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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각성한 용
내 안에서 각성한 용
작가: 봉화

제1화

“아빠, 율이 너무 아파요! 율이 죽을 것 같아요...”

“율이 나을 수 없는 거예요?”

“율이는 이렇게 아픈 거 싫어요. 아빠 율이 때문에 돈 더 쓰지 마요.”

“율이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 율이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중환자실에는 작은 아이가 누워있었다. 아이의 예쁘장하고 귀여운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코와 입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으며 온몸이 출혈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지막 힘까지 끌어모은 아이는 작은 손으로 윤도훈의 손을 꽉 잡았다. 큰 눈망울에는 괴로움과 아빠에 대한 미련이 가득했다.

윤도훈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이 아팠고 왼쪽 신장을 도려냈을 때보다 만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율이 착하지, 아빠가 율이 꼭 낫게 해줄게. 율이 다 나으면 아빠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아빠가 율이 위해서 닭강정 해줄게, 어때?”

윤도훈은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아빠 거짓말하지 마세요. 율이 낫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돈 아껴 써요. 율이 죽으면 아빠 계속 살아야 하잖아요. 아빠, 율이한테 더 돈 쓰지 말아요...”

아이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이 하고 있던 용이 조각된 옥 목걸이를 뺐다.

“이 목걸이는 율이가 하고 있어도 소용없어요. 아빠가 하고 있으세요. 목걸이가 아빠를 지켜줄 거예요!”

옥으로 만들어진 그 목걸이는 윤도훈의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었다. 윤씨 일가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그것은 병마를 물리치고 화를 피하게 해준다고 했다.

율이가 앓게 되면서 윤도훈은 부디 목걸이가 아이를 지켜주길 바라며 그것을 아이에게 건넸다.

하지만 지금 보니 병마를 물리치고 화를 피하게 한다는 건 그저 염원인 뿐이었다

율이의 말을 들은 윤도훈은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는 율이의 체온이 남아있는 목걸이를 손에 꽉 쥔 채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율이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철이 들수록 윤도훈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

무거운 무언가가 심장을 꽉 짓누르는 것처럼 숨도 쉬기 어려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율이는 쓸모없는 아빠 때문에 이 세상의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떠나게 생겼다.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윤도훈은 본인의 목숨을, 본인의 얼굴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딸을 계속 살게 할 생각이었다.

“윤도훈 씨, 저번에 내셨던 비용은 이미 바닥났어요. 더 치료하실 생각 있으세요? 따님분 같은 상황은 특효약을 쓰면 며칠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사이에 맞는 골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율이의 주치의가 무표정한 얼굴로 윤도훈에게 물었다.

“할 거예요! 당연히 치료해야죠! 조 선생님, 제발 제 딸에게 특효약을 계속 써주세요. 제발요! 율이는 죽으면 안 돼요! 죽으면 안 돼요!”

윤도훈은 의사의 팔을 잡고 다급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일단 돈부터 내고 말씀하세요.”

의사는 무정한 얼굴로 말했다.

“네, 지금 당장 돈 모아서 오겠습니다. 선생님, 우선 저희 딸아이한테 약부터 써주세요! 제발, 제발요!”

윤도훈은 미친 것처럼 병실을 나섰다.

그의 등 뒤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작은 목소리로 의논하며 야유했다.

"먼저 약을 써달라니요? 말도 안 돼요. 휴...”

“저 사람 딸을 치료하려고 신장 하나를 팔았다면서요?”

“그러니까요. 참 안타깝죠. 하지만 돈이 없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죠...”

바로 그때, 윤도훈은 미친 듯이 병원에서 달려 나가더니 병원 입구에 뚝 멈춰 섰다.

돈! 돈! 돈!

지금 율이를 구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디에서 돈을 구한다는 말인가?

조금 전에는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굴었지만 뒤늦게 빌릴 만한 데는 다 빌렸다는 걸 떠올렸다.

결국 막다른 길로 내몰린 윤도훈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그녀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무리 굴욕스럽고 줏대 없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율이의 목숨과 비교했을 때 그의 존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구세요?”

전화 건너편에서 감미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서 요염함이 느껴졌다.

“나야, 윤도훈.”

“뭐야… 나한테 왜 전화한 거야? 우리 이미 이혼했잖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긋나긋하던 음성은 윤도훈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차갑게 돌변했다.

상대방은 당연히도 윤도훈의 전처이자 율이의 생모인 주선미였다.

예전의 윤도훈은 지금처럼 처지가 어렵지 않았다. 20대 초반이었던 그는 꽤 잘나갔다. 작은 공장 하나가 있었고 연 수입이 몇억 원에 달했다.

주선미는 윤도훈의 대학 동기였고 해당 전공의 퀸카라고 불렸다. 동창회가 있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먼저 윤도훈에게 접근했고 결국에는 결혼까지 골인했다.

결혼하고 나서 처음에는 괜찮았다. 주선미는 윤도훈의 딸까지 낳았다.

그러나 율이가 골수성 백혈병을 앓게 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딸을 치료하기 위해 윤도훈은 모아뒀던 돈을 전부 쓰게 됐고 심지어 공장까지 저당 잡혔다.

그렇게 윤도훈은 중산층에서 거지가 되어버렸고 주선미는 애바르고 냉혈한 본성을 드러내며 심지어 윤도훈이 딸을 치료하는데 돈을 쓰는 걸 막았다.

게다가 그녀는 바람까지 피웠고 이혼하기도 전에 집안 좋은 남자를 유혹해 발 뺄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 달 전 이혼하자고 하면서 매정하게 윤도훈과 딸을 버렸다.

주선미는 비록 율이의 생모지만 한 달 동안 아이를 한 번도 보러온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딸을 역신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윤도훈은 절대 먼저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거다.

“주선미, 그...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윤도훈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 돈을 빌려달라고? 윤도훈, 네 꼴 좀 봐. 내가 진짜 예전에 눈이 멀었었나 봐. 너 같은 남자랑 결혼하다니. 내가 일찍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지. 당장 꺼져. 무슨 낯짝으로 나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해?”

주선미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그를 마음껏 조롱했다.

“율이 지금 위험한 상황이야. 병원비를 내지 못한다면 율이는 죽게 될 거야! 주선미, 네 딸을 봐서라도 나한테 4,000만 원만 빌려주면 안 돼? 아니면 2,000만 원이라도 좋아! 내가 꼭 갚을게. 꼭!”

윤도훈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주선미가 전화를 끊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했다.

윤도훈이 말을 마치자 주선미는 잠깐 침묵에 잠겼다.

“미안해. 난 지금 오빠랑 잘살고 있으니까 나 방해하지 마! 백혈병은 완치할 수 없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너도 그만 포기해...”

뚜... 뚜... 뚜...

통화가 끊기자 윤도훈의 심장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주선미는 참 모질었다.

율이는 그녀의 친딸인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 매정할 수 있단 말인가?

윤도훈은 화가 났다.

하늘의 불공평함에 화가 났고, 주선미의 무정함에 화가 났으며 자신의 무능함에 화가 났다.

윤도훈은 괴로운 얼굴로 무력하게 누워있는 율이가 그의 손을 잡으며 그를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을 떠올렸다. 짙은 절망에 빠져 있던 윤도훈의 눈빛이 차츰 굳건해지면서 광기가 감돌았다.

아니!

율이야, 아빠는 절대 널 죽게 하지 않을 거야!

내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돈을 구할 거야!

20분 뒤...

벤틀리 뮬산 한 대가 빠른 속도로 큰길 위를 달리고 있었고 윤도훈이 차를 향해 힘껏 몸을 내던졌다.

미안해요!

당신이 벤틀리를 끌고 다니는 탓이에요!

당신이 날 차로 치어 죽인다면 아마 많은 돈을 배상하겠죠?

율이야, 아빠의 목숨으로 네 생명을 연장해줄게.

네가 결국에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아빠가 너랑 함께 있을게.

아빠가 쓸모없는 사람이라 이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율이야, 아빠 먼저 가볼게!

쾅!

굉음과 함께 윤도훈의 몸이 날아갔다.

몸이 바닥에 추락하자 윤도훈의 몸 아래서 피가 흥건하게 흘렀다.

그의 손안에는 그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딸이 몇 년 동안 착용한 그 물건이 그에게는 가장 귀중한 보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목걸이에 피가 묻는 순간, 기이하게도 피가 목걸이에 흡수됐다.

끽!

바로 그때, 벤틀리 뮬산이 멈춰 섰고 차에서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황급히 내렸다.

남자는 경호원 또는 기사처럼 보였고 차가운 얼굴의 미녀는 그의 고용주인 듯했다.

그녀는 젊고 이목구비가 정교하며 몸매도 호리호리한 것이 여자 연예인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다.

정장을 입고 있는 그녀는 시크한 엘리트처럼 보였다.

“자해공갈인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여자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분부했다.

“어찌 됐든 일단 구급차부터 불러요.”

바로 그때, 혼수상태에 빠진 윤도훈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무능한 놈! 이 몸의 후손이 이토록 무용지물인 것이 한스럽도다! 인간의 신장 한 쪽을 잃었으니, 이 몸이 용의 신장 하나를 주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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