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케빈이 평생 가장 기억하기 싫은 날이었다.그 폐가에 도착했을 때 우두머리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올 줄 알았으면 첫 번째는 너한테 양보했을 텐데.”케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들었다. 총성이 울리자 상대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표정이 떠올랐다.케빈은 더러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총소리를 듣고 뛰어나왔고 케빈은 주저하지 않고 하나씩 처리했다.마지막 사람을 처리할 때 그가 외쳤다.“케빈! 우리는 같은 편이야. 네가 어떻게 나를 죽일 수 있어...”곧 총소리가 울리더니 그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케빈은 안쪽 방에서 시영을 찾았다. 그리고 외투를 벗어 시영을 감싸고 차에 태웠다.케빈은 시영을 민씨 가문의 개인 병원으로 데려갔다. 괜한 소문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유일한 선택이었지만 장현정과 민용국은 속일 수 없었다.장현정은 숨이 넘어갈 듯이 울었고 민용국은 민용재가 한 짓임을 알고 그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시영은 내내 조용했다. 시영은 치료에 협조하며 검사를 받았고 민용국이 대저택을 향해 가려 할 때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놈들이 영상을 찍어 민용재에게 보냈어요.”그 말을 들은 장현정은 하마터면 울다가 기절할 뻔했고 민용국은 주저앉아 자신을 때리며 말했다. “다 내 잘못이야. 우리 딸을 지키지 못한 내 잘못이야. 내가 민용재와 권력을 다퉈서...”혼란스러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시영만이 창밖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시영은 병원에서 반달 동안 머물렀다. 그동안 회사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민용국은 갑자기 회사에서 물러나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장현정은 매일 눈물로 지새웠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억지로 웃는 모습을 선보였다.보름 동안 시영의 병실에는 간병인과 장현정만 있었고 케빈은 한 번도 병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 케빈 오빠를 입에 달고 살던 시영도 그를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이 상황은 시영이가 퇴원할 때까지 계속되었다.시영이 퇴원하는 날, 민씨 가문은 가족 연회를 열었다. 시영은 감기와 폐렴
밤이 되었다.케빈은 병원에 있던 시영의 짐을 모두 정리해 놓았다. 그리고 돌아서자 문가에 서 있는 시영을 보았다.이것은 시영이가 사고를 당한 후 두 사람이 처음으로 얼굴을 본 것이었다. 시영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지만 뭔가가 달라진 느낌이었다.잠시 동안 멍하니 있던 케빈은 시영이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케빈, 내가 여기서 뭐라고 말했었는지 아직 기억해?” 케빈은 잠시 침묵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기억합니다.”시영은 소파에 앉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때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바보일 줄은 몰랐네. 네가 나를 도구로 이용해 정보를 캐내고 있었는데 난 널 좋아한다면서 고백이나 하고 있었잖아. 게다가 난 너한테 내 모든 걸 바치려고 하기도 했어.” “넌 처음부터 나한테 손댈 생각이 없었던 거야. 이미 너는 사람들을 준비해 놨고, 내 가장 추악한 모습을 녹화하려 했잖아. 네가 왜 그걸 방해하겠어?”시영은 혼자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 너는 선물을 준비하지 않은 게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너는 내 열여덟 번째 생일에 나를 지옥으로 끌어내렸어!”마지막 몇 마디를 할 때 시영의 목소리는 매우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서류 하나가 케빈의 얼굴에 던져졌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내 보디가드를 하고 있었다니 정말 놀라웠어.”서류 안의 종이들은 바닥에 흩어졌다. 모두 케빈의 과거 경력이었다. 케빈의 생일조차 9월 9일이 아니라 7월 28일이었다.그 피비린내 나는 장면들을 보자 케빈은 위가 꼬이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변명할 수 없었다.시영은 그 종이를 밟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어차피 다섯 명이나 안배해 두었으면서 넌 왜 빠졌어? 너도 그 사람들과 함께하지 그랬어?”“아, 내가 깜빡했네. 넌 여자에게 트라우마가 있었지. 특히 방탕한 여자에게. 그래서 내가 역겨웠다는 거지?”케빈은 곧 허리 뒤에 있는 총을 꺼내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시
그날 이후.시영은 밖에서 더욱 다재다능한 모습을 선보였다. 누구나 시영을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지혜롭고 유머러스하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시영의 마음속 공허함이 점점 커져갔다. 그 고통을 어디에도 발산할 수 없었다.그래서 시영은 매일 밤 케빈을 괴롭히려고 했다. 시영은 케빈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케빈을 괴롭혀도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시영이가 그를 좋아하던 시절처럼, 시영이가 아무리 다가가려고 해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시영의 화려한 외모에서 피비린 내가 나기 시작할 즈음, 그녀는 도준의 가족이 폭동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모든 사람들은 도준 일가가 죽었다고 말했다.시영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강했던 도준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었는지.민씨 가문은 어두운 구름에 휩싸였고 민용재가 마지막 승자가 되었다.그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시영은 유학을 선택했다. 낯선 집에서 시영은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창문을 보자 시영은 숨이 막힐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손에 든 술병을 창문에 내리쳤다.창문은 질이 좋아서 깨지지 않았다. 시영은 만족하지 않고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집어던졌다. 결국 “팡” 소리와 함께 유리가 깨졌다. 밖의 비와 눈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신선한 공기와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오자 커튼이 휘날렸다.시영은 앞뒤로 몸을 흔들며 크게 웃었다. 그녀는 바닥의 유리 조각을 무시하고 다가가 손을 들어 밖의 빗물을 받았다.그 순간 누군가 시영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이거 놔!”케빈은 처음으로 시영의 명령을 어기고 그녀를 침대에 놓고 약을 찾아 그녀의 발에 박힌 유리 조각을 치료해 주었다.케빈은 눈썹을 찌푸린 채로 시영의 상처를 소독해 주었다. 시영의 발바닥은 이미 피투성이였다.케빈이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시영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는데, 시영은 그가 조심스럽게 붕대를 감는 모
시영은 자극을 받은 듯 케빈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더러워서 구역질이라도 나는 거야?”“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너 때문이니까 넌 나를 더럽다고 생각할 자격 없어!”“지금 이대로 가면 오늘 당장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빈은 시영의 목덜미를 잡고 세게 끌어당겼다. 그리고 입을 맞추기 직전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시영은 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사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배신에 대해 사과하는 것인지 물을 틈도 없었다. 케빈의 뜨거운 몸과 시영의 뜨거운 몸이 맞닿자 시영은 드디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두 사람은 바닥에서 몸을 얽혔다. 시영은 그날 처음으로 케빈의 통제 불능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케빈은 그녀를 꼭 껴안고 마침내 그 선을 넘었다.육체적 쾌락이 시영을 세속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같았다. 시영은 케빈의 어깨를 깨물었지만 케빈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안았다.그 후, 케빈은 시영을 씻기고 깨끗한 방으로 데려갔다. 그가 일어설 때 시영은 그의 손목을 잡고 물었다. “어디 가?”케빈은 어둠 속에서 시영을 바라보았다. “저는 보디가드일 뿐이니 아가씨와 함께 잘 수 없습니다.”“허.”시영은 비웃 듯이 말했다. “꺼져!”시영은 바깥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케빈이 침대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그의 속죄였음을 의미했다.케빈은 시영을 원하지 않았고 시영을 사랑하지 않았다.문밖.케빈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시영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그날 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시영이가 도망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왜 그 생일 선물을 주지 못했는지. 케빈은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기에 변명하지 않았다. ‘아가씨, 제발 저를 미워해 주세요. 아가씨가 저를 미워하고 괴롭혀 주셔야 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저를 썩어가는 진흙으로 보고 마음껏 짓밟아도 좋으니
그 후 5년 동안 케빈은 시영을 따라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종종 도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그가 어떻게 경성 지하 세계를 장악했는지, 얼마나 잔인하게 권력을 탈취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5년 만에 그는 민씨 가문의 후계자에서 모두가 두려워하는 민도준으로 변했다. 민씨 저택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가 되었고 도준은 혼자서 민씨 가문을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민상철도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민용재는 이런 강적을 만난 덕분에, 시영의 집안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시영은 더 이상 도망칠 필요 없이 이 시기에 귀국했다.5년이 지나자, 시영에게는 더 이상 소녀의 풋풋함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모든 행동에서 여성의 매력을 발산했다. 시영은 쾌활하고 당당하며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시영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이 끊이지 않았다.그중 잘생긴 혼혈 남자 한 명은 시영을 자주 웃게 했고 시영은 그와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케빈은 묵묵히 그가 하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당신의 눈이 정말 매력적입니다.”시영은 가볍게 웃었다. “정말요? 설마 제 눈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시는 말이에요?”남자는 더욱 열정적으로 대시를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남자는 자신의 연락처를 남기며 아쉬운 듯 말했다. “꼭 전화해 주세요.”민씨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케빈은 시영이가 차 안에 두고 내린 명함을 보더니 그녀가 내린 후 신속히 그것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그리고 시영을 대신해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했다.이번에 민씨 저택으로 돌아오자 집안에는 못 보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민승현의 약혼녀였다. 시영은 그녀에게 매우 관심을 보였다.시영의 예상대로 여자는 제수씨의 부인으로 도준과 함께했고, 심지어 그 거만한 도준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시영은 그녀와 친구가 되었고 마침내 백제 그룹의 핵심에 들어갔다.시영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고 도준이가 민씨 저택과 백제 그룹을 장악하면서 케빈은 점점 쓸
케빈은 경성을 떠나던 날 자신에게 육신만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황야로 추방된 기분이었다.케빈은 시윤을 아가씨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아가씨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다행히도 시윤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가 신경 쓰는 사람은 오직 도준이었다. 시윤은 케빈보다 더 대담했다. 그녀는 도준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남자는 다가가기만 해도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데 더구나 그와 얽히려 하다니.하지만 이런 일은 케빈과 상관이 없었다. 시윤을 따르던 중 케빈은 자신을 대신한 남자가 송민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송민우는 시영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이다. 시영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사람이다. 또한, 시영이가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입장권이기도 했다.케빈은 자신의 후반생이 이대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재혁이 그를 찾아왔다.비록 케빈이 시영에게 손댄 사람들을 죽였지만 민용재 일가는 여전히 그때의 동영상을 빌미로 케빈을 위협했다. 그래서 케빈은 이번에 자기 손으로 모든 것을 완전히 끝내기로 했다.사실 케빈은 감옥에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용서받을 기회를 너무나 필요로 했기에 스스로 자수했다. 케빈은 시영의 마지막 칼이 되어 자신의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인생을 끝내려 했다.하지만 그가 예상치 못한 것은 시영이가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시영은 생각했던 것처럼 평온하게 지내지 않았다. 시영은 화를 내며 케빈의 생각을 지적했고 죽으려는 케빈을 막아 나섰다.왜...자신은 이렇게 썩어빠진 존재인데 시영은 왜 여전히 자신을 살리려는 걸까. 혹시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 걸까......쿵-천둥소리가 울리며 시영은 악몽에서 깨어났다.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눈을 뜨자 케빈이 보였다.케빈이 돌아왔다.시영은 어둠 속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케빈은 떼어내려 했지만 끈질기게 시영에게 붙어있는 독종 같은 존재였다.케빈이가 떠난
몇 분 후, 케빈이 돌아왔다. 그는 문 앞에 서서 손을 내리고 있었다.시영은 말없이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가슴속의 공허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져감을 느꼈다. 시영은 케빈의 검은색 정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의 벗어.”케빈은 외투를 벗었다. 속에 입은 하얀 셔츠에는 이미 피가 배어 있었다. 그것은 어젯밤 채찍에 맞은 상처로 인해 생긴 것이었다. 물에 젖었고 치료하지 않아서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시영의 허락이 없었기에 케빈은 스스로 상처를 치료할 수 없었다. 셔츠를 벗을 때 피부가 당겨지면서 케빈의 이마가 잠시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는 한순간에 외투를 벗어던졌다.“이리 와.”시영은 발끝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케빈은 순종적으로 다가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시영은 의약 상자를 열고 알코올과 과산화수소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알코올을 집으려다 잠시 멈추고 과산화수소를 집어 들었다.차가운 액체가 상처에 닿는 순간 케빈은 본능적으로 이를 악물고 고통을 기다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시영이가 사용한 것은 알코올이 아니라 과산화수소였다. 상처에서 거품이 이는 것을 보며 케빈은 놀란 표정으로 시영을 한 번 쳐다보았다. 케빈은 그녀가 실수한 줄 알았다.“아가씨...”“닥쳐!”시영은 거칠게 상처를 소독한 후 가정의를 불러왔다. 그사이 시영은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가정의는 케빈의 몸에 종종 나타나는 상처에 익숙해졌지만 그의 조수인 청순한 소녀가 숨을 내쉬었다.“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다니,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을까요?”가정의는 그녀를 꾸짖었다. “헛소리하지 마.”소녀는 입을 삐쭉 내밀더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치료를 마친 후 방에서 나온 가정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곳에서 의사로 일하려면 벙어리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해. 알겠어?”“삼촌,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의사로서 환자를 걱정하는 게 뭐가 잘못이에요?”가정의는 소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넌 책만 봐서 바보가 된 거야. 어쨌든, 기억해. 말은 적게 하고 참견도 적
민지가 떠난 후 케빈은 문을 닫고 침실 앞으로 가서 두 번 두드렸다.“아가씨.”침실 안에서는 오랫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케빈은 다시 두드리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기분이 안 좋으니까 꺼져.”케빈은 팔의 상처를 내려다보며 방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시영은 이 보름 동안 채찍질을 제외하고는 케빈에게 모질게 대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무릎을 꿇는 케빈에게 뺨을 몇 대 때리는 정도였고 예전처럼 고문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케빈은 시영의 태도가 예전과 다름을 느꼈다. 그가 느낀 것은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한 번 버림받은 적이 있는 케빈은 이번이 두 번째 예고일까 봐 두려웠다.지난번 시영이가 그를 버리며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개처럼 말을 잘 듣네. 정말 재미없어.”시영이가 또다시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봐 너무 두려웠던 것이다.그래서 오늘 케빈은 시영의 명령을 일부러 조금 늦게 수행했고 그 결과 처벌을 받았다.고통이 밀려오는 순간 케빈은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하지만 케빈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시영이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영은 더 이상 상처로 그를 괴롭히는 데 흥미가 없었고 그더러 스스로 의사를 찾아가 치료하도록 했다.시영이가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이튿날.시영이가 회사에 가보기로 했기에 케빈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타려 했으나 시영이가 입을 열었다. “기사를 불렀으니 이만 돌아가.”케빈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전 아가씨의 안전을 지켜드려야 합니다.”시영은 비웃으며 말했다. “지금 누가 나를 해치겠어?”케빈은 말문이 막혔다. 시영의 현재 지위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해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케빈 역시 쓸모가 없어졌다.케빈은 그 자리에 서서 시영의 차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 오랜 시간 동안 케빈은 매일 시영과 함께 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자처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