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가득하던 엄선우의 표정이 더욱 심상치 않아졌다.“준명 씨가 집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어.”그는 핸드폰을 걸어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서준명은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술집은 그와 엄선희 두 사람만 알고 있는 곳이었다.엄선희와 서준명이 첫 키스를 나눈 곳이기도 했다. 남자의 갑작스러운 키스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줬고 바로 이 위의 스위트룸에서 엄선희를 서준명의 여자로 만들었던 것이다,그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엄선희가 빨간 토마토처럼 부끄러워했던 모습을.그녀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아무것도 몰랐다. 처음에는 흐느끼다가 나중에는 낑낑거리다가 또 나중에는 두 팔로 그를 끌어안은 채 헝클어진 머리를 그의 목에 기대며 선포했다.“준명 씨, 준명 씨는 앞으로 내 거야! 내 거라고!”서준명이 웃으며 말했다.“당돌하네요!”엄선희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네, 저 당돌해요!”“아까 낑낑거릴 때는 당돌한 모습이 하나도 없던 데요!”서준명이 피식거리며 비웃었다.“미워요! 비웃지 마세요, 준명 씨는 그럴 권리 없어요, 앞으로 저만 준명 씨를 비웃을 수 있어요, 준명 씨는 뭐든 제 말을 들어야 하고 돈을 벌어 꽃을 사줘야 하고요, 밥도 해먹여야 해요, 옷도 씻어주고, 그리고...”“그리고 침대에서...”“준... 준명 씨 왜 이렇게 나빠요!”엄선희의 볼은 또다시 새빨개져서 토마토가 되어있었다.“선희 씨야말로 나쁜 사람이에요, 작은 악마!”서준명은 사랑 가득한 목소리로 엄선희를 불렀다.지금 이 순간, 이미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서준명은 술병을 끌어안고 부드럽게 웃으며 소리 질렀다.“작은 악마, 작은 악마, 작은 악마...”이렇게 외치던 그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다 큰 성인 남자가 술집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슬프기 그지없었다.“내가 바로 당신의 작은 악마에요, 저 좀 봐요, 준명 씨, 내가 바로 작은 악마잖아요.”마주 앉아있던 여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고 그녀는 그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잠들었는지 얼마나 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깨어났을 때 해는 밝았고 바깥의 햇빛은 따뜻할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자 허름한 단층집이었다.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둘러보니 작은 집이었지만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크기만 작을 뿐.하지만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침대 옆 캐비닛에는 신선한 꽃이 놓여 있어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꽃들을 보며 몇 초 동안 정신을 차리던 서준명은 갑자기 무언가 깨닫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제야 자신이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아무것도 안 입었잖아!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머리를 제외한 모든 곳이 알몸이었다.어떡해!순간, 서준명의 뇌는 정지하는 것 같았다.이때 문이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미루나는 물 한 대야를 들고 들어왔다.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는 서준명을 보며 그녀는 잠깐 당황해하더니 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그녀의 목소리는 쉬어있었다.“일어났어요? 머리는 안 아파요? 따뜻한 물 좀 받아왔어요, 움직이지 마세요, 제가 씻겨드릴게요.”서준명은 말문이 막혔다.“......”서준명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미루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수건을 쥐어짰다. 그러고는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자연스러운 손길로 서준명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서준명은 침묵에 잠겼다.“......”그는 벙어리가 된 것만 같았고 그저 멍 때리기만 했다! 할 줄 아는 게 멍 때리는 것 밖에 없었다!그는 심지어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미루나는 그의 이마며 얼굴이나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다정하고 부드럽게 서준명을 보살폈다. 얼굴까지 닦은 뒤 그녀는 한 손으로 서준명의 팔을 들어 겨드랑이를 닦아주었다.그는 몸이 건장한 남자였기에 겨드랑이 밑의 땀샘이 발달해있었다. 그의 겨드랑이를 닦아줄 때 그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졌지만 여전히 열심히 닦아주었다.그다음은 가슴과 등을 닦아주었다.그러고는 이불을 젖혀 그의 아래 몸을 닦았다.그녀의 얼굴은 아까보다
“난 아내가 있어! 내 아내가 죽었더라도 나는 아내와 저승에 함께 갈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당신은 왜 이렇게 비천해? 왜 이렇게 비천하냐고! 내가 당신이랑 자고 나면 데리고 살면서 보호해 주고 애인으로 여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죽어버려!”서준명은 발을 드니 또 발길질을 하고 싶었다.그냥 죽여버릴까?이 빌어먹을 여자를 발로 차서 죽여버리고 나면 그는 자수를 할 생각이었다, 즉시 사형을 집행했으면 하는 바였다.그렇게 되며 그도 해방이니까!발을 드는 순간, 문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루나야, 안에 있어? 너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서 그러는데 괜찮아? 무슨 일인데 그래, 괜찮아?”여자의 목소리였다.미루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괜... 해영 언니, 저... 저 괜찮아요, 세숫대야가 떨어진 소리예요, 전 괜찮으니 들어올 필요 없어요. 제가 지금 옷을 갈아입고 있어서 조금 불편하거든요.”“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나 불러, 난 아침 좀 먹고 올게.”“네, 해영 언니, 고마워요.”미루나는 힘겹게 문틈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았다. 옆집 이웃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허약한 눈빛으로 서준명을 바라보았다.“서씨 도련님, 저는... 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저는 도련님을 정말 사랑해요,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는걸요. 지금 저를 때려죽인다 해도 저는 기뻐요, 정말 정말 기뻐요. 서씨 도련님은 제가 지금 얼마나 기쁜지 모를 거예요, 도련님은 모르겠지만 저는 맞아죽어도 도련님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화를 내지 마세요, 그러면 몸이 상해요.”미루나는 서준명의 발을 향해 기어가더니 그의 발을 끌어안았다.그녀가 서준명을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평생 모신 신을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서준명은 말문이 막혔다.“......”“당신 혹시 마조히스트야?”그는 이미 화가 많이 나있었다.“아니에요, 도련님, 저는 진짜 도련님을 사랑하는 것뿐이에요.”“하지만 난 내 아내만 사랑해, 내 아내만 사랑한
미루나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전 괜찮아요, 아프지도 않고 정말 괜찮아요.”서준명은 미루나를 매섭게 노려보다가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리려고 했다. 그녀에게 손이 닿으려던 순간 자신이 옷을 입지 않았다는 걸 발견한 그는 다시 벌떡 일어나더니 화가 나 방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개자식! 나쁜 놈! 서준명 너는 정말 개자식이야!”그의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이, 이렇게 자해하지 말아요, 준명 씨. 준명 씨, 자해하면 안 돼요,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해요.”미루나는 서준명의 다리를 껴안고 애원했다.더 이상 주먹을 휘두르지 않자 그녀는 황급히 말했다.“저... 제가 나가서 옷을 가져다 드릴 게요, 나가서...”그녀는 일어나고 싶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힘겹게 문 손잡이를 한참 동안이나 잡아당겨서야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서도 잊지 않고 고개를 돌려 서준명을 바라보며 웃었다.“도련님... 일단 침대에 누우세요, 얼른 누워서 이불도 덮어요.”서준명은 침묵에 잠겼다.“......”그는 정말 화가 나서 폭발할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이 여자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미루나는 기어서 밖으로 나가 벽을 짚고 조금씩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며 밖에 넣어놓은 옷을 가지러 갔다.양복, 정장 바지, 셔츠, 넥타이, 그리고 속옷.서준명은 어젯밤 토해서 괜찮은 옷이 하나도 없었다.그녀는 서준명을 침대에 눕히고 힘들어 바닥에 앉아서는 그를 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저를 그렇게 그리워한다면서 왜 아직도 살이 안 빠진 거예요, 당신을 부축하는 건 여전히 힘드네요! 하마터면 손목이 부러질 뻔했어요, 당신이야말로 양심도 없는 사람이지!”말을 이어가던 미루나는 갑자기 서준명이 누워있는 침대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준명 씨, 당신이... 당신이 나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른 여자와 재혼해서 잘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저도 이렇게까지 당신을 그리워하고 매달리지 않아도 됐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서준명의 모습에 미루다는 그만 참지 못하고 행복한 웃음을 지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이불로 자기의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하지만 서준명은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당신, 아직도 입에서 피 나요!” 그의 말투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별일 아니에요.” 미루나는 연거푸 말을 쏟아내더니, 잠시 멈칫했다. 곧이어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날 믿어 줘요. 어제는 그냥 준명 씨 옷만 바꿔줬을 뿐이에요. 나,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취했는데 무슨 짓을 하겠어요. 나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준명 씨를 더럽히지 않았어요.”“알아요!” 그 말에 서준명은 차갑게 말했다. “아니라면 당신도 이렇게 살아있지 못했을 거예요!”“헤헤헤.” 미루나가 웃었다.서준명은 빠르게 옷을 입더니 허리를 숙여 미루나를 단번에 안아 올렸다.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미루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러지 말아요. 사람들이 다 쳐다봐요. 나… 준명 씨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지금쯤이면 사람들도 다 출근했을 거예요. 9시 넘도록 기다렸다가 사람들 없을 때 그때 나가요. 그럼 아무도 못 볼 거예요.”그 말에 서준명은 조금 멍해졌다. “내 걱정도 할 줄 아네요?”“당연하죠. 난 꼭 준명 씨를 위해 살거예요. 준명 씨를 아껴주고, 사랑하고, 준명 씨 목숨을 내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예요.” 미루나가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말에 서준명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일은 내 잘못이에요. 어제 내가 술집에서 취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당신 집에 올 일은 없었을 텐데. 다 내 잘못이에요. 내 잘못이니 마땅히 책임을 져야겠죠.”“당신 갈비뼈 부러진 것도 내가 책임질게요.”“대신 분명히 말할게요. 우리는 가능성 없어요.”“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내가 당신이랑 잠자리를 가진다고 해
의사는 대충 상황을 알아챘다. 아마 가정폭력과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남자의 태도는 무척이나 거만스러웠고, 심지어는 여자를 엄청 싫어하고 있었다. 그와 달리 여자는 무척이나 미천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남자에게 맞으면서도 그를 떠나고 싶지 않아 했다. 아마 여자가 남자의 돈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남자가 이렇게 끈질긴 여자를 만나게 된 것도, 그런 남자에게 맞는 여자도 다 똑같다 사람을 구하고 치료하는 것은 의사의 책임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것 외에는 그도 더 이상 신경 쓸 수가 없었다.의사들은 모두 입으로 그들에게 신경을 끈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에서 벗어나자, 그들은 다시 활기차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미루나라는 여자, 배우에다 지금 인기도 좀 있는 것 같더라. 그러니까 돈 많은 남자 하나 물어서 신분 상승하겠다는 생각을 하지.”“인기는 무슨 인기? 조연급인가?”“참나! 조연급은 무슨! 엑스트라보다 조금 낫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든, 드라마든 저 여자가 나오는 장면은 조금 밖에 안돼. 일 년에 몇억씩 버는 인기 배우랑 비교도 안 될 정도지. 대신, 알아보는 사람이 좀 있기는 해.”“그래서, 저런 사람도 남성의 유명한 도련님을 꼬셔보려고 한다는 거야?”“그럴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물었다는 거지. 반쯤 죽을 정도로 맞으면 어때? 대신 의미가 있잖아. 이제부터 서준명이 평생 저 여자의 스폰서가 돼줄 거야.”“이런 관계가 과연 오래갈까? 평생이라니! 서준명이 한 달 만에 바로 차버릴 수도 있어. 못생겼잖아! 정말이지, 못생긴 사람이 이상한 짓을 더 많이 한다니까!”“에이, 네가 몰라서 그래. 서준명은 다른 사람이랑 달라. 서준명이 저 여자를 때린 이유도 분명, 저 여자가 서준명을 속였기 때문일 거야. 게다가 서준명, 한 번도 여자를 가까이 한 적이 없어. 태도도 엄격하고,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지도 않았어. 죽어서 그렇지, 서준명 아내도 있었어.” “죽은 아내를 엄청 사랑했지.
엄선우는 서준명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상황이 아닌 이상 그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아무리 서준명이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해도 그가 예쁘지도 않은 여자를, 그것도 배우자를 찾을 리는 없었다. 서씨 집안이 서준명이 재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남성에 있는 여자들은 그에게 우르르 몰려들 것이고, 그는 그중에서 골라가며 결혼을 할 수 있을 정도일 것이다. “알아. 나도 다 알아. 그냥 내 딸이 너무 불쌍해서 그래. 선희는 진짜 어디에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긴 한 걸까?” 나금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녀는 상대방까지 마음 아프게 울기 시작했다. “서준명!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옆에 있던 민정아가 책상을 내리치더니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정아야, 어디 가려고!” 신세희가 그녀를 뒤따랐다.“서준명 다리 부러뜨리려고!”“서준명, 네 사촌 오빠야!”“네 사촌 오빠이기도 해. 지금 서준명 편 드는 거야? 나는 그런 사촌 오빠 둔 적 없어. 사촌 오빠라고 해도 네 사촌 오빠겠지! 나랑 아무 상관도 없다고!” 민정아는 미친 듯이 화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신세희의 말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미친년.” 신세희는 뒤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민정이는 이미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그녀는 문을 열고 집을 나서더니, 차를 몰아 서준명의 집으로 달려갔다.차는 서씨 저택에 도착했고, 민정아는 씩씩거리며 차에서 내려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를 맞이하고 있는 사람은 서씨 집안 집사였다.“아가씨, 이모님 보러 오셨나요?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사모님이 아가씨 보고 싶어 하셨어요. 얼마 전에 아이들이 입을 옷도 샀는걸요! 어머, 근데 아가씨 왜 그러세요? 왜 이렇게 화가 많이 나셨어요.” 말을 이어 나가던 집사도 민정아 얼굴에 담긴 분노를 보고는 멈칫했다.“서준명 지금 어디 있어! 내가 그 개새끼 죽여버릴 거야!”“저… 지금… 아가씨는 사모님을 욕 하시고 있는 거예요. 사모님은 아가씨 이모님이예요.”“이놈의 입!” 화
”아…” 미루나의 갈비뼈가 붙자마자 그녀는 다시 민정아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말았고, 또 다시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고개를 돌려 민정아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녀는 애써 표정을 유지했다.“아가씨, 날 왜 차는 거예요..?”“뻔뻔한 너를 죽여버리려고! 어떻게 감히 집까지 찾아와! 이 집 여주인 버젓이 있는 거 알아? 여주인 있는 거 아냐고!”“나쁜년! 당장 꺼져!”“안 꺼지면, 오늘 서준명 이 개새끼 얼굴도 망쳐버릴 거야!”“이제 어떻게 반반한 얼굴로 꼬실 수 있나 한번 보자!”“저기, 아가씨. 왜 아직도 아가씨가 욕 하고 있는 사람이 이모님이라는 사실을 모르시는 거예요…!” 도무지 민정아의 욕설을 참을 수 없었는지, 집사가 결국 입을 열었다.발길질을 당해 바닥에 누워있던 미루나도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정아는 여전했다.강산은 변해도 사람은 안 변한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시간이 몇 년인데, 정아는 아직도 그들의 우정을 기억하고 엄선희 대신 정의를 구현하러 집까지 찾아오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감동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미루나는 몸을 돌리더니, 민정아 앞으로 기어갔다. 그녀는 단번에 민정아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정… 아가씨, 준명 씨 사촌 동생 맞죠? 저기… 아가씨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난 이 집 여주인 자리를 뺏지 않을 거예요.”“나…”“나는 그냥…”“그냥은 무슨 그냥! 생각하지 마!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지금 당장 꺼져! 꺼지라고!” 민정아가 무척이나 포악하게 말했다.“정아야!” 그때 이모가 민정아의 이름을 불렀다.그 말에 민정아는 바로 눈물을 흘렸다. “이모! 아시잖아요. 선희 실종될 때, 뱃속에 이 집 아이를 가지고 있었어요! 다 아시면서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실 수 있어요?”“선희 부모님에게는 자식이 선희 하나밖에 없어요!”“선희 행방이 아직도 이렇게 묘연한데...”“선희는 두 분을 화나게 한적 한 번도 없잖아요.”“그렇게나 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