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품격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1270 챕터
제11화 어쩜 이렇게 잘 생겼을까?
‘정말 그렇게 쉽게 깨어난다고?’‘도련님 상태가 이렇게 심각한데…… 침 몇 대 놓고 10분 기다리면 깨어날 수 있다고……?’다정의 확신에 찬 말투에 구남준과 소영은 의아했지만, 별말 없이 초조히 기다렸다.구남준은 몇 번이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의사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여준재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 미칠 것 같았다.‘저 여자 말을 대체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모르겠네…….’두 사람의 긴장한 모습과 달리, 다정은 평온했다.다정은 침대 위의 남자를 주시하기 시작했다.말도 안 되게 잘생긴 남자의 얼굴은 병색으로 창백했지만, 이목구비는 조각같이 정교하고 또렷했다.꼬리가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 서글서글한 눈매에 총기가 넘치는 반짝거리는 눈, 단정하게 생긴 오뚝한 코, 복사꽃 같은 입술.비록 몸 정면은 보이지 않지만, 탄탄한 근육이 크고 건장한 몸에 보기 좋게 분포돼 있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남성미가 넘쳤다.‘어떻게 이렇게 잘생겼지?’힐끗 훑어보았을 뿐인데 다정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찌릿했다. 이렇게 쳐다보는 것이 예의 아니라고 자책하며 시선을 돌려 소영 옆으로 가서 기다렸다.구남준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10분 지났어요.”다정은 여재준에게 다가가 침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다. 천천히 침착하게.마지막 침을 몸에서 뽑자, 침대 위의 남자는 긴 속눈썹을 떨며 손을 움직였다.깨어났다.잔뜩 긴장했던 구남준이 총총걸음으로 얼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도련님, 기분이 어떠십니까?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소영은 얇은 담요를 가져와 여준재의 몸을 가려주었다.열이 아직 내리지 않은 여준재의 얼굴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봤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입술을 오므리고 몸을 일으켜 앉으려고 했지만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는 기력이 없는 나지막한 소리로 구남준에게 물었다.“나…… 이거, 왜 그래?”구남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여준재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얼른 옷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가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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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의술이 뛰어나다
소영은 다정의 분부대로 약을 한 시간 동안 달여서 여준재에게 먹였다.그는 여전히 매우 허약한 모습이었다. 깨어났을 때는 의식조차 혼미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몇 시간이 지나고, 정오가 다 되었을 무렵, 구남준은 신기한 모습을 보았다. 약을 한 그릇 마셨을 뿐인데, 준재 도련님의 열이 내리고 얼굴색도 많이 돌아왔다. 정신도 멀쩡한 것이, 방금 전의 그 허약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이렇게 침 몇 곳 놓고, 약 한 그릇 마셨다고 이게 가능하다니.’여준재의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도련님, 다행이에요. 드디어 깨어나셨군요!”소영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방금까지도 다정의 의술을 의심했었는데.그러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도련님, 정말 어디 불편한 곳 없습니까?”준재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저었다.“아니,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지병때문에 늘 가슴이 답답해서 괴로웠는데, 지금은 그 기운은 어디로 갔는지도 가벼웠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홀가분함을 느꼈다. 이전에 지병이 재발했을 때 여러 차례 신수 어른께 도움을 청했었다. 그때 먹었던 약도 효과가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약효가 뛰어나진 않았다.그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구남준에게 물었다.“이번에 먹은 약은 뭐야? 효과가 아주 좋네.”.“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암튼 처방전은 소영 씨에게 있습니다.”사방을 둘러보니 신수 어른이 보이지 않자, 한마디 덧붙였다.“신수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어르신이 나에게 처방해 주셨지?”구남준은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대답했다.“어르신은 지금 약방에 안 계십니다. 잠깐 외출하셨는데…… 곧 돌아오실 겁니다. 도련님, 이번에는 신수 어르신이 치료해 준 것이 아닙니다. 약도 어르신께서 처방한 것이 아니고요…….”여준재는 얼떨떨해졌다. 신수 어른보다 의술이 더 높은 사람이 또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누가 처방한 거야?”“그게…….” 구남준은 다정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들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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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녀를 만나야겠다
“어르신이 나가신지 얼마 안 되어서 도련님의 상황이 악화되었어요. 혼수상태에 빠져서 열도 나고…… 아주 심각했었습니다. 어르신께는 전화도 안 받으시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 마침 어르신을 찾아뵈러 온 고다정 씨가 도와주었어요. 다정 씨 덕분에 도련님이 이렇게 빨리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정 씨 의술이 이렇게 좋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글쎄, 침을 몇 곳 놓으니까, 도련님이 이렇게 일어나셨지 뭐예요…….”신수 노인이 나타나니, 소영은 마음속에 걸려 있던 큰 돌이 내려간 듯 안심되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신이 나서 설명하였다.“어르신, 사실이에요.”구남준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다정이가?” 신수 노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네. 맞아요”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신수 노인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더해졌다.“다정이가 의술을 할 줄 안다고?”“네, 알고말고요. 게다가 의술도 아주 대단하던 데요. 저도 오늘에야 알았어요……. 어르신이 다정 씨랑 친하니까…… 진작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소영의 말을 듣고 신수 노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다정과는 그래도 교류가 많은 편이었다. 한데 지금까지 그녀가 약재를 재배하여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만 알 뿐, 의술을 할 줄 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다정이 그 녀석,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구먼.’‘그런데 생명이 위독한 준재를 다정이가 구하다니…….’“녀석아, 손 좀 내놔, 내가 맥을 짚어 보마.”여준재의 맥박에 손을 얹고 한참이나 진맥하던 신수 노인이 갑자기 혀를 내둘렀다.준재를 치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맥이 이렇게 평온한 것은 처음이었다.외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상황이 심각했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원기 왕성해질 수 있지?“소영아, 다정이가 침을 놓을 때…… 무슨 혈을 찔렀더냐?”신수 노인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만약 다정이가 정말 이 녀석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큰 경사일 것이다.소영은 회상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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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지나친 친절
다정은 어리둥절했다. 신수 어른이 이렇게 흥분한 것은 처음 봤다.다정은 한동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었다. 신수 어른은 친절하게 그녀를 휴게실로 이끌고 갔다.“햇볕이 이렇게 뜨거운데…… 자, 다정아, 우리 시원한 곳으로 들어가자꾸나!”다정은 의아했다. ‘오늘의 신수 어르신은 좀 지나치게 열정적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휴게실에 이미 준비해 둔 차를 보고 그녀는 약간 놀랐다.신수 노인은 의술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분이었다.다정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손을 꼭 잡은 신수 노인을 보며 다소 어색해했다.“네, 어르신,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자신이 좀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신수 어른은 웃으며 다정의 손을 놓았다.“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내가 흥분했구나.”애써 멋쩍게 웃으며 자기 손을 움츠렸다.뒤를 힐끗 보고서야 다정은 소영, 조각남과 그리고 그의 비서인 구남준이 모두 같은 쪽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다정의 시선은 중간에 서 있는 조각남 여준재에게 고정되었다. 정신은 아주 맑아 보였다. 보아하니 자신의 구급치료 효과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그녀는 당연히 그가 왜 이렇게 빨리 회복되었는지 알고 있었다.표정으로는 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신수 노인을 보고, 다정은 신수 노인이 이렇게 흥분한 연유를 알 것 같았다.신수 어른이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했다.“다정아, 내가 오늘 널 여기로 부른 것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야. 소영이한테 들었어……. 준재는 심맥이 손상되고, 외상과 내상이 모두 심각한 상태에다 지병까지 재발해서…… 살아 있는 게 기적일 정도로 심각했었지……. 그런데 네가 침을 놔주고 처방한 약을 먹었더니 이렇듯 혈기도 돌고 살아났잖아. 정말 구사일생인 셈이지. 어떻게 준재가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구나……. 그리고, 너의 처방전에 어떤 약이 들어있었는지도 알고 싶어……. 빙설련, 이 약재는 시장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약재인데, 어떻게 구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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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그의 개인 주치의가 되다
화제가 자신한테로 돌려지자, 준재는 팔짱을 끼고 눈썹을 치켜세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역시 구남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래요, 보수는 편하게 얘기하세요. 그러고 보면 우린 다정 씨랑 인연이 참 깊은 것 같죠…….”신수 노인은 의아하다는 듯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왜? 아는 사이냐?”구남준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런 셈이죠?”남준은 콧등에 걸쳐진 안경을 올려 세우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며칠 전에 저와 도련님이 차를 타고 가다 다정 씨와 도로에서 약간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접촉 사고로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다정 씨가 이런 대단한 분인 줄 몰랐습니다.”이 말을 꺼낸 뒤 분위기는 다소 어색해졌다.구남준은 다정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다정 씨, 그 교통사고에 관해서는, 다정 씨에게 어떠한 배상도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다정 씨를 우리 도련님의 개인 주치의로 모시고 싶습니다. 비용은 다정씨가 원하시는 데로 드리겠습니다.”준재는 침묵했다. 그렇게 진행하라는 의미였다.다정은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생각지도 못했다.너무 갑작스러워서 여러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결정해야 한다.다정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의술이 대단하다니요, 과찬입니다. 제가 무슨……. 만약 고수라면 지금 이렇게 가난하고 초라하게 살고 있지는 않겠죠……?”다정의 이 말은 겸손이자, 자조였다.자신이 지금 이렇게 초라한데, 무슨 고담준론을 펼치겠는가?다만…… ‘가난하고 초라하게 산다’라는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완곡한 거절의 뜻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다정 씨, 혹시 돈 문제 때문입니까? 고민할 필요 없이 비용을 제시해 보세요.”준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다정은 처음으로 준재의 목소리를 들었다.그의 목소리는 매우 듣기 좋았다. 톤은 낮고 분위기 있으며, 마치 파도의 속삭임처럼 사람을 매료시켰다. 세상에 둘도 없는 그의 비주얼과도 너무 찰떡궁합이었다.다정은 마음속으로 그의 신분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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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설마 애들 아빠?
다정은 그 문신을 보는 순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춘 듯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 매의 눈의 도안은 오래전에 본 적이 있다.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한……, 자신의 신세를 망친 그 남자, 5년 동안 때때로 꿈속에 나타나 자기를 괴롭히는, 그 남자의 가슴에도 이와 같은 문신이 있었다.‘뭔가…… 너무 닮았다.’감았던 눈을 크게 뜨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하윤과 하준도 아빠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몇 년 동안 다정 또한 아이들의 생부를 찾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어떠한 흔적도 찾지 못했다.‘설마 이 사람이 바로 그 남자, 아이들의 아빠일까?’‘아닐 것이다. 문신 종류가 수천수만 가지이니, 유사할 수도 있다.’‘진짜 똑같은 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걸까?’다정은 그 문신이 기억 속의 그 모습인지 다시 한번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았다.그 사이 준재는 이미 검은 셔츠의 단추를 전부 채웠다.검은 셔츠를 넥라인 위까지 잠그니, 늘씬한 몸매를 더욱 매혹적으로 돋보이게 해 주었다. 차도남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가슴의 문신도 가려졌다. 문신 모양을 확인할 길이 없어지자, 다정은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그녀의 시선을 인식한 준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하려다 구남준의 절박한 부름에 말을 삼켰다.“도련님, 도련님을 치료할 기회를 이대로 놓칠 수는 없습니다.”구남준은 요 몇 해 동안 준재와 함께 세계 각국의 명의를 찾아 나섰지만, 번번이 헛물켰다.모처럼 그의 병세에 도움이 될 사람을 찾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신수 노인의 얼굴에도 초조함이 묻어났다. 어떤 말도 더 이상 할 수 없었기에 난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다정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확고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다정에게로 옮겨갔다.“좋습니다, 네, 제가 치료할게요. 단, 저에게 몇 가지 약속을 해 주셔야 합니다!”모두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슨 약속?” 준재도 멈칫했다. 그녀가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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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그녀보다 못하다
신수 노인과 다정은 한쪽 방에 가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다. 남준과 준재는 떠나지 않고 휴게실에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대략 30분이 지나서야 그들은 돌아왔다.“할아버지, 어때요?” 준재가 물었다.확신에 찬 눈빛을 한 신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치료 계획은 내가 봤어. 먼저 한 달 동안 해보자고.”의학상의 일은 준재 등은 모르니, 전문적인 약리 지식으로 설명해 줘도 이해 못 할 것을 뻔히 알고, 신수 노인이 간단하게 얘기한 것이었다.신수 노인이 말하면서, 불가사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준재는 보았다.준재는 그의 눈빛에 깃든 아리송함이 궁금했다.준재의 의문 가득한 눈빛은 다정에게로 투사되었다.‘둘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야? 신수 할아버지는 왜 이런 표정을 짓지?’그러나 신수 어른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상, 그 치료계획에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이제 쌍방이 모두 만족하는 이상적 협의를 진행할 차례다.“고다정 씨, 이쪽으로 앉으세요. 치료에 관한 이야기 좀 합시다.”구남준은 안경테를 짚으며, 성숙하고 진중한 공적인 분위기로 돌입했다.“저는 별다른 요구사항은 없어요. 치료에 잘 협조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치료 비용과 치료 시간도 다 정해지자, 다정은 자기 생각을 밝혔다.구남준은 생각하다가 치료 장소의 문제를 언급했다.“다정 씨는 앞으로 도련님 자택에 와서 치료할 것인가요? 아니면…….”만약 다정이 집까지 치료하러 와준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다정은 고개를 저었다. 준재를 곁눈질해 보다가 그의 예리한 매의 눈과 마주했다.“여준재 씨, 저는 집에 돌봐야 할 가족도 있고…… 또 우리 약원도 가꿔야 하니, 제가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제가 가기는 쉽지 않겠어요. 번거롭겠지만 제가 있는 곳에서 치료하면 안 될까요?”구남준과 여준재의 표정이 복잡해졌다.준재처럼 대단한 인물이, 고작 이런 여자한테 끌려다니다니…….하지만 준재의 지병만 고칠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은 가치가 있다.‘치료받으러 가는 것뿐인데 안 될 게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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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죽고 싶어?
고다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다정은 고 씨 가문에서 쫓겨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엘리베이터도 없는 이런 낡고 허름한 곳에서 두 아이와 할머니를 모시고, 약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니.이런 삶은 자신의 삶과는 천양지차이다!매일 쥐꼬리만 한 수입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다정의 초라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기 위해 왔다. 몸에는 퀴퀴한 약초 냄새가 배어 있고, 누렇게 뜬 얼굴로 산발하고 있을 거라 상상하면서…….그런데 자기가 상상한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세월의 지혜와 삶에 대한 애착은 다정을 더욱 단단하고, 성숙하게 만들었다.애들을 키우면서 모성의 감성적 색까지 입혀지니 더욱 우아해 보였다.몇 년 전에 고 씨 집안에서 큰 아씨로의 삶을 살고 있을 때보다 더 빛이 났다.고다빈은 겉으로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마음 속에선 쓰디쓴 구역질이 올라와 참을 수가 없었다.예전에도 다정에게 늘 밀렸는데, 지금도 그녀를 이길 수 없다니?그녀는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다정을 자극했다.“언니, 오늘 나는 아빠 말씀 전하러 왔어. 요 몇 년간 사이가 틀어졌지만, 아빠도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 그때 일어난 일들, 모두 언니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고……. 그래서 아빠는 이번 결혼식을 계기로 언니를 집에 초대하라고 했어.”고다빈은 청첩장을 꺼내 다정에게 건네주고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은은한 골드 배경에 용과 봉황이 춤추고 있는 청첩장에 찍힌 은색의 큰 글씨가 유독 눈에 거슬렸다.‘고 씨 집안사람들이 하는 짓들은 참으로 어이없다.’ ‘그때는 그렇게 나를 모질게 내치더니…… 5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그들이 하는 이런 행동들이 진짜 가족이라면 과연 할 수 있는 일인지 곱씹어 보았다.다정은 청첩장을 받곤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비웃으며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던져버렸다.“나는 고 씨 집안과 진작에 연을 끊었어. 우리 엄마 딸은 나 하나뿐이라고……. 너같은 동생을 둔 적도 없어. 너도 더 이상 나를 언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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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자발적 포기
다정이 입원 절차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강말숙은 이미 깨어나 있었다.강말숙은 머리에 두꺼운 흰색 붕대를 감고, 손에는 링거 꽂고 있었다. 누워만 있는 게 답답한지 일어나 앉고 싶은 모양이었다.다정은 급히 뛰어가서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고 등 뒤에 베개를 받쳐주었다.“할머니,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다정이 친절하게 물었다.강말숙은 이마를 짚으며 기운 없는 목소리도 말했다.“다른 건 괜찮고 머리만 조금 아프네. 의사 선생님이 방금 오셨었는데 큰 문제는 없고, 상처 난 곳에 약만 잘 바르면 된대.”다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할머니 옆의 의자에 앉았다.“다정아, 이 링거 다 맞으면 우리 집에 가자. 겨우 이 정도 갖고 병원에 입원할 필요 없어. 돈 많이 들어.”강말숙은 정신을 가다듬고 머리맡에 거의 다 맞은 링거병을 보며 말했다.“할머니, 오늘 이미 계산 끝냈어요. 지금 퇴원하면 환불도 안 해줘요. 아직 상태가 불안정하니 병원에서 하루 지켜보고 별일 없으면, 내일 퇴원해요.”다정은 손을 내밀어 할머니를 꼬옥 안았다. 다정은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고 미리 입원 수속을 끝냈다.돈보다 할머니가 중요했다.강말숙은 다정의 마음을 잘 알기에, 더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베개에 기댔다.강말숙은 긴 한숨을 내쉬며, 다정의 손을 잡고 자책하는 표정을 지었다.“다정아, 요 몇 년 동안 아픈 나를 돌본다고 고생이 많다. 이 할미가 너를 힘들게 하는구나.”다정은 얼른 외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아니에요, 할머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할머니가 언제 저를 고생시켰다고요. 제가 고 씨 집안에게 쫓겨나 오갈 데가 없을 때, 할머니가 저를 안 받아 주셨으면, 저는 없었을 거예요. 어떻게 저한테 지금 같은 날이 있었겠어요?”고 씨 집안일을 언급하자, 강말숙은 오늘 고다빈의 말을 떠올리며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다정아, 고 씨 집안 행사에…… 갈 생각이니?”다정은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곧 다시 별일 없는 듯 활짝 웃었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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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굴욕
“다정이 그년, 집에서 쫓겨나 할망구랑 같이 살더니, 교양도 없어졌나 봐.”심여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며 화제를 돌렸다.“여보, 우리는 원래 빈이 결혼식을 빌어 다정의 혼사도 정하려고 했잖아요. 지금 걔 하는 거 보니 쉽게 집으로 오지 않을 것 같네요.”고경영은 다정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돌아오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라도 데려와야지. 방법을 찾아 볼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분명 때가 되면 임 씨 집안 쪽에서 틀림없이 신부를 내놓으라 할 텐데. 그럼 그땐 어디에 가서 신부를 구해오겠어? 다정이가 그런 스캔들에 휘말린 마당에 임 씨 집안과 결혼하는 것만으로 은혜를 베푸는 영광으로 알아야지! 이걸 거절한다면 그야말로 멍청한 거지…….”임 씨 집안과의 혼인 이야말로 그들이 이번에 다정을 부른 진정한 목적이었다.임 씨 집안은 임진시에서 명망이 있는 집안으로 재산도 많다. 대대로 유명 인사와 인재를 배출했다.하지만 이번 세대에는 안타깝게도 놀고먹는 개차반 2세인 부잣집 도련님이 하나 있는데, 그는 임 씨 가문 최대의 골칫거리였다.이 인간은 평판이 굉장히 나빴다.얼마 전 운전 중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불구가 되었다. 그런데 다들 동정하기는커녕 인과응보라고 고소해하는 사람이 많았다.결혼할 나이가 다 되었지만, 불구자인데다 성질머리도 더러워서 있는 집 자제와 결혼시키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이런 개차반과 어느 여자가 결혼하기를 원하겠는가?조건이 좋은 여자들은 당연히 이런 놈과 만날 리 없고, 조건이 좋지 않은 여자들은 그놈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꼭 그놈에게 어울릴 만한 사람을 찾아야 했다.임 씨 집안은 도처에서 집안이 맞는 아가씨를 찾고 있다.조건을 아주 넓게 놓아 재혼이라도 상관없고, 또 두둑이 한몫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마침 고 씨네 그룹은 두 달 전 사업 때문에 적자가 커졌다. 그 적자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자금이 급히 필요한 상황이었다.고경영이 한창 자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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