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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서유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연석은 슈트를 입었기에 재킷을 벗는다고 해도 안에 흰색 셔츠가 있었지만 그녀는 벗으면 바로 알몸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그녀가 옷을 벗길 기다리고 있는 듯했지만 그녀를 위해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임태진마저 기대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몸을 훑어 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이 자기를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얌전히 말을 들으면 그들은 놓아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반항한다면 이 방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서유는 고민 끝에 긴장감에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체면 따위를 신경 써서 뭐 할까.

그녀가 손을 올려 원피스의 지퍼를 풀려 하자 이연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게임을 잘못해서 서유 씨까지 고생하게 했네요. 이번에는 내가 서유 씨를 대신해서 벗을게요.”

이연석이 말을 마치고 하나 남은 흰 셔츠를 벗자 탄탄한 복근이 드러났다.

안희연은 이연석이 서유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체면조차 신경 쓰지 않으니 서유가 더욱 꼴 보기 싫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서는 서유를 째려봤지만 서유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이연석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이연석은 담담하게 손을 저었다.

모두가 이렇게 넘어가려 할 때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던 이승하가 갑자기 차갑게 한마디를 던졌다.

“게임을 했으면 룰을 지켜야지.”

그 말의 뜻은 이연석이 서유를 대신해 옷을 벗은 것에 불만이 있다는 것이다.

이연석은 오늘 밤 어딘가 조금 이상한 것 같은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분명 서유가 드레스만 입고 있어 그것을 벗으면 알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던 그가 왜 굳이 서유를 난감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상하긴 했지만 자신이 나서서 서유를 도왔으니 당연히 끝까지 도와야 했다.

“형 내가 서유 씨 대신 벗었잖아요. 벗은 벌칙은 받게 하지 말아요. 차라리 다른 벌칙을 받게 해요.”

임태진은 이 기회를 빌려 술잔을 건넸다.

“아니면 우리 서유가 이 대표님에게 술 한 잔 따라드리죠.”

사실 임태진은 서유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옷을 벗길 바랐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녀는 오늘 자기가 데려온 파트너였다. 모두에게 자기 여자 친구라고 소개한 여자가 옷을 벗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그의 체면을 깎는 것과도 같았다.

이연석이 빠르게 반응하며 임태진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요. 서유 씨가 벌칙으로 형한테 술 한 잔 따라줘요.

말을 마친 이연석은 서유에게 어서 이승하에게 술을 따라주라고 눈짓했다.

서유는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그가 동의하는지 아니면 반대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도통 그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용기를 내 테이블 위에 놓인 값비싼 와인을 들고 그의 앞으로 걸어가 허리를 굽혔다.

그녀가 와인병을 들어 그의 잔에 따르려고 할 때 갑자기 그가 손을 올려 와인잔을 막았다.

이승하는 서유의 얼굴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한마디를 뱉어냈다.

“더러워.”

서유는 순간 가슴이 답답하고 통증이 느껴져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손이 떨려와 와인병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옛정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고 오직 경멸만 담긴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이승하는 그녀가 임태진의 파트너로 왔기 때문에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가장 우스운 것은 그와 5년 동안 잠자리를 함께한 그녀를 더럽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서유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을 돌려 와인병을 임태진에게 건네주었다.

“임 대표님, 이 대표님은 제가 더러운가 봐요. 대표님이 저 대신 이 대표님께 술 따라 주세요.”

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임 대표님’이라고 부르자 임태진은 바로 심쿵했다.

그는 걱정하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귓가에 속삭였다.

“좋아, 내가 할게.”

그런 뒤 그녀의 손에서 와인병을 가지도 그녀 대신 이승하에게 술을 따랐다.

“이 대표님, 오해하지 마세요. 서유는 아가씨 출신이 아닙니다. 아주 깨끗해요.”

이승하가 비웃었다.

“그래요?”

그 비웃음은 완전히 서유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임태진은 조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이승하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상하게도 그는 왠지 이승하게 일부러 서유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는 이승하가 서유를 오해해 자기 프로젝트에까지 차질이 생길까 봐 걱정되어 다급하게 웃는 얼굴로 다시 설명했다.

“제가 다 확인했습니다. 완전히 순진합니다.”

와인잔을 들고 있던 이승하의 손이 갑자기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싸늘한 눈빛으로 임태진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확인했는데요?”

임태진은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다.

“당연히 잠자리에서 확인했죠. 아주 순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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