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 난 지망을 경한대에서 다른 명문대 성문대로 고쳤다. 성문대의 한국화 전공은 전국적으로 유명했고 또 많은 대가를 배출해 냈다고 한다.경한대에 가고 싶지 않은 나에게 성문대는 최고의 선택이었다.아저씨와 아줌마는 내게 경한대를 썼냐고 물었었는데 난 대충 얼버무렸다.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난 오랫동안 넋을 놓았다.나와 유신우는 같은 세계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교를 다른 곳으로 간다면 나와 유신우 사이에 더욱 확실하게 선이 그어질 것이다.유신우는 자기 합격통지서를 들고 우리 집으로 달려와서 내걸 보고 싶다고 했다.“수진아, 네 합격통지서 좀 보자. 이건 내 거야. 너도 봐봐.”유신우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그건 내 기억 속 오랫동안 날 잠 못 들게 했던 미소였다.난 평온한 얼굴로 그에게 합격통지서를 건네주었다. 학교 이름을 확인한 유신우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뜻밖이라서, 놀라서 그랬을 것이다.난 어렸을 때부터 유신우의 말을 잘 따랐었다. 그래서 내가 대학교 지망 같은 중대한 일에 있어 그의 뜻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그는 내가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란 걸, 그가 날 바꿔놓았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 듯했다.“수진아, 왜 그런 거야?”그는 상처받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유신우, 난 널 잃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팠어. 난 나까지 잃을 수는 없어. 넌 내가 필요 없고 날 사랑하지도 않잖아. 그러니까 날 그냥 보내줘.’“선생님이 성문대 한국화가 내게 더 잘 맞을 거라고 했거든.”난 덤덤히 웃으면서 그의 시선을 피했다. 난 내 대답을 들은 그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지 않았다.“망했다. 너 아직도 날 미워하는 거지? 네가 나랑 다른 대학교를 선택한 걸 우리 엄마가 알게 된다면 나 맞을지도 몰라.”“그럴 리가 없어. 우리 가까이 살아서 아줌마가 정말 널 때리려 한다면 내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내가 아줌마한테 직접 설명할게. 너 맞지 않게.”난 덤덤히 대답했다.유신우는 갑자
엄마는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옷자락으로 울어서 빨개진 눈가를 닦으며 중얼거렸다.“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성문대 좋은 학교더라. 한국화 전공은 경한대보다 더욱 훌륭하고. 그곳에서 학교 잘 다녀. 최대한 석박사 과정까지 수료했으면 좋겠다. 나랑 너희 아빠는 몇 년 뒤 은퇴할 거야. 그곳에 남고 싶다면 우리가 거기로 이사 갈게. 그러면 너희 아빠도 북부 지역의 뚜렷한 사계절과 추운 겨울을 경험할 수 있겠다.”“왜 울고 그래? 신혁이 거기 있잖아. 내가 보기엔 신혁이가 신우보다 훨씬 듬직해. 그리고 신혁이도 우리 수진이를 잘 챙겨줬었잖아. 신혁이가 있으니 우리 딸은 분명 괜찮을 거야.”아빠와 엄마의 배려와 애정에 내 마음속의 우울과 미련이 옅어졌다.그때 나는 유신우의 곁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지망을 쓸 때 온전히 나만 고려했었다. 그래서 아저씨 집에 아들이 한 명 더 있고, 그 오빠가 내가 선택한 성문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걸 잊었다.어떤 일들은 운명일지도 몰랐다. 돌고 돌아, 나는 또 유신우 가족의 곁에서 살게 되었다.그래도 다행히 상대는 유신우가 아니라 항상 날 여동생처럼 아껴주던 유신혁이었다.유신우는 나보다 하루 일찍 떠났다. 그를 배웅해 주고 싶었지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집 문을 나설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 현관문 렌즈를 통해 몰래 그를 보았다.유신우는 큰 캐리어를 끌고, 큰 가방을 메고 우리 집 문 앞에 2분간 서 있었다.나는 내가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걸 유신우에게 들킬까 봐 서둘러 코와 입을 막고 숨소리를 죽였다.아저씨가 재촉하고 나서야 유신우는 걸음을 뗐다.그의 꼿꼿한 뒷모습과 뻣뻣한 머리, 심플한 티셔츠와 청바지, 검은색 스니커즈까지, 그에게서 활력이 느껴졌다.난 문을 사이에 두고 유신우가 한 걸음, 한 걸음 집을 떠나는걸, 내 세계에서 떠나는 걸 지켜보았다.그의 뒷모습은 계단에서 사라졌다. 난 비틀거리면서 베란다로 나가 구석에 몸을 숨긴 채 천천히 멀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보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은 적도 많았다.유신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와 만나고 있었고 난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도, 나의 사적인 감정 때문에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그가 보고 싶어도 먼저 그에게 문자를 보낸 적은 없었다.연락을 줄이는 건 몹시 어려웠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난 그를 떨쳐내기로 맹세했다.겨울 방학 때쯤 유신우는 내게 언제 돌아가냐고 연락했다.난 휴대전화 속 그 몇 글자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난 생각하지 않고, 보지 않으면 정말로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다.하지만 그가 보낸 문자를 보았을 때, 그리움은 마치 휘몰아치는 태풍처럼 내 마음을 휩쓸었다.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그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면서 바보처럼 울었다.난 여전히 그를 좋아했고, 여전히 그를 잊지 못했다.하긴, 18년의 세월을 어떻게 쉽게 잊을 수 있을까?하지만 잊지 못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우리는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내게는 내 세계가 있었고 유신우에게는 유신우의 세계가 있었다. 난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장을 써 내려갔다.[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어차피 길이 겹치는 것도 아닌데 난 신경 쓰지 마.]그날 오후, 유신우는 인스타에 게시물을 올렸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글과 함께 사진 두 장이 업로드되었는데 한 장은 항공권 두 장의 구매 내역이었고, 다른 한 장은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사진이었다.마음이 너무 아팠다.난 홀로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에 올랐다.북부 지역은 겨울 방학이 긴 편이라 나는 집에서 오랫동안 편하게 지낼 수 있었고, 매일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건 내가 대학교에 있을 때 꿈에도 바라던 것이었다.유신우는 나보다 며칠 일찍 돌아왔다. 내가 돌아온 걸 알게 된 뒤 그는 이따금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나와 대화를 나눴다.유신우는 매번 웃는 얼굴로 날 찾아왔다. 난 그것이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화해를 청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순간 심장이 아팠다. 달았던 수박이 순간 맛없어졌다.난 유신우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수박 껍질을 그릇 위에 놓은 뒤 지저분해진 내 몸을 닦았다.‘유신우, 그거 별 뜻 없이 한 말이야?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거야? 널 좋아했던 나는 얼마나 노력해야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난 어쩌면 평생 묵묵히 내 어린 시절의 감정을 안고 외롭게 홀로 지내야 할지도 몰랐다.유신우는 진짜 너무 지독했다.날 좋아하지 않는 걸로도 부족해 이젠 나 혼자 편안하게 살려는 것마저 방해하려고 했다.‘제발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 줘, 제발!’두 가족은 설날을 함께 보냈다.우리 세 식구는 아저씨의 초대를 받았다. 엄마와 아줌마는 설날 메뉴를 고민했고 아빠와 아저씨는 TV를 보면서 수다를 떨었다.TV에서 설날 특집으로 나오는 각종 예능과 드라마 때문에 명절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난 할 일이 없어서 몇 번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아줌마가 날 잡으며 유신우의 방에 가서 놀라고 했다.난 거절하지 않았지만 그의 방에 찾아가지도 않았다. 난 소파 구석 자리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보았다.예전에 있었던 일이 좌우명처럼 항상 내 머리 위에 떠 있어 잊을 수가 없었다. 유신우는 그 일로 내게 사과를 했지만 난 여전히 그가 껄끄러웠다.난 내가 너무 속 좁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내 마음에 남은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고, 어쩌면 영원히 아물 수 없을지도 몰랐다.난 그를 좋아하면서도 그와 가까워지는 걸 피하려고 했다. 난 왜 이러는 걸까?“왜 혼자 여기 이러고 있어? 버림받은 강아지처럼.”갑자기 휴대전화를 빼앗긴 나는 깜짝 놀랐다.유신우는 키도 컸고 팔도 길었다. 그는 한 손으로 소파 손잡이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 있었다.난 너무 심심해서 예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그 드라마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아주 길어서 시간을 때우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드라마 보고 있는데 왜 뺏어
유신우는 내게 휴대전화를 던져주었고 나는 황급히 받았다. 곁눈질로 본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난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떻게 그와 지내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가까이 있으면 싫어했고 너무 멀어져도 싫어했다.내가 어떻게 하든 유신우는 항상 트집을 잡았다.휴대전화를 받은 나는 드라마를 볼 생각이 사라졌다. 나는 조금 전 그가 했던 말을 끊임없이 곱씹었다.여자들은 너무 생각이 많다니.여자들이라는 건 나와 누구를 가리키는 걸까? 유신우는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특이해서 여자애들과 지내는 걸 싫어했고 난 그의 곁에 있는 유일한 여자애였다. 유신우가 가리킨 다른 상대가 김현주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유신우는 단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다. 그리고 내가 줬던 애정은 오롯이 내 일이었다.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 휴대전화 갤러리를 클릭한 나는 오랫동안 소장해 왔던 사진들을 하나둘 삭제하기 시작했다.그건 내게 살갗을 벗기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아쉬운 일인 동시에 또 아주 평온한 일이었다.전부 삭제하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9시쯤, 유신혁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려 왔고 다들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수진아, 이리 와. 신혁이가 너한테 할 얘기가 있대.”난 얌전히 아줌마 곁에 앉았다. 휴대전화 속 유신혁은 웃음기 띤 눈빛으로 조용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수진아, 교수님이랑 이곳저곳 다니느라 널 마중 나가지 못했네. 어때? 학교는 괜찮아?”“응.”1년 못 본 사이에 신혁 오빠는 더욱 성숙해진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유신우도 잘생겼는데 유신혁은 유신우보다 더욱 준수했다. 특히 눈가의 점 때문에 아주 매혹적인 느낌을 주었다.“먹는 건 괜찮아?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안 빠졌는데? 음식은 입맛에 잘 맞는 것 같아. 특히 떡갈비가 맛있어.”나의 식탐 많은 모습에 유신혁은 활짝 웃으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그래, 나 3, 4월쯤 돌아갈 건데 그때 떡갈비 사줄게.”유신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빠르게 지나간다. 한 것도 없는데 또 개강할 때가 되었다.난 엄마와 아줌마의 요구에 못 이겨 결국 유신우와 같은 날 떠나는 항공권을 샀다.공항에 도착하자 김현주가 길가에 서서 유신우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유신우는 부모님의 시선을 피해서 기쁜 얼굴로 김현주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김현주의 손을 잡은 뒤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연애 중인 그들은 하루라도 얼굴을 못 보면 서로를 그리워했다.난 질투 때문에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지 않으려고 했고, 혼자 캐리어를 끌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공항은 아주 컸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 바쁘게 움직였다. 이건 그들의 운명이었다.앞으로 우리의 삶 또한 이렇게 될 것이다.난 눈물을 머금고 속으로 묵묵히 그와 작별 인사를 했다.이번 학기는 저번 학기보다 학업량이 많았다. 나는 잡념을 없애고 공부에만 열중했다.그러다 문득 나는 내 마음이 점점 고요해짐을 발견했다.난 우리 과에서 주최한 시합에 참여했는데 성적이 아주 좋아서 과에 소문이 났다.초빙교수는 내 그림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내게 내가 이해한 행복을 꽃으로 그려보라고 했다. 잘 그린다면 내 그림을 전시회에 전시할 것이며 날 자신의 지도학생으로 받아줄 거라고 했다.그 교수님은 한국화 업계에서 지위가 아주 높았기에 그의 지도를 받는 건 모든 한국화 전공 학생이 꿈에도 그리던 일이었다.난 교수가 원한 학생이었기에 다른 학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고 동시에 작화 수준도 그만큼 높아야 했다.나는 한 달간 공을 들여 그림을 완성한 뒤 긴장되는 마음으로 교수님에게 그림을 보여줬다. 그때 교수님은 누군가와 영상으로 회의하고 있었다.내가 나가려는데 교수님이 날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내 그림을 영상 속 상대방에게 보여주면서 평가를 부탁했다.회의가 끝난 뒤에야 난 상대가 교수님이 지도하는 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교수님은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과제물을 봐주고 있었다.그리고 내 그림은 다시 한번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교
취미가 비슷하다 보니 유신혁과는 말이 잘 통했고, 같이 있을 때도 아주 편했다.가끔은 짬을 내 그의 SNS를 보면서 내 멘탈을 단련하기도 했다.유신우는 예전의 냉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거의 매일 같이 자신의 행복한 일상을 게시했다. 둘이 술을 마시러 갈 때도 있었고,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할 때도 있었다. 둘이 달콤하게 연애하는 모습을 보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난 유신혁이 사주는 떡갈비로 내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고 했으나 유신혁의 복귀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룸메이트와 떡갈비를 두 번이나 먹었다.그해 여름 방학, 유신우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나도 유신우를 방해하지 않고 홀로 다시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난 그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졌고, 홀로 천천히 성장하는 법을 배웠다.밤 비행이라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여섯 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미처 아빠, 엄마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대충 씻은 뒤 침대에 누워 잠을 보충했다.내가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점심 때였다. 엄마는 갓 만든 음식들을 식탁 위로 옮기고 있었다. 내가 깬 걸 본 엄마는 내게 밥을 먹으라고 했다.“엄마, 저 비빔면 먹고 싶어요.”“저녁에 아줌마가 밥 사준대. 비빔면은 다음에 먹자.”저녁 식사는 길모퉁이에 있는 가게에서 하기로 했다. 늦게 도착한 내가 룸 안으로 들어갔을 때 빈자리는 하나뿐이었다.“수진아, 왜 이렇게 늦었어? 다들 너만 기다렸어.”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유신우가 입을 열었다.눈을 비비면서 그의 말에 대답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눈에 날카로운 칼을 찔러넣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져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못 본 사이에 유신우는 더욱 성숙해진 듯했고, 그의 눈빛에서는 다정함이 보였다.김현주는 쑥스러운 듯 웃어 보이면서 유신우의 팔에 기대어 있었고, 유신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끼어들 틈이 없을 만큼 다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눈도 아팠고 마음도 아팠다.유신우는 김현주를 부모님에게 소개했다. 나와 유
“수진아, 현주가 간도 작고 낯가림도 심해. 그러니까 현주랑 잘 지내야 해. 나 실망하게 하지 마.”난 그를 실망하게 할 만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신우는 확실히 날 실망하게 했다.19년을 알고 지냈으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유신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날 못된 사람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태연한 얼굴로 내게 경고까지 했다.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유신우에게 실망스러웠다.“그래.”아저씨와 아줌마는 김현주 집안일을 알고 있는 건지 아주 불쾌해 보였다. 식사가 시작된 뒤 아저씨와 아줌마는 내게 계속 음식을 집어줬고 김현주는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김현주는 안절부절못했고 유신우는 끊임없이 그녀를 달랬다.우리 엄마와 아빠는 남의 가족 일에 말을 얹지 않았다. 나는 식사가 시작된 뒤로부터는 그저 밥만 열심히 퍼먹었다.그건 가장 재미없는 식사 자리였다.배가 부를 때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밖에 있는 테라스로 나가서 바람을 쐬었다.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테라스는 아주 작았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 들키지 않게 숨었다.잠시 뒤, 시끄러운 발소리가 테라스 바깥쪽에 멈췄다. 난 들키고 싶지 않아서 소리 없이 안쪽으로 몸을 움직였다.“신우야, 너 어디 아프니? 그 현주라는 애가 뭐가 그리 좋아서 거기에 목매달려는 거야? 너 대학교 졸업한 뒤에 공기업에 취업하려면 심사를 거처야 해. 걔 집안 때문에 너 떨어질 수도 있어. 걔는 집안 조건도, 능력도 수진이보다 뒤처져. 그런데 왜 굳이 걔여야 하는 거야?”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줌마와 유신우였다.난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들 가족 일을 외부인인 내가 많이 아는 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이건 대놓고 훔쳐 듣는 것과 다름없었다. 비록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 들킨다면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하지만 테라스는 사방이 꽉 막혀 있었다. 내가 뛰어내리거나 그들이 떠나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