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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헉!”

조강인은 입을 떡 벌리며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간호사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럴 수가? 왜 갑자기 살아난 것일까?

갑자기 시체가 벌떡 일어나다니?

“아빠... 아빠예요? 아빠, 가지 마요!”

바로 그때, 율이가 비몽사몽 눈을 떴다.

전에 윤도훈이 돈을 모으러 가겠다고 해서 아주 불안했던 것 같다.

율이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가 옆에 있어 주길 바랐다.

“율이야, 정말 깨어났구나! 아빠 여깄어. 아빠 떠나지 않고 율이랑 함께 있을게!”

윤도훈은 눈물을 왈칵 쏟으면서 기쁜 얼굴로 말했다. 열류가 끊임없이 율이의 체내에 주입됐다.

율이가 깨어났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 율이가 살아났다.

윤도훈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몸이 떨렸다. 한때 지옥이었다가 다시 천국에 온 기분이라 다 큰 성인 남자지만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온 세계를 손에 쥔 듯 율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이 모든 것이 환상이 되어 흩어질 것만 같았다.

소중한 걸 잃었다가 다시 얻은 그 기분은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빠 손이 엄청 따뜻해요. 기분 좋아요! 아빠, 왜 울어요? 울지 마세요. 율이는 아빠 우는 거 싫어요.”

율이의 창백한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고 아이는 다른 손을 뻗어 윤도훈의 젖은 뺨을 닦았다.

“알겠어. 아빠 안 울게. 아빠 너무 행복해! 하하하, 율이 이제 괜찮아. 우리 율이 다시 살아났어!”

작은 손으로 그의 뺨을 어색하게 닦아주는 율이의 손길에 윤도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웃었다.

“아빠, 율이 집에 가고 싶어요.”

율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아빠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게 싫었다.

“그래. 아빠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윤도훈은 잠깐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하면서 율이의 몸에 달려있던 장치들을 떼어내고 아이를 안고 떠나려 했다.

“잠깐만요. 병원비 미납하셨거든요. 아직 떠나시면 안 돼요!”

조강인이 윤도훈의 앞을 막아섰다.

“얼마예요?”

윤도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6,176만 원이요!”

조강인이 청구서를 꺼내며 말했다.

“뭐라고요? 그렇게 많을 리가 없는데요?”

윤도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청구서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그럴 리가요. 중환자실 비용은 내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어요? 특효약도 당연히 비용을 지급하셔야죠.”

조강인이 냉소를 흘렸다.

“왜 이 청구서에 오늘 특효약을 사용했다고 적혀 있는 거죠? 제가 병원비를 내지 않아서 약을 쓰지 않았다고 하셨잖아요.”

청구서가 이상하다는 걸 발견한 윤도훈은 분개하며 따져 물었다.

“아, 제가 잘못 안 거예요. 오늘 따님께 특효약을 썼어요. 얼른 비용 내세요. 제가 환자분에게 약을 쓰지 않았더라면 환자분이 깨어날 수 있었겠어요?”

조강인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는 뻔뻔한 태도로 말했다.

“그러면 여기 프로게스테론 주사액은 뭐죠? 지금 저한테 사기 치려는 거예요?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이러는 건가요?”

윤도훈이 화를 내며 조강인의 멱살을 잡았다. 그는 이 빌어먹을 놈을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다.

프로게스테론은 일반적으로 임신 유지를 위해 임산부에게 쓰이거나 월경 주기를 조절하는 데 쓰인다.

율이는 고작 다섯 살밖에 되지 않는데 이런 게 필요할 리가 없다.

고약한 의사는 환자가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구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고 심지어 약을 제멋대로 써서 환자들에게 병원비 폭탄을 안겨줬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인간이었다.

“이거 놓으세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얌전히 돈을 내는 게 좋을 거예요. 횡포를 부릴 생각은 아니겠죠? 설마 도운시에서 내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건 아니죠?”

상대방이 그의 수작을 꿰뚫어 보자 조강인은 당황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위협했다.

“하, 당신 세력이 얼마나 강하길래 감히 이렇게 제멋대로 날뛰는지 궁금하네요.”

바로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진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예쁘장한 얼굴은 분노 때문에 유독 차가워 보였다.

그녀는 원래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었고 윤도훈과 죽었다 살아난 그의 딸 사이에 굳이 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응? 이 사람은 누구예요? 당신 아내예요?”

조강인은 곁눈질하며 물었다. 이진희의 분개하는 모습에 그는 그녀가 윤도훈의 아내인 줄 알았다.

율이가 중환자실로 옮긴 뒤로 사람들은 율이의 어머니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가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일 줄이야.

“친구예요.”

윤도훈이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친구요? 흥, 당신들이 무슨 사이든 상관없고 빨리 돈부터 내요. 돈 안 내면 아무도 떠날 수 없어요. 감히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경찰 불러서 당신들을 잡아가라고 할 수도 있어요!”

조강인이 위협했다.

“큰소리는 잘 치네요. 그러면 원장님한테 병원에 어떻게 당신 같은 쓰레기가 있는지 물어봐야겠네요.”

이진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 뒤 전화를 꺼냈다.

그녀의 말에 조강인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대꾸했다.

“왜요? 원장님한테 연락하시게요?”

비록 이진희는 분위기가 남다르고 평범한 사람 같지 않았지만 조강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윤도훈 같은 거지와 친구인 사람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할까?

만약 윤도훈이 원장과 아는 사이인 친구를 뒀다면 신장을 팔았을 리 없었다.

이진희는 쓸데없는 말은 삼가고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황 원장님? 저 이진희예요. 저 지금 소아과 중환자실 3호 병실에 있거든요. 여기 한번 와주실래요?”

“어머, 진짜처럼 보이네요. 당신한테 원장님 번호가 있어요? 전화 건 거 맞아요?”

조강인이 조롱 섞인 어조로 물었고 이진희는 냉소를 흘렸다. 그녀는 그와 쓸데없이 대화를 나누지 않고 차가운 얼굴로 그곳에 서 있었다.

잠시 뒤, 누군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조금 살집이 있는 중년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황... 황 원장님?”

조강인의 안색이 삽시에 달라졌다. 그는 윤도훈의 친구가 건 전화 한 통에 황 원장이 진짜 이곳으로 올 줄은 몰랐다.

“이 대표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이건...”

황 원장은 이진희를 보자 정중한 태도로 의아한 듯 물었다.

황 원장의 태도에 조강인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는 이진희가 정말 황 원장과 아는 사이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황 원장의 태도를 보니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당신이 황 원장님께 얘기해요. 황 원장님께서 공평하게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믿어요.”

이진희가 윤도훈에게 눈치를 줬다.

윤도훈이 무슨 얘기를 할지 어림짐작한 조강인은 간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윤도훈은 조강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병원비 청구서를 황 원장에게 건넸다.

“이건 조 선생님이 제게 준 청구서예요. 황 원장님께서 한번 잘 살펴봐 주세요. 병원비 미납한 지 이틀째인데 그 사이 6,176만 원을 썼다네요. 제 딸은 겨우 다섯 살이고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어요. 그런데 청구서에는 임신 유지를 돕는 프로게스테론, 고혈압 약까지 있어요. 그래도 피임약은 없네요. 게다가 24시간 안에 10kg를 썼다고 나와 있어요. 이 정도 양이면 코끼리도 죽었을 거예요.”

황 원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는 윤도훈의 말을 들은 뒤 조강인의 뺨을 때렸다.

“조강인, 무슨 짓을 한 거야? 너처럼 쓰레기 같은 놈이 우리 병원에 먹칠하다니, 넌 해고야!”

조강인은 그 말에 넋이 나갔다. 그는 애원하며 말했다.

“원장님, 안 돼요! 비록 제가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제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세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실수? 이게 실수라고? 이건 사기야. 사람 목숨이 장난이야?”

황 원장이 화가 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바로 그때, 이진희가 코웃음을 치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겨우 해고라고요? 제가 보기엔 검찰에 넘겨서 제대로 조사해야 할 것 같은데요. 황 원장님께서 처리하기 불편하시다면 우리 회사 법무팀에 맡길게요!”

“네, 네! 이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병원의 해충 같은 놈이니 철저히 조사해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반드시 잘 처리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해당 부문에 연락하겠습니다!”

황 원장은 그녀의 말에 다급히 대꾸했다.

그는 사실 조강인의 편을 들어줄 셈이었지만 이진희의 말에 금세 마음을 바꿨다.

그는 이씨 일가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다. 이진희가 조강인을 처리할 생각이라면 그가 나선다고 해도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풀썩!

조강인은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 울면서 애원했다.

“황 원장님, 이러지 마세요! 이 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윤도훈 씨! 윤도훈 씨, 제발 절 불쌍히 여겨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한 번만요!”

결국 고약한 의사는 윤도훈의 발치로 기어가 눈물을 쥐어짜 내며 빌었다.

조강인은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더러운 짓거리가 밝혀진다면 적어도 8년, 10년 형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이번 생은 끝장이었다!

윤도훈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그를 걷어찼다.

“불쌍히 여겨달라고요? 그럼 당신은 당신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나고 목숨을 잃은 환자와 그의 가족들을 불쌍히 여긴 적이 있나요? 그렇게 악랄한 짓을 했는데 그 인과응보를 당신이 다 견딜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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