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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그는 로얄 블루 컬러의 셔츠에 같은 컬러의 코트를 입고 있어 멀리서도 큰 키에 아우라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금테 안경 아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유치함은 이미 사라지고 깨끗하면서도 성숙한 느낌만이 남아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났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아주 평온했고 아무런 감정변화도 없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올리며 그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여기입니다.”

남자는 인파 속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더니 숨이 멎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사람들을 이끌고 서울로 출장을 온 이유는 서부 부지 입찰을 위해서였다.

태안 그룹 사람들에게 자기가 왔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사람까지 보내 마중을 오다니, 거기에 식사까지 준비할 줄은 몰랐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하지만 자기를 마중 나온 사람이 서유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는 몇 초 동안 멈칫하더니 다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사람들을 이끌고 서유에게로 다가갔다.

187센치가 넘는 남자가 그녀의 앞에 서니 그녀보다 머리 하나는 더 높은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서유 씨, 오랜만입니다.”

서유 씨라는 한마디에 어렸을 적 두 사람의 감정은 완전히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다.

서유는 차갑게 웃으며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김 대표님,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 한마디를 던지고서는 뒤로 돌았다. 그녀는 싸늘한 표정으로 구두를 또각거리며 지하 주차장 방향으로 걸어갔다.

뒤따라가던 남자는 그녀의 불쾌한 표정을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긴 다리를 움직여 재빨리 서유에게 다가갔다.

“서유 씨, 아직도 나한테 화났어요?”

서유는 그 말을 듣고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쪽에게 화를 내겠어요?”

김시후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사과했다.

“미안해요, 서유 씨. 난 기억을 잃었어요. 정말 서유 씨가 기억나지 않아요. 그래서 5년 전에 그렇게 서유 씨를 대한 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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