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8화

그러고 나서는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보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은 적도 많았다.

유신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와 만나고 있었고 난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도, 나의 사적인 감정 때문에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그가 보고 싶어도 먼저 그에게 문자를 보낸 적은 없었다.

연락을 줄이는 건 몹시 어려웠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난 그를 떨쳐내기로 맹세했다.

겨울 방학 때쯤 유신우는 내게 언제 돌아가냐고 연락했다.

난 휴대전화 속 그 몇 글자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난 생각하지 않고, 보지 않으면 정말로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보낸 문자를 보았을 때, 그리움은 마치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내 마음을 휩쓸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그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면서 바보처럼 울었다.

난 여전히 그를 좋아했고, 여전히 그를 잊지 못했다.

하긴, 18년의 세월을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잊지 못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우리는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내게는 내 세계가 있었고 유신우에게는 유신우의 세계가 있었다. 난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장을 써 내려갔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어차피 길이 겹치는 것도 아닌데 난 신경 쓰지 마.]

그날 오후, 유신우는 인스타에 게시물을 올렸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글과 함께 사진 두 장이 업로드되었는데 한 장은 항공권 두 장의 구매 내역이었고, 다른 한 장은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사진이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난 홀로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에 올랐다.

북부 지역은 겨울 방학이 긴 편이라 나는 집에서 오랫동안 편하게 지낼 수 있었고, 매일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건 내가 대학교에 있을 때 꿈에도 바라던 것이었다.

유신우는 나보다 며칠 일찍 돌아왔다. 내가 돌아온 걸 알게 된 뒤 그는 이따금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나와 대화를 나눴다.

유신우는 매번 웃는 얼굴로 날 찾아왔다. 난 그것이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화해를 청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동년배로서 수다를 떨려고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어느 것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다 지난 일이고 과거는 바뀌지 않으니 말이다.

유신우는 내게 대학교에서 있었던 재밌는 일들을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그와 김현주의 숙소가 얼마나 가까운지, 둘디 어디에 가서 놀았는지를 얘기해주면서 같이 찍은 사진을 내게 한 장 한 장 보여줬다.

난 그에게 북부 지역의 펑펑 내리는 눈꽃과 처마 밑의 고드름을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북부 지역 사람들이 두꺼운 얼음을 부수고 강에 뛰어들어 수영하는걸, 그곳 떡갈비가 우리 엄마가 해준 것보다 훨씬 더 맛있다는 걸 얘기해주었다.

유신우는 대부분 조용히 듣고 있다가 가끔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식탐이 많다고 날 나무라기도 했고, 가끔은 감기 걸리지 않게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했으며, 또 가끔은 혼자서도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난 유신우가 단순히 오빠로서 날 걱정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감히 딴생각을 할 수도, 그의 말을 가슴속에 새길 수도 없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난 혼자 지내야 할 테니 말이다.

어느 날 유신우가 날 찾아왔다. 나는 두 다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허리를 숙인 채로 수박을 먹느라 얼굴과 팔다리가 엉망이었다.

그는 날 흘겨보더니 화장실로 가서 타월을 가져와 내게 던져주면서 못 말린다는 듯 말했다.

“널 좀 봐. 어느 여자애가 너처럼 먹냐? 너 자꾸 그러면 남자 친구 못 사귄다.”

그러니까 유신우는 그 때문에 내 마음을 사정없이 짓밟고 날 모욕했던 것일까?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