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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한편, 관해정원.

도도한 전처가 전화를 끊자 신경주는 잠시 동안 넋을 잃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지금의 백소아, 아니 구아람은 더 이상 연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이혼하지 말자고 울고불고하는 그 연약한 아내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그녀가 그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이 계약만을 위해 억지로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신경주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장님, 여기 커피요…….”

한준희가 들어와서 그의 안색을 살피곤 자기도 모르게 떠보듯 물었다.

“사장님, 사모님께 연락은 드렸어요? 새 핸드폰 번호는 알아냈어요?”

신경주는 짜증이 나 이마를 짚고, 화만 냈다. 결국 해야 할 일을 끝내 하지도 못했다.

백소아가 떠난 후 모든 게 그의 뜻대로 될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녀가 구윤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더 숨이 막혔다.

어떻게 이럴 수 가 있지! 이 여자는 대체 어떻게 감정을 컨트롤하는 거야?

“다음에 다시 기회를 봐서 알아봐야겠어, 지금은 그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아.”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이 커피 뭐야? 이 맛이 아니잖아.”

“저, 저는 사모님이 저에게 알려준 레시피 그대로 만들었는데요?”

한준희가 의아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레시피?”

“사모님이 대표님을 떠나기 전에 준 수첩이 있어요. 대표님의 취향과 금기사항, 그리고 좋아하는 커피를 어떻게 내릴 것인지, 대표님이 몇 년 몇 월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까지 상세하게 적은 작은 수첩이에요.”

한준희는 품에서 그 작은 노트를 꺼내 신경주에게 건넸다.

신경주는 노트를 받아 들고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펼쳐보았다.

눈에 띄는 것은 청순하고 반듯한 글씨였는데, 예전 백소아의 필체처럼 반듯했다.

“내린 커피에 소금을 조금 넣어 풍미를 더 하니, 경주 씨가 좋아했다.”

“아침에 신선한 조개로 끓인 해물야채죽을 경주 씨가 두 그릇이나 드셨다. 앞으로 자주 만들어 드려야겠다.”

“너무 단 음식은 별로 안 좋아한다. 슈가 쇼트닝 치즈, 오스만 투스 케이크와 같은 상큼하고 달콤한 디저트를 경주 씨가 좋아할지 모르겠다.”

“지난해 경주 씨에게 사준 넥타이 몇 개 중 빨간색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경주 씨는 빨간색을 싫어하나 보다……”

‘경주 씨…….’

‘경주 씨…….’

‘경주 씨…….’

구절마다 그의 이름이었다. 한 마디도 그의 이름이 없는 글귀가 없었다.

신경주는 한 페이지씩 넘기며, 위의 글자가 날아갈까 숨을 죽였다.

눈동자가 점점 짙어졌다. 종이가 구겨질 정도로 꽉 잡았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려 했으니 무슨 속셈이 있는 게 아니고 뭐겠어!’

신경주는 수첩에 적힌 것을 다 읽고, 마음에 착잡함을 느꼈다. 그리곤 순간 화가나 손을 번쩍 들어 수첩을 휴지통에 버렸다.

“아이고, 버리지 마세요! 사장님, 이것은 지난 3년 동안 사모님의 정성과 마음이에요. 사모님이 왜 이런 것들을 묵묵히 기억하시는지 생각해보지 않으셨어요? 사모님의 마음속에서 대표님이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다는 거잖아요!”

한준희는 황급히 줍기 위해 달려가면서 맘 아픈 표정을 지었다.

“다시는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 불릴 자격도 없어!”

그때 서재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방은 예전에 백소아가 쓰던 방이었다.

“나가봐, 무슨 일인지…….”

신경주는 피곤해서 미간을 문질렀다.

한준희는 서둘러 서재를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황급히 돌아왔는데 복잡한 눈빛을 하고 있다.

“사장님, 소란은 김은주 씨가 피우고 있는 겁니다…….”

“은주가 왜?”

“사모…… 아니, 김은주씨가 전부인 침실에 있던 모든 걸 다 집어 던지고 계세요.”

지금 김은주는 미친 듯이 백소아의 방안에서 난동부리고 있었다.

“천한 년…… 천한 년! 촌년 주제에 오빠 믿고 이렇게 날뛰는 거 아니야? 그까짓 팔찌 얻은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감히 나를 무시해!”

애초 이혼을 요구했을 때, 구아람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는데, 이것이 김은주가 난동을 부릴 발단이 되어 버렸다. 화장대에 있던 스킨로션이나 침대 머리에 있던 장식품 모두 쓰레기처럼 땅에 버려졌다. 신경주가 도착했을 때, 이미 바닥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은주야!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는 눈썹이 치켜들었다.

“백소아의 흔적과 냄새가 나는 게 싫어요!”

신경주를 본 김은주는 또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저와 당신이 3년이나 생이별을 했겠어요? 분명 그녀가 내 자리를 빼앗았는데…… 왜 내가 그녀한테 져줘야 해요? 제가 세컨드인 것처럼 보이잖아요!”

“은주야, 넌 세컨드가 아니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신경주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자, 몸을 굽혀 땅에 떨어진 그 옥 두꺼비를 집어 들었다.

그는 갑자기 멍해졌다. 이 작은 물건이 뜻밖에도 윙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얇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김은주는 장롱을 열어 백소아의 옷을 마구 집어 던졌다.

“이게 뭐지?”

그녀가 닥치는 대로 큰 상자를 열었는데, 안에는 놀랍게도 고급 원단과 잘 재단된 남성 정장이 들어 있었다.

“하하…… 이건 구사장님 주려고 준비한 선물인가 보네요? 미리 다른 사람을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건가봐요…….”

신경주는 이 말을 듣고, 눈동자에 그늘이 진 채 다가가서 상자를 가로챘다.

“경주 오빠, 이 여자 정말 괘씸해요! 저는 원래 그녀가 오빠랑 결혼한 것이 마음속에 오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진심으로 오빠를 잘 챙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빠를 단지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네요!”

김은주는 얼굴을 붉히며, 탁자 위의 과도를 집어 들고는 그 양복을 찢으려고 했다.

신경주가 빠르게 상자를 몸 뒤로 감쌌다.

결국 김은주가 휘두른 칼은 경주의 팔을 베었고, 검붉은 피가 흰 셔츠를 적셨다.

“아! 미…… 미안해요, 경주 오빠!”

김은주는 손에 든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 놀라서 입을 막았다.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그녀는 머릿속은 온통 하얘졌다.

“아이고야! 이게 무슨 짓이냐!”

진주는 가정부의 뒤를 따라 황급히 달려왔다가 상처를 입은 경주를 보았다. 떨어지는 피가 흰 카펫을 빨갛게 물들인 것을 본 그녀는 깜짝 놀랐다.

“경주야. 왜, 무슨 일이야?”

“한 비서, 차 보내서 은주를 집에 데려다줘.”

신경주는 아픔을 참으며 숨을 헐떡였다.

“오빠, 돌아가지 않을래요…… 나는 오빠랑 함께 있겠어요!”

김은주는 황급히 경주를 끌어안았다.

“그래, 경주야,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은주가 여기 머물게 해. 너 다쳤으니 은주가 잘 돌봐 줄거야.”

진주도 그 틈을 타서 맞장구를 쳤다.

그녀의 관점에서 보면, 그녀는 오늘 밤 김은주를 신경주의 이불속에 떠밀어야 했다.

“아니에요, 일단 돌아가라고 해요.”

하지만 의외로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조만간 은주는 너랑 결혼할 사이야…….”

“나중에 나랑 결혼해서 아침저녁으로 지내는 날이 올 거예요. 결혼 전에는 집에 가서 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가족이랑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저랑 백소아의 이혼 절차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은주가 여기에 머무르는 건 좋아 보이진 않아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진주도 방법이 없었다.

흐느끼는 김은주를 보내고 난 신경주는 도우미에게 방을 치우라고 분부했다.

“사장님, 여기 보세요!”

한준희는 놀란 채 옷장 앞에 서서 안에서 아름다운 의상을 꺼냈다.

신경주가 다가가서 옷을 훑어보니, 연한 핑크의 부드러운 원단에 그 위에 자수 솜씨가 정교하고 살아있는 듯한 모란이 새겨져 있었다. 한눈에도 귀중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모란만의 귀티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의 긴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더니 정신이 살짝 혼미해졌다.

“설마…… 사모님께서 연극도 할 줄 아세요? 너무 대단해요!”

한준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는 오늘 사모님에게 여러 번 놀랐다.

이렇게 격조 있고 아름다운 여인을, 사장님은 왜 무시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어?”

“네?”

“화냥년은 무정하고, 광대는 의리가 없다고 말이야!”

신경주는 얇은 입술을 일직선으로 깨물고는 가슴에는 원인 모를 짜증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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