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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서유는 임태진이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이승하는 결벽증을 갖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절대로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가지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녀는 이승하에게 사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끝났다. 여기서 뭔가를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고민하는 동안 이승하는 갑자기 그녀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렇게 순수하면 와서 따르라고 해요.”

임태진은 이승하게 서유에게 기회를 주자 바로 와인병을 서유에게 건넸다.

“빨리 가 봐.”

화를 낼 줄 알았던 이승하가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없이 생각을 바꿔 그녀에게 술을 따르라고 했다.

서유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임태진의 재촉에 다시 와인병을 건네받은 뒤 허리를 굽혀 술을 따르려고 했다.

술을 따르기도 전에 그는 또다시 손마디가 굵은 손을 들어 올려 와인잔을 막았다.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릎 꿇고 따라.”

이제 임태진은 이승하가 서유를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이승하가 왜 서유를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일까?

서유는 그 한마디를 듣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보고 무릎을 꿇은 채 술을 따르라는 것인가?

그녀가 그의 애인을 한 건 맞았지만 그의 모든 명령을 따르는 하녀 노릇을 한 건 아니었다.

서유는 다시 허리를 세우며 이승하에게 말했다.

“이 대표님께 제가 실수라도 했나요? 제가 눈에 거슬리시는 거라면 지금 바로 꺼져 드리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와인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가방을 들고 몸을 돌렸다.

임태진이 그녀를 잡았다.

“왜 이렇게 눈치 없이 굴어. 이 대표님이 널 눈에 거슬려 하셔도 너는 대표님께 실수하면 안 되지.”

그는 아직 프로젝트를 얘기해야 했다. 서유 때문에 그의 서부 개발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는 좋은 말로 서유를 달랬지만 기어이 가겠다고 고집하는 서유를 차가운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서유만 들리게 협박했다.

“잊지 마, 네 친구를.”

서유는 순간 이성을 되찾았다. 그녀는 이승하의 핑계로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임태진은 프로젝트를 위해 서유에게 이승하의 비위를 맞추라고 강요했다. 심지어 정가혜를 들먹이며 그녀를 협박하자 서유는 더 화가 났다.

하지만 정가혜까지 힘들게 할 수는 없어 그녀는 몸을 돌려 결국 다시 와인병을 들고 이승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무릎을 꿇는 순간 안희연이 가장 좋아하며 웃었다. 이어서 이연석은 눈살을 찌푸렸고 임태진은 바로 가슴 아픈 척 표정을 연기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좋은 구경을 하는 표정이었다.

오직 이승하만이 그녀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마치 생사 대권이라도 손에 넣은 왕처럼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서유는 수백 번의 낮과 반이 떠올랐지만 갑자기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품위를 지키며 이 자리를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렇게 자존심을 내려놓으며 이승하의 비위를 맞출 줄은 몰랐다.

혹시 신분 차이 때문일까? 그녀는 5년이나 그의 애인이었지만 이렇게 그의 발아래 무릎 꿇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몇 달만 있으면 죽을 운명이었다. 조금만 버티면 금방 지나갈 것이다.

서유는 곧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차분했다.

이승하의 긴 손가락으로 와인잔을 가져갔다.

서유는 그가 바로 마셔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와인잔을 높이 들더니 그녀의 머리 위에서 천천히 부었다.

와인은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타고 창백한 얼굴에 떨어졌다. 연약한 목선을 따라 얇은 드레스를 물들였다...

손등에 와인이 떨어지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차갑고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경멸하듯 바라보았다.

“비천한 년.”

서늘한 그의 목소리에 서유는 온몸이 멈출 수 없이 떨렸다.

그녀는 손을 움켜쥐며 이를 악문 채 이승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승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손수건을 꺼내 방금 그녀의 손에서 와인잔을 건네받을 때 닿은 손을 닦았다.

그 행동을 지켜보는 서유는 가슴에 또다시 칼이 꽂히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술을 붓는 것과 비천하고 더럽다며 그녀를 욕하는 것 모두 그가 하는 복수였다.

서유는 그에게 정말 한마디 묻고 싶었다. 두 사람은 이미 끝난 사이인데 그녀가 더럽든 말든 그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입 밖으로 뱉을 용기가 없었다. 그녀가 아직 임태진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또다시 이승하를 화나게 하면 그녀의 목숨이 9개라도 그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이승하는 깨끗이 손을 닦은 뒤 손수건을 바닥에 던지며 몸을 일으켰다.

방 안에 있던 보디가드 절반이 이승하가 떠나는 것을 보고 재빨리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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