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2화

산산한 저녁 바람이 창밖에서 불어왔다. 복도에서 나는 다급한 발소리에 장소월은 잠에서 깼다. 앞이 뿌옇게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깜빡이며 창밖을 보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순간 그녀는 더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백윤서가 끊임없이 사과하는 소리에 장소월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몰라 잠이 덜 깬 눈으로 바닥을 딛고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눈을 가늘게 뜬 장소월은 문 앞에 서 있는 뒷모습에 깜짝 놀랐다.

“오빠, 회사 일 끝났어요?”

장소월이 잠든 지 1시간쯤 전연우가 돌아와 백윤서를 데리고 쇼핑하러 갔었다. 두 사람이 돌아왔을 때 전연우는 방에 무언가 빈자리가 느껴져 살펴보니 장소월이 생일선물로 준 인형이 사라진 것이다.

백윤서는 눈시울이 붉어져 불쌍하게 장소월을 쳐다보았다.

“소월아...”

전연우는 몸을 살짝 앞으로 해 백윤서를 막아섰다. 그의 표정은 애써 침착한 듯 보였지만 눈가에 희미하게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명월아, 미안해. 네가 선물해 준 인형 내가 조심하지 않아 조금 망가졌었는데 윤서가 모르고 안 쓰는 물건인 줄 알고 버린 거야!”

아줌마도 나서서 말했다.

“제 잘못이에요. 제때 윤서 아가씨한테 알려줬어야 했는데.”

모두가 장소월이 불같이 화를 낼 것이라 예상하였다. 하지만 장소월은 그저 괜찮다는 듯이 웃었다.

“그랬어요? 근데 좀 아깝다. 그거 한정판 인형인데.”

이 세상에서는 우는 아이에게 사탕이 주어졌다. 그녀의 잘못도 아닌데 백윤서가 우니 용서하지 않은 그녀의 잘못 같았다. 전생에서 그녀가 싫어한 이유도 백윤서가 전연우의 마음을 차지한 것도 있었지만 이렇게 나약한 척 울고불고 연기하는 것이 제일 싫었다.

이번 생에도 여전히 그런 모습이 싫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전연우는 장소월의 싸늘한 표정을 지켜보고 입을 열려는데 장소월이 먼저 말했다.

“오빠가 그렇게 좋아하면 올해 생일에도 하나 선물해 줄게요. 그러면 선물 고를 걱정도 덜고”

백윤서가 나서서 말했다.

“소월아 내가 진짜 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장소월은 눈을 깜빡이며 백윤서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무슨 이런 일 가지고 괜찮아요. 내 물건도 아니고. 버렸어도 나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요.”

이 불필요한 대화가 지속되는 것이 싫어 장소월은 일부러 말을 돌렸다.

“아줌마, 저녁밥 다 됐어요? 나 배고파요!”

“식사 준비는 이미 끝났죠. 마침 부르러 가던 참이었어요.”

“나 옷 좀 입고 내려올게요.”

장소월은 방으로 돌아와 옷을 입고 다시 내려왔더니 아무도 없었다.

“아줌마, 오빠하고 윤서 언니는요?”

아줌마는 국을 떠 오면서 말했다.

“연우 도련님하고 윤서 아가씨 나가셨어요. 이미 드시고 왔다고 하셔서. 맞다... 연우도련님이 아가씨 드리라고 디저트 사 오셨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사실 연우 도련님이 아가씨 많이 신경 쓰고 계세요.”

마지막 한마디는 그저 그녀를 위로하려는 것이란걸 장소월은 알고 있었다. 정말 그가 사 온 것인지 아줌마는 딸기무스케이크을 가져왔다. 그녀는 그저 자신을 달래주는 것인 줄 알았다.

전연우가 백윤서와 집을 나가고 그가 사 온 케이크를 보고 있어도 마음속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지나간 일에 대해 이젠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장소월은 케이크 상자를 열어 맛보았다. 달고 느끼하지 않은 것이 그녀가 자주 가는 집의 것이었다.

“아줌마도 그만하시고 와서 같이 먹어요!”

“괜찮아요. 전 이미 먹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하인이 주인하고 겸상하겠습니까.”

장소월은 아줌마를 끌어당겨 옆에 앉히고 불쌍한 척 말했다.

“지금 이 집에 우리 둘밖에 없는데 나랑 같이 먹어 줘요! 어차피 다른 사람도 없는데.”

전연우와 백윤서가 이대로 집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줌마는 앉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는 아이 같기도 하고 아주 안쓰러웠다. 옆에 마음 줄 친구도 없고 무엇을 하던 혼자였다.

‘휴... 아가씨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연우 도련님 마음엔 오직 윤서 아가씨뿐이니.’

장소월은 손목을 꿰맨 실밥을 풀 때까지 2, 3일 더 쉬어야 했다. 상처도 더디게 아물었다. 물만 닿지 않으면 다시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전연우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장해진도 폭우를 만나 비행기가 지연되어 돌아오려면 며칠 더 걸릴 것이다.

그녀의 마음도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전생엔 전연우 때문에 죽고 못 살며 몸과 마음을 다해 그에게 매달려 결국 수능도 잘 보지 못하고 전문대밖에 붙지 못했다.

지금 그녀는 고등학교 삼 학년, 꼭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붙어 전생과는 다른 길을 가고 싶었다. 장소월이 다니는 학교는 사립학교 중 제운고등학교로 선생님과 학교 시설이 가장 좋은 학교였다. 자연히 학비도 일 년에 몇 천만원 하는 비싼 학교였다.

등하교 모두 차로 픽업하기에 몇 걸음 걸을 일도 없었다.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모두 부유한 집 자식들이었다. 당연히 다른 학교에서 전학해 온 학생과 본인 실력으로 시험을 봐서 온 학생도 있었다. 이런 우수한 학생에겐 학교에서 장학금 정책을 펴 학비는 모두 면제였고 장학금도 많이 주었다.

기사님이 학교 문 앞에 도착했다.

“아가씨 하교하실 때 연락하십쇼.”

장소월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락할게요.”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