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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간단한 소개와 인사말을 마친 연지유가 이승하의 팔짱을 끼고 허민과 함께 대표님 사무실로 걸어갔다.

원영은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부러워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부임한 첫날부터 이 대표님께서 직접 데려다주시는 거 봐요. 설마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대표님의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뭐 그런 건가요?”

최민지가 그녀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혀를 끌끌 찼다.

“이 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지 모르시나 봐요? 귀국하자마자 대표님 자리부터 꿰찼으니 이온 인터내셔널의 주주들이 다들 옳다구나 하고 가만히 있겠어요? 선임 된 첫날부터 이 대표님께서 직접 데려다주시는 건 주주들에게 연 대표님 뒤엔 JS 그룹이 받쳐주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죠!”

부러움이 한도치를 넘은 원영이 턱을 받치고 중얼거렸다.

“이렇게나 빨리 여신님을 위해 앞날 걱정까지 다 해주시다니. 정말 로맨티시스트가 따로 없네요.”

최민지도 부러움에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이 사장님 딸만 아니었다면 서울에서 권력을 주름잡는 남자의 눈에 들기나 했겠어요?”

하지만 원영은 동의하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연 대표님은 이미 아주 훌륭하세요. 학력도 높지 얼굴도 예쁘지… 그러고 보니까 얼굴이 약간…”

원영이 서유를 바라봤다.

“서유 씨랑 닮았는데요…?”

최민지가 바싹 다가와 서유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어머 웬일이래. 정말 닮은 거 같은데요? 하지만 저는 서유 씨가 더 예쁘다고 생각해요.”

“장난 그만 쳐요.”

창백한 얼굴로 한마디 하고 나서 서유는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곧 쓰러질 듯이 연약해 보이는 뒷모습을 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원영이 물었다.

“서유 씨 무슨 일 있는 걸까요?”

최민지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마도 연 대표님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대표님의 운명을 가지지 못해서 질투 났나 봐요.”

원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항상 앞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달랐던 최민지였으니 더는 얘기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서유는 빠르게 심장의 통증을 억제하는 약을 꺼내 물도 없이 삼켜버렸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르고 나서야 그녀는 물을 틀어 얼굴을 씻어내고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

병은 그녀의 얼굴을 핼쑥하고 창백하게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연지유는…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화장실 문을 열고 연지유가 구두를 또각거리며 걸어들어왔다.

매끄러운 하얀 피부, 발그레한 볼. 온몸에서 고귀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필이면 학력도 높아 아름다움과 지성을 겸비한 여자라 서유는 영원히 비길 수 없는 존재였다.

연지유와 눈이 마주친 순간 비참한 마음이 들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휴지를 허둥지둥 꺼내 손을 닦으며 빨리 나가려는 순간.

“잠시만요.”

연지유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심장이 불안하게 쿵쿵 뛰었는데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왔다.

대체품으로 살았던 피해자는 자신인데 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연지유 앞에서 이토록 숨고 싶은 걸까?

연지유는 그녀 앞으로 다가와 상냥하게 웃었다.

“당신은 대표님 사무실의 비서죠?”

속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가까스로 마음을 타이르며 고개를 숙인 채 끄덕였다.

“네.”

연지유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반 시간 뒤면 주주대회가 열려요. 대표 사무실로 커피 한 잔 부탁해도 될까요? 잠 좀 깨고 싶네요.”

대표님 사무실엔 아직 이승하가 남아 있어서 서유는 많이 꺼려졌다.

하지만 우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커피를 다 타면 원영이나 민지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연지유는 ‘고마워요.’라고 말하곤 허리를 곧게 펴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그곳을 나갔다.

그녀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화려한 한 마리의 아름다운 새처럼 비쳤는데 서유와 너무 명백하게 대조됐다.

병에 걸린 서유는 마치 연지유의 모조품 같아 보였다.

제자리에 멈춰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서유는 기분을 추스르고 화장실에서 나와 곧장 탕비실로 향했다.

이사장님의 취향에 따라 연지유를 위한 커피를 탄 후, 동료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그녀들은 이미 회의실을 준비하는 데 불려가고 없었다.

결국 스스로 갈 수밖에 없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연지유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아주 난감할 것임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기에 용기를 북돋아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린 순간,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이승하의 다리 위에 앉아 있는 연지유의 모습이었다.

비록 몇 번이고 마음을 먹었지만 눈앞의 광경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커피를 든 손이 떨려왔다.

두 사람이 뭔가 눈치챌까 봐 겁이 난 그녀는 얼른 눈을 내리깔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말했다.

“연 대표님, 커피 준비했습니다.”

연지유는 약간 창피한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 거기에 놓아주세요.”

서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얼른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이승하를 한 번 바라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대표님 사무실에서 나오니 다리가 후들거려 벽을 짚고서 한동안 마음을 추슬렀다.

사무실 안에서 둘은 아무런 행각도 벌이지 않았지만 서유의 머릿속엔 뜨겁게 엉겨 붙은 두 사람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존재는 다만 살아있는 대체품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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