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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열등생일 게 뻔해

평소 귀가 밝던 성연은 그날, 임수정과 송종철이 하는 대화를 모두 들었다. 겨우 한두 마디 들었을 뿐인데도 그가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날 이용하겠단 말이지? 오히려 고마운 일인걸!’

성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북성에 왔으니 전학수속을 빨리 했으면 좋겠어요.”

순간 송종철의 안색이 굳어졌다.

“알아보는 중이야.”

그는 성연이 다시 학교문제로 따지고 들까 봐 재빨리 말했다.

“북성에서는 학교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학교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사실 그는 성연을 입학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강씨 집안으로 보낸 후 돈을 받게 되면, 그 이후의 일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었다.

‘강씨 집안에서 얼마나 버틸지는 순전히 자기 운이지, 뭐.’

지금은 성연에게 돈을 적게 쓰는 것이 곧 돈을 버는 것이었다.

성연은 소파에 기대앉아 실눈을 뜬 채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사립학교 같은 경우에는 그냥 돈 내고 입학시험만 치르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을 들은 임수정은 입에 넣었던 과일을 도로 뱉어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넌 사립학교의 일 년 학비가 얼마나 비싼지 알기나 하니?”

그녀는 휴지를 꺼내 손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그만한 돈이 있다고 해도, 네 성적으로 들어갈 수나 있는 줄 알아?”

성연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다 멈추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흘겨보았다.

“제 성적은 어떻게 아세요?”

임수정은 냉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학년 내내 꼴찌인데 당연한 거 아니니?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마. 창피하니까.”

실은, 성연의 IQ 지수는 상위 1%였다. 하지만 그녀가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는 시험문제가 너무 쉽고 간단해서 도무지 도전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귀찮아서 시험을 안 친 것뿐인데, 꼴찌는 무슨?’

하지만 이런 얘기를 저들에게 할 필요는 없었다.

성연은 손뼉을 짝 소리 나게 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괜찮아요. 저 혼자 가도 돼요. 돈이나 내주세요.”

임수정과 송종철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성연에게 투자하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시집가면 아무 상관없는 남이 될 텐데, 뭐 하러 투자를 해?’

그때,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송아연이 수정의 손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그래요, 그냥 혼자 가라고 하세요. 입학시험에서 떨어지면 창피만 당할 거잖아요.”

그곳은 송아연도 턱걸이로 간신히 들어간 학교였다.

‘제까짓 게 시골에서 교육이나 제대로 받았겠어? 열등생일 게 뻔해.’

‘그렇게 굴욕을 당하고 싶다면, 기회를 주는 게 맞겠지?’

그녀의 말에 송종철과 임수정은 귀가 솔깃했다.

‘맞아, 시험에 떨어지면 더는 우리 탓을 못 할 거야.’

송종철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학교에 연락해 둘게.”

……

엠파이어 하우스.

짙은 녹색 투피스에 은팔찌를 찬 강씨 집안의 노마님인 안금여는 나이가 들며 얼굴에 주름이 올라오기는 했으나 온몸에 흐르는 귀티는 여전했다.

그녀는 강무진의 맞은편에 앉아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그의 다리에 시선이 멈추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손자는 정말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데, 무슨 팔자가 이렇게 사나운지. 그때 그 사고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무진아, 너도 이제 나이가 꽉 차지 않았니?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모른 척했겠지만, 며칠 전에 너한테 어울리는 여자애를 봐서 말이야. 사주팔자를 보니 너와는 천생연분이더구나. 게다가 네 평생의 귀인이라니, 더할 나위 없지 않니? 이 할미의 안목이 틀리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니 한 번 만나보거라.”

안금여는 여자의 신상명세가 쓰인 서류를 무진의 무릎에 덮인 검은색 담요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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