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바라본 신은지가 따라서 긴장했다. 그녀는 그릇을 내려두고 커튼을 치며 물었다.“왜 그래? 다리 아파?”박태준은 다리뼈가 골절되었는데 특히 왼쪽 종아리가 분쇄 성 골절이 될 정도로 심각하게 다쳤다. 지금은 깁스하고 있었고, 갈비뼈도 금이 몇 개 갔다.“응.”박태준이 답했다.신은지는 조심스레 박태준의 다리를 만져보았다. 딱딱한 촉감이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보니, 그의 통증이 수술 후에 있는 정상적인 통증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의사 불러올게.”신은지가 손을 뻗어 침대맡에 있는 호출 벨을 누르려고 했으나, 손이 닿기도 전에 박태준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녀의 등을 바치며 살짝 힘을 주어 더욱 밀착된 상태가 되게 했다.신은지는 버티지 못하고 그의 위로 넘어져 2차 피해를 줄까 두려웠다. 하여 박태준의 의도를 파악한 신은지는 그의 힘에 따라 침대에 걸터앉았다.박태준이 조심스레 그녀의 손목을 감쌌다. 신은지의 손에 깊지 않은 상처가 있었다. 약도 발랐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늦었다. 금방 다쳤을 때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왜 이렇게 됐어?”박태준은 깨어나서 바로 신은지의 심기를 어지럽혀 당시에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사과하기에만 급급했다. 그 이후에는 그녀의 손이 내려져 있지 않으면 그의 목뒤에 감싸져 있었고, 상처는 손바닥에 난 상태라 아까 전 신은지가 도시락을 탁자에 펼쳐둘 때야 그녀의 상처에 대해 눈치챘다.신은지는 더 이상 박태준이 자책하기를 바라지 않았다.“어제 현장에서 너무 급하게 걷느라 넘어졌어.”박태준이 눈을 내리깔고 그녀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두 손이 다친 위치가 같았는데 넘어지기보다는 무슨 무거운 물건을 옮기면서 생긴 상처 같았다.박태준은 당시의 장면을 되짚어보며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 바로 눈치챘다. 조용히 침을 삼킨 박태준은 신은지를 더욱 깊이 안으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말했다.“은지야, 다음부터는 그런 궂은 일은 다
신은지는 그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박태준이 어제 ICU로 들어올 때는 많은 튜브가 꽂혀 있었다. 오늘도 그녀가 사인을 하여 일반 병실로 옮긴 것이었다. 이 시간 동안 박태준은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추후 깨어났을 때는 간호사가 와서 체온과 혈압만 측정했다.박태준이 그동안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지 않아 신은지는 눈치채지 못했다.‘배뇨관은 언제 떼어낸 거지?’그녀의 의문을 꿰뚫어 본 박태준이 시원히 답했다.“네가 아까 도시락 사 올 때 뗐어.”“...”강혜정은 중간의 과정은 모르고 현재 박태준이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마음만 알았다. 아까 간호사들에게 박태준의 상태를 전해 들었을 때는 단어 하나하나가 놀라웠다. 중등 뇌진탕, 두 다리 골절, 갈비뼈에 금이 가고, 가벼운 내상이 있는 상태였다.강혜정은 이렇게 심하게 다친 환자를 간호한 경험이 없어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어떡하지? 간호사한테 가서 휠체어를 빌려와야 하나? 아니면...”강혜정은 침대 아래 놓은 대야를 보고 말을 이었다.“침대에서 해결해야 하나?”“엄마, 가서 휠체어 하나만 빌려와 줘요. 은지가 화장실에 바래다주면 돼요.”박태준의 안색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가 고의로 뱉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은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머리카락을 가림막 삼아 얼굴을 가리며 그를 향해 말했다.“간병인을 찾아 줄게.”박태준이 깨지 않았을 때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가 깨어난 이상 혼자서는 돌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안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튜브를 착용하는 건 선호하지 않아, 화장실에 갈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데 머리가 흔들리기 쉬워 힘이 센 남자 간병인이 꼭 필요했다.강혜정은 고개를 돌려 박용선에게 휠체어를 빌려오라 말했다. 두 사람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강혜정은 신은지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은지야, 요 며칠 수고했다.”박태준이 실종된 이후,
박태준은 휠체어에 앉아 신은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불빛이 그의 동공으로 비춰들어와 압박감을 낮춰주었다. 박태준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목에는 핏자국이 남아있고 다리에는 깁스한 아름답고도 불쌍한 모양새였다.신은지는 애초에 화가 나지 않았지만, 화나 났다고 하더라도 이 모습을 본다면 가라앉을 것이었다.“나 화 안 났어.”박태준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정말? 근데 너 한 시간이나 나 상대 안 해줬잖아.”신은지의 말은 들은 박태준은 처음에는 신났고, 그다음에는 억울한 감정이 몰려왔다. 밖으로 내보이는 표정으로 인해서, 신은지는 그의 기분이 너무 잘 보였다.가면을 쓴 사람들이 판치는 업계에서도 손쉽게 사람들을 주무르는 박태준인데, 이렇게 쉽게 감정을 드러낼 리는 만무했다. 어떤 사람을 마주하건, 뼛속 깊이 새겨진 습관일 텐데 지금의 박태준은 고의로 본인의 기분을 내보이는 것이었다.신은지는 대답하지 않고 수도꼭지를 뜨거운 쪽으로 돌려 물이 뜨거워 지기를 기다렸다. 서태준의 시선은 그녀에게 꽂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온몸으로 얼른 대답하라고 재촉하고 있어, 그냥 무시하기에도 힘들었다.“정말이야.”박태준이 말을 이으려고 할 때, 뜨거운 김을 내는 수건이 그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신은지의 심통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닥치고 얼른 닦고 나가!”시간을 더 지체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칠 터였다.그녀는 세심하고도 부드럽게 박태준을 닦아주었다. 힘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중등의 뇌진탕이 심각한 뇌진탕으로 바뀔까 봐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다리 빼고 불편한 곳은 없어?”신은지는 후유증이 남을 거라는 의사의 말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박태준이 깨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면 특별한 구석은 없는 것 같았다.‘너와 신은지는 행복할 수 없을 거야.’기민욱이 저주처럼 내뱉은 말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박태준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고, 입가도 내려앉았지만, 신은지에게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미간을 누
박태준이 의미심장하게 입매를 끌어올리며 답했다.“나한테 더 분발하래.”자식 덕을 볼 수 있게 노력하라 했다.“응?”더 자세히 말해 줄 의사가 없는 박태준을 바라보며 그녀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은지는 그를 휠체어에 태우고 개인 병실로 가고 있었다. 예행 검사를 하러 온 간호사도 마침 문 앞에 와있어 같이 개인 병실로 향했다.개인 병실의 침대도 1미터 정도였지만 다른 점이라 하면, 간호용 침대도 있다는 점이었다.박태준의 시선이 두 침대 사이를 오가는 것을 본 간호사는 무감정하게 말했다.“침대를 옮겨서 붙이시면 안 돼요.”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간호사가 그 말을 뱉으며 신은지의 입술을 훑어본 것만 같았다.체온과 혈압 측정을 마친 간호사는 바로 나갔다. 나가면서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문 잠그시면 안 돼요.”신은지는 어젯밤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박태준이 침대에 눕자,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나 좀 잘게. 무슨 일 있으면 나 불러.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막 움직이지도 말고.”잠자리를 좀 가리고, 너무 밝거나 시끄러우면 잠에 잘 들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너무 졸린 나머지 베개에 머리가 닿자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신은지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기민욱을 만났는데, 기민욱은 피범벅이 된 얼굴에 집착적이고 삐뚤어진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계속 불렀다.“은지 누나...”‘시발!’신은지는 본인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참지 못하고 쓴 소리를 했다.‘얼마나 큰 원한이 있다고 꿈속에까지 나타나.’꿈이 너무 무서웠던 탓인지, 그녀는 놀라서 깨어났는데 마침 ‘기민욱’ 이라는 세 글자를 들었다. 그녀는 이 순간, 본인이 깨어있는 건지, 아직 꿈속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신은지는 눈을 뜨고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경찰 몇 명이 노트를 들고 글을 적으며, 박태준의 침대 가에 있는 것을 보았다.“당시 어떤 상황이었습니까?”정신을 차린 신은지는 지금 경찰들이 상황 조사를 하러 온 것이라는 사실
호흡이 딸린 신은지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박태준의 말을 들은 그녀는 넋이 나가 물었다.“뭐라고?”박태준은 말을 잇지 않고 두 손으로 침대를 짚으며 행동으로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보여주었다.신은지는 그로 인해 깜짝 놀랐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환자가 원숭이처럼 여기저기 오르고 있는데, 그녀는 그의 다리에 무리가 갈까, 갈비뼈의 금이 더 벌어질지 걱정되었다.앞 두 번의 경험으로 인해, 박태준이 침대를 오르는 기술은 더욱 매끄러워졌다. 신은지가 질책의 말을 내뱉을 겨를도 없이 박태준은 이미 침대에 안정적으로 앉았다.1미터 너비의 침대가 두 성인을 수용해야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긴 남자라 벅차 보였다. 또한 무게가 너무 나가는 탓인지 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신은지는 이 소리가 밖으로 퍼지며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이 들을까 걱정되었다.그녀는 정말 그 정도의 부끄러움까지는 감내하고 싶지 않았다.침대의 다른 편으로 내려가려 하자, 박태준이 그녀를 잡았다.“은지야, 그냥 너 안고 있고 싶어.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때, 다시 너를 볼 수 없을까 봐 두려웠어.”그 한마디로 인해서 신은지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옆으로 누워 침대 모서리에 기대며 한 사람이 겨우 누울법한 자리를 마련했다.“오 분 만이야.”그녀가 마련해줄 수 있는 제일 넓은 공간이었다.몸에 부상이 많은 박태준이다 보니, 옆으로 너무 오래 누워있으면 안 좋았다.“응...”한 글자뿐이었지만, 먼저 안겨 오는 신은지로 인해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말캉한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으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박태준은 처음에 놀라고, 그다음에는 넘치는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허공에서 손을 얼마간 멈칫하고 나서야 조심스레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움직임도 없이 두 사람은 좁은 침대에서 빈틈없이 조용히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너무도 조용했다.귓가에는 설로의 호흡소리와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
신은지는 박태준의 얼굴을 훑기 시작했다. 박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그의 목젖과 가슴을 따라가다가 어딘가에 멈춰 섰다.그가 몸을 약간 기댄 채 서 있었기 때문에 뚜렷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쉰 목소리에서 지금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다리가 부러졌는데도 그렇게 버티니까 이렇게 되지. 쌤통이야. 참고 있어 그냥.”말을 마친 그녀는 불을 끄고 옆 침대로 가서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 누웠다.박태준이 방금 누워있었던 침대여서 그의 숨결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 신은지의 머리가 베개에 닿는 순간, 그의 냄새가 풍겨와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환했던 병실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복도의 희미한 불빛이 유리창으로 들어와 바닥을 밝혀주었다.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박태준은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았다.밖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이제 겨우 6시라서 한창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병원에 사람이 제일 많을 시간이기도 했다. 병실의 문은 방음이 잘되지 않아서 밖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다를 떠는 소리, 도시락 파는 소리, 간호사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좀 쌀쌀했지만 조용한 세월이 느껴졌다.침대에 눕자 박태준이 안절부절못하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그제야 그는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두통부터 다리통, 근육통까지, 갑자기 피곤해지더니 손을 들 힘조차 없었다."똑똑.”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강혜정이 고용한 간병인이 시간에 맞춰 그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러 온 것이었다. 진서원은 그에게 도시락을 장롱 위에 올려놓으라고 했다."먼저 나가 보세요. 그리고 좀 이따가 빈 도시락 받으러 오세요.”환자 본인이 나가보라고 하니 그들은 한가해졌다는 생각에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들은 도시락을 내려놓고 나갔다.그는 잠든 신은지를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혹시나 그녀가 배고플까 봐 몇 번 불러서 깨우려고 했다."은지야, 먼저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자, 어때?”박태준은 온
박태준은 신은지에게 오시은은 머리에 문제가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그 둘은 아무 반응도 없었지만 진선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계속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방금 은지 씨를 뭐라고 불렀어요?”오시은이 말이 잘못 나와서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 그녀를 불러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 명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어색했다. 하지만 감추면 그녀는 오히려 오해를 받을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아버지의 귀한 인연을 놓치면 앞으로 경중에는 오씨 가문이 없을 것이었다.오시은은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박태준을 가리켰다."박 대표님은 박씨 가문 미래의 동업자입니다. 돈만 투자해 주신다면 전 누구든 금주 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그리고 또 신은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그러니 박 대표님의 부인님도 당연히 금주 님이십니다.”"...”이는 정말 만점짜리 대답이었다. 그는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저 탄복할 뿐이었다.그와 오시은이 아래층에서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진선호도 그녀와 박태준의 관계가 언제 병문안을 올 정도로 친하지 않는데 왜 병문안에 왔는지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박 대표님, 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오시은은 그저 형식적인 인사를 하러 왔다. 그것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정한 것이었다. 육정현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모두가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편에 서 있는 그녀도 와서 보지 않으면 너무 야속해 보였다. 그런데 또 와서 병문안하려니 두 사람은 개인적인 친분도 없었으니 결정할 때 정말 머리가 아팠다.떠날 때 그녀는 진선호도 함께 끌고 갔다.진선호는 일 년 내내 단련했기 때문에 피부가 비록 캄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얗지도 않았고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했다. 백세리는 20년 이상 손가락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아가씨였기 때문에 피부는 희고 섬세했다. 두 사람이 꽉 잡고 있는 손은 아주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그
신은지는 스웨터를 아래로 당기더니 자신의 쇄골 아래에 있는 키스마크를 가리켰다. 어젯밤에 박태준이 남긴 자국이었다."맞잖아, 머릿속에 온통 야한 생각만 하는 거."박태준은 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아내에게 키스를 한 것뿐인데 왜 머릿속에 온통 야한 생각만 하는 사람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난 남자야. 게다가 정상인 남자. 좋아하는 여자를 보면 당연히 절제가 잘 안되고 욕구가 생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그를 향해 눈을 희번덕거리던 신은지의 귓불이 빨갛게 물들여졌다."그래도 참아.""이건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야. 오죽했으면 남자는 다 하반신 동물이라는 말이 나왔을까.""누가 그래? 못 참는다고."그녀가 치켜올린 눈매와 야릇한 눈빛을 보며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직감했다. 절대 자기가 좋아하지 않을 화제라고 생각해 다른 말을 꺼내려고 하던 중 그녀가 입을 열었다."10대 때부터 나를 짝사랑했고 중간에 3년 동안 결혼생활도 했지만 너 그때는 잘 참지 않았어?"신은지뿐만 아니라 진유라도 자기가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고 결혼은 압박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여겼었다.“……"과거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떳떳하지 못해서 목소리까지 낮아졌다."내가 짝사랑할 때 넌 너무 어려서 좋아해도 티를 낼 수 없었어. 결혼하고 당신한테 손을 대지 않은 건... 내가 바보였어.""푸하하."신은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바보라고 이렇게 당당하게 인정하는 건 처음이었다.그의 애틋한 눈빛에 그녀는 마음이 약해져서 손을 뻗어 그를 안았다."의사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어. 잘 치료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남을 수 있어. 그러니 지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돼, 있더라도 참아. 만약 이제 다리가 고쳐지지 않아서 절뚝거리면 그때 가서는 아무런 방법도 없어."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만졌다."지금은 안 되고 다 나은 다음에는 돼?""근육이랑 뼈를 다 다쳐서 100일 동안 조심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