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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아직은, 아직은 때가 아니야.

생각을 마친 이강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너를 격려한 거지. 진짜 이유는 그 강상인한테 있는 거 아닐까?”

강상인?

그 이름을 들은 최순이 눈살을 찌푸리며 흥분해서 물었다.

“우리 딸, 정말 그 사람이랑 관련있는 거니?”

“아니, 멋대로 생각하지 마, 우리 아무 관계도 아니야!”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부릅뜬 그녀가 이강현을 잡아당겨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고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야? 당신도 나를 의심해?”

화가 난 고운란의 얼굴이 붉어지고 눈가에 눈물이 약간 맺히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사람을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지금 자신을 이렇게 의심하고 있다니. 비꼬는 거야 뭐야?

“당신은 남자도 아니야, 나 이제부터 당신 부인 아니야!”

화를 내며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치는 그녀를 껴안고 이강현이 말했다.

“당신이 오해한 거야. 내 말은, 지난번 그 일 말이야. 강상인은 당신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두려웠을 거야. 강성 그룹은 상장회사고 대기업인데 당신에게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예상컨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하러 올 거야.”

고운란의 두 눈이 깜박거렸다.

“정말?”

“바보야, 내가 어떻게 당신을 의심할 수 있겠어. 사랑하기도 바쁜데.”

고운란의 볼이 새빨개지는 동시에 갑자기 무언가 깨닫고 그를 세게 밀친 뒤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무슨 헛소리야, 무슨 사랑!”

말을 마치자 곧 몸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며 입가에 웃음기가 떠오른 이강현은 휴대폰을 들어 강빈에게 연락했다.

거실에 있던 최순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다.

“아이고, 여보, 우리 운란이가 정말 그 강성 그룹 도련님과 어떤 관계가 있다면 좋은 일 아니야?”

최순의 머릿속에는 딸이 부자에게 시집가서 자신도 덩달아 덕을 볼 생각으로 가득하다. 고건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은 우리 집안이 온 도시에서 멸시와 조소를 당했으면 좋겠어?”

“무슨 뜻이야? 내가 창피하고 싶어서 이래? 우리 운란이가 정말 그 이강현 같은 찌질한 놈이랑 평생 살아야 해? 걔가 우리 집에 뭘 해줄 수 있는데? 나는 상관없어. 우리 딸이 그 놈이랑 이혼했으면 좋겠어!”

고건민이 또 무언가 말하려 하다가, 그냥 고개를 저으며 신문을 들고 일어나 떠났다.

저 여자가 또 이상한 소리 하네, 말도 안 되지.

이때, 이강현은 솔이를 보러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방금 장모의 말을 모두 들었지만, 이미 익숙한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장모님, 저 병원 갈게요.”

“꺼져, 밖에서 죽든가 말든가!”

다음날.

고씨 집안 운생 제약회사.

어제 연회의 일로 회사 전체가 매우 정신없고, 여기저기서 토론 중이다.

“아이고, 언제 우리 고 본부장님이 강성 그룹과의 계약을 따냈대?”

“허허, 어떻게 했겠어? 고 본부장이 사석에서 그 집단 도련님이랑 만났다는 말 못 들었어?”

“아, 역시나! 그런 여자인 줄 몰랐네, 너무 더러워.”

흠흠!

갑자기 기침소리가 들려오자 다들 혼비백산했다.

고흥윤이 다가와 불쾌한 표정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다들 뭐 하는 거야, 아침부터 귓속말이나 해대고! 일이나 해!”

어젯밤의 일로 지금까지도 기분이 좋지 않은 고흥윤이 직원들에게 몇 마디 욕을 던지고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강상인과 고운란이 시차를 두고 다이아 하우스에 들어간 동영상을 편집해 회사 메신저로 퍼뜨렸다.

순식간에 난리가 나서 고운란에 대한 각종 추측과 욕설이 모니터에 가득하다. 고흥윤이 이 장면을 보며 다리를 꼬고 기대자 뒤에 있던 비서가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시원하네! 고운란, 네가 강성 그룹과의 계약을 따낸 게 뭐 어쨌다고? 결국 이렇게 너의 명예가 추락했으니 이번 계약과 관련된 일은 내가 이어서 계속 진행하게 되겠지!”

동시에,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 소식을 들은 고운란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분노하며 휴대폰을 들어 설명을 적으려 했지만 결국 그냥 삭제했다. 이내 억울한 듯 책상에 엎드려 잠시 울고서야 마음을 가다듬고 일을 계속했다.

어떤 일은, 변명할수록 다른 사람에게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때, 고청아가 갑자기 서류 한묶음을 안고 사무실에 뛰어들었다.

“이거 다 서명하서야 해요.”

회사에서 지위가 높지않은, 그저 마케팅 부 팀장일 뿐이라 모든 일에 고운란에게 지시를 청해야 하는데… 이런 차가운 태도는 사람을 너무 불쾌하게 만든다.

“참, 23일이 당신 딸 생일이네요. 이강현 그 사람은 올해 또 그 불쌍한 딸과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없게 됐어요.”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청아가 이어서 말했다.

“어떤 부자는 자기 딸 생일을 축하하려고 서울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인 카이사르 호텔을 빌렸다던데, 공교롭게도 같은 23일이더라구요. 같은 아버지인데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날까.”

경멸과 비웃음의 얼굴을 보며 고운란도 화가 났다.

“23일이 뭐 어쨌다고, 같은 날인 게 뭐 어때서.”

이런 그녀의 반응을 보고 계속 조롱이 이어진다.

“같은 날인 게 뭐 어떻냐구요? 중요하죠! 같은 딸인데, 어떤 남편은 도시 전체에서 가장 비싼 호텔을 빌려서 딸의 생일을 축하하고, 당신 남편은? 3년 동안 같이 생일을 보낸 적이나 있긴 한가? 하하, 자기 딸도 딸이라고 하지 못하다니, 정말 쓰레기가 따로 없죠!”

고청아가 무자비하게 비웃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너랑 무슨 상관이야?”

“저랑은 상관없죠, 당신하고 상관이 있지! 당신이 이강현의 부인이고 솔이의 엄마잖아요. 23일, 온 도시 사람이 그 부자 딸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면, 당신 딸은? 병원에 누워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죠, 하하!”

“고청아, 그만해!”

고운란은 마침내 소리를 질렀다. 나에게 욕하는 건 상관 없지만, 그렇게 어린 아이에게 상처입히는 건 안 돼.

“흥! 23일, 고운란 당신이 온 도시가 보는 앞에서 추태를 보이길 기대할게요!”

차갑게 몸을 돌린 고청아가 문을 나섰다. 그녀가 떠난 후에야 고운란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힘을 잃은 듯 자리에 앉았다.

너무 억울해. 하지만 저 말도 틀린 건 아니야. 3년동안 그는 솔이와 함께 생일을 보내지 않았어.

매년 이맘때면 모든 친척들과 서울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솔이는 이강현의 딸이지만 그가 딸이라고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마음을 가다듬고 고운란은 계속 일했다. 3년이나 지났는데 뭘 더 무서워하겠어. 그녀도 이미 적응이 된 일이라 생각했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강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고건민과 최순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오늘 바깥은 카이사르 호텔의 소식으로 시끄러웠고, 어디를 가든지 누구나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매년 이맘때면 항상 당하는 일. 그래서 일단 23일만 되면 집 문을 닫고 손님도 받지 않는다.

고운란과 이강현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최순이 가장 먼저 달려들어 비난을 시작했다.

“너 지금 뭘 잘했다고 집에 들어와? 오늘 우리가 너 때문에 체면 다 잃은 거 알기나 해?”

“장모님, 어떻게 된 거예요?”

이해하지 못하는 이강현을 뒤로 한 채, 고운란은 좋지 않은 기분으로 침실로 들어갔다. 어차피 매일 저녁마다 이렇게 꾸짖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다.

“물어보긴 왜 물어봐? 모레가 23일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저도 알아요.”

이강현의 안색이 가라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23일, 솔이의 생일. 고운란의 안색이 가장 어두운 날이다. 최순은 이강현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고 생각하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알긴 무슨! 내일 운란이랑 같이 가서 이혼이나 해, 지긋지긋한 놈!”

이강현이 멍해져서 입을 열었다.

“장모님, 저랑 얘기…….”

착!

뺨을 한 대 후려친 최순이 독설을 퍼부었다.

“장모님이라고 부르지 마! 너 같은 쓸모없는 사위 둔 적 없다! 모레, 우리 집은 또 온 도시의 웃음거리가 될 거야. 다른 사람들 봐, 카이사르 호텔도 빌리잖아! 너는 무슨 자격으로 솔이의 아빠가 될 수 있겠어? 내일 운란이랑 이혼하러 가기로 약속해!”

고개를 숙인 이강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몰랐다.

바로 그때, 침실의 문이 열리며 고운란이 눈물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문 앞에 서서 울었다.

“엄마, 나는 이혼안할거야! 이 사람이 내 남편이고 솔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거야. 23일인 게 뭐 어쨌다고, 어차피 3년이나 지났는데, 나는 익숙해.”

그녀는 말을 마친 뒤 복잡한 눈빛으로 이강현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순간, 이강현이 진지하게 소리쳤다.

“운란아, 나를 믿어. 23일, 너를 온 도시에서 가장 주목하는 사람, 가장 눈부신 어머니가 되게 해줄게. 솔이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공주가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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