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나가던 소지연이 고개를 돌린 채 물었다.“무진 오빠 곧 결혼할 거라면서요? 나 아직 예비 신부 얼굴도 못 봤어요.”정말 성연이 궁금하기라도 한 듯이 소지연의 두 눈에는 짙은 호기심을 담고 있었다.사실은 얼마나 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는 지는 그녀 자신만 알고 있을 뿐이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 나중에 두 사람 소개시켜 줄게.”무진은 소지연과 성연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의 성격은 어떤 면에서 아주 닮았다.자신과 소지연이 가까운 관계인만큼 두 사람을 한 번 만나게 할 때이기도 했다.소지연은 활짝 웃으며 마치 옆집 여동생이 오빠와 새언니를 동경하는 듯한 모습을 가장했다.사실 무진에게 있어서 소지연은 확실히 옆집 여동생 같은 존재가 맞았다.소지연은 정말 무진과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었다.오래도록 함께해 온 두 집안의 관계는 그 만큼 예사롭지 않았다. 소지연은 대학 졸업 후에 무진의 회사에 들어가서 차근차근 업무들을 익혀나갔다.그리고 마침내 유럽 지사로 파견되어 실적을 쌓기 시작한 것.세상 물정도 모르던 여자아이가 이제 전략을 세울 줄도 아는 강한 여성으로 자랐다. 그만큼 소지연의 능력은 뛰어났다.“돌아가서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안부 전해 줘. 내일 식사 자리에 좋은 술 한 병 가져다 드리고 사죄 드리겠다는 말씀도 대신 전해 주고.” 강씨 집안과 소씨 집안은 대를 이어 친교를 맺어온 사이.예전에 무진의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소씨 집안 부모님과의 관계도 아주 좋았었다.무진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겉으로는 두 집안의 교류가 뜸한 듯했으나 보이지 않는 협력 관계는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무진이 어려울 때면 소씨 집안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너무 오랫동안 찾아 뵙지 못한 것은 확실히 무진 자신의 잘못이었다.“무진 오빠가 찾아 뵈면 두 분 모두 기뻐하실 거예요. 예전에 오빠 집안 내 둘째, 셋째 일가와의 일에 대해서는 부모님과 통화할 때 언급하신 적이 있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오
저녁에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던 성연.한창 하고 있던 게임이 중간에 끊겼다. 짜증이 났지만 발신자 표시를 본 성연의 얼굴에 경악에 가까운 표정이 떠올랐다.거기에 기대하지 못했던 기쁨도 다소 섞여 있었다.성연은 게임은 내팽개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휴대폰 너머에서 아주 매력적인 남자 음성이 들렸다. 성연이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상대방이 말했다.“공항에 좀 늦었더니 두 세 시간 여유가 생겼어. 비행기를 바꿔 타고 북성으로 날아갈 거야. 이 틈에 얼굴이나 보자.”성연이 생각해도 확실히 서로 얼굴을 본 지 오래되었다.서로 바빠서 도무지 자리를 함께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성연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따가 내가 갈게. 나를 속이는 거 아니지?”도시 농담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이 사람의 성격으로 봐서 아마 자신을 속이는 건 아닐 것이다.“서로 얼굴 본 지 이렇게 오래 되었는데, 내가 너를 속일 이유가 뭐야?” 상대방의 말투에서 어쩔 수 없이 가벼운 웃음기가 희미하게 묻어났다.성연이 주먹을 쥐고서 한 대 치는 동작을 취하며 말했다.“넌 감히 나를 못 속여. 만약 감히 나를 속인다면 어디로 가든지 쫓아가서 단단히 혼구멍을 내 줄 거야.”성연의 말에 휴대폰 저편의 사람이 더 크게 웃었다. “아이고, 바라는 바네요.”흥 가볍게 콧방귀를 뀌는 성연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이로써 이 사람의 전화를 성연이 얼마나 반가워하는 지 알 수 있었다.성연은 창가로 가서 바깥 하늘을 잠시 쳐다보았다. 아직 시간이 있는 줄 알았으나 이미 밤이 깊었다.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사람은 시간이 두세 시간밖에 없다고 했다.그런데도 일부러 자신에게 전화를 한 것.누가 뭐라 하든, 성연은 꼭 가서 만나야 했다.그래서 성연도 승낙하려 했지만, 미처 성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상대편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여기서 너 기다릴 테니, 나 바람 맞히지 마.”성연이 휴대폰을 향해 눈을 흘겼다.“내가 바람이나 맞히는 사람
성연은 가는 내내 운전 속도를 높여 밤 10시 좀 넘어 공항에 도착했다.휴대폰으로 들어온 메시지에 따라 공항 VIP 실로 향했다.성연이 VIP실로 들어서자, 몸매며 얼굴이며 모두 연예인 보다 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유니버설 트레이드 컴퍼니의 대표 고정재.성연의 오랜 친구다.고정재를 본 성연이 눈썹을 휙 치켜세우고는 앞으로 걸어가 고정재의 어깨를 두드렸다.“진짜 이런 일이 다 있네. 공사다망하신 사람이 먼저 만나자고 하다니 너무 황송할 지경이야.”고정재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말했다.“그만 놀려. 바쁜 일만 아니면 난들 너희들과 종일 같이 어울리고 싶지 않겠어?”“됐네요, 됐네요. 대표님이 우리와 같을 수야 없지.” 성연이 저리 가라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고정재, 이 인간의 시간은 1분 1초가 수십 억 원에 맞먹을 정도니, 성연도 감히 그의 시간을 헛되게 할 수 없었다.만약 고정재에게 자신들과 같이 놀게 한다면, 어찌 정당한 일이라고 하겠는가?고정재의 얼굴이 다소 진지해지더니 입을 열어 물었다.“성연아, 너 요즘 잘 지내고 있어? 학교에서 있었던 일 다 알고 있어. 너 진짜 유럽으로 유학 갈 생각이야?”평소 무척이나 바쁜 고정재이지만, 성연에 관한 일만큼은 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유럽은 그의 세력 근거지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성연이 정말 그곳에 간다면 더 자주 만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성연을 돌보는 것도 괜찮고.성연은 이미 결정을 내렸기에, 부인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유럽으로 오기만 해. 필요한 모든 것들 미리 다 준비해 놓을 테니. 그냥 가방 들고 입학만 하면 되게 말이야.” 성연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해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정재.하지만 성연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성연은 남들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과 고정재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어찌 되었든 사람
고정재는 소장하고 있던 향수 한 병을 꺼냈다. 향수는 꽤나 볼륨감 있게 투각을 한 단향목 케이스에 담겨 있었다.파스텔 블루의 향수가 케이스 밖으로 보일락말락 하는 것이 무척 예뻤다.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정재의 손에 들린 향수를 보는 성연의 눈에 기쁨이 넘쳤다.성연이 이 향수가 무척 마음에 든 것이 분명했다.고정재가 성연에게 말했다.“이건 네 스승님이 그 해에 남기셨던 배합법에 따라 만든 거야. 사적으로 따로 연구해서 만들라고 회사에 시켰어. 한 번 뿌려 봐. 만약 이 제품이 진짜 생산된다면 유럽의 다른 어떤 명품 향수보다 더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해. 나도 이 향수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는데, 결국 똑같이 만족스럽게는 만들지 못 했어.”그래서 고학중의 제자인 성연이에게서 분명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찾아온 터였다.물론 성연과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지만.고정재가 가볍게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던 성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건 향수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케이스에서 꺼낸 향수를 코끝에 대고 향을 맡던 성연은 확실히 스승님이 남긴 배합표에 따라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은은하면서도 예스러운 한약 향이 아주 살짝 묻어났지만, 다른 향에 둘러싸여 일반인이라면 맡기 어려웠다.일반 향수보다 더 묵직한 베이스노트가 느껴졌다.그러나 이 향은 다른 사람들이 연구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오직 성연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알아내기 힘들 정도로 아주 미세한 향 몇 개가 섞여 있음을.성연의 진지한 모습을 본 고정재가 말했다.“알아내기 힘들면 억지로 안 해도 돼. 이 향수는 내가 너에게 주는 거야. 천천히 연구해도 돼. 서두를 필요 없어. 물론 연구할 생각 없으면 안 해도 돼. 다만 이 향수, 시장성이 있다고 봐. 만들어 내면 분명 히트할 거야.”“내가 열심히 연구해 볼게.” 성연은 사실 고학중의 제자일 뿐이다.자신은 스승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능력을 이어받았을 뿐이다.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을
성연이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무진은 서재에서 서류들을 보느라 여전히 바빴다.서재를 지나가던 성연은 서재에 아직 불이 켜진 것을 보았다.옷을 갈아입고 나온 성연은 오후에 만들어 두었던 약선탕을 다시 데워서 무진에게 들고 갔다.“이렇게 오래 일했으니 이제 뜨끈한 탕을 좀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해요.” 여름이지만 밤이 되면 여전히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옷도 가볍게 입은 무진이 일에 빠져 있다 보면 냉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러다 무진이 병이라도 날까 성연은 걱정스러웠다.“어, 왔네?” 무진의 눈에는 감추지 못한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무진이 성연의 손에 들려 있던 약선탕을 받아 들고 순식간에 다 마셨다.무진은 성연이 늦은 시간에 만나러 나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묻지 않았다. 오히려 성연이 먼저 설명했다.“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빠 만나고 왔으니, 오해하지 말아요.”“오해 안 해.”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무진은 속으로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가 기억하기에, 송종철과 진미선이 결혼해서 낳은 첫아이가 성연인데, 어디에서 오빠가 툭 튀어나온 건가 싶었다.성연이 자란 시골 마을의 다른 집 아들이라면 더 이해가 안 된다.마을 사람들의 배경이야 너무나 평범해서, 어떤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그런데 어떻게 성연과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지?’‘마을의 이웃집 오빠도 아니라면, 또 어디에서 튀어나온 걸까?”무진의 마음속에 의혹이 겹겹으로 쌓였지만, 성연이 자신을 속이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성연이 오빠라고 부르면 당연히 오빠겠지. 단지 내가 모르고 있을 뿐.’무진이 그에 대해서는 별말 하지 않았다.“돌아왔으니 푹 쉬어.” “무진 씨는 아직 안 잘 거예요?” 성연이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예전에는 늘 무진과 같이 잠이 들었다.그러나 지금 무진이 업무로 바빠지면서 잠 드는 시간도 늦어지고 있었다.어쩌면 무진이 침실에 들어왔을 것이다. 자신이 깨지 않고 자는 사이에 다시 또 일어나 나
이튿날, 소지연이 직접 성연을 만나러 찾아왔다.바쁜 무진 대신 성연이 문을 열고 현관문 앞에서 기다렸다.문이 열리며 세련되고 여성스러운 차림의 미인이 눈앞에 서 있었다.여자의 위기감에 성연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시죠?”그러나 소지연은 아주 친근한 태도로 말했다.“당신이 무진 오빠 약혼녀죠? 저는 소지연이라고 해요. 무진 오빠와는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은 사이예요.”무진과 친구 같은 사이라는 말을 듣고 성연은 경계심을 늦추었다.그러나 무진에게서 이런 이성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그래서 갑자기 나타난 친구에게 성연은 아주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다.성연이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송성연입니다.”소지연은 위에서 아래로 성연을 힐끗 훑어보았다.젖비린내 나는 어린 여자애였다. 자신의 눈에는 별로 도전할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자신이 나선다면 송성연의 몫이 있기나 할까?소지연은 활짝 웃으며 성연을 쳐다보았다. 성연이 소지연을 손님으로 집안에 들였다.소지연이 핸드백을 성연에게 건넸다.“새언니를 처음 만나는데,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지 몰라 가방을 하나 골라봤어요. 내 생각엔 분명히 새언니 마음에 들 거예요.”성연은 한 번 쓰윽 훑어보니, 손바닥 만한 핸드백이 명품 브랜드 못지않게 무척 비싼 가격이었다.소지연은 얼굴이 예쁠 뿐 아니라 씀씀이도 무척이나 대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성연은 망설이며 받지 못했다.옆으로 다가온 무진이 입을 열었다.“괜찮아, 내 사람이야. 지연이가 너에게 선물하는 거니 받아 둬.”무진이 말한 이상 성연도 거절하기 어려워 핸드백을 받았다.“감사합니다.”그러나 무진이 자기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 소지연이 무진의 심중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분명 낮지 않을 터.성연이 방에 핸드백을 가져다 두고 다시 내려오니, 무진과 소지연이 마침 소파에서 웃고 떠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소지연을 대하는 무진의
성연이 하하 웃었다. 소지연이 한 말들에 대해 정말이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것.소지연은 정말 대화의 고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이런 사람을 처음 접해 본 성연은 다소 허둥지둥하는 느낌이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연과 소지연이 서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터.무슨 말을 해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성연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소지연은 자기말만 계속 했다. 대답을 듣지 못해도 낙담하지 않고 완벽한 웃음을 유지했다. 그래서 왠지 가짜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처음 만나서 서로의 성격도 잘 모르기에 지나치게 평가를 논하기도 어려웠다.한참을 말한 뒤에 소지연이 말했다.“성연 씨, 우리 같이 쇼핑하러 가요. 방금 귀국해서 아직 북성을 제대로 구경 못 했어요.”성연이 개의치 않겠다고 하니, 소지연도 호칭을 바꾸었다.어차피 어떤 호칭이든 자신에게는 똑같았다.“죄송해요, 나는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같이 쇼핑하러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성연은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웃으며 소지연의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했다.자신이 소지연에게서 계속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기 때문.그리고 성연의 육감이 소지연과 너무 가까이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성연은 자신의 느낌을 따르기로 했다.소지연은 좀 아쉬워하는 어투로 말했다.“아, 그렇군요. 그럼 우리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만나요.”“네, 기회가 있으면 다시 얘기해요. 오늘은 내가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어요.” 성연도 소지연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세 사람이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점심 때가 되었다. 무진이 회사에 가려고 일어섰다.그러자 소지연도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무진 오빠, 마침 잘 됐어요. 가는 길에 좀 데려다 줘요. 안 그러면 성연 씨를 너무 귀찮게 하겠어요.”무진이 없으면 성연도 소지연을 응대할 방법이 없다.성연은 입을 열어 만류하지 않고 그냥 또 오라고 인사했다.“시간이 나면 다시 놀러 와도 돼요
저녁에 성연은 주방에 내려가 직접 많은 음식들을 만들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주방장이 도와주려 하다가 성연에게 쫓겨났다.음식을 할 때 성연은 직접 식재료를 다듬는 것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자기 자신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다른 사람이 하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게 뻔하다.집사는 성연이 혼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청해서 성연을 도와주었다.“작은 사모님, 제가 반찬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성연의 옆에는 또 많은 재료들이 늘어져 있었다. 과연 언제 다 처리할 수 있을지.집사의 목소리에 성연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집사님, 채소들을 좀 씻어 주시면 돼요.”집사가 능숙하게 생선을 다듬었다. 모든 동작들이 민첩하게 채소들을 썰었다.채소를 다듬는 동안 풍성한 음식들을 보던 집사가 호기심에 물었다.“작은 사모님, 오늘 사모님과 도련님에게 무슨 특별한 날인가요?”평소의 두 사람이라면 성연은 절대 이렇게 많이 하지 않았을 타.아까운 게 아니라 그저 낭비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특별한 날 아니에요.”성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저 음식을 한 지 너무 오랜만이라 일시에 흥이 났고, 이런 음식들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무진이 좋아하는 식성에 맞는 음식들을 여러 개 만들었다.평소 무진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회사에서 하루 종일 지쳐서 돌아왔다가 이 음식들을 보면 무진이 매우 즐거운 마음이 들겠지?집사는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성연을 위해 모든 재료들을 깨끗이 다듬는 데에 전념하기 시작했다.음식을 다 만들고 나자, 마침 무진이 퇴근할 시간이었다.성연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동작에 간절함이 담겼다.전화를 걸자 무진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목을 가다듬은 후에 입을 열었다.“오늘 저녁 집에 와서 식사할 거예요? 일 다 끝나지 않았어요?”무진은 몰랐지만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