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주위를 빙 둘러본 끝에 두 사람은 겨우 호떡집을 발견했다.그 순간 시윤은 눈을 반짝거리며 가게 쪽으로 달려갔다.“사장님, 호떡 하나요.”사장님은 이젠 시윤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시윤은 아직도 기억이 또렷했다. 그때 사장님은 훨씬 젊었지만 이제는 어느덧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갓 구운 호떡을 받아 들자마자 한입 떼어 물더니 행복한 듯 눈웃음을 치는 시윤을 보자 도준은 피식 웃었다.“그렇게 맛있어?”시윤은 두 입 더 떼어 물고 양 볼 빵빵한 상태로 우물거렸다.“도준 씨는 몰라요. 이게 바로 추억의 맛이라고요.”호떡을 먹은 뒤 또 두 가지 간식을 더 먹자 시윤은 배가 부른 듯 트림했다.이런 상황은 거의 매일 반복되는데, 오늘 시윤은 특히 부끄러웠다.그도 그럴 게, 아직 아침 8시도 안 되었는데 아침 댓바람부터 먹고 싶은 게 있다며 도준을 깨웠으니.차에 다시 돌아온 시윤은 도준의 눈치를 살폈다.“혹시 귀찮은 건 아니죠?”대부분 임산부는 별다른 증상 없이 일도 하고 운동도 한다는데, 자꾸만 이것저것 먹고 싶은 저 자신이 시윤도 답답했다.그때 도준이 싱긋 웃었다.“밤에 다 갚아주잖아. 오는 게 있는데 이런 걸 해주는 건 당연하지.”‘그렇네!’‘이 양심 없는 사람 때문에 매일 얼마나 시달리는데.’도준이 아니었다면 시윤은 아마 끝까지 하지 않고도 그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욕을 풀 수 있다는 걸 평생 몰랐을 거다.그걸 생각하자 시윤은 순간 마음이 편해진 듯 요구했다.“점심에 만둣국 먹고 싶어요.”“그래.”“오전에 엄마 보러 병원 가요.”“응.”도준이 제 요구는 모두 들어주자 시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오후에 아기 옷 보러 가요.”“응.”“그럼 오늘 밤 저 좀 쉬게 해줘요.”“안돼.”‘다 들어주는 거 아니었어?’...평범하고 달콤한 나날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시윤은 자꾸만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 외에 아무 문제 없이 건강했고 양현숙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수술 날짜를 잡을 때가 되었다.결국
양현숙이 검사받으러 간 탓에 병실에는 승우만 앉아 있었다.승우를 본 순간 시윤은 몸을 돌려 떠나려 했지만, 뒤에서 그녀를 붙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아. 엄마 곧 돌아와. 몸도 불편한데 와서 앉아. 내가 나갈게.”일부러 자리를 피하는 승우의 모습에 시윤은 마음이 아팠다.그도 그럴 게, 상대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오빠니까. 더욱이 그 오빠가 수술이 끝나는 대로 해외로 떠난다는 말까지 어머니한테서 듣고 난 터라 마음이 더 불편했다.그 생각에 시윤은 한참 침묵하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그냥 앉아.”시윤의 말이 의외였는지 승우는 놀란 듯 허둥대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어, 그래. 고마워.”오빠가 이토록 조심스러운 모습에 시윤은 마음이 아파 끝내 질문했다.“왜? 왜 그랬어?”이건 편지가 떨어진 그날 이후 두 사람이 처음으로 차분하게 얘기하는 거다.승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사실 나도 생각이 짧았어. 그냥 그때는 그 편지를 어머니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숨기는 데 급급했지 아버지를 해칠 줄은 몰랐어. 나중에 솔직히 털어놓고 편지를 보여줄까 생각도 했지만 매번 망설여졌어. 네가 나 싫어하는 눈빛을 보기 무서웠거든. 날 외면하는 것도 무서웠고...”한창 얘기하던 승우의 목소리는 점점 가랄졌다.“그런데 지금 그 악몽이 현실이 됐네. 벌받은 거지 뭐.”언제나 당당하고 활기차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인 오빠가 이렇게 된 걸 보고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다.시윤의 기억 속에 승우는 늘 다정했다. 심지어 다리가 부러져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도 오히려 저를 위로하던 오빠였는데.지금 승우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고, 턱에는 거뭇거뭇한 수염이 나 있어 다리를 못 쓰게 되었을 때보다 더 피폐한 모습이었다.시윤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사실 그날 우리가 아빠랑 차에 탔어도 무사히 도망치진 못했을 거야. 공은채가 아빠를 이용하기 위해 죽음으로 협박했거든. 절대 아빠 쉽게 놓아줄 리 없어.”승우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시윤은 어리둥절했다.“뭐라고?”그제야 승우의 말을 이해한 시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를 갈았다.“오빠! 지금 변명거리 찾으려고 도준 씨까지 모함하는 거야? 나 이제 오빠랑 말 섞기도 싫어.”말을 마친 시윤은 고민도 없이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승우가 다급히 가로막았다.“윤아, 너 설마 민도준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어? 원씨 가문이 왜 하필 그때 무너졌을까? 하필 민도준이 널 붙잡으려 할 때. 그리고 원혜정이 민도준의 눈을 피해 경성에서 나와 널 순조롭게 납치하고 그런 일을 벌인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민도준이 깨어난 시기도 그래. 어떻게 하필 너와 어머니가 편지를 발견한 다음 깨어나는데? 깨어날 때가 돼서, 더 이상 의식이 없는 척할 필요 없어서 그랬던 거 아닐까?”이 말들을 너무 오랫동안 마음속에 억누르고 있은 탓에 승우의 목소리는 격동되어 있었다.심지어 말을 마친 뒤 시윤의 어깨를 꽉 잡았다.“윤아, 민도준 같은 사람은 남을 모함하면 모함했지, 원혜정 같은 사람의 꾀에 당할 리 없잖아. 게다가 하필 너까지 임신하고, 이 모든 게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데 정말 의심한 적 없어?”승우가 아무리 말해도 시윤은 여전히 동요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말 다 했어?”승우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밀어버린 시윤은 뒷걸음치며 그와 거리를 유지하더니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래서 지금 그런 추측들로 도준 씨가 처음부터 계획한 거라고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승우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아니. 추측이 아니야. 민도준이...”“그만!”시윤은 화가 나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난 적어도 오빠가 아빠의 죽음에 대해, 그 편지를 숨겼다는 사실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가질 줄 알았어. 그런데 이제 보니 내가 단단히 착각했네. 도준 씨가 날 위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내가 이 두 눈으로 직접 봤어. 그런데 오빠는? 오빠는 뭘 했는데?”“더 이상 오빠 얼굴 보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시윤이 저한
그동안 몇 번이나 함께 식사를 한 것 때문에 가득이나 승우를 좋아하던 해연은 그에게 더욱 빠져버렸다.때문에 승우의 부탁에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무슨 일인데요? 도울 수 있는 거면 뭐든 도울게요.”그 말에 승우는 시름이 덜어지기는커녕 마음 한편에 커다란 돌멩이가 눌린 것 같았다.그동안 사실 해연에게 부탁할 기회는 수없이 많았지만 매번 입안에서 맴도는 말을 다시 삼키기를 반복했었다.매번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만약 정말 제 생각대로라면 시윤이 어렵게 얻은 행복도 깨질 수 있고, 도준의 아이까지 가진 마당에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걸 알면 시윤이 견디지 못할 게 뻔하다.하지만 모든 걱정은 방금 저를 차갑게 바라보던 시윤의 눈빛 때문에 산산이 부더졌다.그는 평생 오빠 소리만 듣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시윤이 평생 진짜 범인을 감싸는 것도 보고 tv지 않았다.‘윤아, 오빠 한 번만 용서해.’...자료실.평생 이런 일은 처음 해보는 해연은 긴장해서 손을 벌벌 떨었다.도준 병실에 있던 기계의 일련번호를 찾은 해연은 이내 그걸 클릭해 비밀번호를 입력했다.하지만 예전에 사용하던 비밀번호를 입력했지만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경고창만 떴다.그걸 본 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왜 틀렸다고 나와요?”“우리 병원 기계는 모두 이 비번 사용하거든요. 틀렸다면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어요.”“뭔데요?”“기계가 우리 병원 게 아니에요.”그 대답에 승우의 희망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민도준 같은 사람이 그렇게 쉽게 허점을 남길 리 없지.’새하얗게 질린 승우의 얼굴을 보자 해연도 마음이 괴로웠다.“너무 걱정하지 마요. 방법이 있을 거예요. 정 안 되면 비번 풀 수 있는 사람 찾아보면 되죠. 해커든 뭐든. 방법이 있을 거예요.”사실 해연은 그저 승우를 위로하려는 마음에 급하게 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승우는 마음이 흔들렸다.‘그래. 다른 사람 찾으면 돼.’하지만 여긴 병원이라 의사와 간호사가 오가기 때문에
시윤은 생각할수록 우울해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고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시윤은 혼자 이불로 몸을 돌돌 만 채로 새벽 2시까지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임신한 뒤로 시윤은 자꾸만 꿈을 꾼다. 오늘도 꿈속에서 얼마 전 폭발 현장으로 돌아간 시윤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도준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얼른 나오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괴로움이 점점 극에 달해 참을 수 없을 것 같던 찰나, 시윤은 끝내 꿈에서 깨어났다.“안돼!”그때 두 팔이 겁에 떠는 시윤을 꼭 안았다.“악몽 꿨어?”어리둥절해서 고개를 휙 돌린 시윤의 눈에 도준의 얼굴이 들어왔다.새벽 4시. 도준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왔는지 아직도 주위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시윤은 마치 삼림으로 돌아온 새처럼 도준의 품에 와락 안겨 눈물을 쏟아냈다.“왜 이제야 왔어요? 꿈에서 도준 씨가 불길 속에서 사라졌어요. 너무 무서워요.”도준은 한 손으로 시윤을 끌어안고, 시윤이 추위라도 탈까 봐 다른 한 손으로 이불을 끄집어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다 가짜야. 나 돌아왔잖아. 이 괜찮아.”“네.”시윤은 서러운 듯 도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누워 있어. 나 샤워하고 올게. 밖에서 들어와 옷이 더러워.”예전 같으면 이런 것에 신경 쓸 도준이 아니지만 매일 아이를 위해 육아 도서를 읽는 시윤을 위해 어느정도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하지만 예전 같으면 도준이 밖에서 들어오면 얼른 옷부터 갈아입으라고 재촉하던 시윤이 오늘은 웬일로 그를 꼭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싫어요. 같이 가요.”도준은 저에게 딱 달라붙는 시윤을 웃으며 아이 안듯 안아 욕실 세면대 위에 올려 놓았다.그때 자세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시윤이 흠칫 놀라며 경계했다.“뭐 하려고요?”“떨어지기 싫어했잖아. 여기 잠깐 앉아 있어.”이제 많이 괜찮아졌으니 돌아가겠다고 말하려는 찰나, 도준이 시윤의 앞에서 웃옷을 벗었다.욕실의 불빛이 도준의 어깨에 떨어져 쩍 갈라진
도준이 참지 못할 것처럼 느껴지자 시윤은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 하면 도준을 단념시킬까 고민했다. 그러던 그대, 도준이 갑자기 시윤을 안아 침대에 내려놓더니 이불로 꽁꽁 덮어주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이제 자.”핏줄이 튀어 오른 도준의 목덜미를 본 시윤은 도준이 돌아서려는 순간 그의 손을 잡았다.가는 손가락으로 뼈마디가 선명한 손을 꼭 잡은 시윤은 부끄러움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아니면 그냥 누워요. 도와줄게요.”그 암시를 바로 파악한 도준은 이불로 얼굴 반쪽을 가린 시윤을 빤히 바라봤다. 분명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눈을 깜빡이며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시윤을 보자 도준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점점 진정되었다. 끝내 시윤의 손을 들어 살짝 입을 맞추고는 도로 내려놨다.“늦었어. 내일 어머님 수술인데 얼른 자.”도준의 거절에 시윤은 왠지 마음이 안 좋았다. ‘이젠 이런 것도 싫증 났나?’도준의 성욕이 얼마나 강한지 시윤은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함께 있는 동안 한 번도 참은 적이 없던 그가 반년도 넘게 참았는데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게다가 요즘 하필이면 아내가 임신한 사이 바람피우는 남편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너무 많이 들은 지라 갑자기 도준이 의심스러워졌다.물론 그런 이유로 도준이 바람을 피울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생각할수록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시윤은 끝내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등 뒤에 있던 도준마저 뒤척이는 시윤 때문에 잠이 들지 못해 결국 품에 꼭 끌어안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윤을 멈추게 했다.다음날.오전 10시에 잡힌 양현숙의 수술 때문에 시윤은 아침 일찍 흐리멍덩한 상태로 도준에게 이리저리 휘둘려가며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졸려.”도준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시윤은 크게 하품하며 고양이처럼 도준의 어깨에 기댔다.그러자 도준은 시윤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며 놀려댔다.“그러게 누가 제대로 자지 않고 뒤척이래?”시윤은 벌떡 일어나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게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오빠가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리자 시윤은 걱정이 앞섰다.당장 간호사를 붙잡고 더 물어보려 했지만 뒤에 있던 도준이 시윤을 붙잡았다.“의사 쌤한테 맡겨. 이런 상황에는 의사 쌤 믿어야 해.”수술은 계속 진행됐다. 승우는 가까스로 지혈을 했지만 과다 출혈로 결국 ICU 병실에 실려 가게 되었다.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병실은 마침 도준이 입원했던 병실이었다.똑같은 일이 반복되자 시윤은 도준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오빠 이러다 못 깨어나는 건 아니겠죠? 어제 오빠한테 화냈는데 이러다 못 깨어나면 나... 나...”도준은 손가락으로 시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걱정하지 마. 과다 피 많이 흘린 것뿐이라 곧 괜찮을 거야.”시윤은 후회와 자책에 빠져 이 시각 병실에서 승우에게 의료 기기를 연결하는 간호사의 손이 얼마나 떨리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그 간호사는 다름 아닌 이해연이다. 이 시각 그녀가 이렇게 떠는 이유 역시 무서워서다.그도 그럴 게, 어제 승우와 함께 오늘 수술이 끝나면 몰래 약을 바꿔 쇼크를 유발해 이 병실로 데려오도록 계획했기 때문이다.처음 이 계획을 들었을 때 해연은 승우가 수술 도중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봐 극구 반대했지만 끝까지 견지하는 그를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그리고 다행히도 모든 게 순조로웠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힌 해연이 승우에게 의료 기기를 연결하고 병실을 나서자 시윤이 달려왔다.“혹시 저희 오빠 어때요? 괜찮나요?”“현재 바이털 모두 정상이지만 원래 상처가 재발하여 당분간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원래 상처...순간 그 어두웠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미래를 생각하며 가족들이 서로 의지하며 함께 버티던 나날이 눈앞을 스쳐 지났다.‘왜 이렇게 됐지?’병상에 누워 있는 창백한 승우를 보자 시윤은 또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순간 오빠에 대한 걱정도 함께 생겨났다.시윤 뿐만 아니라 양현숙도 저를 위해 이식수술을 하다가 정신을 잃은 아들을
도준의 물음에 시윤은 고개를 쳐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말하면 화내지 않을 거죠?”“응.”긍정적인 답변을 얻고 나서야 시윤은 승우가 전에 도준을 의심하며 했던 말을 털어놓았다.그러면서 저도 의심한다고 오해할까 봐 이내 말을 보탰다.“오빠가 한 말 전 한마디도 안 믿었어요. 도준 씨가 저 구하느라 뛰어드는 거 직접 봤고,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것도 아는데 오빠 말 몇 마디에 도준 씨 의심할 리 없잖아요.”이 말을 내뱉는 시윤의 눈에는 온통 도준에 대한 믿음과 애틋함이 가득했다.더욱이 지금 배 속에 도준의 아이까지 있으니 제 아이의 아비를 의심할 리 없다.시윤의 믿음 가득한 눈빛에 도준은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곧바로 시윤의 머리를 받쳐 들고 허리를 숙여 키스했다.지금까지 했던 공격적인 키스와 달리 이번에는 매우 다정하고 애틋했다. 분위기마저 점차 핑크빛 기류로 물들었다.그러다 한참 뒤, 입을 뗀 도준은 시윤의 입가에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 멈춘 채로 장난스럽게 말했다.“자기 오빠 말이 진짜면 어떡하려고?”도준의 키스에 혼미해진 시윤은 그 말에 이내 도준의 입술을 깨물었다.“흥. 나 속이면 우리 애 지우고 다시는 도준 씨 안 볼 거예요.”“...”하루 종일 바삐 보내고 체력을 소진한 터라 이 말을 마친 시윤은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그사이 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손으로 시윤의 등을 토닥여줄 뿐이었다.그러다 시윤이 깊이 잠들자 번쩍 들어 안아 침실 침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만약 이 시각 시윤이 깨어 있었다면 아마 강한 소유욕으로 물든 도준의 눈빛에 놀랐을지도 모른다.먹빛을 띤 그 눈빛은 칠흑 같은 밤과 같아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늦은 밤, 병원.해연은 승우의 친구를 데리고 복도를 지나 ICU 병실로 향했다.그러면서 발각될까 봐 두려웠는지 쉴 새 없이 두리번거렸다.“도착했어요. 여기예요.”해연은 사람을 안으로 안내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 출입하는 걸 막기 위해 문 앞에 지키고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