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훈은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차갑게 웃었다.“형부? 남자 친구? 왜 당사자인 저는 아무것도 모르죠?”이은정은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형부 맞잖아요. 설마 아니란 말이에요?”말하면서 그녀는 황보신혁을 향해 급히 소리쳤다.“황보 도련님, 우리 사촌 언니가 바로 이 사람 아내예요. 전 이 사람 처제가 맞다고요. 정말이에요... 정말...”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구연희는 이를 악물었다.“나 때렸잖아요! 그럼,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남자 친구가 아니면 뭔데요?”그 말을 듣고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무척이나 차가웠다.특히 대문 앞에서 구연희와 재벌 2세들이 윤도훈을 모욕했던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여자 재벌 2세들은 한곳에 모여 피식 웃기까지 했다.“어이가 없어. 그렇게 무시하더니 이제 와서 남자 친구라고? 상대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세상 도도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웃겨 참!”지금 가장 당황하고 얼굴이 굳어진 사람은 정이수이다.한동안 구연희를 추구하면서 상대는 늘 잡힐 듯 말 듯하며 간을 보았었다.그런 그녀가 황보신혁에게 먼저 달라붙더니 이제는 윤도훈을 강제로 남자 친구로 우길 줄은 몰랐다. 이제는 삼대 가문 중의 하나로 남은 정씨 가문 도령인 그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온갖 정성을 다해 사랑을 추구했던 결과가 이러하니 말이다.이때 윤도훈은 이은정과 구연희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래요?”“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황보 도련님께서 왜 나를 형제로 삼은 거겠어요? 병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어요?”그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일부러 어세를 높여 물었다.“내가 황보 도련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요. 알겠어요?”그 말을 듣고서 구연희와 이은정은 멍하니 있다가 가까스로 알아차렸다.“네?”옷을 입고 있는 황보신혁을 보고서 두 사람은 순간 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그럼, 그 뜻은...’‘그래! 황보 도련님이 돼 윤도훈 저놈과
윤도훈은 황보신혁한테서 천년설련을 받게 되었다.천지재보인 만큼 무척이나 사치스러운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옥으로 된 상자.단지 상자만으로도 흔하지 않은 보물처럼 보였다.형체가 말고 투명한 것이 천년설련의 영기를 고스란히 보관할 수 있었으니.그 외에도 그 속에는 천년이 된 얼음도 함께 있었다. 설련의 신선함을 보존하기 위해.윤도훈은 만족해하며 황보신혁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난 뒤 재벌 2세한테서 받은 포르쉐918을 몰고 도운시로 돌아갔다.한편, 아우디 Q7 안에서.아직도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있는 이은정은 두 눈에 한이 가득 베어 있다.이천강 역시 일그러진 얼굴로 도망이라도 가듯이 QS 리조트에서 빠져나왔다.“윤도훈! 빌어먹을 놈! 감히 날 가지고 놀아!”“아! 아! 아...”“두고 봐! 내가 어떻게든 꼭 복수하고 말 거야! 백배 천배로 갚아주고 말 거야!”뒷자리에 앉은 이은정은 히스테릭을 부렸다.장본인인 황보신혁에 대한 노여움은 드러내지 못하고 애꿎은 윤도훈한테로 화살을 돌렸다.윤도훈에게 바보처럼 당하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하면서.본래 오늘 교류회에서 여러 명의 남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연락처까지 주고받았었다.그러나 조금 전의 일로 그 남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은정을 차단해 버렸다.같은 시각 QS 리조트 방안에서.화가 잔뜩 난 구교훈은 실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구연희를 바라보고 있다.“연희야, 너 정말...”야단을 치고 싶었으나 사랑하는 손녀에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가장 큰 타격을 받은 사람 자기가 아니라 손녀라면서.울부짖고 있는 구연희의 두 눈에는 짙은 원한과 수치스러움이 가득하다.“할아버지, 윤도훈 그 미친놈한테 꼭 복수해 주세요!”“앞으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녀요!”“그 쓰레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된 거잖아요!”“흑흑흑...”구교훈은 콧방귀를 뀌며 표정이 다양했다.사랑하는 손녀가 이러한 모욕을 받게 되었으니 그 또한 가슴이 미어지고 있다.구연희를 데리고 윤도훈에게 사과하러 가려고 했건만
이진희 곁을 맴돌던 ‘스파이’ 구명진의 정체를 밝혀낸 것을 시작으로 하여 여러 약품까지 만들어내어 회사 제품을 시장에 널리게 하기도 했었다.게다가 이천강을 쫓아내어 이진희가 회사를 완전히 장악하게 도와주기도 했었고.그 중 어느 한 사건이라도 일단 운을 떼기 시작하면 회사 직원들은 하루 종일 뒷담화를 할 수 있다.이천강으로 인해 양유나가 회사에서 쫓겨났지만, 이진희가 다시 회사의 대표가 되면서 그녀는 자연스레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이 모든 건 모두 윤도훈 덕분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바로 이러한 이유로 윤도훈에 대한 태도가 공손하면서도 감격스럽다는 것이다.“안녕하세요.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윤도훈은 인사를 건네고서 바로 물었다.“SJ 의약 상인 협회 사람들이에요.”“SJ 의약 상인 협회라고요?”윤도훈은 눈썹을 들썩이며 되물었다.“네. S시와 P시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공동으로 만들어낸 협회인데, 그쪽에서 대표를 파견하여 대표님과 의논할 게 있다고 했습니다.”“의논이요? 뭘 의논한다는 거죠?”윤도훈은 아리송하기만 했다.“실은 전에 이천강 씨께서 그린 제약회사를 관리하고 계실 때 이 협회에 들어가려고 했었습니다. 다만 여러 번의 신청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기각됬었고요.”말하면서 양유나의 얼굴에 탄복하는 모습이 드러났다.“하지만 이번에 그쪽에서 먼저 우리 측에 초청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회사가 SJ 의약 상인 협회에 들어갔으면 하면서요. 이게 모두 대표님과 윤 선생님 덕분입니다.”“SJ 의약 상인 협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들 영광으로 생각하고 회사 실력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거든요.”“그렇군요.”윤도훈은 떨떠름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때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모습이었다.앞장선 올백 머리는 윤도훈은 양유나를 힐끗 보더니 대뜸 자만한 모습을 드러냈다.윤도훈은 덤덤한 시선으로 그들의 오만한 자태를 보면서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이윽고 양유나는 그들
“회사의 결책자이기도 한다고요?”“흥!”그 말을 듣고서 여진묵은 순간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윤도훈을 향해 콧방귀를 뀌며 한껏 상기된 얼굴로 앉았다.윤도훈에 대한 질투심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저희 SJ 협회에서는 전에 귀사의 가입 신청서를 받은 적이 있어요. 여러 차례 심사를 거쳐 얼마 전에야 귀사의 자격을 인정한 거예요.”그러더니 여진묵은 이진희를 향해 웃으며 덧붙였다.“이 대표님, 저희 SJ 협회에 가입하게 되셔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의약 업계에서는 이를 영광으로 생각하는 데 어떠세요? 기분 좋으시죠?”이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실은 내심 살짝 답답한 이진희이다.그린 제약 회사에서 SJ 의약 상인 협회에 신청서를 넣은 건 사실이지만 이천강이 있을 때 했던 일들이다.이천강의 손에서 회사의 모든 권력을 건네받은 뒤로 반년 동안 이진희는 단 한번도 주동적으로 신청한 적이 없다.근데 갑자기 SJ 협회에서 먼저 회사로 찾아올지는 몰랐다.대략 짐작 가는 이유가 회사에서 연이어 새 제품을 내놓으면서 그 제품들이 잘 팔리기 시작해서 찾아온 게 아닌 가 싶었다.윤도훈이 가장 먼저 내놓은 그린 흉터 제거 약품이든 금창약이든 하트 라이트든 그 뒤로 나온 이씨 비염제 그리고 이씨 다이어트 제품이든 모두 단기간에 좋은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게다가 홍지명을 비롯한 여러 대리상의 힘으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명성이 자자해졌다.SJ 의약 상인 협회에 가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진희는 속으로 기뻤다.그러나 이때 윤도훈이 입을 여는데.“여 대표님, SJ 의약 상인 협회에 가입하고 나서 저희 회사 측에서 뭘 하면 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여진묵은 그를 힐끗 보고서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남자 보다는 이진희와 같은 미녀와 말을 섞고 싶은 일인이다.“관련 자료만 제출하시면 됩니다.”차가운 목소리로 얼렁뚱땅 대답하고 말았다.“그래요? 그렇게 쉬운 거예요? 저희 측에서도 무엇인가
“이 대표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귀사에서 신청서를 제출하셨고 저희는 심사 기준에 맞게 통과시켰는데, 이제 와서 가입하기 싫다고요?”“그럼, 저희 측에서 들인 노력은 뭐가 되는 거죠? 매년 SJ 의약 상인 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 회사 개수는 한정되어 있어요. 얼마 되지 않는 정액을 귀사에 드렸고 다른 회사를 모두 거부한 상태라고요.”“이제 와서 싫고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거죠?”여진묵은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물었다.순간 이진희는 어이가 없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제 기억이 맞는다면 협회에 신청서를 제출한 시간이 작년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이미 기각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뒤로 단 한 번도 제출한 적이 없어요. 이렇게 불쑥 찾아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여 대표님도 잘 알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그 말을 듣고서 여진묵은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우리 협회를 무시하시는 겁니까? 지금 이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약품 제조 방법을 공유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우리 협회에 가입해서 귀사에서 얻게 될 이익에 비하면 그 정도는 대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어찌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그렇게 속이 좁을 수가 있죠? 모두가 제조 방법을 알게 되면 상회 복지에도 좋을 것인데 그 정도밖에 안 되십니까?”다른 협회 멤버도 옆에서 ‘부처님’인 척을 했다.“그러게 말입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만으로 다른 질환까지 앓게 되는지 몰라서 그럽니까? 흉터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까?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도 하트 라이트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고요! 귀사에서 시장 수요를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얼마나 많은 약을 생산해야 모두의 뜻을 품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 많은 제약회사에서 함께 생산에 투입하여 더 많은 환자를 구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자는 겁니까.”“맞습니다! 너무 이기적인
여진묵 일행은 화가 잔뜩 난 모습으로 떠났다.이진희는 윤도훈을 바라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양유나를 내보내고 나서 이진희는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좀 좋게 좋게 말하면 안 돼요? 상대가 아무리 막무가내였어도 SJ 의약 상인 협회 사람이었잖아요. 그대로 꺼지라고 하면 우리 회사 앞으로 괜찮을 것 같아요?”윤도훈은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고개를 숙이고 비위 맞춰주면 괜찮을 것 같아?”그 말을 듣고서 이진희는 순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몰랐다.실은 속으로 윤도훈을 원망하지도 않았다.다만 그에 대한 원한을 품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를 빌려 욕하고 싶었을 뿐이다.이진희는 지난번 주선미의 말 한마디로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여러 여자와 다정해 보이는 윤도훈의 사진에 대해서.윤도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으려 했고 두 사람 사이는 이처럼 묘한 기운이 돌기만 했다.그 누구도 다시는 이혼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만 같았다.“그렇다고 꺼지라고 말하지 말았어야죠.”이진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윤도훈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원래 이런 스타일이야 내가. 이왕 미움 사는 김에 완전히 사는 것. 협회니, 뭐니 하면서 제조 방법이나 알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재수 없었어. 한 대 때리고 싶은 거 참았다고.”이진희는 콧방귀를 뀌며 웃으며 욕했다.“하여튼 참 거칠어요!”윤도훈에 대해서 차갑고 개의치 않은 모습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윤도훈은 허허 웃기만 하고 이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이진희 역시 말머리를 돌리며 차가운 듯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했다.하지만 실은 두 눈에 그를 향한 짙은 관심과 걱정이 가득 베어 있었다.“참, 수도권에 가서 일은 잘 처리했어요?”말하면서 그녀는 윤도훈을 지그시 바라보았는데 역시나 복잡한 감정이었다.윤도훈은 그녀와 율이를 위해 허승재를 죽이겠다며 수도권까지 달려간 것이다.이진희는 아무리 관심이 없는 척을 하려고 해도
적어도 그 일들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을 하기 전까지 자기 남자가 아니라고 했다.“흥! 차가 뭐 대수라고 도훈 씨 괜찮으면 됐어요. 그리고 허승재도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인제 상관없고요.”이진희는 차가운 척 말했다.하마터면 폭탄에 죽을 뻔했다는 윤도훈을 말을 듣고서 이진희는 실은 무척이나 두려웠다.속으로 그가 무사한 것만으로 다행이라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며 생각했다.그때처럼 다시는 홧김에 그런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랬다.비록 감동적이기는 하지만.한편.여진묵은 그린 제약회사에서 나오자마자 도운시 주변에 있는 제약상과 제약 업계 대표들을 소환했다.SJ 의약 상인 협회는 이 구역에서 가장 큰 협회로서 영향력이 대단하다.수많은 제약 회사와 제약 기구에서 그들과 안면을 트고 협회에 들어오려고 애를 쓸 정도로.다들 소식을 듣자마자 부랴부랴 달려왔고 여진묵을 비롯한 그들과 친해지려고 했다.만약 관계가 돈독해지면 SJ 의약 상인 협회에 들어갈 지름길이 생기게 되는 것이기에.여진묵이 그린 제약 회사를 타깃으로 공격하겠다는 말에 다들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마침내 지름길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면서 분분히 여러 모략을 꾸미기 시작했다.그중에 한 제약 회사 사장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여 대표님, SJ 의약 상인 협회의 힘으로 그린 제약 회사 하나쯤은 거뜬히 상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린 제약회사에서 요즘 업무를 넓히고 있는데 공장을 넓힐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장을 세우지 못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주문이 수두룩할 것인데 생산이 지체되면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가잖아요. 정상적인 생산을 막고 생간이 따라가지 못하게 한다면 시간도 돈도 허비하게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계약일까지 납품할 수 없으면 어마어마한 위약금도 지급해야 할 것이고요. 아주 혼이 쏙 빠지지 않겠어요? 헤헤.”남자의 이름은 호지명으로 도운시 주변 청암시의 지명 제약회사의 사장이다.가까운 곳에 있고 같은 업계에 있다 보니 두 회사는 늘 라이벌 관계
20분 후, 밥을 다 먹은 윤도훈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면서 어이가 없는 모습을 보였다.윤도훈의 몸에 각종 물건이 가득 걸려 있었고, 두 손에는 각각 닭꼬치 하나랑 탕후루를 들고 있었다.먹보인 율이는 둘째치고 어릴 적부터 부유하게 자랐던 이진희의 먹성이 이토록 좋을 줄은 몰랐다.그녀가 이런 값싼 물건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사려고 하는 기세를 보였으니 말이다.길거리에서 몇천 원 되는 옷을 여러 벌이나 사면서. 자기와 율이한테.게다가 윤도훈이 상인과 흥정하는 것으로 한 회사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를 흉내 내며 흥정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윤도훈은 뒤에서 이진희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따스함과 감동을 느꼈다.비할 데 없이 소중했다.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이.‘일가족’이 평생 이렇게 화목하고 단란하게 지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바램까지하면서.그러나 율이의 저주를 생각하면 윤도훈은 마치 어두운 구름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두 사람의 감정이 점점 깊어져 가는 것이 도대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도 되지 않았다.“어? 저기 뭐 하는 거예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진희 엄마, 우리 가서 볼까요?”이때 율이는 멀지 않은 노점을 가리키며 이진희를 끌고 소리쳤다.율이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보았는데, 최근에 불타오르기 시작한 핫한 항목으로 일명 ‘동그라미 씌우기’라도 한다.한 구역 안에 각종 상품을 진열한 후에 돈을 써서 동그라미를 사고 그대로 던져서 그 안에 들어온 물건을 가져가면 된다.물론 좋은 물건은 되도록 뒤에 있고 사람들이 쉽게 가져가지 못하게 진열하는 편이다.이진희는 저쪽을 바라보며 정교하고 예쁜 얼굴에도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그래, 그럼 가보자.”이진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율이는 기뻐하며 작은 손을 두드렸다.“앗싸! 저도 할래요! 진희 엄마, 우리 얼른 가 봐요.”말하면서 율이는 이진희의 손을 잡고 덜컹덜컹 저쪽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