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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옆 반에는 김현주라는 전학생이 있었다.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 짧게 일자로 자른 단발머리, 그리고 웃을 때마다 보이는 대칭되는 작은 보조개까지, 아주 귀여운 여학생이었다.

난 유신우가 그녀와 같이 다니는 걸 여러 차례 보았다. 손을 잡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난 몇 번이나 마음이 아팠다.

수능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 답을 맞춰본 날, 유신우가 김현주의 손을 잡고 구석에 숨어 그녀와 같은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는 걸 난 내 두 눈으로 보았다. 유신우는 김현주의 기사가 되어 평생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고 했었다.

당시 나는 마음이 아파 죽을 것 같았다.

한 사람의 정력은 유한하다. 유신우는 기사가 되기를 선택했는데 어떻게 또 날 지켜주겠는가? 유신우는 그저 자신의 자책감을 덜고 싶었던 것뿐이다.

나도 사람이다. 난 또 한 번 상처받기 싫었고, 더 오래 아프기 싫었다. 애정행각을 벌이는 그들의 모습을 매일 같이 지켜보는 건 내게 큰 상처였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난 18년 동안 유신우에게 내 애정을 쏟았다. 그리고 이젠 날 위해 살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과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나와 유신우는 같은 날 지망을 썼다.

유신우는 지망을 다 쓴 뒤 토끼처럼 내 방으로 뛰어 들어와서 들뜬 목소리로 내게 선택했느냐 물었다.

난 그의 눈동자가 빛나는 걸 보았다.

그건 나 때문이 아니었고 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응.”

“경한대 썼지? 올해 경한대에서 모집인원을 확대해서 너라면 분명 붙을 수 있을 거야.”

“유신우, 김현주도 경한대 쓴 거야?”

사실 묻고 싶지 않았다. 대답은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결국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물었다.

여전히 유신우에게 희망을 품고 있다니, 얼마나 멍청한가?

하지만 유신우가 좋은 걸 어쩌겠는가?

유신우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활짝 웃었다.

“응. 걔 엄청 소심하잖아. 내가 곁에 없으면 매일 울까 봐 겁나.”

난 애써 슬프지 않은 척했다.

유신우는 바보 같았다. 그를 그리워할 때 나도 매일 같이 울었었는데, 유신우는 영원히 그 사실을 모를 것이다.

유신우는 정말로 단 하루도 내게 마음을 준 적이 없었다.

“기사가 되는 건 그렇게 쉽지 않아. 앞으로 너도 바쁠 텐데 정신 바짝 차려야지.”

난 농담을 했다.

유신우는 천천히 미소를 거두어들이더니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의 억지 미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진아,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유신우는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하지만 겨우 미안하다는 말 몇 마디로 내 상처가 나을 수는 없었다.

난 덤덤히 웃으며 책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네 개의 서로 다르게 생긴 호랑이 피규어가 놓여 있었다. 아주 귀여웠다.

그것은 나의 16살 생일에 유신우가 준 것이었다. 당시 유신우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수진아, 이건 내가 여자 친구를 위해 준비한 건데 네가 잠깐 맡아줘. 나한테 여자 친구가 생기면 그때 다시 돌려줘.”

당시 천진난만했던 나는 유신우가 말한 여자 친구가 나인 줄 알았었다. 그리고 이제 깨달았다. 유신우는 단순히 날 선물을 맡아줄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걸 말이다.

3년이 지난 지금 유신우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다. 그러니 이젠 그걸 돌려줄 때가 되었다.

난 호랑이 피규어 네 개를 그의 손에 올려두었고 유신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뭐냐고? 유신우, 넌 네가 했던 말도, 네가 했던 행동도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그래서 이러는 거야?’

“이건 네가 나한테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거야. 여자 친구에게 선물로 줄 거라고. 이제 여자 친구가 생겼으니 내가 계속 맡아주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주인한테 돌려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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