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감히 명령을 거스를 순 없다는 듯이 그들은 모두 물러갔다. 마지막 시위가 나가면서 내전의 문을 조심히 닫았다.서지현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있다가 모두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석진이 웃으며 달려가 서지현을 안으려는데...“잠깐만요.”서지현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실 말씀이 있다면 거기서 하세요!”“응?”나석진이 어리둥절해졌다.‘또 뭐 하는 거야?’서지현은 몰래 나석진을 쳐다보았다. 이런 모습도 제법 재미있었다. 계속 놀리고만 싶었다.“지현아, 뭐 하는 거야?”“지현아? 지금 제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시는 건가요?”“...”혹시나 송임월의 약을 잘못 먹은 게 아닐까 하고 나석진은 생각했다.“이제 그만해! 황궁에 한 번 들어오기도 쉽지 않아, 오늘은 혁준이 즉위식을 준비하느라 아버지와 함께 들어온 거야. 지현아, 시간도 없는데...”“어! 가만히 서 있어요!”“너...”“왜, 제 말이 우스워요?”나석진은 주먹을 쥔 채 솟구쳐 오르는 혈압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서지현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차라리 괜찮았으나, 방금 분명히 서지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장난치는 게 분명했다.“그래, 여기 있을게. 전하, 더 하실 분부라도?”“음... 난 속이 좁고 뒤끝도 있어요.”“뭐?”“처음 봤을 때 아저씨가 날 살인범 취급했었죠?”“아...”“병원에서 두 번째로 봤을 때는 날 비웃고, 내 머리도 눌렀고요. 내가 호텔에 있을 땐 시도 때도 없이 내 머릴 때렸잖아요!”“어...”“그리고, 헬기에서 남양 거주 증명서를 줄 때에도 던져서 줬잖아요? 그게 마침 내 머리를 명중했고요.”나석진이 얼굴을 감싸쥐었다. 190의 건장한 남자가 얼굴을 감싼 채 혼나는 모습도 볼만한 구경거리였다.“아저씨, 내 머리와 뭐 있기라도 한 거예요?”“그럼 말해, 어떻게 복수할 건데?”서지현은 나석진이 방심한 틈을 타 그의 곁에 다가가 섰다.“우리 사이에 무슨 복수에요? 아저씨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
나석진의 눈이 커다래졌다.“너...”어릴 적부터 금이야 옥이야 자라왔는데,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맞다니? 이럴 수가!나석진은 화가 나 머리를 돌렸다. 하지만 신난 서지현을 보니 화가 사르르 풀려버리고 말았다.“이렇게 말랐는데, 손힘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나석진이 미소 지었다. 서지현은 턱을 한껏 쳐들고 득의양양하게 나석진을 쳐다보았다. 이때 나석진이 서서히 서지현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서지현은 벽 한구석으로 몰려 있었다.나석진은 지난번처럼 한쪽 손을 벽에 짚은 채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그윽한 눈에 온통 그녀의 모습이 담겼다.서지현은 얼굴이 한껏 달아올랐다. 고요한 내전 속에 자기 심장 소리만이 울리는 것 같았다.“뭐... 뭐 해요? 전하 앞에서 무례하게!”서지현이 외쳤다. 하지만 나석진의 눈에 그녀는 그저 발톱을 세운 새끼 고양이처럼 아무런 위협도 없는 존재였다.나석진이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전하, 방금 인사를 올렸잖아요!”“그래도 이건 무례한 거예요!”나석진이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졌다.“이것도 전하께서 주신 건데.”“네?”“혼사와 같은 일은 홀로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전...”“당연히 제가 해야죠!”서지현이 어리둥절한 사이 나석진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녀가 몸부림쳤지만 끄떡없었다. 나석진은 서지현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팍에 밀착시켰다.서지현은 그의 가슴을 퍽퍽 치며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었다.“전하, 황궁 생활이 불편하시죠?”“네...”“가요, 나가서 놀아요!”그 말이 끝나자 베개 하나가 나석진의 뒤통수를 명중했다.“아!”나석진이 짜증이 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어떤 자식...”하지만 베개를 던진 장본인의 얼굴을 확인한 뒤 나석진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 뒤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어머니! 깨셨어요? 어머님 보러 왔다가 마침 전하를 만나 얘기하던 참이었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약은 계속 쓰고 있죠? 걱정 마세요, 윤 회장님은 제 이모부시니, 가장 좋은 약을 주셨을 거예요. 호전되실
그녀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나석진을 쳐다보다가 서지현의 앞으로 달려가 자기 몸으로 두 사람을 떼어내려 애썼다. 나석진도 그녀 앞에서는 순순히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나쁜 놈! 나쁜 놈! 지난번에 우리 아가 괴롭힌 놈!”나석진은 말문이 막혔다. 방금 어머니라고 부른 건 다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서지현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엄마, 그게 아니라요, 아저씨는 날 괴롭힌 게 아니라... 그런데 잠깐, 아저씨를 알아요?”송임월은 정신이 오락가락해 종종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석진더러 ‘지난번’의 나쁜 놈이라고 했다.서지현은 기쁜 나머지 소리 지를 뻔했다.“엄마! 윤 회장님 약이 효과가 있나 봐요,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윤 회장... 아, 아니야, 윤 회장 아니야. 어릴 때 봤는데, 이 사람보다 윤 회장이 훨씬 잘생겼어!”송임월이 나석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석진은 순간 굳어버렸다. 자기 아빠보다 못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윤정재보다 못하다니! 송임월이 또 어떤 말을 뱉어낼지 벌써부터 무서워졌다.“흥, 나쁜 놈!”나석진을 흘겨본 송임월이 서지현의 팔을 이끌며 말했다.“나랑 가자... 저놈이랑 놀지 마, 나쁜 놈!”“풉...”서지현은 크게 웃으며 나석진에게 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인 후 엄마 뒤를 따라갔다. 18년 동안 느껴보지 못한 사랑이라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아저씨는 잠깐만 있어요... 어차피 다른 데 가지도 않을 테니까.’나석진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심호흡하고는 다시 궁전 밖으로 걸어갔다.본래는 서지현을 황궁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보통의 커플들처럼 데이트하려 했다.놀이공원에 가고 싶었다. 회전목마를 타는 그녀에게 사진을 찍어주고, 태양 아래 서서히 녹아가는 콘 아이스크림을 먹고, 솜사탕도 먹고 싶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는 영원히 그의 마음속에 박혀있을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은...나도훈은 아직도 송이수의 서재에 있었다. 아직 한참은 더 걸릴 것 같았다.갈 곳 없는 나석진은 황궁 속을 정처
나석진이 허리를 숙여 여자의 모자를 벗겼다. 숙이였다!“너 얼굴이...”숙이가 슬픈 얼굴로 황급히 면사포를 써 얼굴의 상처를 가렸다. 나석진은 알겠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여기 말고, 다른 데서 얘기하자.”나석진이 숙이를 부축했다. 숙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린 채 주춤거리며 나석진을 따라나섰다.두 사람은 바깥의 찻집을 찾았다. 주인이 숙이의 차를 식탁에 올려놓자 숙이가 본능적으로 이를 피했다.나석진은 인상을 썼다. 그녀의 얼굴에 생긴 흉터가 생각났다.“도련님... 저, 송지아 전하에게 잡혀갔었어요.”나석진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재판이 끝난 뒤 윤씨 가문에서 사람을 시켜 숙이와 옥이를 보호하게 했었다. 가연 왕후가 형을 선고받고, 옥이도 문제없이 빠져나왔는데, 숙이는 왜?“제 동생이 아직 병원에 있어서요. 어느날 집에 갔는데 송지아 전하 부하들이 거기 있었어요. 저도 그날따라 경호원을 데리고 가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잡혀갔어요.”“그래서?”숙이가 면사포를 벗었다. 핏자국이 역력하게 드러났다.“이게 다 송지아 전하 짓이에요.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마약을 주사하겠대요... 그 말에 응하고서야 겨우 도망 나왔어요.”“어떤 일을 시켰어?”숙이가 사진을 꺼냈다. 최연준과 송혁준의 사진이었다. 정상적인 포옹이었지만 각도 탓인지 두 사람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나석진이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지만 이를 티 내지 않고는 물었다.“이게 다야? 혁준이는 나 씨, 윤씨 가문과 모두 친해, 매제와는 학교 친구이기도 하고. 친구 사이에 포옹은 별거 없잖아. 사진 한 장이 뭘 설명할 수 있는데?”“혹시... 모르세요? 혁준 전하 어떤 분인지 잘 아시잖아요.”“너...”“혁준 전하가 왕위를 계승한다면, 왕후를 맞아들이진 않을 거잖아요. 남양의 보수적인 분위기로 봐서 이런 국왕을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고요.”“그게 무슨 뜻이야? 혁준이가 국왕 자격이 없다는 거야? 네가 그런 걸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걱정하지 마, 경호원을 붙여 데려다줄게. 동생 쪽은 윤씨 가문이 경호원을 불러 보호하고 있어. 송지아도 병원에서 손쓸 만큼 멍청하진 않을 거야.”숙이가 감격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떠나려 할 때, 두 사람의 핸드폰에서 거의 동시에 알림음이 울렸다.뉴스 알림창이었다.[단독: 친왕 송혁준과 오성 최연준, 혹시 연인 사이?]나석진이 흠칫했다. 숙이의 얼굴도 창백해졌다.“제가 한 게 아니에요! 전 송지아 전하에게서 도망치자마자 도련님을 찾아왔어요! 제 동생의 목숨을 걸고 맹세해요, 제가 한 게 아니에요!”나석진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단 몇 분 사이에 이 뉴스는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모든 사이트의 서버가 마비되었다. 댓글들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왔다. 대부분은 부정적인 여론이었다.[친왕이 게이였어? 이럴 수가!][이건 남양의 권위에 도전하는 거야! 이런 사람은 우리 국왕이 될 수 없어!][황실에서 이런 추문이 터지다니, 이미지가 뭐가 돼? 얼른 내려와!][후계자 바꿔! 이런 국왕은 필요없어!]......나석진은 가장 빠른 속도로 윤 씨네 집에 도착했다. 강서연과 최연준은 진작에 이 뉴스를 보았었다. 두 사람은 서재의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는데, 핸드폰에 불이 날 듯이 전화가 걸려 왔다.“서연아, 연준아, 너희...”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석진은 소파에 또 한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혁준아? 이런 판국에서도 여길 오고 싶어? 내 동생과 제부가 덜 피곤한 것 같아?”송혁준이 모자를 벗자 준수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입가의 미소까지...나석진은 저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켰다. 송혁준이 연예계에 있었다면 차세대 남신은 그였을 것이다.“어이, 나 배우. 우리 사이가 아무리 좋다 한들, 친왕을 봤으면 예의는 차려야 하는 게 아닌가?”“너...”나석진은 옅게 인상을 쓰며 강서연과 최연준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모두 계획에 있었다는 듯 담담한 얼굴이었다.나석진은 어리둥절해졌다.“너희, 무슨 뜻이야? 다 설계한 거야?”
“그런 셈이죠!”강서연이 웃으며 화면을 쳐다보았다. 이때 집사가 노크하고 들어왔다.“아가씨, 도련님. 이건 홍보팀이 발견한 정황입니다. 가장 많이 보인 계정은 이것들입니다.”“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이 계정들은 계속해서 친왕 폐하에게 불리한 댓글을 작성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폐하를 반대하려 했습니다!”“그러니까 댓글 알바란 말이네. 이런 허접한 수단으로도 여론몰이하려고?”“우리 누나는 원래 단순한 사람이에요. 전에는 숙모가 감싸줬었는데, 지금은 안 계셔서...”송혁준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송지아 짓인 걸 알고 있었어?”나석진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알고 보니 그의 소식이 가장 느렸다!“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뉴스를 터뜨린 거예요!”최연준이 웃으며 나석진의 어깨를 두드렸다.“뭐?”“서연이 공이 컸죠.”최연준이 아내를 바라보았다. 애틋한 눈빛에 자랑스러움이 더해졌다. 나석진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손으로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다.“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부터 해 주는 게 어때? 오늘 숙이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송지아가 자신더러 이 사실을 터뜨리라고 했대. 그런데 마침 이 뉴스가 터진 거야! 얼마나 급했는지 알아?”“공이라 할 것도 뭐한 게... 집 근처에 CCTV를 많이 달아둔 것뿐이에요.”강서연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군형이가 한창 뛰어다닐 나이라서, 혹시라도 다칠까 봐 걱정됐는지 서연이가 여기저기에 CCTV를 달아뒀어요. 실내뿐만 아니라 정원, 수림, 사바 우림까지 전부 말이에요!”“그러니까... CCTV가 도촬하는 사람을 찍었다는 거야?”“응! 작별의 포옹이었는데 서연 씨한테 딱 걸렸지 뭐야. 얼마나 창피하던지.”“정말 죄송해요, 전하.”“죄송한 건 오히려 저죠. 그래도 덕분에 도촬한 사람을 발견했고, 우리 누나의 계략도 알아냈어요.”“그래서 그 도촬범을 잡아내 사진을 얻어냈어요. 정말 그렇고 그런 것 같이 찍혔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터뜨리기로 했어요.”“미친 거
그는 연예계에 몸 담은 지 오래 되었기에 루머가 얼마나 무서운 지 알고 있었다. 원래 유망했던 스타들이 루머때문에 한꺼번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많이 봤었다.그들은 팬을 진심으로 대했는데 결국엔...“알아.”송혁준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초연하게 말했다.“난 대중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게 아니야. 그저 사실을 밝히고 마음의 짐을 좀 덜고 싶을 뿐이야. 이 일은 시한폭탄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데 다른 사람에 의해 밝혀질 바에는 내가 터뜨리는게 나아.”“혁준아!”나석진이 식은 땀을 흘렸다.이렇게 좋은 사람이 왕이 안 되는 건 남양의 큰 손실이었다.“오빠,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강서연이 웃으며 몇 장의 도표를 가져다 주었다.“이걸 보고도 아직 모르시겠어요? 송지아는 지금 이성을 잃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어요. 한 곳에 집중 할수록 다른 곳에 대한 경계심은 옅어지기 마련이죠.”“저희는 이 아이디들을 역추적해 송지아가 그 뒤에 있다는 걸 밝혀낼 수 있어요.”강서연이 말을 이었다.“남양이 송혁준을 국왕으로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더러운 수단을 쓰는 여자를 여왕으로 선택 할 리가 없어요. 민중들도 보는 눈이 있는데 그 정도 분별력은 있죠. 게다가 지금 대부분의 언론은 모두 통제되고 있으니까요.”최연준이 강서연의 어깨를 안으며 웃었다.그리고는 해외 전화를 한 통 걸었다.“아저씨, 남양 쪽의 인터넷 문제 말인데요. 혹시 해결 할 방법이 있나요?”강서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그가 전화를 끊은 후 물었다.“여보, 변덕수 아저씨한테 연락한 거예요?”“아직 안 말했구나.”최연준이 웃으며 말했다.“사실 예전부터 아저씨의 신분을 의심했었는데, 조사해보니까...”“누군데요?”“유명한 탐정일 뿐만 아니라...”최연준이 뜸을 들이며 말했다.“해커더라고.”강서연이 깜짝 놀라서 그를 보았다.변덕수가 아무리 비밀에 싸인 인물이라도 최연준은 결국 그의 신분을 조사해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결국 어머니 때문이었다.지금에
송이수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는 티 없이 맑은 송혁준의 눈빛을 보며 자신이 잘 못 본게 아니라고, 이 나라는 송혁준의 손에 맞기는 게 맞다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하지만...송이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혁준아, 솔직히 나는 상관없어.”송혁준의 눈빛이 빛났다.“이 숙부가 비록 나이는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꽉 막힌 건 또 아니란다. 사람의 감정에는 여러종류가 있어. 꼭 대부분에 속해야먄 정상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숙부님...”“넌 누구도 해치지 않았어. 네가 최연준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의 가정을 파괴하지도 않았지. 사람이 바르고 착하기만 하다면 취향이 무슨 문제겠니. 나는 네가 좋은 아이라고, 좋은 군주가 될거라고 믿는단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민중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야. 알지?”송혁준이 옅게 웃었다.그가 허리를 굽히며 오른손을 가슴 위에 얹고 송이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송혁준은 황실의 최고예법으로 눈앞의 국왕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어릴 적 그는 아버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매일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그러다가 송이수에게 길러진 후에야 어떤 사람은 정말 부모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상반되게 어떤 사람은 부모보다 더 큰 사랑을 베풀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혁준아, 어서 일어서.”“숙부님.”송혁준이 고개를 들어 진지하게 말했다.“감사합니다.”송이수는 코끝이 시큰해지며 그의 손을 잡았다.그는 결코 송혁준을 탓하지 않았다. 이 일이 일어나고부터 그는 어떻게 하면 여론을 잠재워서 그를 보호할지에만 신경을 썼다.그는 오히려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송혁준이 어릴 적에 좀 더 유심히 지켜봤을 걸, 아버지의 손에서 좀 더 일찍 구해냈을 걸, 그랬다면 송혁준은 좀 더 밝고 강한 남자로 클 수 있었을 텐데...“혁준아.”송이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지금 인터넷에서 난리야. 내각도 이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고... 곧 너에게로 화살이 돌아갈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