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민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많이 슬펐어.”‘뭐?’왜 이렇게 그녀의 연기에 장단을 맞춰주는 걸까? 1년 동안 왜 이렇게 많이 변한 걸까?그녀라면 치를 떨던 민지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조연아도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한편, 충격을 받은 건 송진희 역시 마찬가지였다.“지훈아... 너... 지금... 뭐라고 한 거야?”“오빠! 지금 오빠 약혼녀는 나야. 이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적어도... 적어도 변명 한 마디쯤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도대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당당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눈물을 흘리며 소리치던 민지아가 결국 호텔방을 뛰쳐나갔다.“어머, 지아야! 지아야!”송진희 역시 그 뒤를 따르고...어느새 그의 품에서 민지훈이 치맛자락을 정리했다.“엄마와 약혼녀에게 바람 현장을 잡힌 기분, 어때?”“복잡미묘하네?”‘하, 미친 자식.’“뭐 오늘 일로 잘나신 어머니에 약혼녀까지 많이 화가 많이 났을 텐데... 일단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서 두 사람 마음부터 달래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 만나서 기분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호텔방을 나서는 그녀의 뒤편으로 민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나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아?”“과거의 조연아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처음 들어보는 단호한 목소리에 민지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래... 과거의 조연아라면... 내가 잡을 필요도 없었겠지. 내 곁으로 올 수만 있다면 그게 함정이라고 해도 무조건 뛰어들었을 테니까. 정말... 달라진 건가?”“오늘 이 판, 잘 짰어. 연기도 좋았고.”핸드백을 잡은 조연아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뭐야. 다 알고 있다는 저 재수없는 말투는.’“칭찬 고마워.”말을 마친 조연아는 부랴부랴 방을 나섰다.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 무표정한 얼굴을 계속 마주하고 있다간 정말 다시 빠져버릴
“제가 정말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어머니 아들 그렇게 바보 아니에요. 복수, 연아가 원한다면 하게 해줄 겁니다. 제 목숨을 원한다면 기꺼이 줄 거예요.”‘그래, 복수... 당연히 해야겠지. 나도, 우리 집안도... 연아한테 모든 걸 많이 빚졌으니까.”“미쳤어... 미쳤어.”민지훈의 말에 단단히 충격을 받은 송진희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도대체 조연아 그 계집애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너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 조연아 그 계집애 겉으로 순진한 척하면서 뒤로는 온갖 추잡한 짓은 다 저지르던 애야. 그런데 그딴 애한테... 목숨까지 내주겠다고? 너 미쳤어?”송진희의 절규에 민지훈은 대답 대신 옆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사모님, 댁으로 모시세요.”“네, 대표님.”“지훈아, 거기 서! 거기 서라고!”송진희의 외침에도 민지훈은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성큼성큼 방을 나섰다.한편,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탄 조연아는 여전히 쿵쾅대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솔직히 방금 전 그 상황에서 당연히 민지훈이 화를 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화는커녕 그녀의 연기에 장단을 맞춰주다니.그리고...슬펐어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너무나 진심처럼 느껴져 순간 흔들릴 뻔한 조연아였다.‘뭐지? 이것마저 민지훈의 전략인 건가?’온갖 생각들이 얽히며 머리가 웅웅대던 그때.“연아아!”오피스텔 근처에 멈춘 택시 앞에 고주혁이 서 있었다.“오빠.”웃으며 차에서 내린 조연아가 고주혁에게 다가갔다.“연아야,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고주혁이 조연아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진정해, 오빠. 이것 봐. 나 괜찮잖아.”조연아는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 듯 빙글 한 바퀴 돌아보기까지 했다.“아까... 민지아가 울면서 호텔에서 나오는 걸 봤어.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그제야 안심한 고주혁이 빙긋 웃었다.“뭐, 송진희, 민지아 두 사람을 위해 준비한 에피타이저 같은 거랄까?”1년 동안 비즈니스의 여제라고
“오늘 충분히 도와줬어.”말을 마친 조연아가 휴대폰을 꺼내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역시나 오늘 기자회견장에서의 소란은 기사로 업로드 되어 인터넷을 후끈 달구고 있었다.“저런 사람이 아버지라고. 진짜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네.”“백장미 같은 저딴 사람 때문에 착한 새엄마들도 오해받고 그러는 거야. 저런 사람은 폭행죄로 감옥에서 콩밥 좀 먹어봐야 해.”“그런데 조연우가 청각장애인이었어?”댓글을 읽던 조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조연우는 자존심이 워낙 강한 아이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현실 때문에 동정받는 것도 원치 않았고 자신의 결함을 사람들 앞에서 공개하는 것도 꺼리는 사람이라는 걸 누나인 그녀가 모를 리 없었지만.‘오늘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이야.’“왜 그래? 무슨 일 생겼어?”고주혁이 살짝 굳은 그녀의 표정을 눈치채고 걱정스레 물어왔다.“아, 아니야.”짧게 대답한 조연아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 팀장님, 저 조연아입니다.”“네, 대표님.”“우리 연우에 대한 댓글, 기사 전부 지워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대신 저에 대한 기사 올려주세요.”“정말요? 지금 대표님께서 스타엔터 대표님이라는 사실을 밝히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홍보팀 한시연 팀장이 재차 확인했다.“네. 지금 당장요.”“알겠습니다.”그리고 1분 후, 스타엔터 공식 SNS에 조연아가 새로운 대표로 취임했다는 메시지가 업로드되었다.1년 동안 실종되었던 조연아가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온 것도 모자라 스타엔터 대표로 취임했다는 소식에 대중들의 시선은 다시 조연아에게로 쏠리게 되었다.한편, 밤거리를 달리는 고급스러운 외제차 안.조수석에 앉은 오민이 태블릿을 건넸다.“대표님, 조연아 씨가 스타엔터 대표이사 직에 취임했다는 기사입니다.”손에 들고 있던 파일을 내려놓은 민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기사에 업로드 된 사진 속 심플한 정장에 깔끔하게 머리를 틀어묶은 조연아는 꽤 그럴 듯한 CEO의 모습이었다.“왜 이렇게 큰
“무작정 댓글만 지우면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대중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다른 기사거리가 필요했던 거죠.”‘조연아, 못 본 사이에 정말 많이 컸네...’그제야 조연아의 뜻을 이해한 오민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 조연아 씨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는 사실이 조연우 씨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보다 더 매리트 있으니까요.”“보다시피.”민지훈이 싱긋 웃었다.이때 오민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고 수락 버튼을 누른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뭐라고요? 장씨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고요?”그 목소리에 민지훈의 표정 역시 차갑게 굳었다.잠시 후, 통화를 마친 오민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1년 전, 조연아 씨의 식사를 담당했던 장씨 아주머니를 찾았는데... 아쉽게도 한발 늦은 상태로 월세방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경찰 검사 결과 자살로 판명되었다고 합니다.”“자살? 꼬리 자르기를 당한 거겠죠.”탁.거칠게 파일을 덮은 민지훈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반 년을 찾아헤맨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다니.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자 오민은 숨 소리도 크게 내지 못한 채 민지훈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저... 대표님. 조연아 씨의 새로운 거처 주소를 알아냈습니다.”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린 민지훈이 물었다.“거기가 어딥니까?”“저희 그룹에서 새로 분양을 시작한 우여청 빌라입니다.”“차 세워요.”잠시 후, 차가 멈춰 서고 민지훈이 다시 말했다.“김 기사님, 내리세요.”“네, 대표님.”“오 비서님도 내리세요.”민지훈의 시선이 조수석에 앉은 오민에게로 향했다.“알겠습니다.”잠시 후, 운전석에 탄 민지훈이 도로 사이로 유유히 사라지고 덩그러니 남은 오민과 김 기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잠시 후, 우여청 빌라 앞.고주혁을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데려다줘서 고마워.”“오늘 많이 피곤했지. 내일 취임식인데 오늘 밤은 푹 쉬어.”조연아를 위해 벨트까지 풀어준 고주혁이 부드러운
“오빠, 오빠도 이제 나이 꽉 찬 거 알고 있지? 주변에 좋은 여자 있으면 내가 소개해 줄게.”은인과도 같은 고주혁에게 조연아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젠틀한 거절이었다.“그럼 나 먼저 올라가 볼게. 조심해서 가.”차에서 내린 조연아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빌라를 향해 달려갔다.도망치 듯 다급하게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고주혁의 미소가 점차 옅어졌다.“알아. 네가 사랑 때문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새로운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엔... 아직 망설여지는 점이 많겠지. 그러니까 내가 더 노력할게. 연아 넌 그냥 가만히 있어.”애써 감정을 추스른 고주혁은 조연아의 집이 불을 밝힌 뒤에야 아파트 단지를 나섰다....한편,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조연아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순간, 누군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무지막지한 힘에 집안으로 끌려들어간 조연아는 바로 벽에 밀쳐진 채 움직임을 제압당하고 만다.“살려주세요!”본능적인 외침과 함께 조연아의 손은 현관 서랍장 위에 놓인 꽃병으로 향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집안의 불이 켜지고...어둠속에 가려진 잘생긴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자 잠깐 멈칫하던 조연아의 표정이 공포에서 경멸로 바뀌었다.“하, 뭐 범죄자 코스프레라도 하는 건가?”비아냥거림이 섞인 목소리였지만 민지훈은 개의치 않았다.“그 남자랑 무슨 사이야?”“그 남자? 누구?”“몰라서 물어?”민지훈이 목소리를 높였다.“고주혁이랑 무슨 사이냐고!”“내가 주혁 오빠랑 무슨 사이인지 당신한테 일일이 보고해야 해? 무슨 자격으로 지금 내게 이렇게 따져묻는 거지? 또 무슨 자격으로 내 집에 이렇게 함부로 들어온 거고? 민하그룹 민지훈 대표가 이딴 식으로 전 와이프 집에 들락거린다는 게 기자들한테 알려지면 당신한테도 좋을 거 없잖아?”“마음껏 찍으라고 해. 난 상관없으니까.”‘미친 자식.’지금 당장이라도 유리병으로 민지훈의 머리를 내리치고 싶었지만 커다란 손에 꽉 잡힌 상황이 한스러울 뿐이었다.“나랑 주혁 오빠가 무슨 사이
“그래. 남았어, 미련.”이 질문만을 기다렸던 민지훈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조연아, 넌 영원히 내 거야. 내게서 도망칠 생각 따위 하지 마.’묵직한 소유욕이 조연아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차라리 예전처럼 차갑게, 매정하게 굴 것이지. 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왜 다시 날 불안하게 만드는 거야.’그래도 10년간 그의 곁을 지키며 대충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민지훈의 모습은 너무나 낯선 것이라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러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내가 다시 임천시로 돌아온 게 정말... 제대로 된 선택이 맞긴 한 걸까?’디옹.바로 그대, 초인종 소리와 함께 이모 추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아야, 집에 있어? 이모야. 네가 저번에 부탁했던 거 알아냈어. 연아야? 연아야?”초인종 소리가 다시 울리자 오히려 집 주인인 조연아가 당황하기 시작했다.‘진정해... 침착해.’민지훈을 힘껏 밀어낸 조연아가 창문쪽을 가리켰다.“나가.”“여기 12층이야. 날 죽이기라도 할 셈이야? 내일 아침 기사로 조연아 대표 전 남편 살해하다 이런 타이틀도 나쁘지 않겠네.”이 급박한 와중에 농담이라니.가능하다면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다급하게 그를 끌고 안방으로 들어간 조연아가 옷장 문을 열었다.“들어가.”딩동.“연아야? 안에 있는 거 맞아?”초인종 소리가 다시 울리고...“민지훈, 지금 당신이랑 농담 따먹기 할 기분 아니야. 들어갈 거야, 말 거야.”“들어갈게.”조연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순간, 민지훈의 큰 손이 그녀의 가녀린 목을 확 잡아당겼다.“대신 대가는 받아야겠지?”‘대가?’무슨 대가를 원하는 것인지 결론에 이르기도 전에 두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미쳤어?”겨우 1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이렇게 뻔뻔하게 변해 버린 걸까?하지만 그녀가 화를 내든 말든 어깨를 으쓱하던 민지훈은 얌전하게 옷장 속에 몸을 숨겼다.턱없이
추연과 조연준이 동시에 그녀를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이모, 그나저나 장부 조사는 끝내셨어요?”삼촌 추건이 스타엔터를 이어받은 뒤로 회사는 말 그대로 일낙천장, 3대 엔터회사 자리를 내준 것은 물론 해마다 적자를 이어오고 있었다.그리고 새로운 대표로 취임하게 된 조연아가 장부를 확인하던 중, 미심쩍은 점을 발견해 추연에게 조사를 부탁했던 것이었다.이에 추연이 두터운 파일 꾸러미를 건넸다.“그럼. 언니가 세상을 뜨고 나서 재무팀 하 팀장은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떠나고 자기 사람인 유상진을 새로운 팀장으로 내세웠어. 살펴봤는데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더라. 1년 사이에 출처 불명의 자금 이동만 수백억이 넘어.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몇 년 사이에 파산이야.”“장부를 확인했던 회계사는 믿을만한 사람인 거 맞죠?”어디까지나 가족 기업, 사람들이 알아봤자 의미없는 가족들 사이의 세력 싸움으로 비춰질 게 뻔했으니 더 조심스러웠다.“으이그, 너 이모 못 믿어? 특별히 신경 써서 임천시가 아닌 다른 지역 회계법인 회계사로 선임했으니까.”고개를 끄덕이곤 테이블 위에 가득 쌓인 장부를 바라보는 조연아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감히 회사 돈 횡령을 해? 전부 다시 뱉어내게 만들 거야.’쿵!이때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당황한 조연아가 최대한 티나지 않게 안방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이게 무슨 소리야?”추연의 시선 역시 굳게 닫힌 안방 쪽으로 향했다.“뭐 떨어졌나 보죠.”애써 침착한 척하며 대답하는 조연아의 손바닥이 식은 땀으로 축축해졌다.다행히 추연도 조연준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그래? 그럼 나랑 연준이는 이만 가볼게. 너, 여자 혼자 사는 거 쉽지 않다? 항상 문 조심하고, 알겠지?”“내가 애인가. 알겠어요, 이모.”“누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조연준이 그녀를 향해 수화를 해보였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조연아가 두 사람을 배웅해 주려던 그때.쿵!안방쪽에서 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소리가 들려오
말릴 틈도 없이 벌컥 문을 연 추연이 안방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작은 스피커와 충전기가 바닥에 떨어져있는 것을 제외하곤 멀쩡한 방안.민지훈이 아니라는 걸 발견한 조연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하, 다행이다...’“별거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뭐 떨어진 거라니까.”“그래. 뭐, 별일 없으니 다행이고. 난 또 도둑이라도 몰래 숨어들었나 했지.”어딘가 찜찜하긴 했지만 딱히 물증이 없으니 추연과 조연준은 다시 돌아섰다.“그래, 연준이 말이 맞아. 너... 그냥 이모랑 같이 사는 건 안 되겠니?”“이모, 저 괜찮아요. 여기 나름 고급빌라예요. 외부인들은 함부로 들어오지도 못한다고요. 괜찮을 거예요.”‘차라리 도둑이었으면 좋겠네. 옷장속에 이혼한 전남편이 있다는 걸 들켜봐. 어휴, 골치 아퍼.’그 뒤로도 두 사람의 잔소리 세례를 한참 동안 들은 뒤에야 조연아는 겨우 둘을 배웅하는 데 성공했다.“조심히 가세요, 이모.”이 인삿말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현관문이 닫히고...이제 드디어 끝이라는 생각에 조연아는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겨우 마음을 추스른 그녀가 돌아서려던 그때, 커다란 그림자가 불쑥 나타나더니 바로 조연아를 벽으로 제압했다.“들키는 게 그렇게 무서워?”언제 들어도 매력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그럼.”조연아가 민지훈의 가슴팍을 퍽 밀쳐냈다.“우리 두 사람 이혼한 사이잖아. 전 남편이 내 집 안방에 있다는 걸 들켜봐. 내 해명 따윈 먹히지도 않겠지.”“왜? 왜 그렇게 나랑 선 긋고 싶어서 안달인 건데.”불쾌함이 깃든 표정의 민지훈이 그녀의 턱을 부여잡았다.“당신이 원하는 거 아니었어? 이제야 원하는대로 해주겠다는데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하, 마음이 바뀌었어. 이제 나한테서 벗어날 생각하지도 마.”‘도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그리고 다음 순간, 묘한 표정을 짓던 그의 입술이 내려앉고...뜨거운 키스에 잠잠한 호수면 같던 그녀의 마음에 다시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잠시 후, 어디선가 불어온 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