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떻게 위로하길 바라는 거야?”등받이에 착 달라붙은 차설아는 순수한 눈빛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그녀도 사실 자신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다.이치대로라면 성도윤의 이런 모습을 봤으니, 드디어 보복받았다고 기뻐해야 마땅하다.하지만, 그의 슬픈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불편해졌다.“누군가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과 새로운 사람이라고 했어. 시간은 있고, 새로운 사람이라면...”성도윤은 짙은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았다.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살짝 치켜들며 나지막이 말했다.“모두 당신을 보고 청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하던데. 차라리 몇 분 동안 청하 대역이 되어 나에게 위로의 키스를 하는 건 어때?”말을 마친 남자는 눈을 감았다. 조각한 듯 완벽한 이목구비에 얇은 입술이 천천히 차설아에게 다가왔다.어떤 여자도 이런 잘생긴 얼굴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한때 차설아도, 이 얼굴에 빠지고 말았었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어리석지 않다. 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나보고 대역을 하라고?’“꿈 깨!’차설아는 힘을 모아 남자를 밀어버릴 준비를 했다.갑자기 차설아는 조용한 차 안에서 예사롭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움직이지 마!”성도윤은 눈을 떴다. 깊은 눈동자에는 못마땅함이 가득했다.“거절해?”“장난 그만해!”“당신 차 이상하단 말이야!”성도윤은 급히 경계하더니, 이내 숙연한 모습으로 돌아갔다.“이상한 소리 못 들었어? 뚜뚜뚜...”성도윤은 차갑게 눈살을 찌푸리고 숨을 죽이고는 소리에 집중했다.역시 “뚜뚜뚜”소리가 운전석 바닥에서 흘러나왔다.차설아는 침을 삼키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내 추측이 맞는다면 당신 차에 타이밍 폭탄이 설치되었어!”“뭐라고?”성도윤의 표정이 차가워졌다.보아하니 더 이상 앉아 있기 어려운 모양이다.성도윤이 일어서서 살펴보려는데 차설아가 급히 그를 눌렀다.“죽고 싶어? 움직이지 말라니까!”늘 모든 것을 통제하는 데 익숙했던 성도윤은 처음으로 여린 여자에게 장악당했다
성도윤은 차설아의 이상함을 눈치챘다.“왜 그래?”“아니야, 그냥 오래 엎드려 있어서 발에 쥐가 났어.”차설아는 불편함을 애써 참으며 다시 조수석으로 돌아왔다.그녀는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절대 성도윤이 임신 사실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집으로 돌아온 차설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꼼짝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배경수에게 전화했다.“빨리 우리 집에 와. 나 병원에 좀 데리고 가!”배경수는 20억 원 호가의 슈퍼카를 몰고 가장 빠른 속도로 차설아를 인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일련의 검사를 마친 후, 차설아는 병상에 누워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계속 바삐 돌아치던 배경수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고, 잘생긴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예를 들어, 차설아가 왜 산부인과에 와서 진료받으려 하는지.검사 결과가 나오자, 배경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네? 임신 6주라고요?”의사는 안경을 밀며 차설아와 배경수에게 말했다.“임신 초기에는 태아가 아주 약하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부모가 태아를 잘 보호해 주셔야 해요.”“검사 결과를 보면 유산 조짐이 보이지만 큰 문제는 없어요. 며칠 누워서 휴식을 취하면서 산소를 좀 마시면 나을 듯합니다.”아이가 무사하다는 말을 들은 차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네, 감사합니다.”간호사는 차설아에게 산소 호흡기를 달고 몇 마디 당부하고는 밖으로 나갔다.병실에는 차설아와 배경수 두 사람만 남았다.배경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황급히 물었다.“보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며칠 안 본 사이에 아이까지 생겼어? 애 아빠는 누구야?”차설아는 어이가 없었다.“누구겠어?”배경수는 바로 알아차리고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빌어먹을. 성도윤, 이 망할 인간. 어떻게 보스를 임신시키고 또 내연녀를 데리고 와서 이혼을 강요해? 사람을 괴롭혀도 정도껏 해야지!”“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거야? 내가 당장 가서 따질 거야!”배경수가 노기등등하여 성도윤을 찾아가
며칠 휴식을 취한 차설아는 몸이 회복되었다.차설아는 일찍이 프린트해둔 법률 사무소 양도서를 가지고 성대 그룹으로 가서 성도윤의 사인을 받으려 했다.오늘 성대 그룹의 분위기는 아주 엄숙했다. 건물 외곽에 경계선이 쳐져 있었는데, 중요한 인물이 외빈을 데리고 시찰하러 왔다고 해서 많은 언론이 미리 도착해 대기하고 있었다.차설아는 경계선 밖에 막혀, 시찰이 끝나야 빌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멀리서 검은 양복 차림의 성도윤이 보였다. 늘씬한 몸매의 그는 빌딩의 가장 중심에 서서 우아하고 여유롭게 몇몇 시찰 원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잘생긴 얼굴에 차가운 분위기, 타고난 고귀한 기질은 언제나 의기양양하고 매혹적이었다.이때 구경꾼들 사이에서 갑자기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나 들어갈 거야! 당장 비켜. 네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알아?”남자는 경계선을 뚫고 성도윤을 찾으러 가겠다고 떠들고 있었다.허광희!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허광희는 여전히 무례하게 성도윤을 향해 목청껏 소리쳤다.“조카사위, 조카사위, 날 좀 보게나. 난 설아의 외삼촌이야. 내가 도저히 힘들어서 자네를 찾아왔네. 나 좀 살려주게나!”이 소리는 이내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의 시선을 끌었고, 잇달아 카메라들이 허광희를 비추기 시작했다.‘창피해!’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냉담한 얼굴로 걸어가서 말했다.“뭔 낯짝으로 여기서 소란을 피워요!”“설아, 너도 있었구나. 너무 다행이야. 네 남편보고 좀 오라고 해. 재산 분할에 관해 상의해야지.”“난 네 친정 식구야. 네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겠어?”허광희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끌 작정인지 염치없이 큰 소리로 말했다.그는 오늘 성대 그룹에 중요한 행사가 있다는 것을 노리고, 언론의 힘으로 성도윤을 압박하여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었다.차설아는 너무 창피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무엇보다, 이 일로 성도윤을 화나게 한다면 지분 양도건도 물 건너 갈지 모른다.“
성도윤의 막강한 카리스마에 허광희는 다소 기가 눌렸다.하지만 많은 카메라가 그들을 보고 있으니, 허광희는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조카사위,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허광희는 목청을 가다듬고 큰 소리로 말했다.“내 조카는 자네 집에 시집을 가서 줄곧 본분을 다했어. 그런데 지금 이혼하겠다고 하고, 고작 법률 사무소 하나만 챙겨주면 설아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이 큰 그룹에서 고작 법률 사무소 하나만 내어주다니!”이 말이 나오자 모두 떠들썩했고 기자들은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내 조카는 낯가죽도 얇고 겁이 많아서 나한테 도와 달라고 하룻밤을 사정했어...”“다른 말은 필요 없고, 우리한테 100억을 주면 깨끗하게 물러나지.”허광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입 다물어!”차설아는 이를 갈며 말했다.차설아가 한강에 뛰어들어 죽어도 누명을 씻을 수 없게 되었다. 차설아는 진심으로 이 무뢰한 인간을 손으로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차설아는 조심스럽게 성도윤을 바라보았다. 그가 화낼 줄 알았는데... 남자는 오히려 차분했다. 여전히 차갑고 거리감 느껴지는 모습이었다.큰 키의 성도윤은 하늘의 신처럼 사람에게 압박감을 주며 몸을 약간 돌려 말했다.“무열아, 재무실로 데리고 가.”그리고 긴 다리로 곧장 자리를 떠났다.‘이게... 끝이라고?’허광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100억을 이렇게 쉽게 얻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일이 어렵게 풀릴까 봐 허광희는 작은 칼까지 준비해서 목숨으로 협박할 생각이었다.‘조카사위가 이렇게 시원시원할 줄 알았다면 더 달라고 할걸!’성도윤은 몇 걸음 걷다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차설아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안 따라와?”차설아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성도윤은 차설아를 데리고 다시 시찰단으로 돌아와 그녀를 사람들에게 소개했다.차설아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단정하고 참한 성도윤의 아내로 돌아갔다. 그런 차설아의 모습에 시찰단은 몇 번이고 칭찬을 아끼지
바람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건들건들 차설아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어머, 사모님도 계셨네? 마침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는데 주인공이 빠지면 섭섭하죠.”차설아는 당연히 바람의 말의 다른 뜻을 이해했다.전에 바람과 협력하지 않으면 차설아가 스파크라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었다. 이제 보니 겁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이었다!성도윤이 법률 사무소 주식 양도서에 서명하는 것을 기다려야 하므로 그녀가 스파크라는 정체는 절대 지금 드러나서는 안 된다.“바람 씨, 오랫동안 존경해 왔어요. 제가 먼저 따로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결과는 이미 정해졌지만, 차설아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 끝까지 발악해 보기로 했다.바람이 자비를 베풀 수도 있지 않은가?“당연하죠.”바람의 좁고 긴 눈망울은 목적을 달성한 듯한 교활함을 드러내며 웃었다.“사모님께서 특별히 요청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두 사람은 동시에 그들 사이에 있는 성도윤을 바라보았다.자리를 비켜달라는 뜻이었다.성도윤의 원래 냉철한 얼굴은 더욱 차가워졌다.“5분 드리죠.”성도윤은 거만한 태도로 바람에게 말한 후, 곧장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 얼음처럼 차가운 모습은 마치 빙산처럼 느껴졌고, 지나가는 곳마다 한기가 서렸다.성도윤이 떠나자 차설아는 바람을 데리고 외진 곳에 끌고 갔다. 긴 손가락으로 바람의 목덜미를 잡으며 살벌하게 벽에 눌렀다. “경고하는데 잠자코 있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내 신분을 폭로한다면 당장 네 목을 부러뜨릴 테니까!”바람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오히려 흥분한 모습이었다.“의외네? 거장 스파크는 코드만 잘 치는 게 아니라 주먹도 일품이야. 역시 보물이었어. 당신과 더 협력하고 싶은데 어쩌지?”“닥쳐!”차설아는 행여나 다른 사람이 듣거나 보게 될까 봐 즉시 손바닥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고, 몸을 더 바짝 붙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촐싹대던 바람은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얌전하게 침을 꿀꺽 삼켰다.
차설아는 심호흡하고 성도윤의 사무실로 들어갔다.훤칠한 키, 넓은 어깨에 긴 다리까지 더해지니 창가 옆에 서 있는 그의 다부진 몸매가 유난히 더 시선을 사로잡았다.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은 주변공기마저 싸늘하게 만들었고, 보아하니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차설아는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주식 양도서를 꺼내더니 그의 뒷모습을 보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도윤 씨, 시간 있을 때 여기에 사인 좀 해줘. 일찌감치 재산 분배를 완벽하게 해놔야 며칠 뒤에 깔끔하게 이혼 증명서에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아.”그녀의 말에 성도윤은 몸을 돌렸고, 따스한 햇볕에 비친 그의 얼굴은 부드럽고 매혹적이었다. “이혼 증명서로 뭘 하려고 이렇게 재촉하는 거야? 설명해야지?”“설명?”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차설아는 저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설명할 것도 없어. 첫째, 허광희가 당신한테 100억 요구한 건 그 사람 생각이고 믿든 말든 나랑은 아무런 상관없어. 둘째, 성대 그룹의 고객 시스템은 처음부터 허점이 많았고 공격받는 건 시간문제였어. 난 그저 당신들을 위해 미리 지뢰를 제거한 거고, 복수하고 싶으면 그냥 해. 셋째, 이혼 합의서에 법률사무소는 내 명의로 되어있어. 당신이 사인을 안 한다고 해도 법원에서 강제 집행할 거야.”성도윤은 착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고 한참이 지나서야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소리야?”“내가 충분히 설명했잖아, 우물쭈물하지 말고 얼른 사인해!”작은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아주는 성도윤이었기에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걸 예상하였다.성도윤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방금 코드 쓰던 남자가 네가 자기 전 여자친구라고 하더라. 나랑 이혼하는 것도 다시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줘.”“뭐라고? 전 여자친구?”그의 말에 깜짝 놀란 차설아는 하마터면 사레들릴 뻔했다.“한참 동안 하고 있던데, 고작 당신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고?”“안 그러면?”“아니,
“뭘?”차설아는 마치 질식 전 산소를 되찾은 물고기처럼 두 눈이 반짝 빛나더니 생각에 잠겼다.“주식 양도서에 사인해달라며. 시간 지나면 안 할 거야!”도도한 태도의 성도윤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설마 동의한 거야?!’차설아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재빨리 양도서와 사인펜을 공손하게 남자에게 건넸다.“여기!”행여나 자기 행동이나 표정이 그의 눈에 거슬려 갑자기 변심하지 않을까 긴장한 채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성도윤은 싸늘한 표정으로 서류에 깔끔하게 사인을 한 뒤 아무 감정 없이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다.“충고하는데 이혼 협의서에 적힌 내용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그냥 솔직하게 얘기해, 뒤에서 이상한 일 꾸미지 말고.”차갑고 잔인한 그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고 차설아는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허광희의 헛소리를 잊고 흔쾌히 양도서에 사인을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차설아를 믿지 않았다...하지만 이제는 아무 상관 없기에 차설아도 뭔가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이혼하게 된 마당에 어떤 이미지로 남을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 역시도 깔끔하게 이혼하려고 흔쾌히 서류에 사인한 게 틀림없다.“협조해 줘서 고마워. 별다른 일 없다면 아마 증명서 받는 날에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겠네. 이제 앞으로 각자 제 갈 길 가자고.”말을 마친 차설아는 서류를 건네받고 쿨하게 자리를 떴다.성도윤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하루라도 빨리 그한테서 벗어나고 싶다는 차설아의 다짐이 눈에 보였다.그는 700여 억을 포기하고 기어코 법률사무소를 원하는 차설아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성운 법률사무소에는 하나같이 다 쓸모없고 괴팍한 인간들뿐인데 정말 잘 버틸 수 있을까?’...다음날, 차설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세련된 오피스룩에 플랫 구두를 신고 씩씩하게 법률사무소로 향했다.이 법률사무소는 성대 그룹 소속이었지만 사실상
그는 수수한 옷차림에 마스크를 쓴 채 사무실 테이블 위에 있는 화초의 나뭇잎을 하나하나 정성껏 닦고 있었다.남자는 차설아의 목소리를 듣고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흥미로운 듯 고개를 들었다.“당신이 우리 법률사무소에 새로 오게 된 사장이에요? 그 성도윤한테 버림받았다던 불쌍한 여자?”차설아는 난처해하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자세하게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부분만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마스크를 벗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40대 남성이었고 자료에서 봤던 오경철의 모습과 똑같았다.배경수가 보낸 자료에 따르면 성운 법률사무소는 세 명의 동업자로 이뤄졌고 여자 한 명에 남자 두 명, 오경철은 그중 한 명이었다.그는 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연륜 있어 보이는 모습은 다가가기 쉬울 것처럼 보였지만 겉모습과 달리 쉽게 마음을 터놓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서로 만난 적도 없고 이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절 알아보신 거죠?”“아주 간단해요.”차설아는 솔직하게 말했다.“사장으로서 직원들 사전 조사하는 건 필수 아닌가요? 오 변호사님은 식물 가꾸는 걸 좋아하죠. 정말로 청소부였으면 잎사귀 하나하나 닦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을 거예요.”“재밌네요.”오경철은 흥미롭다는 듯 차설아를 보더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사전 조사를 해보셨다면 우리가 쉬운 상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계시겠네요? 똑똑한 사람이라면 알아서 포기해요.”“공교롭게도 전 도전적인 일을 좋아해요.”차설아의 목소리에서는 열정이 느꼈고 반짝 빛나는 두 눈은 마치 포기를 모르는 한 마리의 치타처럼 굳세고 강인했다.차무진의 피가 흐르고 있는데 그런 유전자를 몸에 지닌 채 어떻게 쉽게 물러설 수 있겠는가!“성도윤이 3년 동안 해내지 못한 일을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전 3년이 아니라 3일이면 됩니다!”“젊은 사람이 용기가 대단하네요. 정신적으로나마 응원할게요.”오경철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인수한 법률사무소는