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재는 소장하고 있던 향수 한 병을 꺼냈다. 향수는 꽤나 볼륨감 있게 투각을 한 단향목 케이스에 담겨 있었다.파스텔 블루의 향수가 케이스 밖으로 보일락말락 하는 것이 무척 예뻤다.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정재의 손에 들린 향수를 보는 성연의 눈에 기쁨이 넘쳤다.성연이 이 향수가 무척 마음에 든 것이 분명했다.고정재가 성연에게 말했다.“이건 네 스승님이 그 해에 남기셨던 배합법에 따라 만든 거야. 사적으로 따로 연구해서 만들라고 회사에 시켰어. 한 번 뿌려 봐. 만약 이 제품이 진짜 생산된다면 유럽의 다른 어떤 명품 향수보다 더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해. 나도 이 향수를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는데, 결국 똑같이 만족스럽게는 만들지 못 했어.”그래서 고학중의 제자인 성연이에게서 분명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찾아온 터였다.물론 성연과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지만.고정재가 가볍게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던 성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건 향수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케이스에서 꺼낸 향수를 코끝에 대고 향을 맡던 성연은 확실히 스승님이 남긴 배합표에 따라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은은하면서도 예스러운 한약 향이 아주 살짝 묻어났지만, 다른 향에 둘러싸여 일반인이라면 맡기 어려웠다.일반 향수보다 더 묵직한 베이스노트가 느껴졌다.그러나 이 향은 다른 사람들이 연구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오직 성연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알아내기 힘들 정도로 아주 미세한 향 몇 개가 섞여 있음을.성연의 진지한 모습을 본 고정재가 말했다.“알아내기 힘들면 억지로 안 해도 돼. 이 향수는 내가 너에게 주는 거야. 천천히 연구해도 돼. 서두를 필요 없어. 물론 연구할 생각 없으면 안 해도 돼. 다만 이 향수, 시장성이 있다고 봐. 만들어 내면 분명 히트할 거야.”“내가 열심히 연구해 볼게.” 성연은 사실 고학중의 제자일 뿐이다.자신은 스승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능력을 이어받았을 뿐이다.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을
성연이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무진은 서재에서 서류들을 보느라 여전히 바빴다.서재를 지나가던 성연은 서재에 아직 불이 켜진 것을 보았다.옷을 갈아입고 나온 성연은 오후에 만들어 두었던 약선탕을 다시 데워서 무진에게 들고 갔다.“이렇게 오래 일했으니 이제 뜨끈한 탕을 좀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해요.” 여름이지만 밤이 되면 여전히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옷도 가볍게 입은 무진이 일에 빠져 있다 보면 냉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러다 무진이 병이라도 날까 성연은 걱정스러웠다.“어, 왔네?” 무진의 눈에는 감추지 못한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무진이 성연의 손에 들려 있던 약선탕을 받아 들고 순식간에 다 마셨다.무진은 성연이 늦은 시간에 만나러 나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묻지 않았다. 오히려 성연이 먼저 설명했다.“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빠 만나고 왔으니, 오해하지 말아요.”“오해 안 해.”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무진은 속으로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가 기억하기에, 송종철과 진미선이 결혼해서 낳은 첫아이가 성연인데, 어디에서 오빠가 툭 튀어나온 건가 싶었다.성연이 자란 시골 마을의 다른 집 아들이라면 더 이해가 안 된다.마을 사람들의 배경이야 너무나 평범해서, 어떤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그런데 어떻게 성연과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지?’‘마을의 이웃집 오빠도 아니라면, 또 어디에서 튀어나온 걸까?”무진의 마음속에 의혹이 겹겹으로 쌓였지만, 성연이 자신을 속이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성연이 오빠라고 부르면 당연히 오빠겠지. 단지 내가 모르고 있을 뿐.’무진이 그에 대해서는 별말 하지 않았다.“돌아왔으니 푹 쉬어.” “무진 씨는 아직 안 잘 거예요?” 성연이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예전에는 늘 무진과 같이 잠이 들었다.그러나 지금 무진이 업무로 바빠지면서 잠 드는 시간도 늦어지고 있었다.어쩌면 무진이 침실에 들어왔을 것이다. 자신이 깨지 않고 자는 사이에 다시 또 일어나 나
이튿날, 소지연이 직접 성연을 만나러 찾아왔다.바쁜 무진 대신 성연이 문을 열고 현관문 앞에서 기다렸다.문이 열리며 세련되고 여성스러운 차림의 미인이 눈앞에 서 있었다.여자의 위기감에 성연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시죠?”그러나 소지연은 아주 친근한 태도로 말했다.“당신이 무진 오빠 약혼녀죠? 저는 소지연이라고 해요. 무진 오빠와는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은 사이예요.”무진과 친구 같은 사이라는 말을 듣고 성연은 경계심을 늦추었다.그러나 무진에게서 이런 이성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그래서 갑자기 나타난 친구에게 성연은 아주 희한하다는 생각을 했다.성연이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송성연입니다.”소지연은 위에서 아래로 성연을 힐끗 훑어보았다.젖비린내 나는 어린 여자애였다. 자신의 눈에는 별로 도전할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자신이 나선다면 송성연의 몫이 있기나 할까?소지연은 활짝 웃으며 성연을 쳐다보았다. 성연이 소지연을 손님으로 집안에 들였다.소지연이 핸드백을 성연에게 건넸다.“새언니를 처음 만나는데,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지 몰라 가방을 하나 골라봤어요. 내 생각엔 분명히 새언니 마음에 들 거예요.”성연은 한 번 쓰윽 훑어보니, 손바닥 만한 핸드백이 명품 브랜드 못지않게 무척 비싼 가격이었다.소지연은 얼굴이 예쁠 뿐 아니라 씀씀이도 무척이나 대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성연은 망설이며 받지 못했다.옆으로 다가온 무진이 입을 열었다.“괜찮아, 내 사람이야. 지연이가 너에게 선물하는 거니 받아 둬.”무진이 말한 이상 성연도 거절하기 어려워 핸드백을 받았다.“감사합니다.”그러나 무진이 자기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다.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 소지연이 무진의 심중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분명 낮지 않을 터.성연이 방에 핸드백을 가져다 두고 다시 내려오니, 무진과 소지연이 마침 소파에서 웃고 떠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소지연을 대하는 무진의
성연이 하하 웃었다. 소지연이 한 말들에 대해 정말이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것.소지연은 정말 대화의 고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이런 사람을 처음 접해 본 성연은 다소 허둥지둥하는 느낌이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연과 소지연이 서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터.무슨 말을 해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성연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소지연은 자기말만 계속 했다. 대답을 듣지 못해도 낙담하지 않고 완벽한 웃음을 유지했다. 그래서 왠지 가짜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처음 만나서 서로의 성격도 잘 모르기에 지나치게 평가를 논하기도 어려웠다.한참을 말한 뒤에 소지연이 말했다.“성연 씨, 우리 같이 쇼핑하러 가요. 방금 귀국해서 아직 북성을 제대로 구경 못 했어요.”성연이 개의치 않겠다고 하니, 소지연도 호칭을 바꾸었다.어차피 어떤 호칭이든 자신에게는 똑같았다.“죄송해요, 나는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같이 쇼핑하러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성연은 미안한 표정을 지은 채 웃으며 소지연의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했다.자신이 소지연에게서 계속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기 때문.그리고 성연의 육감이 소지연과 너무 가까이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성연은 자신의 느낌을 따르기로 했다.소지연은 좀 아쉬워하는 어투로 말했다.“아, 그렇군요. 그럼 우리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만나요.”“네, 기회가 있으면 다시 얘기해요. 오늘은 내가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어요.” 성연도 소지연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세 사람이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점심 때가 되었다. 무진이 회사에 가려고 일어섰다.그러자 소지연도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무진 오빠, 마침 잘 됐어요. 가는 길에 좀 데려다 줘요. 안 그러면 성연 씨를 너무 귀찮게 하겠어요.”무진이 없으면 성연도 소지연을 응대할 방법이 없다.성연은 입을 열어 만류하지 않고 그냥 또 오라고 인사했다.“시간이 나면 다시 놀러 와도 돼요
저녁에 성연은 주방에 내려가 직접 많은 음식들을 만들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주방장이 도와주려 하다가 성연에게 쫓겨났다.음식을 할 때 성연은 직접 식재료를 다듬는 것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자기 자신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다른 사람이 하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할 게 뻔하다.집사는 성연이 혼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청해서 성연을 도와주었다.“작은 사모님, 제가 반찬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성연의 옆에는 또 많은 재료들이 늘어져 있었다. 과연 언제 다 처리할 수 있을지.집사의 목소리에 성연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집사님, 채소들을 좀 씻어 주시면 돼요.”집사가 능숙하게 생선을 다듬었다. 모든 동작들이 민첩하게 채소들을 썰었다.채소를 다듬는 동안 풍성한 음식들을 보던 집사가 호기심에 물었다.“작은 사모님, 오늘 사모님과 도련님에게 무슨 특별한 날인가요?”평소의 두 사람이라면 성연은 절대 이렇게 많이 하지 않았을 타.아까운 게 아니라 그저 낭비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특별한 날 아니에요.”성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저 음식을 한 지 너무 오랜만이라 일시에 흥이 났고, 이런 음식들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무진이 좋아하는 식성에 맞는 음식들을 여러 개 만들었다.평소 무진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회사에서 하루 종일 지쳐서 돌아왔다가 이 음식들을 보면 무진이 매우 즐거운 마음이 들겠지?집사는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성연을 위해 모든 재료들을 깨끗이 다듬는 데에 전념하기 시작했다.음식을 다 만들고 나자, 마침 무진이 퇴근할 시간이었다.성연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동작에 간절함이 담겼다.전화를 걸자 무진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성연이 목을 가다듬은 후에 입을 열었다.“오늘 저녁 집에 와서 식사할 거예요? 일 다 끝나지 않았어요?”무진은 몰랐지만 성
무진은 퇴근 후 바로 소씨 집안으로 소지연의 부모를 만나러 갔다.소지연의 부모는 무진을 열렬히 환대했다.음식은 모두 두 사람이 준비를 다 해 놓은 상태였다. 무진이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았다.소지연이 그릇과 수저를 가져다 놓으며 옆에서 놀렸다.“무진 오빠, 오빠 온다고 하니까, 우리 엄마 아빠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셨어요.”다분히 놀리는 말에 소지연의 엄마가 책망하듯이 소지연을 쳐다보며 말했다.“얘, 엄마 아빠를 놀리기나 하고! 무진아, 네 집이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무진이 이곳에 얼마 만에 왔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무진을 대하는 소씨 부부의 태도는 변함없이 좋았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식사하는 동안 아주머니는 감탄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무진이 너와 우리 지연이 둘 다 이렇게 자랐어. 지금 무진이와 지연이 너무 바쁘구나. 이렇게 밥 먹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다음에 꼭 안 회장님 뵈러 가야겠다. 안 그러면 사이가 서먹서먹해질 거야.”“그래, 무진아, 이제 예전과 많이 달라. 회사를 경영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이 다 사람들 눈에 띄게 돼. 그러니 항상 삼가 조심하고 경솔해서는 안돼.” 소씨 아저씨도 옆에서 충고했다.아저씨, 아주머니 두 분의 애틋한 말을 듣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무척 익숙했다.그리고 자신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무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말하지만, 이 돈이라는 게 벌려면 끝도 없어. 지연이 말이 무진이 너 몸이 안 좋다고 하던데, 역시 건강에 주의해야 해.” 아주머니가 염려 섞인 눈빛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무진이 아주머니를 달래듯이 미소를 지었다.“아주머니, 걱정 마세요. 요즘 약도 계속 먹고 있어요. 벌써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괜찮아요.”“그럼 됐어. 역시 자신의 몸을 잘 돌보는 게 관건이야.”아주머니 관심을 기울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무진이
강명재, 강명기, 그리고 강진성과 강일헌이 일제히 운봉그룹의 테이프 커팅 현장에 등장했다.은성그룹, 즉 강명기가 사석에서 개설한 회사였다. 둘째, 셋째 일가가 각각 50%의 주식을 아주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여기저기서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고, 각 언론매체들은 서로 앞다투어 제일 앞에서 최신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모두들 자신들이 WS그룹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더 많은 사람들이 둘째, 셋째 일가가 예전에 빛날 수 있었던 것도 강씨 가문의 후광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지금 강씨 가문에서 분리된 것은 자신들이 마치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음을, 이제 별볼일 없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너무 많은 걸 생각한다.비록 강씨 가문을 떠났다 하더라도 둘째, 셋째 일가 사람들은 여전히 이처럼 기세 등등했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모르지만 강씨 가문 내의 인원들은 모두 알고 있다. 둘째, 셋째 일가 배후에 있는 후원자를 믿고 이렇게 날뛰고 있음을.강진성은 밖으로 시선을 던지면서 속으로 얼마나 득의양양한지 몰랐다.WS그룹에서 자신들은 늘 강무진에게 눌리고 큰집 사람들에게 눌렸다.이제 은성그룹은 자신들의 회사였다.언젠가 자신들만의 제국을 만들 것이다.WS 그룹을 능가할 수 있는 그룹.엠파이어 하우스 안.성연과 무진은 모두 소파 앞에 나란히 앉아서 마침 경제 채널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도 인터뷰 장면을 보았다.성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진의 표정을 힐끗 보았다.무진의 표정은 냉담했다. 저들의 득의양양한 모습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지금 둘째, 셋째 일가는 이미 자신의 골머리를 썩이게 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진은 속으로 의혹을 중얼거렸다.‘테이프 커팅 같이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 어째서 MS 가문의 미스터 제이슨이 나타나지 않았을까?’‘설마 계속 뒤에 숨어 있겠다는 걸까?’무진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본 성연은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왜요? 저 사람들 테이프 커팅식에
무진의 눈 밑에 드리워진 다크 서클을 바라보는 성연이 눈에 애정 어린 관심을 담고 물었다.“요즘 무진 씨 너무 피곤해요. 긴장을 제대로 풀어야 해요.”‘일이야 뭐, 당연히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게 제일 좋지.’둘째, 셋째 일가의 일이 간신히 지나갔다. 다음에 쉴 시간은 도대체 언제쯤일런지 모르겠다.성연은 우선 무진에게 일을 좀 내려놓으라고 권하고 싶었다.무진도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 들을게. 마침 소지연이 어제 리조트 한 곳을 언급하던데, 우리 한 이틀 쉬고 오자.”자신이 바쁜 것은 상관없었다.다만 바쁘다 보니 확실히 너무 많은 것들을 소홀히 했다. 성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그러니 이 시간을 이용해서 성연 옆에 꼭 붙어 있어야지.’성연이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리조트에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성연은 보란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진이 소지연을 언급하는 순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소지연은 유럽에서 돌아온 후 거의 매일 무진에게 붙어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두 사람의 죽마고우 관계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깊었다.처음 소지연과 만났을 때만 해도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소지연, 보기엔 멀쩡해 보였으니까.’특히 최근 며칠 무진의 입에서 소지연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그게 성연이 반감을 느끼게 했다.자신의 생각이 너무 편협한 지도 모른다고 성연은 속으로 자신을 위로했다.‘그냥 내 생각이 너무 많은 거였으면 좋겠어.’리조트를 언급할 때 성연의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무진이 물었다.“왜? 리조트에 가고 싶지 않아?”성연이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에요. 갑자기 불쾌한 일이 생각나서 정신이 잠시 나간 모양이에요. 미안해요.”“괜찮아, 만약 리조트에 가고 싶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가도 돼.” 무진에게는 성연의 의견을 확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할 뿐.어쨌든 무진이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성연의 마음.“아니요, 그냥 리조트에 가요.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