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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엄마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옷자락으로 울어서 빨개진 눈가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성문대 좋은 학교더라. 한국화 전공은 경한대보다 더욱 훌륭하고. 그곳에서 학교 잘 다녀. 최대한 석박사 과정까지 수료했으면 좋겠다. 나랑 너희 아빠는 몇 년 뒤 은퇴할 거야. 그곳에 남고 싶다면 우리가 거기로 이사 갈게. 그러면 너희 아빠도 북부 지역의 뚜렷한 사계절과 추운 겨울을 경험할 수 있겠다.”

“왜 울고 그래? 신혁이 거기 있잖아. 내가 보기엔 신혁이가 신우보다 훨씬 듬직해. 그리고 신혁이도 우리 수진이를 잘 챙겨줬었잖아. 신혁이가 있으니 우리 딸은 분명 괜찮을 거야.”

아빠와 엄마의 배려와 애정에 내 마음속의 우울과 미련이 옅어졌다.

그때 나는 유신우의 곁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지망을 쓸 때 온전히 나만 고려했었다. 그래서 아저씨 집에 아들이 한 명 더 있고, 그 오빠가 내가 선택한 성문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걸 잊었다.

어떤 일들은 운명일지도 몰랐다. 돌고 돌아, 나는 또 유신우 가족의 곁에서 살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상대는 유신우가 아니라 항상 날 여동생처럼 아껴주던 유신혁이었다.

유신우는 나보다 하루 일찍 떠났다. 그를 배웅해 주고 싶었지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집 문을 나설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 현관문 렌즈를 통해 몰래 그를 보았다.

유신우는 큰 캐리어를 끌고, 큰 가방을 메고 우리 집 문 앞에 2분간 서 있었다.

나는 내가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걸 유신우에게 들킬까 봐 서둘러 코와 입을 막고 숨소리를 죽였다.

아저씨가 재촉하고 나서야 유신우는 걸음을 뗐다.

그의 꼿꼿한 뒷모습과 뻣뻣한 머리, 심플한 티셔츠와 청바지, 검은색 스니커즈까지, 그에게서 활력이 느껴졌다.

난 문을 사이에 두고 유신우가 한 걸음, 한 걸음 집을 떠나는걸, 내 세계에서 떠나는 걸 지켜보았다.

그의 뒷모습은 계단에서 사라졌다. 난 비틀거리면서 베란다로 나가 구석에 몸을 숨긴 채 천천히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다 그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힘 빠진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엉엉 울었다.

드디어 유신우와 완전히 헤어졌다. 좋아한다는 말은 그렇게 평생 갈 곳을 잃었다.

...

대학교 생활은 새롭고 바빴지만 난 종종 유신우와 함께 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유신우는 뭘 하고 있을지, 내 생각은 하고 있을지, 내가 곁에 없는 데 잘 지내는지, 매일 귀찮게 쫓아다니는 내가 없어서 많이 행복한지 하는 생각들을 했다.

난 유신우와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적이 없어서 습관이 되지 않았고 마음이 공허했다.

그를 향한 그리움이 뱀처럼 날 조여와서 숨 쉬는 것마저 괴로웠다.

주의를 돌리기 위해 난 여러 동아리에 가입했고 할 일이 없을 때면 자원봉사도 하면서 바쁘게 돌아쳤다. 그렇게 난 매일 진이 다 빠진 채로 침대에 누워 곧바로 잠이 들었다.

난 그의 인스타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고 그의 전화번호를 연락처에서 삭제했다. 난 그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그를 향한 이 지독한 그리움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각자 대학교로 간 뒤에도 우리는 가끔 연락했다. 유신우는 카톡으로 내게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기도 했고 내게 사진 좀 보내달라고도 했었다.

난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매번 덤덤하게, 짧게 답장을 보냈다.

그가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는 내 사진을 보내달라는 건지, 학교 사진을 보내달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난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인문학적인 특징이 있는 사진들을 그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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