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다 입은 뒤 고시연은 고개를 숙이고 얌전히 윤구주의 곁에 섰다.예전의 거만하던 고씨 일가 셋째 아가씨는 지금 윤구주의 앞에서 종과 다름없었다.“고씨 일가가 어디 있는지 얘기해 봐.”윤구주가 물었다.“고씨 일가는 남릉에 있습니다.”고시연은 솔직히 대답했다.“좋아. 남릉에 한 번 가야겠어.”...백화궁.윤구주가 고시연을 상대하러 갔을 때 연규비와 백경재 등은 룸살롱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세 명의 사람이 백화궁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남자는 훤칠했고 여자는 아름다웠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은 초췌했다. 그녀는 마치 종처럼 묵묵히 남자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두 사람은 다름 아닌 윤구주와 고시연이었다.그리고 두 사람의 뒤에는 그들을 뒤따르고 있는 시괴거인 동산이 있었다.세 사람이 돌아오자 입구에 있던 연규비와 백경재 등 사람들은 서둘러 그들을 맞이하러 갔다.“구주야, 드디어 돌아왔네? 응? 이 미녀는 누구야?”연규비는 윤구주의 뒤에 고시연이 있는 걸 발견하고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백경재와 다른 백화궁 여자들은 고시연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다들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이쪽은 고씨 일가 셋째 딸이야.”윤구주가 덤덤히 말했다.‘뭐라고? 고씨 일가 셋째 딸?’연규비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시 고시연을 자세히 살피다가 그제야 그녀를 알아보았다.“정말 고씨 일가 셋째 아가씨네! 구주야, 고씨 일가 셋째 아가씨는 왜 데려온 거야?”윤구주가 대답했다.“이젠 내 종이거든!”종이라는 말에 연규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개를 들자 항상 거만하던 고시연이 고개를 숙이고 마치 진짜 종처럼 윤구주의 곁에 서 있는 게 보였다.“역시 저하는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빨리 고씨 일가 셋째 아가씨를 굴복시킬 줄은 몰랐어요!”옆에 있던 백경재가 웃으면서 말했다.“됐고 규비야, 이 여자는 일단 너한테 맡길게. 난 채은이를 보러 가야 해서 말이야.”윤구주는 말을 마친 뒤 고시연을 신경 쓰지 않고 곧장 백
‘어?’“외출하려고? 어디 가는데?”소채은이 서둘러 물었다.“남릉!”윤구주가 대답했다.남릉은 서남에서 가장 큰 공업화 도시였다.서남의 다섯 개 도 중, 남릉은 서남의 가장 중요한 도시이자 서남의 경제 중심이기도 했다.그런데 윤구주가 남릉에 간다고 하자 소채은은 서둘러 물었다.“구주야, 왜 갑자기 남릉에 간다는 거야?”“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있거든.”윤구주는 소채은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 간단히 대답했다.“그런데 가서 얼마나 오래 있을 거야? 언제 돌아올 거야?”소채은은 미련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걱정하지 마. 일 금방 끝날 거야. 일 끝나면 바로 돌아와서 너랑 같이 있을게.”윤구주는 소채은의 손을 잡았다.소채은은 비록 미련이 가득했지만 윤구주에게 볼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했다.“알겠어. 어쨌든 빨리 돌아와야 해.”“응, 걱정하지 마.”윤구주는 말을 마친 뒤 소채은을 품에 꼭 안았다.윤구주는 남릉 고씨 일가로 가보기로 마음먹고 그 일을 연규비와 백경재에게 알렸다.연규비는 남릉 고씨 일가에 봉안보리구슬이라는 귀한 보물이 있다는 걸 알고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구주야, 그 봉안보리구슬이 정말 천년초 하나와 맞먹을 수 있는 거야?”“응! 봉안보리구슬은 음기와 한기를 타고난 보물이야. 비록 한 개로는 천년초만큼의 한기는 없지만 숫자가 많아지면 천년초 하나와 맞먹을 수 있어.”윤구주가 말했다.“정말 잘됐네! 네 말대로 고씨 일가에서 봉안보리구슬을 얻을 수 있다면 천년초 두 개를 가진 셈이잖아?”연규비가 말했다.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의 말대로였다. 만약 고씨 일가의 봉안보리구슬을 팔찌를 얻는다면, 천년초 하나만 더 얻으면 실력이 전성기일 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실력이 전성기일 때로 돌아간다면 윤구주는 체내의 기린화독을 제거하고 소채은의 고독을 치료해 줄 수 있었다.“그렇다면 지금 당장 출발해서 고씨 일가를 찾아가자.”연규비가 흥분해서 말했다.그런데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규비야, 이번에 너랑 백
윤구주는 시괴 거인 동산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다.이곳에서 남릉까지 가려면 적어도 몇백 킬로미터는 가야 했다.그래서 윤구주는 KTX로 갈 생각이었다.연규비는 그를 위해 차를 준비해 줄 생각이었는데 윤구주가 필요 없다고 했다.KTX가 더 빠르고 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구주는 고시연과 동산을 데리고 역으로 향했다.역에 도착한 뒤 신분증이 없는 시괴 동산을 위해 윤구주는 손을 써서 동산이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갈 수 있게 해줬다.그와 고시연은 따로 티켓을 두 장 샀다.백 년 무도 세가인 고씨 일가의 셋째 아가씨로서 고시연은 어디로 가든 항상 비싼 차를 탔었다.그래서 KTX를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녀는 비록 불만스러웠지만 윤구주가 두려워서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티켓을 사고 역 안으로 들어가서 차를 기다렸다.남릉으로 향하는 KTX가 도착한 뒤 윤구주와 고시연은 차에 탔다.그들은 비즈니스석 제일 앞줄 티켓을 샀다.그들이 차에 오르고 난 뒤 차가 출발했다.KTX는 아주 빨랐다. 이곳에서부터 남릉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다.그래서 윤구주는 차에 앉은 뒤 봉안보리구슬을 꺼내서 손에 쥐고 놀았다.고시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옆에 앉아서 이따금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몰래 살필 뿐이었다.윤구주의 잘생긴 얼굴을 본 순간, 고시연은 저도 모르게 살짝 가슴이 설렜다.그것은 그를 난 뒤로 고시연이 처음으로 윤구주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는 것이었다.단정한 눈썹과 반짝이는 눈, 그리고 잘생긴 이목구비까지.게다가 왕의 기세까지 느껴지니 고시연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잘생겼다며 감탄했다.‘그런데 왜 우리 할아버지가 준 내 봉안보리구슬을 가지려는 거지? 설마 이 구슬이 그에게 무슨 효과가 있는 걸까?’고시연은 속으로 짐작했다.KTX는 빠르게 달렸다.그동안 윤구주는 고시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고시연은 자신의 미모라면 그 어떤 남자라도 충분히 유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윤구주는 가는 길 내내 고시연을 무시했다.그렇게 그들은 곧 남릉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려 역에서 나왔다.사람들이 북적대는 남릉역 입구에 선 윤구주는 먼 곳에 있는 높은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드디어 도착했네.”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고시연을 바라보았다.“남릉에서 고씨 일가가 가장 강한가?”“네.”고시연은 솔직히 대답했다.“아주 좋아. 그러면 일단 밥부터 먹어야겠으니 안내해 봐.”윤구주는 마치 하인에게 명령하듯 옆에 있는 고시연에게 말했다.금안화련 낙인이 몸에 남은 고시연은 당연히 거역하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뭘 먹고 싶은데요?”“아무거나.”고시연은 감히 더 물을 수 없었다.문 앞에서 택시를 하나 잡아서 탄 뒤 고시연은 윤구주를 데리고 밥 먹으러 갔다.남릉은 고씨 일가의 구역이었기에 고시연은 이곳이 너무도 익숙했다.곧 고시연은 윤구주를 데리고 남릉에서 가장 유명한 은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은월 레스토랑은 남릉에서 굉장히 유명했고 재벌들이나 재계 거물이 손님을 대접하거나 외식을 할 때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그래서 고시연은 윤구주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은월 레스토랑이 있는 건물은 팔각 건물로 기세가 웅장했다.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레스토랑 밖의 주차장에 많은 비싼 차들이 있는 게 보였다.“이곳이 만족스러운가요?”고시연은 두려운 얼굴로 윤구주에게 물었다.윤구주는 건물을 슬쩍 보며 말했다.“괜찮네.”“그러면 지금 당장 가서 준비할게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곧장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고 윤구주와 동산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문 앞에 있던 직원이 빠르게 그들을 맞이했다.고시연이 직원에게 몇 마디 하자 직원은 곧바로 안색이 달라지더니 아주 정중한 태도로 그들을 은월 레스토랑에서 가장 좋은 위치로 안내했다.자리에 도착해서 앉은 뒤 고시연은 잘 나가는 요리를 몇 개 주문한 뒤 윤구주에게 메뉴판을 보여주려고 했다.그런데 윤구주는 손을 저었다.“필요 없어. 네가 알아서
안 대가는 싱긋 웃었다.“전동규 씨가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이 일은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용호산의 천암사는 줄곧 고씨 일가와 사이가 좋았으니 말입니다.”눈앞의 안 대가가 웃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 대가님!”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온 뒤 진동규는 곧바로 안 대가를 대접하기 위해 최고의 자리로 안내해달라고 직원에게 말했다.안 대가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고시연을 보았다‘어?’“저 사람은...”고시연을 본 그는 흠칫했다.“안 대가님, 왜 그러십니까?”옆에 있던 전동규는 안 대가의 반응을 보더니 궁금한 듯 물었다.안 대가는 고시연을 찬찬히 살피다가 말했다.“저분은 존귀한 고씨 일가의 셋째 아가씨인데 왜 여기 계시는 걸까요?”전동규는 고씨 일가 셋째 아가씨라는 말에 곧바로 흥분해서 황급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정말로 셋째 아가씨군요!”안 대가는 고시연을 알아보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르게 윤구주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전씨 일가의 전동규도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갔다.“용호산 천암사 안경언, 셋째 아가씨를 뵙습니다.”안경언은 고시연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 뒤 곧바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고시연은 이 레스토랑에서 천암사 사람을 만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서 윤구주를 힐끗 보았다윤구주가 귀찮아서 시선 한 번 들지 않자 그녀도 말하지 못했다.“셋째 아가씨, 절 잊으신 겁니까? 전 천암사의 안경언입니다. 작년에 고씨 일가에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안경언은 고시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계속해 말했다.고시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아름다운 눈동자로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볼 뿐이었다.안경언은 똑똑한 사람이었기에 고시연의 표정을 보고 저도 모르게 윤구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셋째 아가씨, 이분은 누굽니까?”그가 말하자마자 윤구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비켜. 나 밥 먹는 데 방해하지 말고.”윤구
안경언과 전동규는 레스토랑에서 쫓겨났다. 천암사에서 온 안경언은 침울한 얼굴로 밖에 서서 중얼거렸다.“이상해. 정말 이상하단 말이지.”“안 대가님, 뭐가 이상하단 말입니까?”전동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안경언은 은월 레스토랑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셋째 아가씨께서 오늘 너무 이상한 것 같습니다.”“무슨 뜻이죠?”“제가 기억하기론 고시연 아가씨는 절대 오늘처럼 우물쭈물하는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계속 맞은편에 있는 청년의 눈치를 살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전 고시연 아가씨가 그 청년에게 협박당하고 있다고 확신해요.”“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무려 고씨 집안의 고시연 아가씨가 아닙니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 아니라면 어떻게 감히 고시연 아가씨를 협박하겠습니까?”전동규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고시연 아가씨께 분명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 장담해요.”안경언은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레스토랑을 다시 바라봤다.“전동규 씨, 지금 당장 사람을 데리고 고씨 일가로 가서 오늘 있었던 일을 고씨 일가 가주님께 전부 얘기하세요.”안경언이 전동규에게 명령을 내렸다.“네, 지금 당장 가보겠습니다.”전동규는 그 말을 듣더니 서둘러 부하 몇 명을 데리고 고씨 일가로 향했다.전동규가 떠난 뒤 용호산에서 온 안경언이 눈빛을 번뜩이며 살기를 드러냈다.“이 자식, 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감히 고시연 아가씨를 위협하는 거야?”레스토랑 안.윤구주와 고시연은 간단히 식사한 뒤 떠났다.레스토랑에서 나온 뒤 윤구주는 고시연에게 묵을 곳을 준비하라고 했다.고시연은 당연하게도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빠르게 윤구주를 위해 호텔을 예약했다.호텔 예약을 마친 뒤 고시연은 윤구주를 데리고 호텔로 향했다.거리가 비교적 가까웠기에 그들은 걸어서 갔다.그들이 앞에 있는 교차로를 돌아서 모퉁이 골목에 도착했을 때, 윤구주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호통을 쳤다.“쥐새끼처럼 따라다니지 말고 지금
용호산의 안경언을 쫓은 뒤 윤구주는 계속해 전진했다.조금 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윤구주는 고시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마치 그녀가 공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곧 윤구주는 고시연의 안내에 따라 호텔에 도착했다.고시연이 윤구주를 위해 예약한 것은 스위트룸이었다. 그 스위트룸은 아주 크고 안에 없는 게 없었다. 심지어 서남에서 유명한 소금물 온천도 있었다.윤구주는 안으로 들어간 뒤 방 안을 쓱 둘러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고시연은 겁먹은 얼굴로 옆에 서 있었다.“오늘 네가 한 일 모두 만족스러워. 이제 가서 물 받아.”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네? 뭐라고요?”고시연은 당황했다.“온천물에 몸담고 싶어. 물을 안 받으면 어떻게 온천에 몸을 담가?”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에 고시연은 어이가 없었다.그녀에게 온천물을 받아달라고 하다니.그녀는 무려 고씨 일가의 셋째 아가씨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하인이나 할 법한 일을 한단 말인가?하지만 윤구주가 자신의 목숨을 장악하고 있다는 걸 떠올린 고시연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순순히 물을 받으러 갔다.콸콸콸...곧 고시연은 욕조 안에 온천물을 가득 받았다.그리고 난 뒤 윤구주는 곧장 옷을 벗고 온천에 몸을 담을 준비를 했다.고시연은 그가 자신의 앞에서 옷을 벗자 말문이 막혔다. 그러더니 서둘러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면서 속으로 욕했다.‘젠장, 젠장! 이 마귀, 감히 내 앞에서 옷을 벗어? 아아아아!’고시연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그러나 자신의 체내에 금안화련 낙인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결국 참았다.윤구주는 고시연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마치 고시연이 공기인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툭툭.윤구주가 옷을 벗고 있을 때, 눈을 가리고 있던 고시연은 윤구주의 옷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자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살짝 벌리면서 손 틈 사이로 윤구주를 몰래 힐끔댔다.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고, 윤구주가 너무 잘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고시연
윤구주의 말에 고시연은 너무 무안했다.당당한 고씨 일가 셋째 아가씨인 고시연이 몰래 낯선 남자의 몸을 훔쳐보다니, 게다가 더욱 중요한 건 상대방에게 들켰다는 점이었다.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고시연이 뻘쭘해하고 있을 때 윤구주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뭘 넋 놓고 있어? 이리 와서 내 등이나 밀어.”고시연은 어이가 없었다.윤구주는 정말로 그녀를 종으로 여기는 듯했다.그녀에게 그의 등을 닦으라고 하다니.비록 무척 화가 났지만 그녀의 체내에는 금안화련 낙인이 있었고, 또 윤구주의 완벽한 몸매까지 떠올린 고시연은 결국 짧게 대답하며 그에게 다가갔다.완벽한 남자를 위해 등을 밀어주는 것이니 손해 볼 것도 없었다.고시연은 그렇게 생각했다.욕조 안, 윤구주는 상의를 탈의한 채 그 안에 누웠다.그의 등에는 눈에 띄는 용 머리가 그려져 있어 시각적인 충격이 컸다.고시연은 다가간 뒤 조심스럽게 쭈그리고 앉아서 옆에 놓인 흰색 타월을 들고 마치 종처럼 윤구주의 등을 닦기 시작했다.윤구주는 편안하게 누워있었고 고시연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타월이 그의 피부를 조금씩 스쳤다. 고시연은 심장이 쿵쾅댔다.‘세상에!’그녀는 고씨 일가 셋째 아가씨로서 처음으로 낯선 남자의 등을 닦아줬다.심지어 화진의 4대 가문 출신인 그녀의 약혼자도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시간은 1분 1초 흘렀다.윤구주는 그렇게 편안하게 누워있었고 그의 뒤에 있는 고시연은 열심히 윤구주의 등을 닦아주고 어깨를 주물러줬다.고시연이 힘들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때 윤구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오늘 네가 종으로서 한 일에 난 아주 만족스러워.”윤구주의 어깨를 주물러주던 고시연은 그 말을 듣더니 말했다.“그러면 전 언제 풀어줄 거예요?”“이제 가 봐.”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뭐라고?’“절 풀어주겠다고요?”고시연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아름다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맞아. 이제 가보도 돼. 하지만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