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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4년 후.

옷차림이 말쑥한 남자가 그녀에게 달려들더니 자기의 몸 아래로 매섭게 제압했다.

찢겨 너덜너덜해진 옷, 남자에 의해 침범당하는 육체. 하지만 그녀는 반항할 힘이 없었다…….

남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자욱한 안개에 뒤덮인 듯 남자의 얼굴은 매우 흐릿해서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그 남자는 도예나와 가장 친밀한 스킨쉽을 나누고 있어도 동공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도예나는 그 눈빛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심장이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하더니 눈을 번쩍 떴다.

"엄마, 악몽 꾸셨어요?"

부드러운 앳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도예나는 그제야 비행기에서 그런 꿈을 꿨다는 걸 깨달았다.

꿈속에서는 5년 전 18세 성인식 날 밤, 그녀가 도설혜의 함정에 빠진 장면이 펼쳐졌다…….

여러 해가 지나고 그녀는 그 일을 더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지만, 왜 다시 꿈속에서 그 남자를 만났는지…….

아들의 맑은 눈동자와 마주친 그녀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말했다. "엄마 괜찮아. 그냥 장거리 비행이 조금 피곤할 뿐이야."

도제훈은 따듯한 물 한 잔을 따라 건네주었다. "엄마, 물 좀 마시면 괜찮아질 거예요."

곧이어 또 푹신한 쿠션 하나를 꺼내 도예나의 등 뒤로 옮겨 놨다. "이러면 더 편해질 거예요."

도예나는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아 아들의 볼에 입을 맞췄다. "제훈아, 엄마의 가장 큰 행운은 바로 너희 두 보물을 갖게 된 거야."

그녀는 옆에 앉아 조용히 잠든 도수아를 바라보며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4년 전,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와 마침내 한 가닥 생존의 기회를 찾았었다.

당시 조산한 두 아이는 생명이 위독했고 병원으로부터 여러 차례 위독 통지서를 받았다.

상대적으로 더 건강한 도제훈은 몸이 다 나았지만, 도수아는 의사의 소견으로 치료를 포기하게 됐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에 가서 치료받아야 했다.

그 후, 도수아의 목숨은 성공적으로 지켰다. 하지만 ―

기억을 되짚어 보던 중 도수아가 눈을 떴다.

도수아의 눈은 아주 아름다웠다. 까맣고 빛나는 게 싱싱한 포도 같기도 하고, 밤하늘의 별 같기도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아름다운 눈동자에 전혀 생기가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도예나는 마음속의 아쉬움을 억누르고 조용히 웃으며 물었다. "수아 깼네. 우유 마시고 싶어 아니면 온수 마시고 싶어?"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비행기 창밖의 흰 구름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도수아의 얼굴은 한결같이 차갑고 무관심했다.

도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귀국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점점 심해져 가는 도수아의 자폐증 때문이다.

"수아야, 내가 우유 타 줄게. 자, 손잡이를 들고 이렇게 마시면 돼. 그렇지, 옷은 더럽히지 말고."

도제훈은 우유를 도수아의 손에 쥐어 주며 차근차근 우유 마시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도수아가 아무런 대답이 없어도 도제훈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도예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인생 최대의 행운은 바로 도제훈 같은 아들을 얻은 것이 아닐까.

만약 도제훈이 없다면 그녀는 4년의 세월을 혼자 버틸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엄마, 더 문지르면 내 머리는 헝클어져 엉망이 될 거예요." 도제훈은 불만에 찬 듯 투덜거렸다.

도예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 이 자식, 이제 몇 살인데 벌써 이미지에 신경 쓰는 거야."

두 모자가 웃으며 수다를 떠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비행기는 곧 성남에 도착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캐리어를 찾으러 가는 도예나.

갑자기.

앞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다섯 살 된 남자아이가 황급히 그녀를 향해 달려오더니 그녀의 품속으로 안겨들었다.

캡 모자를 쓰고 재킷 차림에 구두를 신은 멋쟁이 아이는 딱 봐도 재벌가의 작은 도련님으로 보였다.

도예나는 말썽을 일으키기 싫어 아이를 부축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아이는 그녀의 손을 탁 잡았다.

"누군가가 날 찾고 있는데 날 도와준다면 소원 하나 들어드릴게요."

강세윤은 앞에 있는 여인을 향해 정교한 턱을 치켜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누가 너를 찾는데?"

도예나는 천천히 물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던 그녀는 왠지 모르게 갑자기 가슴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뻐근하게 아파졌다.

강세윤이 막 대답하려던 찰나, 뒤에 있던 한 무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작은 도련님, 이제 더 이상 도망가시면 안 돼요. 대표님 화가 엄청나셨어요!"

"작은 도련님, 어서 돌아가요!"

경호원 몇 명이 구구절절하게 애원했다.

강세윤은 몸을 돌려 도예나의 뒤에 숨어 그녀의 옷자락을 손에 꼭 쥐었다.

"우리 엄마 옷 잡아당기지 마!" 도제훈이 다가와 강세윤을 확 밀쳤다.

강세윤은 밀쳐지자마자 경호원 몇 명에게 붙잡혔다. "작은 도련님, 제발 소란 좀 피우지 마세요. 대표님 인차 오실 텐데 다시 도망가시면 정말 큰일 나요."

강세윤은 경호원의 품에 안겨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도예나를 바라보며 강세윤은 왠지 모르게 다시 이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강세윤은 얇은 입술을 오므리며 물었다. "저기, 이름이 뭐예요?"

"너랑 무슨 상관이야?" 도제훈은 차갑게 대답하면서 도예나의 손을 잡았다. "엄마, 우리 캐리어 나왔어요."

도예나는 낯선 아이를 한 번 쳐다본 후 양손에 각각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캐리어를 가지러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뒷모습은 빠르게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악랄하기 짝이 없는 강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같이 갈게요. 하지만, 3일 내로 반드시 저 아줌마에 관한 모든 정보를 나에게 알려줘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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