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처음부터 나 엿 먹으라고 파놓은 함정인가? 목적이 뭐지? 나를 DS 그룹에서 쫓아내는 건가?”“...”허를 찌르는 운석의 말에 호현욱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참 동안 제대로 된 말 한마디를 내놓지 못했다.운석은 그런 호현욱을 무시한 채 하연을 보며 말했다.“최 사장님, 이 일 어떻게 할까요?”하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호현욱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나 본부장님은 F국 NW 그룹의 도련님입니다. 전에 제 가족에서 정해 준 약혼자이기도 했고요. 나 본부장님이 DS 그룹에 들어온 건 어디까지나 호의로 저를 돕기 위헤서고요. 여태껏 실력도 입장했잖아요. D시 프로젝트도 나 본부장님이 따낸 거고. 그러니 오늘 일 제대로 설명해 주셔야 할 겁니다.”하연은 현장에 있는 직원들을 빙 둘러보다가 재원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그 눈에는 비아냥과 조롱이 섞여 있었다.“오재원 씨, 실명으로 횡령을 고발했다던데, 증거는 어디 있죠? 내놓으세요. 만약 증거를 내놓지 못하면 무고죄로 감옥에 가야 할 겁니다.”재원은 겁에 질려 그대로 굳어버렸다.‘난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호 이사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일이 왜 이렇게 됐지? 모든 준비는 끝냈다며? 증거를 준비했다고 나더러 고발만 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재원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 앉더니 이내 호현욱에게 무릎 꿇었다.“이사님, 살려주세요. 저 감옥 가기 싫어요. 감옥 가기 싫다고요.”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호현욱은 잿빛이 된 얼굴로 이내 발을 뺐다.“네가 이런 짓을 한 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이래?”“이사님, 우리 친척이잖아요. 이대로 제가 죽는 거 지켜볼 겁니까?”그 말에 호현욱은 대경실색하며 설명했다.“최 사장님, 저놈 헛소리는 듣지 마세요. 우리가 친척이긴 하나 아주 먼 친척입니다. 평소에 왕래도 없었는데 지금 저건 나를 모함하려고 저러는 겁니다.”“이사님이 시켰잖아요. 제가 실명을 걸고 신고만 한다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준다면서요. 그런데 지금 저를 희생
하연과 운석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그걸 본 현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가 얼마 뒤 민호를 데려와 하연 앞에 밀어 넘어뜨렸다.“이 개자식! 말해! 네가 했지? 감히 나 본부장이 횡령했다고 모함해?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민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잠깐 당황해하더니 이내 하연의 앞으로 기어가 애원했다.“최 사장님, 용서해주세요. 제가 한순간 귀신에 씌었나 봅니다. 절대 의도적으로 그런 게 아닙니다.”하지만 하연이 아무 감정 없이 저를 내려보자 민호는 곧바로 운석에게 다가갔다.“나 본부장님, 제발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그때 운석이 천천히 몸을 웅크려 앉더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용서? 해줄 수 있어. 하지만 누가 지시했는지 말해.”민호는 겁에 질린 눈으로 호현욱을 흘긋거리더니 이내 다시 내리깔며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지시한 사람 없습니다. 제가 독단적으로 벌인 짓입니다. 나 본부장님이 큰 프로젝트를 성사해 질투해서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했습니다.”이 말을 운석은 당연히 믿지 않는다.일개 비서인 민호에게 운석의 행보가 걸림돌이 될 리는 없으니까.“나 본부장, 최 사장님, 이 일은 정 비서가 독단적으로 했다고 하니 무슨 벌이든 내리세요.”민호가 모든 죄를 뒤집어쓴 걸 보면 더 이상 물어봐도 캐낼 게 없다는 걸 하연은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짐 싸서 나가세요.”그 말에 민호는 무거운 짐이라도 내려놓은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하지만 그걸 지켜보던 호현욱이 다급히 말했다.“최 사장님, 이 일이 작은 일도 아니고 이대로 놓아준다는 겁니까?”하연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호현욱을 바라봤다.“그럼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습니까?”호현욱은 그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미소로 자기감정을 애써 숨겼다.“저한테 무슨 좋은 생각이 있겠습니까? 최 사장님이 이렇게 결정하셨다면 따라야죠. 하지만 정 비서는 제 비서였으니 아랫것 제대로 간수 못한 책임으로 이번 달 인센
운석은 처음으로 나씨 집안 사람으로 태어난 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D시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가 독점하기에는 리스크가 좀 커요. 그래서 말인데, 실력 있는 회사와 협력하여 리스크를 줄이는 게 어때요?”일 얘기를 시작하자 운석의 얼굴에 있던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심지어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B시의 선도기업 중에 HT 그룹을 제외하면 FL 그룹 실력이 가장 막강해요. 게다가 FL 그룹 부 대표와 연합하면 분명 몇 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하연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그 말은 FL 그룹과 손잡으라는 뜻이에요?”“네, FL 그룹이 최적의 선택이에요. 물론...”운석은 잠깐 말을 끊고 하연을 바라봤다.“또 한 가지 선택이 더 있긴 하죠. 바로 HT 그룹.”“한서준 말이에요?”하연은 반사적으로 되묻더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HT 그룹은 됐어요. FL 그룹으로 하죠.”어찌 됐든 일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한서준과 다시 엮일 생각은 없었으니까.“네, FL 그룹은 실력이 막강해 두 그룹이 손을 잡으면 분명 좋은 시너지를 낼 거예요. 그럼 제가 나중에 FL 그룹 대표를 한번 만나볼게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주 신비로운 인물이라 공적인 자리에서 얼굴을 비춘 적이 없다더라고요.”“따로 만나서 얘기할 필요 없어요. FL 그룹 대표는 운석 씨도 알 거예요.”운석은 의아한 듯 하연을 바라봤다.“안다고요?”“그 사람이 바로 BN 그룹 도련님 부상혁이랑 같은 사람이거든요.”“그 사람이라고요?”운석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BN 그룹 부상혁이라면 비즈니스 업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사람이다.어린 천재, 하버드 수재, 비즈니스 업계의 귀재... 등 호칭이 모두 상혁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니.부상혁은 그저 전설처럼 전해지기만 했을 뿐, 같은 F국에 있으면서도 두 사람은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그런데 그 사람이 B시에는 언제 왔지? 게다가 FL 그룹 대표라니?’한참 생각하던 운석은 하연을 바라봤다.“혹시
“정 실장, 오늘 무슨 일정 어떻게 돼?”태훈은 하연과 반 발짝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며 일정을 보고했다.“오전 10시에 국제 화상 회의가 잡혀 있고, 오후 2시에 기항 그룹 성 대표님과 미팅이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밤 7시에 MJ 그룹 회장님과 회장 사모님과 모임이 있습니다.”“그래, 알았어.”태훈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하연의 핸드폰이 울렸다.“하연아, 바빠?”전화 건너편에서 예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지난번에 6억으로 드레스 의뢰했던 고객님이 오늘 가게에 들르겠다고 하셔. 너를 콕 집어 만나고 싶다는데, 시간 돼?”하연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물었다.“언제인데?”“물어봤는데 12시 전에는 언제든 괜찮대.”“그래, 알았어.”나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고개 앞에 커피를 대령했다.“김 여사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 디자이너가 조금 늦게 도착한다네요.”김 여사라 불리는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그때, 가게 문 앞에 익숙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오늘 막 출소한 민혜경은 서준에게서 받은 카드로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심지어 이미 옷이며 가방이며 신발을 가득 사 들고 새로운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그동안 살얼음판 같은 감옥에서 지내면서 혜경이 어떤 나날을 보냈는지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다행히 지금은 다시 나왔다.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숍을 본 혜경의 눈은 점점 어두워졌다.이윽고 콧방귀를 뀌더니 안으로 들어갔다.“이거, 이거 다 포장해 줘요.”문을 들어서자마자 혜경은 마네킹에 전시되어 있던 신상 옷을 가리키며 거침없이 말했다.웃으며 다가왔던 예나는 입을 열려는 순간 그대로 굳어 웃음기가 싹 가셨다.“민혜경, 내연녀 주제에 벌써 나왔어?”예나가 퉁명스러운 태도로 내연녀라는 말을 내뱉자 혜경은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끝내 눌러 참으며 비아냥거렸다.“멍하니 서서 뭐 하고 있지? 당장 가서 옷 가져오지 않고?”그 말에 예나는 팔짱을
“또 나쁜짓하러 나왔어?”하연의 거침없는 비아냥에 혜경의 얼굴은 일순 어두워졌다. 하지만 꾹 눌러 참으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내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 서준 씨가 보석금 엄청 많이 들여서 나 빼줬어, 알겠어? 최하연, 서준 씨 마음에는 처음부터 나 하나뿐이었다고. 너는 그저 서준 씨한테 버려진 전처일 뿐이야.”하연은 그 말에 화를 내기는커녕 아무 흔들림도 없는 모습으로 팔짱을 꼈다.“그렇다면 밖에서 싸돌아 다니며 사람 해치지 좀 마.”“너!”혜경은 이를 악물며 하연을 매섭게 쏘아봤다.“최하연, 잘 들어. 내가 그동안 겪은 걸 너한테 똑같이 돌려줄 거야.”“감옥에 다시 돌아가고 싶으면 해봐.”하연의 말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민혜경은 이제 막 감옥에서 나온 터라 효과는 배가 되었다.감옥을 생각하니 혜경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곳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너 딱 기다려.”혜경은 이를 갈며 경고를 남겼다.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등 뒤에 앉아 있던 여자가 눈을 들어 혜경을 바라봤다.여자는 무심한 듯 커피를 입에 대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언제부터 내연녀가 앞뒤 분간 못하고 이렇게 날뛰는 세상이 됐지?”혜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여자를 바라봤다.낯선 얼굴의 여자는 자기 관리를 무척 잘한 30대 초반으로 보였다.지금이야 하연을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눈앞의 여자로 화풀이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혜경은 이내 여자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그게 당신이랑 뭔 상관이야?”여자의 눈은 순간 어두워졌다.“배운 것 없으면 조용히 있을 것이지. 남의 남자 뺏은 내연녀 주제에 자각도 없이 기어 나와 본처 앞에서 설치다니. 뻔뻔한 것!”“이년이 어디서! 내가 그 입을 갈가리 찢어줄게.”혜경은 길길이 날뛰면서 여자에게로 달려갔다.하지만 다음 순간 하연이 햬경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민햬경 적당히 해! 여긴 내 구역이야. 저분은 내 고객님이고,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말을 마친 하연은 혜경을
“전에 B시에서 열렸던 패션쇼의 메인 의상을 디자인한 분 맞죠? 저 그 의상들을 아주 좋게 봤어요. P시에 최하연 씨에 대한 소문이 자자해요.”여자는 말하면서 일어나 하연에게 손을 내밀었다.“반가워요, 김선화라고 해요.”“반가워요, 김 여사님. 방금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저희 숍에서 고른 옷은 모두 20프로 할인해 줄게요.”그 말에 선화는 싱긋 웃었다.“그냥 양심선언 몇 마디 한 것뿐인데 돈 벌었네요.”“맞춤 제작 드레스를 원한다고요?”선화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청자기 주제로 한 드레스와 비슷한 스타일로 제작해 주세요. 참여할 행사가 있어 제일 먼저 하연 씨가 생각나더라고요. 혹시 시간 괜찮아요?”“물론이죠. 치수부터 잴게요.”하연은 선화를 도와 치수를 재고 나서 한참 동안 이야기 꽃을 피웠다.그러다 떠날 때가 되자 선화가 하연에게 명함 한 장을 내놓았다.“다 만들면 여기로 전화해 줘요. 그럼 수고해 줘요.”“별말씀을요. 조심히 가세요.”선화를 보낸 뒤 예나가 다급하게 하연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하연아, 어쩐지 저 여자 낯이 익다고 했는데 이것 봐...”하연은 의아한 눈빛으로 검색 결과를 확인했다.“선화 씨가 수천만 팬을 보유한 패션 블로거일 줄은 몰랐네.”“그니까. 어쩐지 보는 눈이 있다 했어. 우리 숍 옷을 고를 때도 보니까 아는 게 엄청 많더라고. 패션 블로거라 그런 거였구나.”“응. 이번 옷 최선을 다해 만들어 줘야겠네.”하연은 예나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가 인사를 하고 숍을 나섰다.하지만 이제 막 백화점 로비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혜경과 서준을 발견했다.그건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걸 보고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그때,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무의식적으로 혜경을 밀쳐내고 하연에게로 걸어왔다.물론 하연은 본 체도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지만 말이다.“최하연!”그때 서준이 하연을 불러 세웠다.이윽고 빠른 걸음으로 하연의 앞을 막아섰다.“나를
서준은 하연이 떠난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되물었다.“민혜경, 일부러 이랬어? 하연이 여기 있는 줄 알면서 일부러 나 불러내 이런 모습 보인 거냐고?”“서준 씨, 오해야.”“됐어.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아니까. 내가 너 행패 부리라고 빼내 준 거 아니야. 경고하는데, 최하연한테 가까이하지 마. 내 말 거역하면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감옥에 처넣어 줄 테니까.”“...”혜경은 화가 치밀어 서준의 팔짱을 꽉 붙잡으려 했지만 서준은 가차 없이 햬경을 밀쳐냈다.“그만해. 가식적인 태도 역겨우니까. 카드도 이미 줬잖아.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사. 다시는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말을 마친 서준은 혜경의 낯빛도 헤아리지 않고 결연한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갔다.차 안.서준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했다.“민혜경 잘 감시하라고 했잖아. 요즘 어때?”“아직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계속 감시해. 움직임만 보이면 바로 보고하고.”“네, 대표님.”전화를 끊은 서준은 핸드폰을 옆으로 내팽개쳤다.눈을 들어 먼 곳을 응시하는 서준의 눈에는 혼란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방금 전 하연의 싸늘한 태도를 돌이켜 보니, 이제는 하연을 잡을 기회가 영영 사라진 듯싶었다....“하연아, 나 귀국했어.”이제 막 화상회의를 마친 하연은 상혁이 보낸 메시지를 보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상혁 오빠, 벌써 B시에 도착했어요?”그 시각, 전화 건너편에서 상혁은 눈을 들어 휘황찬란한 DS 그룹 건물을 바라봤다.“응, 도착했어. 나랑 합작 건으로 할 얘기 있다며?”“내 배에 들어갔다 나왔어요? 어떻게 모르는 게 없어요?”“나 네 회사 아래에 있어.”하연은 놀란 듯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낯익은 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이 보였다.“기다려요, 제가 바로 내려갈게요.”전화를 끊은 하연은 이내 서류 뭉치를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던 상혁은 하연을 보자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
그에 반해 상혁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는 얼굴로 종업원에게 메뉴판을 건넸다.“우선 이렇게 주세요. 더 필요하면 따로 주문할게요.”종업원이 떠나자 하연은 그제야 물컵을 내려놓았다.“제가 파와 생강을 안 먹는 거 어떻게 알아요?”이건 3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한 서준도 모르는 일이다.‘그런데 상혁 오빠는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상혁은 눈을 들어 하연을 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네 첫째 오빠가 말해줬어.”“하민 오빠요?”상혁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솔직히 이 모든 건 그동안 상혁이 관찰해서 알아낸 결과다.하연은 그런 상혁의 말에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최하연, 정말 너였어?”그때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연은 눈살을 찌푸렸다.곧이어 한설매가 하연의 앞에 나타나 하연과 상혁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서준의 작은 고모인 한설매는 줄곧 하연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한씨 집안에서 나간 뒤 이렇게 훌륭한 남자와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두 사람 무슨 사이야?”한설매는 아무 거리낌 없이 물어봤다.하연은 원래 한씨 집안 사람에게 호감이 없는데 늘 말 많은 한설매는 더욱 싫어했다.“그게 한설매 씨와 무슨 상관이죠?”한설매는 지난번에 하연에게 거절당하고 난 뒤부터 늘 마음에 새겨뒀는데, 하연이 이렇게 되묻자 결국 폭발했다.“왜? 이혼하더니 이제는 곁에 몸 파는 남자를 두는 거야? 서준이보다 한참 못 해 보이는데 사람 보는 눈이 영 없네.”만약 한설매가 저를 욕했다면 하연은 아마 대꾸도 하지 않았을 거다.하지만 하필이면 상혁을 건드렸기에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누가 미친개를 함부로 풀어놨지? 아무 데서나 이빨을 드러내네.”“지금 나더러 개라는 거야?”“아니에요?”한설매의 얼굴은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하연은 조금도 봐줄 생각이 없었다.“남편이 아직도 일 찾고 있죠? 제가 이 바닥에 말해두면 앞으로 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상대를 잡으려면 급소를 때리라고 했던가?남편의 얘기가 나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