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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이 대표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긴 제 여자 친구 서유라고 합니다.”

임태진의 당당한 소개에 서유는 멈칫했다.

서유는 한때 자기가 그렇게 바라던 호칭을 변태 임태진에게서 들을 줄은 몰랐다.

그녀가 원하는 남자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와인잔을 높이 들어 올릴 뿐이었다.

마치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듯이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이는 이승하에 임태진은 재빨리 서유의 턱을 들어 올렸다.

“이 대표님, 여기 좀 봐주세요. 연지유 씨와 닮지 않았나요?”

그는 오늘 동아 그룹과의 프로젝트 미팅에서 서유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연지유를 만났다.

알아보니 그 여자는 얼마 전 귀국한 이승하의 여자 연지유였다.

그는 급히 JS 그룹에 찾아가서 서유와 연지유의 닮은 얼굴을 빌어 이승하와 가까워졌다. 덕분에 오늘 이승하를 성공적으로 초대했다.

임태진은 이승하가 자존심을 굽히고 초대에 응했으니 이 기회를 잡아 서부 개발 프로젝트를 모두 따낼 생각이었다.

임태진의 말에 이승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도화살이 짙은 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잠시 살펴본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지유와 비교하지 마세요.”

그 말은 칼날처럼 서유의 심장을 찔러 피를 흘리게 했다.

“물론입니다. 어떻게 연지유 아씨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임태진은 그녀의 턱을 잡은 채 싸구려 물건을 보는 듯한 경멸스러운 눈빛을 하고서는 말했다.

“이 여자는 고아입니다. 아무런 권력도 집안 배경도 없죠. 연지유 아씨는 동아 그룹의 외동딸에, 좋은 머리로 명문 대학까지 나오셨는데 어떻게 이런 여자가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그녀가 어떻게 비교 상대가 될까?

이승하의 눈에 그녀는 그저 대체품일 뿐인데 진짜 주인과 비교할 수 있을까?

서유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장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임태진이 서유를 비하하는 말들은 모두 이승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승하는 모르는 척 임태진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릴 뿐이었다.

이승하가 이런 주제에 관심 없어 하는 것을 눈치챈 임태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서유를 끌어당겨 그의 맞은편에 앉혔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명품 슈트를 입은 남자가 갑자기 와인 한 병을 열어 서유에게 건넸다.

“서유 씨 술 마실 수 있어요?”

서유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모르는 남자가 주는 술을 받아 마시기에는 조금 꺼림직했다.

혹시 그가 술에 약이라도 탔다면 임태진이 조금 있다가 그녀를 마음대로 데리고 놀 것 같았다.

그녀가 머뭇거리자 남자는 갑자기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요. 약 안 탔으니까.”

부드러운 남자의 미소에 서유는 조금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는 와인잔을 건네받은 뒤 한 모금 입에 넣었지만 삼키기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남자 옆에 앉아 있던 여자 파트너는 그 모습을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임태진 씨, 만나는 여자들 수준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네요. 우리 연석 씨가 친절하게 술까지 따라줬는데 경계하면서 마시지도 않고. 이렇게 사람 무시해도 되는 거예요?”

여자가 말한 이연석은 이승하의 사촌이었다. 이연석도 바람둥이였지만 임태진처럼 변태는 아니었다.

서유는 이승하와 만나면서 한 번도 그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난 적이 없었다. 이연석을 오늘 처음 만난 것이었다.

서유는 이연석을 힐끔거렸다. 그는 이승하와 조금 닮은 것 같았지만 이승하처럼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었다.

옆에 앉은 여자는 서유가 자기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하는 말의 뜻은 너무나 뻔했다. 결국 이연석이 따라준 술을 다 마시라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분명 말속에 뼈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서유가 눈치껏 이연석에게 사과하고 술을 원샷한다면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서유도 당연히 말속의 뜻을 알아챘지만 임태진에게 한 말이라 굳이 명확하게 그녀에게 술을 마시라고 한 것은 아니었기에 모른척했다.

그 여자는 불쾌해하며 임태진에게 말했다.

“임태진 씨가 오늘 이 대표님을 만날 수 있는 건 모두 우리 연석 씨가 임태진 씨를 추천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 대표님을 만날 수도 없었을걸요? 그런데 프로젝트는 고사하고 임태진 씨 여자 친구분은 술도 안 마시나 봐요. 이런 분위기로 재밌게 놀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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