못 들은 척하고 차를 타고 가버렸다.하지만 그의 목적지는 집이 아닌, 사업 살롱이 열리는 한 호텔이었다.비운의 수석 비서인 루장월 역시 자연스레 입장이 가능했지만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구석 자리를 찾아 조용히 앉아있었다.파티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진 사장을 찾아가서 보충 협약 사인만 받으면 되니 말이다.음, 안 한다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내일 다시 오면 되니까. 나흘 뒤면 퇴사하니 나흘 정도 시간을 끌어주는 게 가장 좋았다.루장월은 무심하게 잡지를 펼쳐보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다.루장월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 사장이 웬 여자와 다투고 있었다.여자는 여기가 어떤 자리인지 까마득히 잊은 채 진 사장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퍼부었다.“진연! 네가 감히 회사의 재산을 되팔다니! 천벌을 받게 될 거야!”여자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살롱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오기 시작했다.진 사장의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루장월이 낮은 소리로 옆 사람에게 물었다.“이 여자분은 누구시죠?”“진 사장 동생의 와이프요. 개념이 없기로 소문이 자자해요.”루장월은 문득 어제 계약 회동에서 방천이 그의 동생을 언급했던 일을 떠올렸다. 동생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진 사장이 손찌검을 했던 것이다.형제가 경쟁 구도에 있을 것이 뻔했고, 현재 진 사장이 우위에 있으니 동생의 아내가 이리도 흥분하며 사람들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다.진 사장은 그녀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것 같았다.잠시 고민하던 루장월은 이내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진 사장과 그 여자를 조준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자, 여러분들 여기 보세요. 여기가 바로 오늘의 살롱입니다. 요구조건도 높고 뷔페도 화려해요. 연어는 무한리필에 프랑스 달팽이, 푸아그라에 캐비어도 있어요.”
루장월이 끄떡하지 않고 되묻는다.“어떻게 처리하실 건데요?”진 사장이 차갑게 웃으며 말한다.“그건 내 일이니 신경 쓰지 말게나.”“사장님께서 방천을 해해서 범죄에 연루된다면 저 역시 공범으로 몰리는데 당연히 저와도 상관있죠.”“나도 루비서 도와주는거야. 내 추측이 맞다면 이 일은 원래 방천이 맡아야 할 일인데 문 사장의 편애로 루비서에게 하달된 거 아닌가. 어느 각도에서 보면 방천의 존재가 루비서 앞길을 막는거니 나한테 맡겨서 처리하게 하면 루비서 역시 경쟁상대가 줄어드는데 얼마나 편한가?“진 사장은 조리정연하게 모든 일을 낱낱이 꿰고 있었고 유혹에 찬 어조는 이득만 있고 해로움은 없는것 같았다.루장월이 고민하다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괜찮네요. 마침 저도 방천을 싫어해서요.”진 사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그럼 승인하는건가?”“네, 제가 지금 바로 연락할게요.”루장월은 곱바로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누르고 10초뒤 말했다.“방비서, 전 보스 진 사장께서 나더러 널 유인해 데려오시라네. 너한테 제대로 보여주실게 있으신것 같은데 지금 힐튼 호텔에 있으니까 와서 볼래?”진 사장이 그녀의 휴대폰을 가로채고 보니 그녀는 애초에 전화를 건 적도 없었다!그가 휴대폰을 도로 돌려주며 말한다.“감히 날 갖고 놀다니!”루장월이 대답했다.“진 사장님에 절 갖고 노신게 맞죠. 아내와 아들도 있으신 분이 누구보다 생명이 소중한 걸 아실텐데 뭐 하실 생각도 없으시면서 겁 주시면 어떡하세요?”진 사장은 그저 동생 일가에게 한바탕 당하고는 그 감정을 표출하고 싶을 뿐이었다.그제야 평온을 되찾은 그도 더 이상 그녀를 못 살게 굴기 싫었는지 말을 꺼낸다.“가져오게.”루장월은 서류와 펜을 그에게 건네줬고 진 사장은 바로 사인을 했다.계약서를 루장월에게 돌려주려던 진 사장은 문득 뭐가 생각 났는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듣자 하니 루비서 최근 이직 준비 한다던데, 진짜로 비운을 떠날 생각인가?”루장월이 대답했다.“그저 지극히 정상적
오늘 밤의 문연주는 그녀의 허리를 놔주지 않으려는 듯 몇 군데의 잇자국과 손톱자국을 남겼다.루장월의 정신이 몽롱해져 갈 때쯤, 그가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전에는 왜 네가 사람을 이렇게나 잘 홀리는지 몰랐지?”루장월은 그가 진 사장을 가리키는 줄 알고, 황당해서 대꾸도 하기 귀찮아 눈을 감은 채 몸을 맡겼다.다음 날, 역시나 루장월이 먼저 눈을 떴다.문연주가 어젯밤 너무나 격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루장월이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딛자마자 온몸에서 불편함이 밀려왔고 행동도 느려졌다. 잠시 뒤 일어난 문연주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욕실에 들어갔다.행동이 빨랐던 그는 루장월이 화장을 마치고 문을 나설 때 같이 따라나섰고, 그렇게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섞지 않은 채 방을 나왔다.문연주의 운전기사가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잠깐만.”루장월은 호텔에서 나와 그의 차를 보고도 택시에 올라탔다.기사가 뒷좌석의 남자를 힐끔 쳐다보았다.문연주는 무표정으로 말했다.“가지.”……오전 업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행됐고 동료와 인수인계하던 루장월은 그녀의 책상 위에 있는 이사 관련 자료를 보게 되었다.그녀가 무심코 물었다.“왜 이걸 준비한 거야?”동료가 재빨리 자료를 숨기더니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별거 아니야……맞다, 조금 전 그게 어떻게 된 일이라고 했지?”루장월은 단번에 눈치챘다. 이건 문연주가 그녀에게 시킨 업무이고, 기밀 유지 때문에 해명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루장월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뻔히 알기에, 모른 척하기로 했다.자리에 돌아간 그녀는 문득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다.그녀는 딱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그냥 무시하고 할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갈수록 부담스러워지는 시선에 점점 귀찮고 지쳐가는 것만 같았다.이때 심묘묘가 그녀의 곁으로 오더니 소곤소곤 말했다.“장월 언니, 사람들이 언니가 계약서 사인을 받으려고 고객의 침대로 올라갔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