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친구가 차린 부업을 엎어버린 다니! 지금 그게 할 소리야?”김성훈의 호통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이준혁이 병실을 나서기 전에 임세희를 안아 침대에 다시 눕혔다.이 모습에 임세희는 다시 의기양양했다. 그녀가 이렇게 불쌍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준혁은 무조건 마음이 약해지니까! 이렇게 고분고분 그녀를 다시 안아주니까!두 사람은 알고 지낸 세월이 이렇게 긴데 이준혁은 그녀에게 정이 들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다만 그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모르고 있을 뿐이다.이런저런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던 임세희가 손을 뻗어 이준혁의 목을 감싸려던 순간, 이준혁이 고개를 돌려 임씨 아주머니를 보며 싸늘하게 경고했다.“앞으로 아가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 아주머니는 이제 그만 고향으로 내려가서 노후를 즐겨도 될 것 같습니다!”이 말은 당부이자 적나라한 경고였기에 듣고 있던 임씨 아주머니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아주머니는 임세희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를 모시고 있었고 이 사실을 이준혁도 알기에 평소에 아주머니에게 예의를 갖췄다.오늘처럼 이렇게 직설적으로 경고를 한 건 처음이었다.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임씨 아주머니가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도련님.”임세희는 뒤에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뒤로 안 돌아보고 떠나는 이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침대에서 내려와 그를 쫓아가려던 그때, 임씨 아주머니가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아가씨, 겨우 남은 준혁 도련님의 인내심까지 도전하지 마세요.”임씨 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온몸에 힘이 풀려버린 임세희가 침대에 축 늘어져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아줌마, 나 진짜 너무 무서워요. 준혁 오빠가 나 진짜 버리고 가면 어떡해요? 진짜 나 필요 없다고 하면 어떡해요?”임씨 아주머니가 임세희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아가씨, 준혁 도련님은 잠시 이혼을 미뤘을 뿐이에요. 두 사람을 이혼하게 만들 방법은 많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참고 지켜보는 거예
“자, 어디 한번 소리 질러봐.”팍!남자가 깐족거리며 말을 하던 순간, 그의 머리 위로 와인병이 꽂혔고 유리조각들이 여기저리 튀었다.“당장 내 친구한테서 떨어져!”손에 절반 남은 와인병을 들고 있던 소원이 남자를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고 얼굴에서 피가 줄줄 흐르던 남자가 소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이 천박한 계집애가! 너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이렇게 입고 와인바에 온 거잖아! 어디서 순진한 척이야!”말을 하던 남자가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인을 들더니 윤혜인을 보며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냈다.“이 계집애는 오늘 내가 반드시 따먹을 거야!”한편, 이를 지켜보던 웨이터가 곁에 있던 김성훈을 보며 다급하게 물었다.“대표님, 내려가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우리가 나설 입장이 아니야.”김성훈이 가볍게 피식 웃었다.이때, 팍 소리와 함께 재킷을 입은 남자 손에 들고 있던 와인병이 그대로 본인의 머리에서 깨져버렸고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이런 젠장, 누구…”남자가 욕설을 채 퍼붓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팔이 잡혔고 몸이 하늘 위로 붕 떴다가 이내 바닥에 던져졌다.다음 순간, 이준혁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의 얼굴을 발로 짓밟았고 와인바에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와인병 던지려고 했어?”싸늘하게 굳은 이준혁의 목소리가 들렸고 얼굴이 짓밟힌 남자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수려하게 생긴 이준혁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마치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 같았다.이때, 이준혁이 손가락을 살짝 튕기자 웨이터가 카트에 비싼 술을 가득 담아 그의 앞에 대령했고 이준혁은 그 중 한 병을 손에 쥐고는 얼굴을 짓밟고 있던 발을 거둔 채 술병을 그대로 떨어트렸다.술병이 바닥에 떨어진 채 산산조각이 났고 유리파편들은 이리저리 튀었으며 하마터면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의 눈에 박힐 뻔했다.“악! 악!”그 남자는 소름 끼칠 정도로 처참한 비명 소리를 질렀고 주위에 몰려 있던 손님들은 경악에 찬 눈빛으로 이준혁을 바라보았다.저런 사
윤혜인의 말은 이준혁이 더 이상 전처의 일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준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고 살기에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난 아직 네 남편이고 네 일에 관여할 자격이 있어.”말을 마친 이준혁은 윤혜인을 확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품에 안아 올린 채 그대로 와인바를 나섰고 윤혜인은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이준혁 씨, 이거 당장 놔요! 당장 내려놓으라고요!”하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이준혁에게 그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다.김성훈이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끝까지 아니라고 하더니, 대체 누가 이혼하기 싫은 건지 모르겠네.’이때, 소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혜인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김성훈이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소원 씨, 윤혜인 씨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경한이가 위에서 소원 씨를 기다리고 있어요.”그의 말에 소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고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던 그녀는 김성훈의 부축에 겨우 몸을 가눴다.“소원 씨, 왜 그래요?”김성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육경한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소원이 이렇게까지 겁을 먹은 거지?“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대표님.”겨우 정신을 차린 소원이 창백한 얼굴로 한 걸음씩 위층으로 올라갔다.한편, 위층의 룸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야릇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원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큰 결심을 한 듯 다가갔고 룸과 가까워질수록 살결이 맞닿은 마찰음이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밝은 불빛이 비추고 있던 룸 안에서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소파에 앉은 채 한 여인의 허리를 잡고 한데 엉켜 있었으며 그 여인은 황홀한 표정으로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도련님, 진짜 너무해요…”“좋아?”남자가 여인의 귀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으며 물었다.“너무 좋아요…”룸 밖에 서있던 소원은 안으로 들어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지만 지난번 일을 생각하면 이를 악물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소파에
육경한이 소원을 두 팔에 가둔 채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 여긴 싫어? 밖에 가서 할래? 소씨 집안 공주님이 얼마나 방탕한 여자인지 보여주고 싶어?”입술을 덜덜 떨고 있던 소원이 육경한의 팔을 잡은 채 애원하듯 그를 쳐다보았다.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이 남자는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다.저번에 소원은 그저 싫은 내색을 조금 보였을 뿐인데 육경한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소씨 가문 회사의 주식을 폭락하게 만들었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그녀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소원이 아무리 빌고 애원해도 육경한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다.이제 드디어 그녀를 만나준 이상, 소원은 절대 이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한편, 육경한이 싸늘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소원을 쳐다보며 그녀가 더러운 몸으로 순진한 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가 한국에 없던 이 몇 년 동안, 그녀의 몸은 수많은 남자들에게 놀아났을 것이다.이런 생각에 육경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옷을 거칠게 찢어버린 뒤, 치마를 위로 올렸다.소원은 그렇게 목이 조인 채 소파에 누워 육경한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빛에는 조금의 연민도 없었으며 소원에게 끝없는 고통만 남겨주었다.소원은 시체 마냥 누워서 육경한의 갈취를 버텨내 수밖에 없었다.두 시간 뒤, 육경한은 소원의 몸 위에서 내려와 곁에 있던 옷을 바닥에 툭 던졌고 소원에게 입으라고 눈치를 줬다.소파에서 일어난 소원이 바닥에서 옷을 주웠다. 그 옷에서는 술집 아가씨들이 자주 쓰는 저렴한 향수 냄새가 물씬 풍겼다.소원은 코를 찌르는 향기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그녀가 입고 온 옷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졌기에 그가 준 옷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우리 소씨 공주님이 표정이 별로 안 좋네, 왜? 만족 못했어?”육경한이 코웃음을 치며 비꼬자 휘청거리던 소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이 남자는 분명 조금 전에 그 여자와 충분히 즐겼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아직도 힘이 저렇
하지만 윤혜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준혁이 왜 화를 내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를 내야 하는 건 그녀 아닌가?이준혁은 증거도 없이 그녀를 모함한 것도 모자라 매번 임세희의 편에 서서 그녀를 괴롭힌 주제에…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윤혜인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이준혁 씨, 이준혁 씨… 제발 좀 천천히 달려요.”하지만 이준혁은 그녀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고 덜컥 겁이 난 윤혜인이 엉엉 울면서 쓰린 속을 부여잡았다.“이준혁 씨, 제발 차 좀 멈춰요! 저 진짜 토할 것 같아요. 제발 멈추라고요! 멈춰주세요… 웩…”결국 참다못한 윤혜인이 입을 막은 채 헛구역질을 했고 그제야 이준혁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채 차를 세웠다.십 분도 안 된 사이에 두 사람은 스카이 별장에 도착한 것이다. 차가 멈추자 윤혜인이 다급하게 차에서 내려 별장 안에 있는 1층 화장실로 달려가더니 와락 토를 했다.하지만 저녁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그녀는 속이 비어 있었기에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아무것도 토해내지 못했다.이때, 이준혁이 그녀의 곁에 나타나 따듯한 물 한잔을 건넸고 윤혜인이 얼른 받아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참 마시고 나서야 속이 좀 편해진 윤혜인은 홱 돌아서서 이준혁의 가슴팍을 마구 때렸다.“이준혁 씨, 당신한테 생이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저는 살고 싶어요! 흑흑… 진짜 너무 놀랐단 말이에요…”엉엉 우는 윤혜인의 모습에 이준혁이 그녀를 품에 껴안았고 그의 셔츠 위로 떨어진 눈물은 그대로 그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조금 전에 너무 놀란 탓에 윤혜인은 아랫배에 통증이 조금씩 느껴졌고 혹시라도 뱃속의 아이에게 문제라도 생기진 않았을까 너무 걱정되었다.창백해진 윤혜인의 얼굴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이준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디 아파?”“이준혁 씨랑 무슨 상관이에요!”뱃속의 아이를 잃을 뻔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른 윤혜인이 그를 힘껏 밀어내며 소리를 질렀고 이준혁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윤혜인은 화장실의 차가운 벽에 등을 붙인 채 이준혁의 갈취를 받아내고 있었고 이 순간, 자신이 너무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반항도 못하고 이렇게 이준혁에게 휘둘리다니.짜고 달달한 그녀의 눈물이 이준혁의 입술에 흘러 들자 그는 마음속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고 언짢은 듯 윤혜인을 놓아준 그는 그녀에게 완전히 흥미를 잃은 모습이었다.윤혜인이 손을 뻗어 그를 때리려던 순간, 이준혁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고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이준혁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를 날렸다.“어디 감히!”다시 한번 다른 남자를 위해 그에게 손찌검을 한다면 이준혁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찢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이준혁이 너무 꽉 잡고 있었던 탓에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윤혜인은 고개를 홱 돌린 채 그와의 스킨십을 피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의 입술이 다른 여자의 몸에 닿은 적이 있다는 생각만 하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웠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반항하면 그녀만 손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윤혜인이 조금 전보다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일단 이거 놔요.”간만에 부드러워진 윤혜인의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진 이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를 놓아주었고 단 일초도 그와 함께 있고 싶은 않은 윤혜인은 홱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이준혁이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그녀를 잡아당겨 다시 벽에 밀쳤다. 두 사람의 거리는 또다시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난 분명히 놨어.”이준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두 번 놓아주지는 않을 것이다.“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요…”말문이 막힌 윤혜인이 화가 난 듯 그를 노려보며 말했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준혁이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이준혁은 왠지 화를 내는 윤혜인의 모습이 좋았으며 오늘 병원 주차장에서 영혼 없이 고분고분하던 그 모습보다는 훨씬 나았다.조금 전에 거칠었던 행동과 달리 이번에 이준혁이 선사한 키스는 매우 섬세했다. 목덜미로부터 시작하여 고
이준혁이 손을 뻗어 그녀 손에 있던 크리스탈 장식품을 빼앗았고 그대로 벽에 던져버렸다.쨍그랑!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크리스탈 장식품은 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고 깜짝 놀란 윤혜인이 비명을 지르던 순간, 이준혁이 그녀의 턱을 꽉 잡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기억해, 다시 한번 그 남자를 만나면 난 그 놈을 서울에서 사라지게 만들 거야.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말을 마친 이준혁이 문을 쾅 닫은 채 화장실을 나섰고 윤혜인은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꼭 끌어안고 멍하니 눈물만 흘렸다.아랫배에서 또다시 통증이 느껴졌고 윤혜인은 힘겹게 배를 꼭 끌어안았다.이때, 문이 벌컥 열렸고 다급하게 뛰어들어온 도우미 아주머니는 엉망진창이 된 화장실 바닥을 보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윤혜인을 재빨리 부축했다.“여기에 왜 피가 있어요? 사모님 어디 다치셨어요?”도우미 아주머니가 걱정된 듯 묻자 윤혜인이 고개를 저었다.“제 피가 아니에요.”“그럼…”도우미 아주머니는 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더니 한참 지나고 나서야 말을 이어갔다.“사모님, 일단 방에 가서 좀 쉬세요.”윤혜인을 위층으로 모시고 올라온 아주머니가 윤혜인을 침대에 눕힌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조금 전에 제가 쌍화차를 끓였는데 한 잔 드릴까요?”“고마워요, 아주머니. 근데 전 지금 별로 입맛이 없네요. 누워서 좀 쉬고 싶어요.”윤혜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힘겹게 대답했고 고개를 끄덕인 뒤 돌아서서 방을 나서던 아주머니가 다시 고개를 돌려 말을 전했다.“사모님, 요즘 도련님이 매일 사람을 시켜 산삼이며 녹용이며 귀한 송이까지 보내오십니다. 이 약재들을 끓이는 방법까지 친히 배워 오셔서 주방장에게 가르치셨어요. 사모님 안색이 안 좋다고 저희에게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제가 괜한 얘기를 하는 걸 수도 있는데, 예전에 두 분은 서로를 많이 아끼고 좋아하셨잖아요. 옛정을 많이 돌이켜 보시고 작은 다툼 때문에 그 정까지 잃지는 마세요.”“네, 알겠어요.”윤혜인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
휴게실에서 나온 남자는 다름아닌 한구운이었다. 카키색 바람막이를 입고 금색 테두리 안경을 낀 그는 오늘따라 유난히 더 점잖고 잘생겨 보였다.“혜인이는 누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확실해요.”한구운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와 임수향은 사촌누나와 남동생으로 평소에 사이가 꽤 좋았다.그의 말에 임수향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 법이다.“조금 전에 나와서 인사하지 왜 숨어 있었어?”임수향의 물음에 한구운이 다정하게 대답했다.“그럴 필요 없어요.”한구운은 윤혜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설마 저 여자에게 마음이 흔들린 거야?”임수향이 그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한구운은 지금까지 그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이 없었는데 여자 때문에 이렇게 조심스러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러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말을 이어갔다.“이력서를 보니까 기혼이라고 적혀 있던데, 설마 남의 가정에 끼어들려는 건 아니지?”조금 전에 한구운이 휴게실에서 나오지 않은 걸 보면 윤혜인은 아직 그의 마음을 모르고 있는 듯했기에 임수향이 또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타일렀다.“구운아, 네 조건으로 어떤 여자도 찾을 수 있어. 절대 남의 가정을 파탄내는 내연남이 되어서는 안 된다!”“아니에요.”한구운이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른 채 대답했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그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 윤혜인에 대한 그의 마음은 아직 겉으로 드러내서는 절대 안 된다.임수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더 이상 이 화제를 이어가지 않았다. 한구운은 겉으론 점잖고 온순해 보이지만 사실상 꽤 사악한 사람이었으며 그가 결심한 일은 그 누구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남의 가정에 끼어들지만 않는다면 임수향도 굳이 나서서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한편, 작업실에서 나온 윤혜인은 이 좋은 소식을 외할머니에게 제일 먼저 전하려고 병원에 찾아갔다.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말을 들은 외할머니는 너무 기쁜 나머지 저녁밥을 두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