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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 난 지망을 경한대에서 다른 명문대 성문대로 고쳤다. 성문대의 한국화 전공은 전국적으로 유명했고 또 많은 대가를 배출해 냈다고 한다.

경한대에 가고 싶지 않은 나에게 성문대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내게 경한대를 썼냐고 물었었는데 난 대충 얼버무렸다.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난 오랫동안 넋을 놓았다.

나와 유신우는 같은 세계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교를 다른 곳으로 간다면 나와 유신우 사이에 더욱 확실하게 선이 그어질 것이다.

유신우는 자기 합격통지서를 들고 우리 집으로 달려와서 내걸 보고 싶다고 했다.

“수진아, 네 합격통지서 좀 보자. 이건 내 거야. 너도 봐봐.”

유신우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그건 내 기억 속 오랫동안 날 잠 못 들게 했던 미소였다.

난 평온한 얼굴로 그에게 합격통지서를 건네주었다. 학교 이름을 확인한 유신우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뜻밖이라서, 놀라서 그랬을 것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유신우의 말을 잘 따랐었다. 그래서 내가 대학교 지망 같은 중대한 일에 있어 그의 뜻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내가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란 걸, 그가 날 바꿔놓았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 듯했다.

“수진아, 왜 그런 거야?”

그는 상처받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유신우, 난 널 잃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팠어. 난 나까지 잃을 수는 없어. 넌 내가 필요 없고 날 사랑하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날 그냥 보내줘.’

“선생님이 성문대 한국화가 내게 더 잘 맞을 거라고 했거든.”

난 덤덤히 웃으면서 그의 시선을 피했다. 난 내 대답을 들은 그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지 않았다.

“망했다. 너 아직도 날 미워하는 거지? 네가 나랑 다른 대학교를 선택한 걸 우리 엄마가 알게 된다면 나 맞을지도 몰라.”

“그럴 리가 없어. 우리 가까이 살아서 아줌마가 정말 널 때리려 한다면 내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내가 아줌마한테 직접 설명할게. 너 맞지 않게.”

난 덤덤히 대답했다.

유신우는 갑자기 내 앞에 엎드렸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그의 속눈썹까지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내 심장은 또 주책맞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난 그의 눈동자를 정말로 좋아했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밤하늘 같았다.

“수진아, 나 좀 봐. 너 그날 내가 했던 말 신경 쓰여서 이러는 거지? 계속 날 미워했던 거야? 날 용서하지 않은 거야? 수진아, 그날 난 아무 말이나 막 내뱉은 거야. 잊어주면 안 돼?”

잊을 수 있을 리가.

내게 그렇게 큰 상처를 주었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을 잃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비참한데 존엄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결과를 뻔히 알고 있으면서 굳이 고생길을 선택할 필요도 없었다.

“잊었어.”

내가 말했다.

유신우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떠났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뭐가 불만이란 말인가?

...

내가 살고 있는 남운은 완전 남부 지역이었고 성문대는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북부 지역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그렇게 먼 곳으로 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몇 년간은 거기서 쭉 살 테니 말이다.

부모님은 내가 그곳 기후에 적응하지 못할까,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그들이 없는 생활에 낯설어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합격통지서를 받은 그날 밤부터 엄마는 울면서 내게 재수해서 내년에 경한대로 가면 안 되겠냐고, 정 안 되면 남운의 다른 사범대로 가도 좋다고 했다.

부모님은 내가 가까운 곳에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날 보살펴줄 수 있고, 매일 내 생각에 그리워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내 마음도 중요했다. 유신우를 잊고 다시 시작하려면 적당한 환경이 필요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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